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롬9:14-18)
본문
신앙의 세계는 깊이의 세계이다. 우리가 바다에 가서 파도가 이는 것을 보면 온 바다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수백미터 의 깊이 혹은 수천미터의 깊이의 바다 중에서 그 표면의 10미터도 안되는 바다가 움직일 뿐이며 바다의 대부분은 바깥같에서 바람이 불던 비가 오 던 상관없이 조용한 세계이다. 깊을 수록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고 보이는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세계만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그 표면은 보이지 않는 깊이의 세계위에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세계 혹은 보이는 세계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가 모든 것인냥 생각하고 이 세계에 얼마나 민감하고 얼마나 마음 빼앗 기면서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을 깊이 있게 사는 사람은 보이는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 간다. 보이는 세계에 마음 빼앗겨서 경망 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가 보이는 세계에 마음 뺏겨서 살아 갈 때도 여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세계를 지켜가는 것이다. 노아를 보면 바로 그러한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세상 모든 사람이 먹 고 마시고 즐기면서 외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음란한 삶을 살아 가던 시대 에 그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들과 다른 세계속에 살았던 사람이다. 온 천하가 보이는 세계를 살고 있는 그 시대에 그는 그기에 연 연하지 않고 자기 세계를 지켜나갔던 것이다. 성도란 바로 한 시대를 살면서도 세상 사람과는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삶의 표면에 사는 인생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따라 사는 인 생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는 보이는 세계이기 보다는 깊이의 세계이다. 이 세상의 모 든 사람이 보이는 역사에 마음 쏟으며 살때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속 에서 그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아 직 나지 아니했을때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고 충성을 하고 믿음 의 삶을 살아가는 표면적 신앙 밑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구원의 역사 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예정 혹은 하나님의 작정이 라고 부른다. 사람의 눈은 보이는 세계밖에 보지를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이 루시기 위해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세계를 그 기쁘신 뜻 대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두가지 의미의 선택이 있다.
첫째는 사명적인 선택이 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들어서 쓰신다는 의미의 선택이다. 이것은 구원 을 위한 선택과는 다른 선택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셨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들어서 사 용하시겠다는 뜻이지 이스라엘을 전부 구원했다는 말은 아니다. 구원과는 상관없이 다만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권능을 만 방에 전하시는데 사용하시는 것이다. 확실히 이스라엘은 큰일을 했다. 세계의 모든 유일신 사상이 이스라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나님을 만방에 알린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뿐만 아 니라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때도 이스라엘은 대단한 일을 했다. 성경을 받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보여 주었다. 성경속에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어떤 사람을 선택한 경우가 많이 있다. 사명적인 선택이다.
둘째는 구원론적 선택이다.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믿음의 자리에 서로록 이끄시는 것이다. 믿음의 자리에서 살도록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섭리를 말하는 것이다. 쓰러지면 일으키시고 잘못가면 바로 가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로 양육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론적 선택이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수 없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예정은 사람의 눈으로 볼때는 이해가 안된다. 사람의 눈은 표면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에는 나는 믿는 가정에 태어 났으니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를 믿는 가정에 태어 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또 내 이웃이 믿는 사람이라서 내가 믿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믿는 이웃 곁에 살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또 내 아내가 믿기 때문에 내가 믿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믿는 아내를 만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역사의 표면 밖에 보지를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역사의 깊 이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생하고 있을때 죽겠다고 아우성 쳤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깊은 계획을 가지시고 그 고난을 허용 하신 것이다. 아이가 나면 다 죽이라는 명령 밖에 모르는 이스라엘은 큰 절망 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 궁에서 자라게 하시려는 계획을 가지시고 그 아픔을 허락하신 것이다. 예정론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이냐 인간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 역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선행에 의해서 얻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이는 역사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의 역사를 우선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는 믿음으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히 브리서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 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고 했다. 행위 구원은 역사관에 있어서 보이는 면을 중시하는데 반해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믿는 우리는 보이는 역사 배경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본문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 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다. 구원받은 백성에게는 특징이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라고 했다. 이것을 풀어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자꾸 넘치게 된다. 즉 그 수고 들이 사랑 때문에 하는 수고가 되고 보이는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보 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의 특징이 나타나 있는데 강팍해 지는 것이다. 강팍하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요 고치지 않는 마음이요 교만 한 마음이다.
첫째는 사명적인 선택이 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들어서 쓰신다는 의미의 선택이다. 이것은 구원 을 위한 선택과는 다른 선택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셨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들어서 사 용하시겠다는 뜻이지 이스라엘을 전부 구원했다는 말은 아니다. 구원과는 상관없이 다만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권능을 만 방에 전하시는데 사용하시는 것이다. 확실히 이스라엘은 큰일을 했다. 세계의 모든 유일신 사상이 이스라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나님을 만방에 알린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뿐만 아 니라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때도 이스라엘은 대단한 일을 했다. 성경을 받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보여 주었다. 성경속에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어떤 사람을 선택한 경우가 많이 있다. 사명적인 선택이다.
둘째는 구원론적 선택이다.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믿음의 자리에 서로록 이끄시는 것이다. 믿음의 자리에서 살도록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섭리를 말하는 것이다. 쓰러지면 일으키시고 잘못가면 바로 가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로 양육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론적 선택이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수 없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예정은 사람의 눈으로 볼때는 이해가 안된다. 사람의 눈은 표면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에는 나는 믿는 가정에 태어 났으니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를 믿는 가정에 태어 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또 내 이웃이 믿는 사람이라서 내가 믿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믿는 이웃 곁에 살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또 내 아내가 믿기 때문에 내가 믿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믿는 아내를 만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역사의 표면 밖에 보지를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역사의 깊 이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생하고 있을때 죽겠다고 아우성 쳤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깊은 계획을 가지시고 그 고난을 허용 하신 것이다. 아이가 나면 다 죽이라는 명령 밖에 모르는 이스라엘은 큰 절망 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 궁에서 자라게 하시려는 계획을 가지시고 그 아픔을 허락하신 것이다. 예정론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이냐 인간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 역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선행에 의해서 얻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이는 역사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의 역사를 우선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는 믿음으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히 브리서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 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고 했다. 행위 구원은 역사관에 있어서 보이는 면을 중시하는데 반해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믿는 우리는 보이는 역사 배경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본문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 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다. 구원받은 백성에게는 특징이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라고 했다. 이것을 풀어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자꾸 넘치게 된다. 즉 그 수고 들이 사랑 때문에 하는 수고가 되고 보이는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보 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의 특징이 나타나 있는데 강팍해 지는 것이다. 강팍하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요 고치지 않는 마음이요 교만 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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