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이라 (롬8:12-17)
본문
칼빈(Calvin)선생은 만일 우리가 육체를 버렸으면 거기에 따라가서는 안될 것이요. 만일 성령님이 우리를 지배하셔야 한다면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실상 육체는 죄악과 섞여 있었으므로 영벌에 속하여 있었는테 에수 그리스도 의 대속의 은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들 몸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에게 모든 육체는 빚올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의 영이 되시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요 다시는 육체를 따라 옛사람으로 돌아가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라 하였습니다.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빛진 자라(롬 1:14).하였으니. 바울의 생각은 주님의 은혜로 빚올 지고 구원올 얻었으며 또한 주님이 원하시는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 의 사역올 감당할 일에 빚진 자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빚진 자는 어찌해야 할 것입니까 이제 한번 구원의 은총을 입었으니. 그 구원을 감사하면서 다시는 옛사람의 생활,육체의 정욕을 좇지 아니하고 성령님을 좇아 복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분명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너회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13절)"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동산중앙에 있는 과실을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육신의 쾌감올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이로로 인간의 육신은 죽기로 운명 지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인간의 요구는 모두 육체적이요. 이 육체적 욕구를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인간의 지혜나 욕구는 사망을 전제로한 죄였습니다. 우리의 친구 조병옥 박사는民주주의와 나“라는 책자예서 인간은 생올 얻으면서부터 죽기를 시작한다. 즉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시계의 1분 1초의 똑딱거리는 기계소리는 인간이 호흡하는 숨소리와 함께 죽음의 경지로 가까워 간 다는 것을 알리는 경종과도 같다”고 했습니다.다.
2영으로써 몸의 행실올 죽이면 살 리니”. 여기서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님올 가리킵니다. 이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 육체의 요구인 정욕적 행실을 버리면 인간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지시는 곧 하나님의 주신 말씀이요, 말씀을 따라 육욕의 마음을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올 소유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죄인은 육체의 욕구를 따라 그의 마음이 지배를 당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올 따라 육욕의 마음을 짓누르고 새로운 승리를 이룩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받으라(엡 5:18)” 육욕의 술에 취하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면 사는 것입니다. Benjamin Disrali(디즈레일리)는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삶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추구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하면서 성령님의 은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삶과 죽음의 원리라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하나님의 자녀 ! 그들은 누구입니까
1.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4절) 요한은 예수님을 영접히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의 성령님올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을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올 향하여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인간의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성령님의 은사를 통하여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어 새사람으로 지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새사람이 된자는 죄행으로 인하여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 즉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1) 각 개인의 심령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신자들 심령안에 거하시면서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진리안애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다.
(2) 성령님께서는 신자들이 천국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항상 신자들올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주안에서 거듭났다 하더라도 그 몸은 세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항상 육직인 여러 유혹과 시험에 시달려서 때로는 일시적인 타락으로 신자의 참 모습을 잃어 버리는 수가 있을수 있습니다. 이런 타락의 늪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외형적으로 이 사람이 신자인지, 비신자 인지.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인지를 구분하기 힘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불러서 거듭나게 한 자녀를 언제까지나 버려 방임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그 심령을 깨우쳐서 진리의 영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Augustin은 일시적으로 타락하여 방종 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을 위하여 30여년간이나 기도하는 눈물의 어머니 모니카의 간구에 성령님은 다시 Augustin을 불러 새사람의 길올 걷도록 하셨습니다. 성도들이여 !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거역하지 말고 모든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을 준행하십시다. 주가 크신 은혜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 많은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합께 가시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올 받는 것은 모든 육체의 소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Luther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자신까지라도 경멸하며 내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깨끗치 못하고, 더러움으로 가리워진 이 세상의 향락을 거부하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하나님을 찾아 갈급해 합니다.(15절) 이미 말씀 드렸지만 비록 중생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 육신이 세상에 있으므로 저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지기도 하고 시협을 받아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 때예 녀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올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
2)" 이런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는 사실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자들이 낙심하여 있을 때 가장 슬펴하시는 분은 주께서 보내신 성령님이십니다.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은 신자 자신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죄를 탄식하시면서 다시 신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임하심을 가리켜 조직 신학에서는 신자를 위한 견인(堅忍)이라 고 말합니다. 성령님의 견인은 다시 신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는 갈급한 심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게 하는 것입니다.
1 신자는 일시적으로 실패하여 넘어질 수는 있지만
2 결코 멸망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3 성화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방황을 하나 결국은 영생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의 부족을 절규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애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시 42:
1) 왜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시 붙들어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신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깨서 보내신 성령님은 마귀의 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신자는 무서위 하는 종의 영을 받은 자가 아니요, 성령님올 받은 하나님의 양자(養子)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 성도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갈급하게 부르짖습니다. 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한한 갈급한 부르짖음이 메말라 있지는 아니합니까 정녕 사탄이 무서워 하는 것은 성도의 기도 뿐입니다. 마귀의 유일한 책략은 성도들을 기도에서부터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없는 탐구, 사업, 종교는 악마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노력을 조소하고 지혜를 경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는 무서워 떠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여야 합니다.
1 아브라은은 기도하므로 늘 하나님 의 응답을 듣고 그 음성은 늘 그의 앞길 을 인도하였습니다.
2 엘리야는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받았습니다.
3 다니엘은 기도하여 사자굴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4 바울이 기도하였을 때 감옥의 벽이 혼들렸습니다. 5 루터가 기도하였을 때 로마의 문들 이 요동했습니다. 6 죤 낙스가 기도했을 때 메리 여왕 이 떨었습니다. 7 웨슬리가 기도하였을 때 부흫운동으로 영국을 구출하였습니다. 8 뮬러의 기도로 고아원들이 세워졌 습니다. 우리도 부르짖어 기도하므로써 하나님 의 능력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는 영광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톰하여 신자의 삶을 붙들어 주십니다. 설사 잠시 죄행에 빠졌다 하더라도 다시 일으켜 온전케 해 주시는 하나님의 견인(堅忍)의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죄를 지어도 무방한 것입니까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 즉 복음나라의 백성이 된 것 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후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유대에서는 장자(長子)는 다른 아들보다 갑절의 유업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테 후일 유대를 점령한 로마법은 친자나 양자나 할 것없이 모든 자녀는 평등 한 후사로서 기업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로마법에 영향을 받아 이 말씀을 로마에 있는 성도 들에게 편지하였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Vincent) 그리스도와 함께 양자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후사요.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 의 기업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후사가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Clarke)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업을 맡은 인사로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를 읽어보면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어 종의 멍에를 지셨습니다. 종 의 멍에를 지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며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주님을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고늘에 있는 자들과 땅 에 있는 자를 모두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다.(사 53:4-6절) 8
그러므로 바울은 마땅히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멍에 즉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렇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이므로 그리스도가 먼저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그렇다고 기독교가 고행주의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의 삶 속에 고난이 있으면 그 또한 기쁘게 삶의 방편으로 녹여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18절)”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의 영이 되시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요 다시는 육체를 따라 옛사람으로 돌아가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라 하였습니다.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빛진 자라(롬 1:14).하였으니. 바울의 생각은 주님의 은혜로 빚올 지고 구원올 얻었으며 또한 주님이 원하시는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 의 사역올 감당할 일에 빚진 자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빚진 자는 어찌해야 할 것입니까 이제 한번 구원의 은총을 입었으니. 그 구원을 감사하면서 다시는 옛사람의 생활,육체의 정욕을 좇지 아니하고 성령님을 좇아 복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분명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너회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13절)"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동산중앙에 있는 과실을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육신의 쾌감올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이로로 인간의 육신은 죽기로 운명 지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인간의 요구는 모두 육체적이요. 이 육체적 욕구를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인간의 지혜나 욕구는 사망을 전제로한 죄였습니다. 우리의 친구 조병옥 박사는民주주의와 나“라는 책자예서 인간은 생올 얻으면서부터 죽기를 시작한다. 즉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시계의 1분 1초의 똑딱거리는 기계소리는 인간이 호흡하는 숨소리와 함께 죽음의 경지로 가까워 간 다는 것을 알리는 경종과도 같다”고 했습니다.다.
2영으로써 몸의 행실올 죽이면 살 리니”. 여기서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님올 가리킵니다. 이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 육체의 요구인 정욕적 행실을 버리면 인간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지시는 곧 하나님의 주신 말씀이요, 말씀을 따라 육욕의 마음을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올 소유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죄인은 육체의 욕구를 따라 그의 마음이 지배를 당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올 따라 육욕의 마음을 짓누르고 새로운 승리를 이룩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받으라(엡 5:18)” 육욕의 술에 취하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면 사는 것입니다. Benjamin Disrali(디즈레일리)는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삶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추구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하면서 성령님의 은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삶과 죽음의 원리라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하나님의 자녀 ! 그들은 누구입니까
1.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4절) 요한은 예수님을 영접히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의 성령님올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을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올 향하여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인간의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성령님의 은사를 통하여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어 새사람으로 지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새사람이 된자는 죄행으로 인하여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 즉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1) 각 개인의 심령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신자들 심령안에 거하시면서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진리안애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다.
(2) 성령님께서는 신자들이 천국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항상 신자들올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주안에서 거듭났다 하더라도 그 몸은 세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항상 육직인 여러 유혹과 시험에 시달려서 때로는 일시적인 타락으로 신자의 참 모습을 잃어 버리는 수가 있을수 있습니다. 이런 타락의 늪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외형적으로 이 사람이 신자인지, 비신자 인지.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인지를 구분하기 힘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불러서 거듭나게 한 자녀를 언제까지나 버려 방임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그 심령을 깨우쳐서 진리의 영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Augustin은 일시적으로 타락하여 방종 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을 위하여 30여년간이나 기도하는 눈물의 어머니 모니카의 간구에 성령님은 다시 Augustin을 불러 새사람의 길올 걷도록 하셨습니다. 성도들이여 !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거역하지 말고 모든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을 준행하십시다. 주가 크신 은혜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 많은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합께 가시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올 받는 것은 모든 육체의 소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Luther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자신까지라도 경멸하며 내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깨끗치 못하고, 더러움으로 가리워진 이 세상의 향락을 거부하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하나님을 찾아 갈급해 합니다.(15절) 이미 말씀 드렸지만 비록 중생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 육신이 세상에 있으므로 저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지기도 하고 시협을 받아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 때예 녀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올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
2)" 이런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는 사실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자들이 낙심하여 있을 때 가장 슬펴하시는 분은 주께서 보내신 성령님이십니다.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은 신자 자신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죄를 탄식하시면서 다시 신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임하심을 가리켜 조직 신학에서는 신자를 위한 견인(堅忍)이라 고 말합니다. 성령님의 견인은 다시 신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는 갈급한 심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게 하는 것입니다.
1 신자는 일시적으로 실패하여 넘어질 수는 있지만
2 결코 멸망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3 성화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방황을 하나 결국은 영생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의 부족을 절규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애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시 42:
1) 왜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시 붙들어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신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깨서 보내신 성령님은 마귀의 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신자는 무서위 하는 종의 영을 받은 자가 아니요, 성령님올 받은 하나님의 양자(養子)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 성도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갈급하게 부르짖습니다. 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한한 갈급한 부르짖음이 메말라 있지는 아니합니까 정녕 사탄이 무서워 하는 것은 성도의 기도 뿐입니다. 마귀의 유일한 책략은 성도들을 기도에서부터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없는 탐구, 사업, 종교는 악마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노력을 조소하고 지혜를 경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는 무서워 떠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여야 합니다.
1 아브라은은 기도하므로 늘 하나님 의 응답을 듣고 그 음성은 늘 그의 앞길 을 인도하였습니다.
2 엘리야는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받았습니다.
3 다니엘은 기도하여 사자굴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4 바울이 기도하였을 때 감옥의 벽이 혼들렸습니다. 5 루터가 기도하였을 때 로마의 문들 이 요동했습니다. 6 죤 낙스가 기도했을 때 메리 여왕 이 떨었습니다. 7 웨슬리가 기도하였을 때 부흫운동으로 영국을 구출하였습니다. 8 뮬러의 기도로 고아원들이 세워졌 습니다. 우리도 부르짖어 기도하므로써 하나님 의 능력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는 영광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톰하여 신자의 삶을 붙들어 주십니다. 설사 잠시 죄행에 빠졌다 하더라도 다시 일으켜 온전케 해 주시는 하나님의 견인(堅忍)의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죄를 지어도 무방한 것입니까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 즉 복음나라의 백성이 된 것 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후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유대에서는 장자(長子)는 다른 아들보다 갑절의 유업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테 후일 유대를 점령한 로마법은 친자나 양자나 할 것없이 모든 자녀는 평등 한 후사로서 기업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로마법에 영향을 받아 이 말씀을 로마에 있는 성도 들에게 편지하였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Vincent) 그리스도와 함께 양자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후사요.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 의 기업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후사가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Clarke)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업을 맡은 인사로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를 읽어보면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어 종의 멍에를 지셨습니다. 종 의 멍에를 지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며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주님을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고늘에 있는 자들과 땅 에 있는 자를 모두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다.(사 53:4-6절) 8
그러므로 바울은 마땅히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멍에 즉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렇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이므로 그리스도가 먼저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그렇다고 기독교가 고행주의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의 삶 속에 고난이 있으면 그 또한 기쁘게 삶의 방편으로 녹여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18절)”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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