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신 하나님 (롬8:26-30)
본문
성경은 하나님을 가르켜 '선하신 하나님'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특히 요한복음 l0장 1
1절을 보면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상대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보다 조금 더 선하다든지 무엇보다 조 금 더 선할 수 있다든지 비교해 보아서 약간 더 나을 수는 있어도 절 대적으로 선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선하신 이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19장
I7절 말씀을 보면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밖에는 없 다'고 했습니다. 또, 마가복음 lO장 18절을 보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모든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좀더 쉽게 말씀하면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좋으시 고 선하시기 때문에 하시는 일도 선하시고, 주시는 것도 좋은 것을 주 시고 계획하시는 것도 너무너무 엄청나게 좋은 것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하나님 하시는 일이 얼마나 선하시고 좋 으신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1. 창조하신 일이 선하십니다. 구약성서 창세기
I-2장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일 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첫째날 과 어두움을 창조하신 후 그 을 보시니 좋았더라고 했 습니다.
둘째날 긍창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셋째날 땅과 바다를 창조하셨는데 지으신 후 그것을 보시니 좋았다 고 했습니다. 네째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는데 그것들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다섯째날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을 창조하셨는데 역시 하나님 보시 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여섯날 육축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건데 여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 속에 가지 깊고 오 모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창
1장26-27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 텀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 자를 창조하시고'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창조한 것 중 위대한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고, 자유가 있고, 의지가 있고. 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눈, 코, 입, 팔, 다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영어성경을 보면 image라고 했습니다. image란 말의 뜻은 심상. 상징 등의 뜻을 갖습니다) 즉, 영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이었니다.
그런데 창세기 S장 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과 범죄 사건으로 인하여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자유는 죄 짓는 데 남용되었고 인간의 의지는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고집을 세우는 일에 쓰여졌고 양심은 무디어져 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로막아 버렸고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열심하 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영흔은 범죄에 빠져 기진맥진하게 되었고 아름답고 건강하던 인간의 육체는 병들고 피곤하고 고달프고 슬프고 피땀을 홀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위대한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 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회복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죄로 말 미암아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워지는 길을 열어주 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양심의 회복 과 새로운 생의 방향과 목적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버린 형상, 깨뜨려진 형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2) 맨 마지막에(천지를 창조하신 후)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 궁창, 짐승, 해와 달과 별, 온갖 식물 다 창조하신 후 맨 마지 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에도 좋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읍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이 타 준비된 새 주택에 신흔 살림을 차려주고 갖 결흔한 신랑신부로 하여금 몸만 들어가 살게 해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라는 신방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춰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22장 4절을 보면 왕의 아들 흔인잔치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잔치를 가르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했습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다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11장 절 말씀과 같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초청도 구원과 핑안을 준비 해 으시고 고달프고 피곤한 인생들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주부들은 가끔 경험하는 일이겠습니다만 손님을 초대했을 때 준비보다 빨리 손님이 도착을 하여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면 더 분주 하고 마음이 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 고 있을 때 손님이 들어오면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초대는 준비없는 초대가 아닙니다. 무계획한 초대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갖춘 초대이며 언제 무엇을 요청해도 주실 수 있는 초청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복락의 동산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시고 그리고 그것들을 관리하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3)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바다의 고기, 공증의 새,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 그리고 땅을 정복하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다스리라는 말은 관리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관리자 가 되라고 하셨지 주인이 되라고는 하지 않으셨니다. 아담은 관리자였지 주인이 아니였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일 뿐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내 것'이라고 장담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 대하여 자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내 마음대로 얻을 수 있어야 하고
2 내 마음대로 지킬 수 있어야 하고
2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생명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분명히 생명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읍 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그리고 내 생명은 내가 지킬 수 있습니까 최근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괌도에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나가서 선교활동을 하던 윤만준 목사님께서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남겨둔 채 조용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미망인은 어떻게 살며 그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 가라고 아무 준비도 없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살고 죽고 을 때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내 것입니다만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 지킬 수도 없 고 내마음 대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 뿐입니까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천년 만년 살고 지고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선한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선하게 써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켜 성경은 '선한 청지기'라고 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의 자리에 앉아서 주인인 양 오만하고 오용하고 오인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됩니다.
(4)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진선미의 걸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좋다'고 감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그 증에서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신 말은 '심히 좋았더라'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피조물은 말씀으로 있있으라-고 해서 만드셨 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냥 사람 있으라'는 말씀으로 창조하시지 않 으시고 친히 하나님께서 흙을 비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오묘하신 솜씨로 만드신 걸작 증 의 걸작입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그려내는 화가의 그림도 있읍니다. 그런 그림은 값이 쌉니다. 그러나 어떤 그림은 화가의 온갖 정열을 쏟아서 l0-20년만에 완성 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런 그림은 값으로는 평가를 할 수가 없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히 좋은 피조물입니다. 그토록 좋아 하시고 아 끼고 사랑하는 피조물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품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슬픔은 실로 큰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1장 4절을 보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 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 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 갔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는 인간의 타락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있게 된 것입니다.
2. 선하신 하나님은 선하게 다스리십니다. 인간이 왜 종교를 가지게 되었는가 왜 종교가 필요하게 되었는 가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학설가운데 '공포설'이라는게 있습니다. 이 학설을 주장한 사람은 주전 342년경 헬라의 철인이었던 에피큐러 스(Epicurus ) 와 주전 70년경의 철인이었던 버질리우스(Virgilius ) 였습니다. 자연현상이나 인간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당할 때 거기에는 어떤 두려운 힘이 있어서 그런 일을 행한다고 믿었습니다. 천둥과 벼락, 폭풍과 번개, 지진과 화산에 폭발 등 엄청난 현상 앞 에 직면할 배마다 인간들은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공포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큰 힙, 강한 대상 에게 간구하고 부탁하려는 심리적 작용이 일어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에피큐러스나 버질리우스는 '공포심은 신을 낳았다'고 했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공포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두 렵습니까 왜 하나님이 두려운 분으로 생각됩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다. 엊그제 개학이 되어 국민학교 아이들이 등교를 했습니다. 개학을 앞둔 아이들에겐 두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산수 숙제를 못한 아이들의 경우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밤을 새며 숙제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숙제 검사가 대강 넘어가길 원했 을 것입니다. 만일 다 못한 아이들은 개학이 한 이틀만이라도 늦어지 길 원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날씨라도 추워져서 개학이 연기되길 바 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할 것 다하고 준비를 완전히 끝낸 아이들의 경우입니다. 빨리 가서 숙제를 내 보이고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픈 심정으로 학교엘 갔을 것입니다. 너무 평범하고 유치한 예인 것 같습니다. 두려운 까닭은 하나님 쪽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기사가 나옵니다. 어제까지랴 해도 하나님의 음성이 그립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즐거 운 아담 하와였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고난 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난 직후부터 저들에겐 공포와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숨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죄는 부끄러 운 것입니다. 공포와 불안을 가져다 줍니다. 죄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 이 편치가 않습니다. 초조해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어제 듣던 음성이었고 오늘 아침 에 듣던 하나님의 음성이었는데 왜 갑자기 그 음성 그 부르심이 그렇 게 무서워집니까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두렵고 떨려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갑자기 공포의 하나님으로 변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아담 쪽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의 고백입니다. 제가 살고 있던 동네에 일본 사람들이 식량을 자기네 나라로 착취 해 가기 위뻐 만들어 놓은 큰 창고가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농 협창고 같은 것이였습니다. 그 창고 관리인으로 일본 사람이 그 동네에선 제일 좋은 집을 창고 옆에 짓고 호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은 유난히 화초를 좋아하여 자기네 집 정원과 사방 울타리에 온갖 꽃들과 유실수들을 심어놓고 아릅답게 가꾸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동네 장난꾸러기들의 관심은 그 집안 에 있는 과일 나무들이었습니다. 여름이면 앵두나무에 앵두가 열리고, 복숭아가 열럽니다. 가을이면 가을 과일들이 열럽니다. 어느날인가 동네 큰 아이들의 음모에 저도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앵두서리를 하자는 음모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특공대를 만드는 데에 현지답사하는 아이, 망보는 아이, 가시철망 울타리를 벌 려 주는 아이 기어들어 가 앵두를 따오는 아이 등으로 각각 분담이 시작되어졌습니다. 그 당시 증학교 다니는 아이가 총사령관격이,었는데 설명이 그럴 듯 했습니다.
첫째 일본놈의 것이니까 따다 먹어도 죄가 아니다. 저건 다 우리네 것이다. '
둘째 우리가 애국을 해야 하는데 일본놈의 것을 뺏어 먹는 것도 애 국이다는 것이였읍믹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맡아야 하는 분담이었읍니다. 종순이 너는 덩치가 작으니가 울타리를 뚫고 다른 아이 하나와 같 이 들어가서 앵두를 익었든 안 익었든 상관말고 모조리 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거절하는 놈은 반역자로 처단하겠다는 협박까 지 곁들였습니다. 그날밤 흘렸던 땀은 아담이 선악과 따먹었을 때 흘린 땀보-더 했 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해 방이 될 때까지 앵두사건 때문에 우린 그 일본 사람네 집 곁엘 가지 를 못하고 피해 다니느라 얼마나 떨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S개 월 후에 그 일본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을 때 우린 다시 모여서 만세를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느린 것인데 그집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일 본 사람네 개만 보아도 무서워서 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중학교 때는 골목대장 녀석이 일본사람 이사햇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하는 말이, '보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일 본놈 이사하게 해주셨으니까 한탕 더 하자'는 것이였습니다. 여러분 ! 저는 두렵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보이 게 합니다.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마 마귀는 최선을 다 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파멸시키려 합니다. 근심케 하고 고민거리를 만 들어 주고 싸움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좋게, 아름답게 다스리십니다. 히틀러나 네로는 포악한 통치자였기 때문에 국민과 세계를 포악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선한 통치자는 나라와 국민 을 선하게 다스리고 사랑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한 통치자이십니다. 시편 119편 68장을 보면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했읍니다. 아가서 3장 25절에는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라고 했읍니다. 또, 이사야 40장 l0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 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 밑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의 행복 과 안전은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상대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보다 조금 더 선하다든지 무엇보다 조 금 더 선할 수 있다든지 비교해 보아서 약간 더 나을 수는 있어도 절 대적으로 선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선하신 이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19장
I7절 말씀을 보면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밖에는 없 다'고 했습니다. 또, 마가복음 lO장 18절을 보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모든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좀더 쉽게 말씀하면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좋으시 고 선하시기 때문에 하시는 일도 선하시고, 주시는 것도 좋은 것을 주 시고 계획하시는 것도 너무너무 엄청나게 좋은 것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하나님 하시는 일이 얼마나 선하시고 좋 으신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1. 창조하신 일이 선하십니다. 구약성서 창세기
I-2장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일 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첫째날 과 어두움을 창조하신 후 그 을 보시니 좋았더라고 했 습니다.
둘째날 긍창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셋째날 땅과 바다를 창조하셨는데 지으신 후 그것을 보시니 좋았다 고 했습니다. 네째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는데 그것들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다섯째날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을 창조하셨는데 역시 하나님 보시 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여섯날 육축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건데 여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 속에 가지 깊고 오 모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창
1장26-27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 텀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 자를 창조하시고'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창조한 것 중 위대한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고, 자유가 있고, 의지가 있고. 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눈, 코, 입, 팔, 다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영어성경을 보면 image라고 했습니다. image란 말의 뜻은 심상. 상징 등의 뜻을 갖습니다) 즉, 영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이었니다.
그런데 창세기 S장 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과 범죄 사건으로 인하여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자유는 죄 짓는 데 남용되었고 인간의 의지는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고집을 세우는 일에 쓰여졌고 양심은 무디어져 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로막아 버렸고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열심하 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영흔은 범죄에 빠져 기진맥진하게 되었고 아름답고 건강하던 인간의 육체는 병들고 피곤하고 고달프고 슬프고 피땀을 홀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위대한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 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회복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죄로 말 미암아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워지는 길을 열어주 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양심의 회복 과 새로운 생의 방향과 목적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버린 형상, 깨뜨려진 형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2) 맨 마지막에(천지를 창조하신 후)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 궁창, 짐승, 해와 달과 별, 온갖 식물 다 창조하신 후 맨 마지 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에도 좋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읍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이 타 준비된 새 주택에 신흔 살림을 차려주고 갖 결흔한 신랑신부로 하여금 몸만 들어가 살게 해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라는 신방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춰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22장 4절을 보면 왕의 아들 흔인잔치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잔치를 가르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했습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다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11장 절 말씀과 같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초청도 구원과 핑안을 준비 해 으시고 고달프고 피곤한 인생들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주부들은 가끔 경험하는 일이겠습니다만 손님을 초대했을 때 준비보다 빨리 손님이 도착을 하여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면 더 분주 하고 마음이 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 고 있을 때 손님이 들어오면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초대는 준비없는 초대가 아닙니다. 무계획한 초대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갖춘 초대이며 언제 무엇을 요청해도 주실 수 있는 초청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복락의 동산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시고 그리고 그것들을 관리하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3)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바다의 고기, 공증의 새,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 그리고 땅을 정복하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다스리라는 말은 관리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관리자 가 되라고 하셨지 주인이 되라고는 하지 않으셨니다. 아담은 관리자였지 주인이 아니였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일 뿐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내 것'이라고 장담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 대하여 자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내 마음대로 얻을 수 있어야 하고
2 내 마음대로 지킬 수 있어야 하고
2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생명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분명히 생명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읍 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그리고 내 생명은 내가 지킬 수 있습니까 최근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괌도에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나가서 선교활동을 하던 윤만준 목사님께서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남겨둔 채 조용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미망인은 어떻게 살며 그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 가라고 아무 준비도 없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살고 죽고 을 때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내 것입니다만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 지킬 수도 없 고 내마음 대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 뿐입니까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천년 만년 살고 지고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선한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선하게 써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켜 성경은 '선한 청지기'라고 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의 자리에 앉아서 주인인 양 오만하고 오용하고 오인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됩니다.
(4)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진선미의 걸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좋다'고 감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그 증에서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신 말은 '심히 좋았더라'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피조물은 말씀으로 있있으라-고 해서 만드셨 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냥 사람 있으라'는 말씀으로 창조하시지 않 으시고 친히 하나님께서 흙을 비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오묘하신 솜씨로 만드신 걸작 증 의 걸작입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그려내는 화가의 그림도 있읍니다. 그런 그림은 값이 쌉니다. 그러나 어떤 그림은 화가의 온갖 정열을 쏟아서 l0-20년만에 완성 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런 그림은 값으로는 평가를 할 수가 없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히 좋은 피조물입니다. 그토록 좋아 하시고 아 끼고 사랑하는 피조물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품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슬픔은 실로 큰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1장 4절을 보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 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 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 갔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는 인간의 타락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있게 된 것입니다.
2. 선하신 하나님은 선하게 다스리십니다. 인간이 왜 종교를 가지게 되었는가 왜 종교가 필요하게 되었는 가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학설가운데 '공포설'이라는게 있습니다. 이 학설을 주장한 사람은 주전 342년경 헬라의 철인이었던 에피큐러 스(Epicurus ) 와 주전 70년경의 철인이었던 버질리우스(Virgilius ) 였습니다. 자연현상이나 인간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당할 때 거기에는 어떤 두려운 힘이 있어서 그런 일을 행한다고 믿었습니다. 천둥과 벼락, 폭풍과 번개, 지진과 화산에 폭발 등 엄청난 현상 앞 에 직면할 배마다 인간들은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공포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큰 힙, 강한 대상 에게 간구하고 부탁하려는 심리적 작용이 일어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에피큐러스나 버질리우스는 '공포심은 신을 낳았다'고 했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공포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두 렵습니까 왜 하나님이 두려운 분으로 생각됩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다. 엊그제 개학이 되어 국민학교 아이들이 등교를 했습니다. 개학을 앞둔 아이들에겐 두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산수 숙제를 못한 아이들의 경우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밤을 새며 숙제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숙제 검사가 대강 넘어가길 원했 을 것입니다. 만일 다 못한 아이들은 개학이 한 이틀만이라도 늦어지 길 원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날씨라도 추워져서 개학이 연기되길 바 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할 것 다하고 준비를 완전히 끝낸 아이들의 경우입니다. 빨리 가서 숙제를 내 보이고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픈 심정으로 학교엘 갔을 것입니다. 너무 평범하고 유치한 예인 것 같습니다. 두려운 까닭은 하나님 쪽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쪽에 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기사가 나옵니다. 어제까지랴 해도 하나님의 음성이 그립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즐거 운 아담 하와였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고난 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난 직후부터 저들에겐 공포와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숨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죄는 부끄러 운 것입니다. 공포와 불안을 가져다 줍니다. 죄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 이 편치가 않습니다. 초조해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어제 듣던 음성이었고 오늘 아침 에 듣던 하나님의 음성이었는데 왜 갑자기 그 음성 그 부르심이 그렇 게 무서워집니까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두렵고 떨려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갑자기 공포의 하나님으로 변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아담 쪽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의 고백입니다. 제가 살고 있던 동네에 일본 사람들이 식량을 자기네 나라로 착취 해 가기 위뻐 만들어 놓은 큰 창고가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농 협창고 같은 것이였습니다. 그 창고 관리인으로 일본 사람이 그 동네에선 제일 좋은 집을 창고 옆에 짓고 호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은 유난히 화초를 좋아하여 자기네 집 정원과 사방 울타리에 온갖 꽃들과 유실수들을 심어놓고 아릅답게 가꾸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동네 장난꾸러기들의 관심은 그 집안 에 있는 과일 나무들이었습니다. 여름이면 앵두나무에 앵두가 열리고, 복숭아가 열럽니다. 가을이면 가을 과일들이 열럽니다. 어느날인가 동네 큰 아이들의 음모에 저도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앵두서리를 하자는 음모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특공대를 만드는 데에 현지답사하는 아이, 망보는 아이, 가시철망 울타리를 벌 려 주는 아이 기어들어 가 앵두를 따오는 아이 등으로 각각 분담이 시작되어졌습니다. 그 당시 증학교 다니는 아이가 총사령관격이,었는데 설명이 그럴 듯 했습니다.
첫째 일본놈의 것이니까 따다 먹어도 죄가 아니다. 저건 다 우리네 것이다. '
둘째 우리가 애국을 해야 하는데 일본놈의 것을 뺏어 먹는 것도 애 국이다는 것이였읍믹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맡아야 하는 분담이었읍니다. 종순이 너는 덩치가 작으니가 울타리를 뚫고 다른 아이 하나와 같 이 들어가서 앵두를 익었든 안 익었든 상관말고 모조리 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거절하는 놈은 반역자로 처단하겠다는 협박까 지 곁들였습니다. 그날밤 흘렸던 땀은 아담이 선악과 따먹었을 때 흘린 땀보-더 했 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해 방이 될 때까지 앵두사건 때문에 우린 그 일본 사람네 집 곁엘 가지 를 못하고 피해 다니느라 얼마나 떨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S개 월 후에 그 일본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을 때 우린 다시 모여서 만세를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느린 것인데 그집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일 본 사람네 개만 보아도 무서워서 피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중학교 때는 골목대장 녀석이 일본사람 이사햇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하는 말이, '보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일 본놈 이사하게 해주셨으니까 한탕 더 하자'는 것이였습니다. 여러분 ! 저는 두렵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보이 게 합니다.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마 마귀는 최선을 다 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파멸시키려 합니다. 근심케 하고 고민거리를 만 들어 주고 싸움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좋게, 아름답게 다스리십니다. 히틀러나 네로는 포악한 통치자였기 때문에 국민과 세계를 포악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선한 통치자는 나라와 국민 을 선하게 다스리고 사랑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한 통치자이십니다. 시편 119편 68장을 보면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했읍니다. 아가서 3장 25절에는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라고 했읍니다. 또, 이사야 40장 l0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 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 밑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의 행복 과 안전은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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