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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의 고대하는 것 (롬8:18-30)

본문

지난 주 우리는 8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정죄함이 없는 자유로운 자녀로서의 삶을 살펴 보았다. 대강을 요약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죄인이나 정죄함이 없는데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다스리시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성도는 이 주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마치 장애인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남편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있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이같이 영에 속하여 육신의 행실을 죽이며 살아 가는데 결정적인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이요, 자녀이면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상속 받는 당연한 후사로서 참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은 이 후사로서 참되고 영원한 소망이 있는 성도에게 그 소망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때가 바로 온세상 하나님의 피조물의 구속의 날이 됨을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하고, 이같은 구속의 날까지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시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 론 오늘 본문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구절로 말씀을 시작한다. (19 )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바로 전에 성도의 참된 소망,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으로 결론을 맺은 주제에서 조금 떨어진 것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는 우주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밀이다. 성도의 구속, 완전한 부활의 소망은 바로 모든 우주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이 기다리고 고대하는 소망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은 보여주고 있다.
1.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피조물은 지금 함께 탄식하고 고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2 ) / 많은 문학가와 시인 음악가 미술가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은 타락하고 부패하여 고통하고 있으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눈만을 가지고는 잘 알 수 없는 피조물의 실재 상태는 썩어짐과 고통에 매여 탄식을 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왜 피조물이 탄식하는가 왜 고통하는가 오늘 본문을 두가지로 피조물의 탄식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는 원치 않게 허무한데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다.(20 ) /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배반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럴만한 능력도 조건도 만물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타락의 절망을 함께 맛보아야 한다. 죄와 파괴를 안고 고통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받은 원래 목적대로 쓰임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허무한 일에 굴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을 살펴보면 그 대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 일에 사용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피조물은 탄식하고 고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와같이 굴복되하도록 하신 분이 바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피조물이 스스로는 그럴 이유도 없고 원치도 않으나 허무한데 굴복케 하신데는 무언가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다는 자연스러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또 하나는 바로 썩어짐의 종노릇 한다는 것이다.(21 ) / 허무한데 굴복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받는 저주가 모든 피조물에 임한 것이다. 그것은 썩어짐의 종노릇한다고 표현했다. 피조물 자체의 부패 저주가 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중에 온전한 것이 없다. 다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 썩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우리 몸은 함께 썩어갈 뿐이다. 온전한 것은 없게 되었다. 마치 사람이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게 되어 버렸듯이 피조물은 썩음을 당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2. 두번째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고통하는 피조물들이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 다시말해서 먼저 하나님께 간 성도들이 영광의 부활을 맞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오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주님께서 다시오실 날을 기다린다고만 하지 하나님의 아들들 즉 성도들의 부활을 언급하느냐는 사실이다. 더구나 성도들은 이제 썩지 아니하고 영원한 기업을 그리스도와 함께 얻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는 굉장히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 특히 21절에 보면 피조물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때 함께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데서 해방되어 그 영광의 자유에 동참하게 된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진리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완전한 부활 영광의 자유는 곧 모든 피조물의 부활이요,영광의 자유라는 사실이며, 피조물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은 성도의 기업의 완성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상호간에 하나가 되어지는 즉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의 성취인 것이다.
3.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창
1,2장 ) / 하나님께서 천지 말물을 다 지으시고 맨 마지막 날 맨 나중에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이는 만믈을 만드신 것은 사실 사람을 당신의 자녀로 지으시기 위한 준비 작업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셨으나 실제적으로는 사람을 위해서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에 만물과는 구별되게 하나님의 형상 즉 인격과 성품 특성을 따라 지으셨다. 그리고 축복하시기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 고 하심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만물의 머리역활 되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땅의 운명은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라는 것이다.
예) 집도 자동차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람에게 주신 만물의 머리된 권세는 하나님이 부여해 주시므로 성립된 권세이지 결코 하나님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치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나 스스로 영생의 존재로서 존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만이 영원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4. 바로 사람의 실패가 여기에 있다. /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동산 에덴에서 바로 축복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거절함으로서 죄와 사망의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고, 만물도 이 때 제 주인의 저주에 함께 동참하여 함께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창 3장 ) 성경은 말한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 가시와 엉컹퀴를 내고. 모든 피조물은 사람을 따라서 함께 타락하고 함께 고통하게 된것이다. 바로 이 타락의 원리에서 우리는 회복의 원리를 쉽게 조명해 볼 수 있다. 아하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는 사람의 구속, 완전한 몸의 부활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완전한 구속이 되는 구나! 아하 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성도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구나! (19 )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은 곧 만물의 구속이요, 창조의 영광의 풍성한 회복인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 중 다 이루었다! 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한 대속사역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여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내게 주셨사오니.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광을 다시 누리게 하시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속하신 저들도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같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그러므로 성도의 소망 곧 몸의 부활은 성도의 기업이요, 온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그 날에 새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5. 여기서 또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미 예수를 믿은 구속 받은 성도에게도 역시 속으로 탄식을 하며, 몸이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다. (23 )./ 이는 피조물과 일반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구속은 불완전한가 그렇지 않다. 완전히 성취되었는데 단지 그 과정에 있어서 몸의 구속, 즉 부활의 과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도는 무엇을 탄식하는가 죄 (성향은 변화가 되었으나 성질상은 여전히 죄인이다.
그러므로 죄의 종은 아니나 계속해서 죄의 공격을 받는다.) 육신의 고통과 연약 (몸의 부활 때까지 ) 세상의 불의에 대한 영육간의 고통 (주님의 심판 때까지)
그러므로 몸의 구속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성도의 소망이다. 이 때 모든 눈물은 씻기워 질 것이며, 창세부터 흘린 모든 의인의 피 무고한 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모든 피는 땅에서 깨끗이 씻어질 것이다. 상함과 해함이 없이 희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이루어 지게 될 것이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기도하심과 같이 주의 나라가 임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저 황홀경 속에 영혼만 떠돌아 다니는 나라가 아니다. 너무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나라이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 앞에 진실무망하게 충성한대로 혹은 열고을 권세를 혹은 다섯고을 권세를 혹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의인들의 통치가 이루어 지는 나라이다. 한번은 제자들중 두 제자의 어미가 와서 주의 나라 임하실 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소서! 하고 구해을 때 주님께서는 잘 못 구했다고는 하셨으나 그것을 부인치는 않으시고 이는 먼저 주님의 잔을 마시는 자가 되야하고 즉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자요, 또한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든지 그가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한 의인의 나라요, 영광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은 더욱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부활은 곧 모든 피조물의 부활이요, 구속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성도의 소망일 뿐만아니라 주인을 잘못 만나 지금도 함께 탄식하는 온 우주만물, 곧 모든 피조물의 소망인 것이다. 이 소망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받고도 거부하는 불의한 자들과 주님의 다시오심을 전혀 기다리지 않는 가짜 교인은 이 온 우주의 소망에서 유일하게 제외된다. 6. 이제 말씀은 이 부활의 소망이 성도에게 있다는 사실은 곧 구원의 보증 다시말씀드려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24,25 )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이 영원한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은 내가 믿음을 가졌다는 확고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은 두가지를 증거해 준다.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적어도 지금 현재 주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세상을 따라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는 결코 주님의 나라을 소망하지 않는다. 단지 세상에서 별 탈 없이 오래 오래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지금 주님의 재림과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은 영혼의 닷같아서 내가 구원 받았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 소망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특성이 있다. (24 ) 보이지 않는 소망이기에 많은 사람 적어도 믿지 않는 자들은 가질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저들의 소망은 오직 땅에 있는 보이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이 값진 것으로 생각하고 바란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거나 그저 막연히 이루어질 수도 있는 먼 장래의 소망으로 생각을 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적어도 이와같이 영광스럽고 확고한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보이는 소망은 소망도 아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소망은 사실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고통하는 피조물을 바라는 것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하신 것이다. 어떻습니까 과연 내게도 그리합니까 그리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소망을 가진자는 그것이 홀연히 보이지 않게 임한다는 특성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25 ) / 인내는 성도의 덕목 중에 어쩌면 절대적으로 중요한 덕목이다. 참음이 없이는 결코 승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인내로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 부활의 그 날을 기다리는 성도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신다. (26-27 ) / 이는 믿는 자녀와 함께하시는 성령님께서 성도를 돌아보시고 도우시는 손길로 이어진다. 성령님께서 소망중에 인내로서 기다리는 성도를 도우시는 사역을 요약해 보면.
1) 성령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 / 보이지 않는 소망을 참음으로 기다리기 힘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음에 확신과 소망으로 믿음을 돋구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하심이다.
2)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 우리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님께서 그 영적으로 아둔함을 아시고 대신 기도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 함은 극진하신 사랑을 말한다. 마치 부모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은 탄식이다.
3) 기도하시되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신다. / 우리는 우리의 소욕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기도하기 쉬우나 성령님께서는 소망에 합당하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섭리와 뜻대로 기도해 주신다.
예) 우리가 세상일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탄식하며 영적인 눈을 뜨게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다. 결언 /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온 우주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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