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선하신 하나님 (롬8:26-31)

본문

오늘 읽어드린 본문말씀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선하심을 설명 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꼬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라'고 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하시는 일들도 선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 떻게 악을 행하시고 계획하실 수가 있습니까 사람도 성품이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선한 일을 계획하고 선을 행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노아는 당시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했고.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요셉도 '닉로운 사람이었다' 고 했으며 고난과 시련을 믿음으로 참고 이겨냈던 욥도 '저는 의인이었다'고 했 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였던 목수 요셉도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 습니다. 저들은 모두가 인생을 게 그리고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다 간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그 사람됨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진실했기 때문에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l편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지난 주일 말씀에 이어서 우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선한 일들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아야 =K습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이 선하십니다. 20세기를 가르켜 기획시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마다 대학마다 기획실 흑은 기획관리처가 있고 정부에도 경제기획원이라는 방대한 기구가 있습니다. 거기서 하는 일들은 이 나라 경제 전반에 관한 사항들을 계획하고 조정하고 관리하고 집행합니다. 얼마나 기발한 계획을 가졌느냐에 따라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계획은 어떻습니까
(1)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합니다. 시행착오라는 게 없습니다. 사람의 두뇌도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계획을 수럽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계획들이 절대적으로 완벽하진 못합니다. 틀림없이 잘 될 줄로 믿었는데 계켜대로 안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아마 이런 체험은 여러분들이 더 많이 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내계획대로 안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야고보서 4장 13-14절의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u들으 라 너희 증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쌔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 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일년만 상업도시로 나가 장사하자, 그래서 이익을 남기자'는 것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계획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있을 사건들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흔 히 우린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회의할 때가 있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 하시는 일이 이 모양인가 왜 실패투성이인가 왜 하나님은 앞 일올 내다보시지 못하시는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길게 그리고 멀리 바라보아 야 합니다. 그 좋은 실례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입니다. 요 셉은 야곱의 1
I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꿈을 잘 꾸고, 꿈얘기를 잘 하 다가 형들의 미웅을 받고 애굽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잘못이 있었 다면 철없는 탓으로 정직하게 그때그때 꿈 얘기를 한 잘못 밖에는 없 읍u다. 어절 소년의 몸으로 멀고 먼 애굽으로 팔려갈 때, 그리고 애굽에 팔 려가서 보디발 장관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할 때, 소년 요셉의 고독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자기 아버지 야곱이 들려주던 말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요셉아 !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아버지 이삭 그 리고 할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곧 우리 하나님이시고 축보 하시기를 즐겨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H라고 가르쳐 주던 애기를 상기하면서, 도대체 애굽으로 팔려가게 하시는 하나님 종 노릇하는 신세로 전락한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어찌해서 선하신 하나님인가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대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어떤 놀라운 계획이 있을 것이다 라고 믿었습니다. 한 소년을 애굽 종으로 팔아넘기고, 옥중에 집어 넣낀 그리고 그것 으로 일을 끝내시는 그런 엉성한 계획을 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아니다 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길고 깊고 치밀했습니다. 완벽했습니다. 개인적으 로는 요셉을 출세시키고 성공시키려는 하나님의 기획에 의하여 일하 셨고, 크게 보면 장차있을 야곱 일가의 환난과 시련을 위하여, 더 나아 가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계획하신 하나님의 큰 경륜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기는 것처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십니다. 악한 사람은 악을 꾀합니다. 지능범일수록 범죄 수법이 치밀하고 주도면밀합니다. 최대한 법을 악용하고 피할 길을 찾아 놓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악한 사람은 24시간 어떻게 하면 남을 속일까를 생각하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십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려는 계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3)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순간순간 변덕스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러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변덕스럽지 않기를 요구 하십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서 6장 2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을 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인심조석 변'이라 말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것을 싫어하십니다. 은혜도 변덕스럽지 않은 사람이 맏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합니다. 변치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이 선하십니다. 주시는 모든 것이 선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 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자기 기분이 좋으면 남을 대할 때도 기분좋게 대하지만 자기 기분이 지 않을 때는 남을 대하는 것도 기분나쁘게 대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관공서의 계장은 자기 직속 상관인 과장의 결재를 받으러 갈 때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 심정이라고 얘기했읍니다. 그 과장의 별명이 칠면조라는 겁니다. 금방 기분이 좋았다가 금방 성낸답니다. 그 빈도가 어떤 땐
I0분 간격일 때도 있어서 기분좋은 그 순간을 포착해서 결재 서류를 내밀면 모든 것이 잘 되지만 그렇지 못 할 땐 곤욕을 치룬다는 것이였습니다. 한번은 노아가 포도주를 과음한 탓으로 옷을 벗어 던진 채 잠을 자 고 있었습니다(창 9:20이하).
둘째 아들 함이 들어오다가 망신스러운 아버지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가서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형과 동생에게 떠들어 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자 셈과 막내 야벳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뒷걸 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리고 다시 얼굴을 돌린 채 아 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은 채 돌아 나왔습니다. 군사부일체라는 종래의 유교적 윤리가 무너져가고 있 음은 실로 통탄치 않을 수 없습니다. 서구화의 물결이 가져다 준 위험 물 가운데 하나가 개인주의라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대한 존재로 평가하고 높인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 가정 마저도 산산히 찢어 놓았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마저도 개인대 개인으로 분리시켜 버리고 소위 '핵가족제도'라는 것을 상륙시켜서 자식이 자식도리를 외면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잠이 깬 노아가 그 사실 을 알았습니다. 세 아들을 불러 놓고
둘째 아들 함에게는 너는 저주 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했고, 셈에게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함은 셈의 종이 되리라'고 했 고, 야벳에게는 '하나님의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 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의 감정이 세 아들을 축복하는 데 작용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창 49장). 죽기 전에 12 아들을 모아 놓고 축복했는데 자기 감정과 지난날 자식들의 행실을 회상하면서 축복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축복은 정실에 치우치거나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서 축복하고 저 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축복이냐 저주냐를 명확하게 밝혀 준 성경말씀은 구약성경 신명기 장입니다. 거기보면 엄청난 축복이 전개되고 있는 반면 무서운 저주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을까요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8장 2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라'고 했고, 28장 15을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말대로 순종하고 사느냐 살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지 사람의 비위에 맞느냐 안 맞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부흥사나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공포의 하나님, 저주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공포의식을 조장하고 블안 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등 흑은 '나를 따르지 않고 내 교회로 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등, 어린양 들을 현혹하고 그릇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대개 이유가 있습니다.
1 돈을 수탈하기 위한 방법
2 신흥교주 또는 사이비 지도자로서 자신의 절대권을 유지하기 위 해서 비성서적이고 성서의 진리에 대하여 무식하기 때문에. 그러나 여러분 ! 현흑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열쇠는 하나넘 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무당이나 점장이는 자기들이 복과 화를 다스리고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과 화는 하나님만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믿으면 구원받고 순종하면 축복을 받게 됨니다. 어느 특정 교회나 교파에 가야만 은혜받고 성령님받고 구원받는다는 말은 자기네 세력확장을 위한 인간적인 수단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잘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요한 3서 2절을 기억하시지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흔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살 때 오는 세 가지 축복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 됩니다. 범사가 형통합니다. 영과 육이 강건합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생속에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생각할 게 있습니다. 왜 나는 축복을 못 받는가 만일 내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원지의 물이 말라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집 수도관이 막척 있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I 하나님의 구원이 선하십니다. 4S0년간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의 인도로 하나님께서 해방시키셔서 흥해에 이르렀을 때 애굽 왕 바로가 기병대를 동원해 추격작전을 벌렸습니다(출 14장). 앞에는 해. 뒤에는 기병 대의 말발굽소리. 여기서 이스라엘 민중은 모세를 향해 아우성치며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는 것이였습니다. 민중은 바로의 기병대만을 보면서 절망과 죽음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회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억 싸우시리라'고 외쳤습니다. 절망과`죽음의 심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구원하신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죄의 사슬과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외면하시고 주무시는 하나님 이 아니십니다.
(1) 그럼 왜 구원하십니까 구원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S:16). 산보다 바다보다 짐승보다 온갖 보화보다 가장 선하게 창조하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아담이 멀리 떠났을 .때 아담아 아담아 부 르셨고 가인이 떠났을 때 가인아 가인아 부르셨고 탕자가 떠났을 때 문 열어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요한 1서 4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2)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구원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희 생, 즉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셨읍너다. 요한 l서 4장 1o절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 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 들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흘리신 보혈, 찢기신 살, 매 맞으신 그 흔적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린 이 십자가 밑에 무릎 꿇야 합니다.
(3) 구원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죄에서 자유를 얻고 무너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내 영혼이 구원받음으로 내 맘 속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 을 아버지 !라고 큰소리로 부를 수 있습니다. 죄를 가진 채 아버지 !하고 부르지 못 합니다. 잘못을 가진 채 복주세요 ! 못 합니다. 그러나 이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 ! 놀라운 구원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함께 블러 보십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8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