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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택 (롬9:6-33)

본문

옛날 자녀들을 많이 낳을 때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온갖 정성을 다해서 키 워도 늘 불평만 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내버려 두고 키 워도 언제나 부모님의 사랑을 잊지 못해하는 자식이 있더라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집안에 은혜를 아는 자식이 있고,은혜를 모르는 자식이 있듯이,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신자가 있고, 아는 신자가 있습니다.아는 자는 늘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지만, 모르는 자는 받아도 받아도 끝이없고, 항상 불평 이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하는 감정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면 이 두가지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우리 각자가 어느 편의 사람 인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9장 6절의 말씀을 하나 하나 검토해 가면서 그 반응이 어떻게 나 오느냐에 따라 나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스 스로 결론을 내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고하면, 말씀을 전반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골자를 먼저 말하면, 9장 전체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마음대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사랑하신자는 구원을 받았고,또 앞으로 받을 것입니다.그 반면에 하나님이 미워하신 자는 구원을 받지 못했을 뿐 만 아니라, 아무리 구원을 받고 싶어서 애를 써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기준이나 근거를 가지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느냐 물으면 아무 근거도 없다고 합니다. 단지 [내가 좋아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확실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진립니다. 들을 때에 기분이 썩 좋지 를 않습니다. 속에서 따지거나,대들고 싶은 생각이 울컥 치미는 것을 봅니다.그러므로 이 말씀은 내가 은혜를 아는 사람인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인가를 구별하고, 갈라 놓는데 아주 적격인 말씀입니다. 우선 내용부터 내용부터 정확하게 깨달아야 할 필요가있습니다. 정확히 안 다음에야 정직한 반응을 읽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 본바와같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아직도 예수 믿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쉬지 않는 큰 고통을 가슴에 안고 고민한다고 했습니다.자연히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제를 놓고 깊이 연구하는 사람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지 않고 돌아 오지 않는 이유가 어디있을까 그 들의 운명이 도대체 어떻게 될까 하고 연구를 한 결과 6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해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본문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 신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고 있어도 절대로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 이 있었습니다. 6절 보면 알지요.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 진것 같지 않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한 그 약속이 절대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분은 신실하신 분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또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에 접근하면서 성경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하나 검토를 해봤더니 분명한 해답이 나왔습니다. 그 해답이 무엇이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구원받고 어느 사람은 버림 받았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말 엘과 이삭입니다.여러분이 잘아는 바와같이 첩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첫 아들을 얻었습니다.그리고 자기 본처로부터 이삭을 아주 노년에 얻었습니다. 둘다 아브라 함의 혈통을 타고난 정상적인 후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 셨습니까 이스말엘은 버리고, 이삭은 택했습니다. 이것을 보니까, 구원을 받는 자가 있으면, 버림을 받는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더 좋은 예를 그는 들었습니다. 이삭의 아들인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예를 그는 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했나요 똑 같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아들이지만 야곱은 사랑하고,에서는 미워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입니다. 여기서 미워했다고 하는 말을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미워했다는 말은-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야곱을 사랑했지요.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야곱은 불쌍히 여겼지만, 에서는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야곱에게는 은혜를 주셨지만, 에서에게는 은혜를 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미워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 구원 받느 냐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긴긴 역사를 살펴 보아도 바울의 결론 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구약에 기록된 역사나 구약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보아도 구원 받은 사람이 많습니까 버림 받은 사람이 많습니까 버림 받은 사람이 몇갑절 더 많습니다.하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을 져버리고 우 상숭배하다가 망한 사람의 수를 셀려고 하면 끝이 없어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 가운데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의지 한 경건한 사람들은 그 수가 아주 적습니다. 이것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했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수 행하기 위한 사명적인 선택이지, 개인개인의 영혼구원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혈통을 유지 하기 위해서 선택하셨어요. 우리에게 구원자가 오는 길을 딴아 놓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소수민족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그 러니까 사명이지요! 그 사명을 통해서는 이스라엘민족 전체가 선택 받은 사람이지 요. 왜냐하며, 그 혈통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야 하니까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개인 하나하나가 구원 완전히 구원 받는다는 것을 보장하는 선택이냐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적인 선택과 영혼구원의 선택 은 다릅니다. 사울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그러나 그의 영혼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일을 위해서는 선택을 받았지만,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27절을 한번 보세요.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이스라엘이라고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은자 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 이 구원의 원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미워하고,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 고 하는 그 근거가 무엇이냐 이유가 있느냐 고 물을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11절에 간단하게 이야기 합니다.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놓고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그 근거가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이야깁니다. 택하심을 따라-이것이 근거라 이겁니다. 하나님의 뜻,-엡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것 때문에 어떤 사람은 버리고 어떤 사람은 버렸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좀더 쉽게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그저 좋아서 어떤 사람 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저 하고 싶어서 한 것입다. 이것이 선택에 있어서 유일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납득이 안갑니다. 하나님이 기준도 없이 그저 자기가 좋으대로 택하고, 버린다면 그렇게 불공평하게 인간을 다루는 법이 어디있 습니까 에서가 얼마나 불쌍한가요 라고 질문하면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14절에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할수가 없다고 합니다. 15-16절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 가운데서 은혜로운 본문을 뽑으라면 저는 반드시 이 본문을 뽑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고 싶어서 여겼다 왜 잔소리가 많으냐 내가 불쌍히 여 기고 싶어서 여겼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으려고 달음박질 친다고(인간의 노력) 내가 그것을 보 아주는 줄 아느냐 원한다고 내가 선택한 줄 아느냐-아니야!! 사람들에게 있는 어떠 조건은 내가 전혀 나는 고려하지 않았어, 내가 좋아서 선 택한 거야. 내가 좋아서 한 일을 네가 왜 잔소리냐! 이 말입니다. 내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데 왜 잔소리냐 그 말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 까 우리는 누구의 것입니다.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사실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또 하나 예를 듭니다. 애굽의 왕 바로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17-8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대로 바로 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를 싫어해 가지고,얼마나 버티었습니까 재앙 10 가지를 받아서 애굽이 쑥 밭이 될때까지 버티다가 자기도 망하고 애굽도 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놓고 바로의 마음이 계속 가팎해졌다 고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퍼케 하셨다 고 합니다.왜 그렇게 바로의 마음을 강퍼케 하셨느냐-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를 사용하셨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 앞에 하나님 만이 진짜 신이요, 하나님 만이 이스라엘의 주권가 되신 것을 바로를 통해서 보여 주시기 위해서, 바로의 마음을 강퍼케 햇다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왜 하나님이 그렇게 했습니까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 퍅케 하시느니라 .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싶은 사람은 부드럽게 해주고 마음을 악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그대로 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버렸습니다. 여기서 강퍼케 하신다는 말을 주의합니다. 좋은 마음을 비비꼬아서 못 되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 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강퍼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본래대로 내 버려 두면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 은 더 굳어지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면서도 공경하지 않으려는 못된 근성 때문에 진흙이 굳어지듯이 굳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면 구원 받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 입니까 말씀해 보세요.-누구 탓입니까:내 탓이요-하나님의 탓이요. 우리 인간의 논리로 말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탓이지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버리셨으니까 바로 이 말이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 하느뇨 하리니-이 말의 뜻은 하나님이 버려 놓으시고는 그 사람보고 죄를 지었 느니, 지옥에 가라느니 하시느냐 하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 그렇게 따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너는 조심하라! 네가 지금 무엇인지 알지를 못해서 그래!] [내가 예를 하나 들 어 주마!]라고 합니다. 진흙을 빚어 가지고 질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를 한번 생각해봐.토기장이가 아 무 흙이나 그것을 집어서 이기고 그릇을 만든다. 그러면 토기장이 마음대로 아니 냐 왕의 밥상에 올라가는 밥그릇을 만들고 싶으면 그것을 만들고, 요강을 만들고 싶으면 요강을 만들고 토기장이의 마음대로가 아니냐 요강이 된 질그릇이 참다 못해서 [나는 하필이면 왜 요강이요!]하고 대들수 있 느냐 대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의 위치가 무엇인줄 아느냐 하나님 앞에서는 진흙이야 그가 원하는대로 이렇 게 만들고 저렇게 만들수 있는 주권이 있다. 창조주에게는 자기의 뜻대로 할수 있는 자유와 주권이 있는데 그 자유와 주권을 놓고 이러니 저러니 따질수 있느냐 하나님이 마음에 워해서 한 것을 놓고 불공평 하다고 말한다면 네가 말하는 불공평은 무엇에 근거한 불공평한 것이냐 하는 것 입니다. 네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입을 열고 떠드는 거야!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니까 건방지게 들고 나오는 거야! 하는 것이 이 본문입니다. 그러니 입다물어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진노를 그대로 내리시기로 작정할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내리시기로 작정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진노 의 그릇이 되고, 어떤 사람은 긍휼의 그릇이 되는 것이다. 자 이렇게 한번 해 보라 22절이하에는 자 어떤 사람이 있다-하나님이 이 사람을 내 버려 두기로 했다.-진노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세상에서 만사가 잘 안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사업도 망하고,다리도 부러지고,자동차도 뒤집어지기도 하고,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일이 다 잘 됩니다.자식을 도 공부를 잘하고,자동차도 좋은 것을 사고,장사를 해도 쉽게 돈을 법니다. 무엇인가 모순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북에 있는 김일성이를 보세요. 80세가 되어도 건강합니다.웬만한 사람이면 그 런 혹이 달렸으면 벌써 죽었을 텐데,그렇게 오래 살고,공산국가가 다 무너지는데 도 저렇게 잘 되고 있습니다.이해가 안갑니다. 22절 이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김일성이와 같은 진노의 자식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내 버려 두고 잘 되게 한다 하는 것입니다. 왜 잘 되게 하느냐 그 사람을 통해서 무엇인가 목적을 이루 게 하시기 위해서 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잘못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택하신 어떤 그릇이 있습니다.그 사람은 세상에서 고생을 많이 합니다. 일을 해도 잘 안됩니다. 돈을 모아 놓았다가도 털려 버립니다. 무엇인가 목적한대로 잘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는 매달리게 만듭니다. 그거보면 이상하다 하나님이 선택했다면 저 렇게 될수 있는가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가 선택한 사람을 그렇게 다루는 것도 자 기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이 마음에 두고 계시는 큰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르지요 왜 그러시는지. 원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원래 하나님 의 백성이 될수 없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케이스가 있다면 우리 이방인들입니다. 25절을 봅시다.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여러분 이사람이 누굽니까 옛날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자라, 나의 백성이라 했는데 우리를 향하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32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 에 부딪혔느니라 부딪힐 돌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예수 믿는길이 오히려 그 들에게는 부딪혀서 망하게 하는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이 놀라운 복음 때문에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운명이 바 뀌어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나님이 좋아서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이 좋아서 저들을 버리셨습니다. 믿습니까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택 받기에 합당한 자를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어떤 조건을 따지지를 않아요. 성실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보기에는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정치지도자들, 노 동자들을 착취해서 돈을 번 경제인들이 까마귀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히려 재인인사들, 고생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 시고,다 구원하셨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내가 좋아서 했다. 왜 그러냐.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합니까 하나님의 이 절대적인 자유함을 인정할수 있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부분이 조금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사고의 세계에 잠간 발을 들여 놓았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따지든 것을 멈추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책임을 추궁하듯이 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은혜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이성과 지식의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말고,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게 무릎 꿇고 복종하고 그 은혜를 찬양할수 있는 이유와 근거로 삼 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와 관념을 초월하시는 분임을 알면,시시콜콜한 호기 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지고 대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이 진리에 대해서 침묵해서도 안됩니다.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우리가 겸허 하게 받아들여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암초를 피하듯이 피해 갈려고 만 하는 것도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짐승과 같은 무지한 자리에 빠지게 됩니다.
결론은
1. 비밀로 두신 것은 탐색하지 말아야 하고,
2. 하나님은 공개하신 것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3. 과도한 호기힘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응은 무엇입니까-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구원 받지 못한 것이나, 우리의 이웃이 구원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도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이해는 못하지만,놀라 운 일이야 하나님이 내가 무엇이 잘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이야기냐 기가막힌 이야기야. 라고 마음에 느껴지지시는 분은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나를 구원하셨으며, 나를 자녀 로 삼으셨다고 하면, 또 나를 목사와 권사와 집사를 세우셨다고 하면, 얼마나 불 안합니까 지금까지는 내가 잘했어도 언젠가 한번 실수 하면,하나님 눈에 벗어 날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얼마나 불안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저 내가 좋아서 했다는 데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에게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모든 것이 은혭니다. 어느 찬송가의 작사가처럼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왜 구속하여 주었는지 난 알수 없도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세상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410장 부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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