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압니다(1) (롬8:28-30)
본문
일찍이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제정)을 우리는 예정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인류가 전부 동일한 운명을 가지고 창조된 것이 아니고, 혹자는 영생을 얻기로 작정이 되었고, 혹자는 멸망되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각인은 이 목적이나, 저 목적으로 각각 달리 창조된 고로 구원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생명이 아니면 사망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모든 사물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의도에서 나오고, 또 그것에 의존한다. 이런 관계로 생명의 말씀을 받을 자와 그것을 믿지 않을 자, 그들의 죄에서 구원받을 자와, 그 죄 가운데서 강폭 해질 자, 또한 칭의를 받은 자와 정죄함을 받을 자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종교 개혁자 멜랑톤은 ‘모든 일 곧 우리가 외면적으로 행하는 일 뿐아니라, 내면적으로 사고하는 사상까지도, 하나님의 절대 하신 예정에 의해서 되어 진다’고 하였습니다. 세계 삼대(三大) 칼빈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창조될 모든 것들의 존재의 결정, 곧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우둔한 자와 총명한 자, 백인과 흑인,등.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은 천상과 지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정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 진리가 매일 우리 눈 앞에 일어나고, 우리 자신이 전 인격적으로 이 원리에 복속(服屬)하여 우리의 전 존재, 전 성품, 전 생활상 지위가 전혀 거기에 의존하여 있는 것을 본다. 칼빈주의자는 이렇게 포괄적인 예정을, 사람의 손에도, 맹목적인 자연력의 손에도 맡기지 않고, 다만 천지의 주권적 창조자시요, 소유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지한다. 성경에 창조에도 선택이 있고, 섭리에도 선택이 있는 것처럼, 영생에도 선택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신봉하는 소요리문답7문에 ‘하나님의 예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인데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무릇 되어가는 모든 일들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모든 시대, 모든 인간의 생애는 물론, 자연계에 있어서 일어날 사건들의 실제적 과정을 필연적인 것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절대 하신 주권적 예정 교리를 부정하는가 하면, 알미니안주의자들은총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은 인정해도, 특정한 계획, 곧 선택 교리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사 중에 나타난 무수한 사람들의 주장이 과연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가가 언제나 중대합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선택적 구원 교리는 전 성경에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중대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 실례 중에 하나가 로마서 8장 28절로 39절까지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한 내용입니다.
1 죄인이(롬1:18-3:20)
2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아(롬3:21-5:21)3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화의 삶을 살다가(롬6:1-8:17)
4 그 최후가 영화(영생)에 이른다고 하는 이 복음(롬8:18-31)을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계획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가리켜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하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화로 가는 길은 기독신자들의 최후 소망입니다. 이것은 우리 생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영화에의 대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된 전부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영화에의 대망’이 단순한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추상적 산물인가 단순한 종교적 열정의 기우인가 아닙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영화에로의 대망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 구원 계획이 이를 보장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롬8:2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계획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안다는 말(εδω)은 경험적인 지식(γινωσχω)과 구별되는 초경험, 초감각적 지식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경험적인 것도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에 관한 초경험적 지식을 실지로 체험까지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I. 누구를 위한 계획인가 바로 ‘우리’를 위한 계획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계획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의 실체가 무엇인가 우리의 실존이 무엇인가 우리란 바로 영화를 대망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영광스러운 기업의 후사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우리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성도의 또 다른 별명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와 대조적으로 사용된 말입니다(요일2:15).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인데 저들은 결국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유는 저들이 세상의 영, 곧 사탄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1 우상이나, 다른 피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 또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3 물론 자기 자신을 자기가 주인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4 뿐아니라 사탄과 사탄의 영의 지배를 받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 그렇다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사탄도, 세상도 함께 사랑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6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사랑했다는 말도 아닙니다. 7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요일4:10) 그 사랑의 반응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1차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결과 2차적으로,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8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 사실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람의 본분이 무엇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제1창조)요, 죄 가운데 빠진 인생을 구원하신 구원주(제2창조)를 고백하고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경우든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을 제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을 최고의 목적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 구원을 위한 그의 창세전에 주권 계획을 알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다시 로마서 8장 28절이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 뜻대로라 함은 ‘미리 작정된 목적을 따라’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갑작스럽게 된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벌써 창세전에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아는 사람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도 미리 정하신 자들은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7절에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 23절에서 24절에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기로 예비한 자들 중에서는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28절에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중에는 세상에 미련한 자들과 약한 것들과 천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과 없는 자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 강한 자들,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했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 중에는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중에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기 위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 디모데후서 1장 9절에는 거룩한 삶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는 경건과 고난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는 화평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들을 종합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렀다(소명)는 사실에 중대하고 확실한 결론이 나옵니다.
첫째, 창세전에 하나님의 뜻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예정의 부르심).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선택적 부르심).
셋째는, 목적적 부르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1 궁극적 구원을 목적했습니다.
2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3 거룩한 생활(성별)의 목적이요
4 창조 본연의 질서인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함이었습니다.
넷째는, 효과적인 부르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불가분 복음의 초청을 받게 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은총에 잠기게 되고 맙니다. 말하자면 불가항력적 부르심이었습니다. 거절 할 수가 없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권고하심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행16:14).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의 빛 속에서 복음의 멧세지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됩니다(고전2:12-13, 고후4:6).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이르게 되고(엡2:5).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표로 삼은 그리스도인의 목적적 삶에로 나아가게 됩니다(고전10:31). 결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알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들인가 정치가들인가 교육가들인가 예술, 문화인들인가 과학자들인가 군인들인가 아니면 유덕군자들인가 아니면 세기적인 사상가들인가 누가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아는 자들인가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압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리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지식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참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말이고, 또 사건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모든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은 전혀 불변부동(不變不動)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전혀 불변하십니다. 바로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함이 없으시도다고 한 그대로 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에는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되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이 절대 안전 보장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 이것은 우리의 신망애가 아닌가 우리에게 있는 온갖 연약과 고통과 절망적인 요소를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닌가 바로 ‘현재의 고난’을 ‘장차의 영광’에로 성화시킬 가능(可能)이 아닌가 그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이 무엇인가
1 죄인이(롬1:18-3:20)
2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아(롬3:21-5:21)3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화의 삶을 살다가(롬6:1-8:17)
4 그 최후가 영화(영생)에 이른다고 하는 이 복음(롬8:18-31)을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계획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가리켜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하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화로 가는 길은 기독신자들의 최후 소망입니다. 이것은 우리 생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영화에의 대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된 전부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영화에의 대망’이 단순한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추상적 산물인가 단순한 종교적 열정의 기우인가 아닙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영화에로의 대망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 구원 계획이 이를 보장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롬8:2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계획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안다는 말(εδω)은 경험적인 지식(γινωσχω)과 구별되는 초경험, 초감각적 지식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경험적인 것도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에 관한 초경험적 지식을 실지로 체험까지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I. 누구를 위한 계획인가 바로 ‘우리’를 위한 계획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계획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의 실체가 무엇인가 우리의 실존이 무엇인가 우리란 바로 영화를 대망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영광스러운 기업의 후사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우리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성도의 또 다른 별명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와 대조적으로 사용된 말입니다(요일2:15).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인데 저들은 결국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유는 저들이 세상의 영, 곧 사탄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1 우상이나, 다른 피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 또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3 물론 자기 자신을 자기가 주인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4 뿐아니라 사탄과 사탄의 영의 지배를 받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 그렇다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사탄도, 세상도 함께 사랑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6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사랑했다는 말도 아닙니다. 7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요일4:10) 그 사랑의 반응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1차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결과 2차적으로,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8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 사실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람의 본분이 무엇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제1창조)요, 죄 가운데 빠진 인생을 구원하신 구원주(제2창조)를 고백하고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경우든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을 제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을 최고의 목적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 구원을 위한 그의 창세전에 주권 계획을 알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다시 로마서 8장 28절이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 뜻대로라 함은 ‘미리 작정된 목적을 따라’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갑작스럽게 된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벌써 창세전에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아는 사람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도 미리 정하신 자들은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7절에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 23절에서 24절에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기로 예비한 자들 중에서는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28절에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중에는 세상에 미련한 자들과 약한 것들과 천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과 없는 자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 강한 자들,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했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 중에는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중에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기 위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 디모데후서 1장 9절에는 거룩한 삶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는 경건과 고난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는 화평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들을 종합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렀다(소명)는 사실에 중대하고 확실한 결론이 나옵니다.
첫째, 창세전에 하나님의 뜻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예정의 부르심).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선택적 부르심).
셋째는, 목적적 부르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1 궁극적 구원을 목적했습니다.
2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3 거룩한 생활(성별)의 목적이요
4 창조 본연의 질서인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함이었습니다.
넷째는, 효과적인 부르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불가분 복음의 초청을 받게 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은총에 잠기게 되고 맙니다. 말하자면 불가항력적 부르심이었습니다. 거절 할 수가 없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권고하심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행16:14).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의 빛 속에서 복음의 멧세지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됩니다(고전2:12-13, 고후4:6).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이르게 되고(엡2:5).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표로 삼은 그리스도인의 목적적 삶에로 나아가게 됩니다(고전10:31). 결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알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들인가 정치가들인가 교육가들인가 예술, 문화인들인가 과학자들인가 군인들인가 아니면 유덕군자들인가 아니면 세기적인 사상가들인가 누가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아는 자들인가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압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리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지식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참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말이고, 또 사건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모든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은 전혀 불변부동(不變不動)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전혀 불변하십니다. 바로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함이 없으시도다고 한 그대로 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에는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되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이 절대 안전 보장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 이것은 우리의 신망애가 아닌가 우리에게 있는 온갖 연약과 고통과 절망적인 요소를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닌가 바로 ‘현재의 고난’을 ‘장차의 영광’에로 성화시킬 가능(可能)이 아닌가 그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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