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하는 피조물 (롬8:21-24)
본문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구는 태양계가 속해 있는 9개의 행성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태양 은 2천억개의 별들로 구성된 은하계에 속해 있으며 은하계 외에도 우 주에는 l천억개 정도의 다른 은하계들이 있고 각각 그 은하계는 1천 억개가 넘는 별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넓은 우주의 수를 셀 수 없는 천체들 가운 데 지구를 제외한 그 어떤 곳에도 생명체의 존제가 확인되지 않고 있 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지구가 몸살을 고 있습니다. 일본 관서지방 대지진으로 5240여 명이 사망했고 실종부상은 26800여 명이 있으며 피해액은 10o조원이라고 합니다. 어떤 환경전 문가는 이것을 '지구의 대반란'이라고 했습니다. 유럽의 경우 블란서나 네델란드, 독일 등지엔 흥수가 터졌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동지방의 골갈 고원에는 때 아닌 폭설이 쏟아졌고 벨기에서는 초 속 126km의 강과 눈사태가 겹쳤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30년간 한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농약, 핵폐기물. 배기가스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환경 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비가 오면 처음 1o분간은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울 시 보건환경 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빗 속에 포함된 산성분의 90프로가 초반 lo분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발간한 r94년도 서을 환경백서' 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환 경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대기오염이고 들째는 소음공해이고 샛째는 수질오염 넷바는 쓰레기문제 입니다 쓰레기의 경우 종량제실시 이전 매일 68,000톤이던 것이 종량제실 시 이후 4l, 000톤으로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은 1인당 하루에 0. 9키로그램의 쓰레기를 배출하는가 하면 일본 사람은 1.0키로그램, 한국인은 1.16키로그램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환경파괴가 가져오는 결과는 심각합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 면 지구온난화, 오존층의 파괴, 산성비, 대기오영, 수질오염, 토양오 염. 열대림의 사막화 등 지구자체를 위기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지구 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파괴와 인간의 삶의 관계는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숨쉬기 힘들고 썩은 물 마셔야 하고 농약과 증금속오염된 식 물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문 22절에서 '히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 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피조세계는 탄식하는 세게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6차례 나옵니다. '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벽성과 그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성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빈틈없이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것이고 모두가 다 만족 하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은 선악과 사건이 분수령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전의피조물은 노래하는 피조물이었고 그 이후의 피조물은 탄식하는 피조 물이었습니다. 창세기 S:14-19을 보면, 아담과 하와, 뱀과 땅이 저주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 담은 땀흘려 일하되 소득이 없고 하와는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됐고 뱀은 배로 기어다니게 됐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창조 당시 부여받았던 정상적 삶이 캐진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탄식하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 지자 뜻있는 사람들과 환경단체들이 '환경 보호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증요한 것은 환경회복이나 보호운동 은 곧 창조질서의 회복이며 보호운동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주받기 이전의 땅과 사람을 회복하는 것이 곧 창조질서의 회복이 기 때문인 것입니다. 블란서의 유명한 생수는 에비앙입니다. 구라파와 심지언 동남아까 지 수출하는 물입니다.
그런데 그 물 속에서 증금속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지구는 모조리 오염되었 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회복을 위한 기독교인의 몇 가지 자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자연과 환경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선물쉐라는 것을 재인식 해야 합니다. 창세기 l:l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했 습니다. 그리고 1:28을 보면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증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 했고 1 .29을 보면 '내 가 온 지면의 씨가진 열매맺는 모든 나무를 너회에게 주노니 너회 식 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주인으 로서 피조물에 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24편 1절을 보면 '땅과 거기 층만한 것과 세계와 그 증에 거 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 라는 다윗의 고백인 것입니다. 현재 환경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의 대부분은 이 지구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인본주의적 발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인 이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이 인간 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둘째 영흔리 회복운동을.일으켜야 합니다. 창세기 3장의 경우를 보면 죄를 범한 것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리고 범죄의 동기부여자는 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 그 리고 뱀이 저주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무 죄가 없는 땅 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17을 보면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라고 했고
I8절을 보면 '방이 네게 가시덤블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사람과 땅은 불가분리의 관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땅도 저주를 받고 땅이 저주를 받으면 사람 은 그 땅에서 살기가 어렵게 됩니다. 저주받은 인간은 저주받은 땅으 로 돌아가야 한다고 창세기 S:19에서 말씀했습니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 가면 범죄소굴이라고 부르는 소위 뒷골목이 있습니다. 그런 곳일수록 밤이면 등불도 없고 깜깜합니다. 낮에도 음산하고 어둡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하고 더럽습니다. 사람의 심성과 환경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을 되살고 환 경이 회복되려면 사람의 영흔이 살아나야 합니다. 영흔 되살리는 운 동은 환경단체가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깨끗해지면 생각이 깨끗해지고 생각이 깨끗해지면 행동 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영흔과 정신과 행동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셋째 환경 청지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얼마전 우유을 모아다가 그것을 재생하여 화장지(휴지)를 만드는 분을 만났습니다. 전 재산을 털어 바치는 산고 끝에 성공을 한 분이 었습니다. 쓰레기통에 아무 생각없이 버리는 폐품이 변해 양질의 화장지가 된 다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만 무심코 버리는 우유벅을 모아다가 자을 재활용 재생산하는 것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 습니다. 그 분은 우유팩을 모아 놓으면 정기적으로 자동차를 보내 가 져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유팩 분량만큼의 화장지로 교환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전도회에서 앞장서 선교차원의 사업으로 추진하기 바랍니다. 쓰레기 종량제의 경우도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그리고 공장폐수, 가정폐수 등도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양심을 걸고 정직하게 처리해 야 합니다. l0년전 어느날 교인 가정심방을 가기 위해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 습니다. 골목길 어느 집 앞을 지나 가는데 어떤 부인이 콧노래를 부 르며 대문을 열더니 골목길 하수구에 구정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었 습니다. 일부는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고 일부는 길 바닥으로 흘러 내 렸습니다. 해선 안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그 부인이 흥얼거리며 부른 노래였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찬송가였습니다.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구정물을 버 리는 사람한테 무슨 딴 근심이 있었겠습니까마는 기독교인이 그러면 안됩니다. 폐수 처리,쓰레기 처리,자원 재활용도 앞장서야 합니다. 내가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교회 어느 방에 필요없이 전등이 켜 있 다면 스위치를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촌 전철역이 개통된 그 다음날 역장을 만났습니다. 개통한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화장실의 휴지고리가 없어졌는가 하면 휴지가 없어 졌다면서 으로가 펴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지구촌은 신음과 탄식소리로 가득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탄식 소리와 자연의 탄식소리입니다. 어떻게 그 탄식소리를 종식 시킬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믈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 제수준 즉 GNP와 문화수준, 교육수준, 환경보전 등입니다. 가난하 고 문화수준 낮고 교육수준 낮은 나라일수록 환경이 피폐합니다. 그러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더 증요한 기준은 종교입니다. 산 종교,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 국가일수록 그리고 기독교가 일찌기 들어 간 나라일수록 선진국가입니다. 그리고 환경도 깨끗하고 자연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자연도 변하고 환경도 변합니다. 돼지를 목욕시키고 실크로 옷을 해 입히고 돼지 우리에 최고급 양탄 자를 깔고 양털벼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을 따로 만 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2o분도 못가 그 곳을 돼지 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영흔이 변해야 합니다. 새롭게 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변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면 자연도 환경도 변하게 됩니다. 내가 변하고 자연을 살럽시다. 내가 새로워지고 환경을 지킵시다. 영혼의 환경을 깨끗이 합시다. 결국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넓은 우주의 수를 셀 수 없는 천체들 가운 데 지구를 제외한 그 어떤 곳에도 생명체의 존제가 확인되지 않고 있 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지구가 몸살을 고 있습니다. 일본 관서지방 대지진으로 5240여 명이 사망했고 실종부상은 26800여 명이 있으며 피해액은 10o조원이라고 합니다. 어떤 환경전 문가는 이것을 '지구의 대반란'이라고 했습니다. 유럽의 경우 블란서나 네델란드, 독일 등지엔 흥수가 터졌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동지방의 골갈 고원에는 때 아닌 폭설이 쏟아졌고 벨기에서는 초 속 126km의 강과 눈사태가 겹쳤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30년간 한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농약, 핵폐기물. 배기가스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환경 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비가 오면 처음 1o분간은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울 시 보건환경 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빗 속에 포함된 산성분의 90프로가 초반 lo분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발간한 r94년도 서을 환경백서' 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환 경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대기오염이고 들째는 소음공해이고 샛째는 수질오염 넷바는 쓰레기문제 입니다 쓰레기의 경우 종량제실시 이전 매일 68,000톤이던 것이 종량제실 시 이후 4l, 000톤으로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은 1인당 하루에 0. 9키로그램의 쓰레기를 배출하는가 하면 일본 사람은 1.0키로그램, 한국인은 1.16키로그램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환경파괴가 가져오는 결과는 심각합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 면 지구온난화, 오존층의 파괴, 산성비, 대기오영, 수질오염, 토양오 염. 열대림의 사막화 등 지구자체를 위기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지구 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파괴와 인간의 삶의 관계는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숨쉬기 힘들고 썩은 물 마셔야 하고 농약과 증금속오염된 식 물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문 22절에서 '히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 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피조세계는 탄식하는 세게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6차례 나옵니다. '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벽성과 그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성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빈틈없이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것이고 모두가 다 만족 하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은 선악과 사건이 분수령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전의피조물은 노래하는 피조물이었고 그 이후의 피조물은 탄식하는 피조 물이었습니다. 창세기 S:14-19을 보면, 아담과 하와, 뱀과 땅이 저주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 담은 땀흘려 일하되 소득이 없고 하와는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됐고 뱀은 배로 기어다니게 됐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창조 당시 부여받았던 정상적 삶이 캐진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탄식하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 지자 뜻있는 사람들과 환경단체들이 '환경 보호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증요한 것은 환경회복이나 보호운동 은 곧 창조질서의 회복이며 보호운동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주받기 이전의 땅과 사람을 회복하는 것이 곧 창조질서의 회복이 기 때문인 것입니다. 블란서의 유명한 생수는 에비앙입니다. 구라파와 심지언 동남아까 지 수출하는 물입니다.
그런데 그 물 속에서 증금속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지구는 모조리 오염되었 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회복을 위한 기독교인의 몇 가지 자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자연과 환경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선물쉐라는 것을 재인식 해야 합니다. 창세기 l:l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했 습니다. 그리고 1:28을 보면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증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고 했고 1 .29을 보면 '내 가 온 지면의 씨가진 열매맺는 모든 나무를 너회에게 주노니 너회 식 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주인으 로서 피조물에 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24편 1절을 보면 '땅과 거기 층만한 것과 세계와 그 증에 거 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 라는 다윗의 고백인 것입니다. 현재 환경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의 대부분은 이 지구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인본주의적 발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인 이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이 인간 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둘째 영흔리 회복운동을.일으켜야 합니다. 창세기 3장의 경우를 보면 죄를 범한 것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리고 범죄의 동기부여자는 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 그 리고 뱀이 저주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무 죄가 없는 땅 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17을 보면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라고 했고
I8절을 보면 '방이 네게 가시덤블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사람과 땅은 불가분리의 관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땅도 저주를 받고 땅이 저주를 받으면 사람 은 그 땅에서 살기가 어렵게 됩니다. 저주받은 인간은 저주받은 땅으 로 돌아가야 한다고 창세기 S:19에서 말씀했습니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 가면 범죄소굴이라고 부르는 소위 뒷골목이 있습니다. 그런 곳일수록 밤이면 등불도 없고 깜깜합니다. 낮에도 음산하고 어둡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하고 더럽습니다. 사람의 심성과 환경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을 되살고 환 경이 회복되려면 사람의 영흔이 살아나야 합니다. 영흔 되살리는 운 동은 환경단체가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깨끗해지면 생각이 깨끗해지고 생각이 깨끗해지면 행동 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영흔과 정신과 행동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셋째 환경 청지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얼마전 우유을 모아다가 그것을 재생하여 화장지(휴지)를 만드는 분을 만났습니다. 전 재산을 털어 바치는 산고 끝에 성공을 한 분이 었습니다. 쓰레기통에 아무 생각없이 버리는 폐품이 변해 양질의 화장지가 된 다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만 무심코 버리는 우유벅을 모아다가 자을 재활용 재생산하는 것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 습니다. 그 분은 우유팩을 모아 놓으면 정기적으로 자동차를 보내 가 져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유팩 분량만큼의 화장지로 교환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전도회에서 앞장서 선교차원의 사업으로 추진하기 바랍니다. 쓰레기 종량제의 경우도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그리고 공장폐수, 가정폐수 등도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양심을 걸고 정직하게 처리해 야 합니다. l0년전 어느날 교인 가정심방을 가기 위해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 습니다. 골목길 어느 집 앞을 지나 가는데 어떤 부인이 콧노래를 부 르며 대문을 열더니 골목길 하수구에 구정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었 습니다. 일부는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고 일부는 길 바닥으로 흘러 내 렸습니다. 해선 안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그 부인이 흥얼거리며 부른 노래였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는 찬송가였습니다.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구정물을 버 리는 사람한테 무슨 딴 근심이 있었겠습니까마는 기독교인이 그러면 안됩니다. 폐수 처리,쓰레기 처리,자원 재활용도 앞장서야 합니다. 내가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교회 어느 방에 필요없이 전등이 켜 있 다면 스위치를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촌 전철역이 개통된 그 다음날 역장을 만났습니다. 개통한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화장실의 휴지고리가 없어졌는가 하면 휴지가 없어 졌다면서 으로가 펴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지구촌은 신음과 탄식소리로 가득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탄식 소리와 자연의 탄식소리입니다. 어떻게 그 탄식소리를 종식 시킬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믈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 제수준 즉 GNP와 문화수준, 교육수준, 환경보전 등입니다. 가난하 고 문화수준 낮고 교육수준 낮은 나라일수록 환경이 피폐합니다. 그러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더 증요한 기준은 종교입니다. 산 종교,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 국가일수록 그리고 기독교가 일찌기 들어 간 나라일수록 선진국가입니다. 그리고 환경도 깨끗하고 자연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자연도 변하고 환경도 변합니다. 돼지를 목욕시키고 실크로 옷을 해 입히고 돼지 우리에 최고급 양탄 자를 깔고 양털벼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을 따로 만 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2o분도 못가 그 곳을 돼지 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영흔이 변해야 합니다. 새롭게 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변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면 자연도 환경도 변하게 됩니다. 내가 변하고 자연을 살럽시다. 내가 새로워지고 환경을 지킵시다. 영혼의 환경을 깨끗이 합시다. 결국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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