달란트의 비유 (마25:14-30)
본문
I. 달란트를 받은 종들
(마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A. 출타하는 주인 여기의 주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수난 주간이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참이었습니다. 떠나시면 아버지 집에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를 마련하시려고 떠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생활에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으시므로 전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떠나신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만 주님은 우리의 처서가 준비되면 다시 오실 것입니다.
B. 달란트를 받은 종들 종들은 각자에 해당되는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종은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 선지자, 사도, 그리고 오늘의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입니다. 달란트는 사람의 성품을 이루는 타고난 재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달란트는 성령님의 거룩한 선물입니다. 돈은 단위가 아니라 주님과 성도를 섬기기 위해서 부여하신 은사와 직분, 그리고 받은 바 은혜입니다. 주님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가 남보다 많거나 적다고 불평할 권리가 없습니다. 적게 가진 자를 멸시해서도, 많이 가진 자를 시기해서도 안됩니다. 종은 달란트를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선용할 의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C. 청지기 정신을 가진 자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배의 이익을 남긴 참된 청지기 정신을 가진 자들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자입니다. 참 청지기는 맡은 달란트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땅에 묻어 두지 않고 주인을 위하여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입니다.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열심을 다해서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남겨야 합니다.
II. 회계하는 주인
(마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마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A. 주인의 소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다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음과 같습니다. 십일조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나머지 십분의 구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선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간과 재물, 은사와 은혜, 직분을 주님의 의도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도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며 잠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내 자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 길러야 할 의무만 있습니다. 은사와 은혜의 달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B. 열매가 있는 충성을 요구하심 사람이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행위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열리고난 후 잎이 생깁니다. 그래서 잎이 있으면 으레 열매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나무는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말도 많고 열심히 뛰는데 교회에 유익이 없으면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따라 하지 않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열매가 있는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C. 충성한 자들의 축복 충성한 자들의 축복은 먼저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권세자가 주는 칭찬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화복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받는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더 얻게 됩니다. 이것은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고 더 많은 봉사를 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질서가 있는 것이며 그곳에서는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가 가장 높은 자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즐거운 잔치에 초대되는 것입니다. 잔치는 천국입니다. 잔치에 초대되는 것은 천국에 초대되는 것입니다.
III. 어둠 속에서 슬피 울 자
(마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A. 불충한 종의 원망과 나태함 본문의 불충한 종은 한 달란트를 받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땅에 묻었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그대로 보존하려고만 했습니다. 어떤 변화나 발전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자비가 없는 엄격하고 굳은 분으로만 생각하고 조그만 변화만 있어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심판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잘못이나 나태함으로 죄를 짓고는 아담처럼 타인에게 죄를 전가시키고 원망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심판을 자초할 뿐입니다.
B. 불충한 종의 변명 주님의 명령을 어겨 놓고도 변명과 핑계를 일삼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주지 않으셨다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충한 종은 주인이 너무 엄격하고 인색하여 사랑이 없고 남의 노력으로 자기의 배를 채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밉기도 하고 행여 장사해서 본전까지 다 털어먹으면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신분을 잃은 망발이며 자신의 태만에 대한 변명이고 모든 책임을 자기의 주인께 전가시키려는 죄악입니다. 종에게는 주인의 뜻에 대한 실행 여부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성도들은 주어진 달란트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C. 불충한 종의 결과 이익을 남겼던 종은 칭찬을 받았지만 불충한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주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비방한 그는 악한 자이며 장사를 하지 않고 이익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이미 얻은 것까지도 빼앗겼습니다. 그것도 배의 이익을 남겨서 풍성한 자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마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A. 출타하는 주인 여기의 주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수난 주간이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참이었습니다. 떠나시면 아버지 집에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를 마련하시려고 떠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생활에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으시므로 전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떠나신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만 주님은 우리의 처서가 준비되면 다시 오실 것입니다.
B. 달란트를 받은 종들 종들은 각자에 해당되는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종은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 선지자, 사도, 그리고 오늘의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입니다. 달란트는 사람의 성품을 이루는 타고난 재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달란트는 성령님의 거룩한 선물입니다. 돈은 단위가 아니라 주님과 성도를 섬기기 위해서 부여하신 은사와 직분, 그리고 받은 바 은혜입니다. 주님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가 남보다 많거나 적다고 불평할 권리가 없습니다. 적게 가진 자를 멸시해서도, 많이 가진 자를 시기해서도 안됩니다. 종은 달란트를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선용할 의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C. 청지기 정신을 가진 자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배의 이익을 남긴 참된 청지기 정신을 가진 자들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자입니다. 참 청지기는 맡은 달란트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땅에 묻어 두지 않고 주인을 위하여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입니다.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열심을 다해서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남겨야 합니다.
II. 회계하는 주인
(마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마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A. 주인의 소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다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음과 같습니다. 십일조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나머지 십분의 구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선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시간과 재물, 은사와 은혜, 직분을 주님의 의도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도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며 잠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내 자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 길러야 할 의무만 있습니다. 은사와 은혜의 달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B. 열매가 있는 충성을 요구하심 사람이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행위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열리고난 후 잎이 생깁니다. 그래서 잎이 있으면 으레 열매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나무는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말도 많고 열심히 뛰는데 교회에 유익이 없으면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따라 하지 않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열매가 있는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C. 충성한 자들의 축복 충성한 자들의 축복은 먼저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권세자가 주는 칭찬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화복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받는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더 얻게 됩니다. 이것은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고 더 많은 봉사를 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질서가 있는 것이며 그곳에서는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가 가장 높은 자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의 즐거운 잔치에 초대되는 것입니다. 잔치는 천국입니다. 잔치에 초대되는 것은 천국에 초대되는 것입니다.
III. 어둠 속에서 슬피 울 자
(마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A. 불충한 종의 원망과 나태함 본문의 불충한 종은 한 달란트를 받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땅에 묻었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그대로 보존하려고만 했습니다. 어떤 변화나 발전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자비가 없는 엄격하고 굳은 분으로만 생각하고 조그만 변화만 있어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심판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잘못이나 나태함으로 죄를 짓고는 아담처럼 타인에게 죄를 전가시키고 원망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심판을 자초할 뿐입니다.
B. 불충한 종의 변명 주님의 명령을 어겨 놓고도 변명과 핑계를 일삼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여자를 주지 않으셨다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충한 종은 주인이 너무 엄격하고 인색하여 사랑이 없고 남의 노력으로 자기의 배를 채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밉기도 하고 행여 장사해서 본전까지 다 털어먹으면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신분을 잃은 망발이며 자신의 태만에 대한 변명이고 모든 책임을 자기의 주인께 전가시키려는 죄악입니다. 종에게는 주인의 뜻에 대한 실행 여부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성도들은 주어진 달란트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C. 불충한 종의 결과 이익을 남겼던 종은 칭찬을 받았지만 불충한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주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비방한 그는 악한 자이며 장사를 하지 않고 이익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이미 얻은 것까지도 빼앗겼습니다. 그것도 배의 이익을 남겨서 풍성한 자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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