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하는 X인 (롬8:3)
본문
우리는 할 수 없다 로마서 8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 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율법은 무능하다고 말한다. 율법은 할 수 없다.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육 신이다. 율법은 신령하며 거룩하다. 문제가 없다. 그러할지라도 율법 은 못한다.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이라고 말한다. 할 수 없다. 왜 할 수 없는가 육신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부족한 죄인' 이라고 말한다. 부족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내가 30퍼센트 뿐이니 70퍼센트가 보 충된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깨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 성경은 할 수 없다고 단정 한다. 우리는 할 수 없다. 부족한 죄인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죄인이다. 자신이 부족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단코 승리하거나 성공하지 못한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라. 부족하다고 말하지 말고 할 수 없다고 말하라. 하나님은 하신다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 하나님 이 어떻게 하시는가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은 그리스도 안에 서 이미 정죄되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분이 왜 아들을 보내셨는가 할 수 없는 우릴 할 수 있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 누가 할 수 있게 하는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육신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는 아 들을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죄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의 죄 의 육신은 이미 정죄당한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육신을 좋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미 정죄하셨다. 하나님은 이 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육신을 파산시켰고 끝내셨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육신을 정죄하셨다. 영을 좇아 행하라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진다. 영을 좇는 문제가 있다. 영을 좇는 것은 육신을 좇는 것과 대비된다.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은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깨 지위를 드리고 그분을 주로 삼는 것이다. 그 분이 내 속에서 행하시도록 지위를 내어 드리는 것이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누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잡았다면 승리 했어도 무익한 것이다. 승리의 보조품잊 승리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 이 운전대를 성령님깨 드렸을 때 상신의 승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승 리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깨 지위를 드리기를 배워 야 한다. 영을 좇아 행하고 영이 충만해야 한다. 영으로 충만되는 가 장 좋은 비결은 기도하고 말씀 먹고 찬송하고 교통하는 것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세월을 아꺼 성령님으 로 충만해야 한다. 이럴 때 당신은 성령님을 좇기가 쉽다. 기도하고 말씀 먹고 찬미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활에 찬미가 넘치는가 그렇지 않다면 성령님이 덜 충만한 것이다.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은 찬미가 넘친다. "이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됐네 신성과 인성도 있고. " 곡조가 틀려도 괜찮다.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을 주님께 맡 기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님이 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입에서는 찬미가 넘친다. 갈라디아서 5장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르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한다. 육체와 내 자신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싸움은 성령님과 육체와이 싸움이다. 당신이 맡기기만 한다면 성령님깨서 육체를 처리한다. 그럴 때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만들 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열매이다. 당신이 성령님께 지위 를 드릴 때 이러한 열매가 맺어진다. 성령님이 충만할 때 근심이 사라진다. "근심하는 자여, 네 모든 근 심 갖고 주깨로 나오라." 근심을 버리고 찬양하라! 구약의 율법 대 신약의 복음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왜 율법을 주셨는가 드러내기 위해 주신 것이다. 신약은 무엇인가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로마서 7장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이것을 깨닫는 데 4000년 이상이나 걸렸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셨다. 신양기도래했다. "내가 하겠다. 내가 너희를 위해 구속하 고, 구원하고, 너희의 생명이 되겠다. 내가 너희 속에서 승리하게 해 주겠다." 이것이 신약이다. 안식하면 된다. 기뻐하면 된다. 찬양하 면 된다. 왜 찬미하지 못하는가 신약의 복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을 받는다면 즉시 바뀔 것이다. 거듭난 후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서 신음한다면 다시 한 번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을 받는다면 몇 년 후에는 성장이 있게 될 것이다. 만 일에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 복음을 받기 바란다. 믿음의 문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믿기 쉭고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믿음이 부족한 데 있다. 말로는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나 실지로는 자 신이 다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이미 포도나무의 가지인 것을 아는가 "아버지는 농부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접붙였는가 농부가 하셨다. 당신은 가 시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의 풍성을 가져 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가지가 되었다. 노력해서 진액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성, 풍성, 생명, 영광, 모든 것을 주 시기로 작정하셨고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접붙이셨다.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된다. 흔드니까 떨어지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는 절로 맺히는 것이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깨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깨 못 박았다고 하면 못 박힌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면 생명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렇게 의심한다. "정말 내 속에 생명이 있는가 성령님이 정말로 내 속 에 계신가" 느낌을 주의하기 때문이다. 느낌과 감정을 믿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느낌과 나님의 말씀과는 관계가 없다. 느낌은 소용이 없다. 믿을만한 근거가 못 된다. 경험도 믿을만한 것 이 못 된다. 유일하게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마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모든 것을 준 것과 같다. 우리는 믿음으로 받으면 된다. 이미 우리는 거룩한 분 그리스도깨 연결되었다. 견고하게 접붙여 졌다. 우리는 그분과 함깨 연합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분의 모든 풍성, 모든 것이 우리 속에 매일매일 공급되며 열매가 맺힌다. 아주 쉽다 힘들여 죄짓는 사람이 있는가 수고해서 죄짓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들여야 의를 행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담이 죄를 범해 우리로 힘들이지 않고 죄를 짓게 하는 것보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고 순종하심으로 우리로 의로운 행동을 하 게 하는 것이 더 쉽다. 노력해서 승리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동적으로 의, 사랑, 등등 성령님의 열매가 맺힌다. 하루 아침 에 이렇게 될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수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믿는 것이다. 산에서 도를 닦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은 일순간에 죄와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일순간에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일순간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잡지 못한다. 죄는 우리를 잡지 못한다. 율법은 우리를 속박하지 못한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 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님을 따를 때 우리가 그렇게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 을 성령님께서 이루신다. 그분은 율법을 주셨을 뿐 아니라 율법을 이루 시는 분이다. 율법과 은헤는 반대되는 말이며, 상대되는 말이다. 율 법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며, 은혜는 내가 할 필요 없이 주님이 우리 속에서 거저 해주시는 것이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 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열쇠는 생각이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 나니" . 어떻게 영을 좇아 행하는가 여기에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의 특징이 있다. 영을 좇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 을 좇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 문제는 생각에 있다. 생각이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면 그는 육신을 좇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면 그는 영을 좇는 사람이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영적인 대화라 할지라도 여전히 육신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자신 안에 있을 때 육신 안에 있게 된다. 자신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잘하고 잘못하는 것, 성공과 실패, 다 의미가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분의 영원한 경 륜, 계획, 구속, 목적, 그분의 지혜, 이러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 자 신에게서 나오라. 자신 안에 있는 한 구원받지 못한다. 당신의 생각 이 어디에 있는가 영을 좇는 것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며, 육신 을 좇는 것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망이냐 생명이냐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육신 에 생각을 둔 결과는 무엇인가 사망이다. 사망에는 특징이 있다. 답 답하고 불안하다. 사망은 공허한 것이다. 당신의 느낌이 이러하다면 이것은 당신이 육신을 좇고 있다는 강한 증거이다. 주를 위한 일, 하나님깨 속한 일이라고 다 생명에 속한 것은 아니다. 물론 죄를 짓는 것은 사망이다. 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의 생각 속에 사망, 우울, 불안, 근심, 초조, 조금함 등이 있다면 당신은 돌이켜야 한다. "주 여, 육신에서 돌이킵니다. 나를 정결케 하시고 씻어 주소서. 영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 안이기 때문이다. 영에 생각을 둔 사람의 특징은 살아 있는 느낌이 충만하디. 생기가 솟고, 기쁨과 만족과 안식이 충만하다. 영광스러움 과 존귀함과 안식이 충만하다. 영광스러움과 존귀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당신의 상태가 이렇다면 영을 좇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떠 나, 육신을 벗어나 영 안으로 들어가라. 생명과 평안이 넘쳐날 것이다. 할렐루야!
첫째는 아 들을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죄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의 죄 의 육신은 이미 정죄당한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육신을 좋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미 정죄하셨다. 하나님은 이 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육신을 파산시켰고 끝내셨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육신을 정죄하셨다. 영을 좇아 행하라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진다. 영을 좇는 문제가 있다. 영을 좇는 것은 육신을 좇는 것과 대비된다.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은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깨 지위를 드리고 그분을 주로 삼는 것이다. 그 분이 내 속에서 행하시도록 지위를 내어 드리는 것이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누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잡았다면 승리 했어도 무익한 것이다. 승리의 보조품잊 승리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 이 운전대를 성령님깨 드렸을 때 상신의 승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승 리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깨 지위를 드리기를 배워 야 한다. 영을 좇아 행하고 영이 충만해야 한다. 영으로 충만되는 가 장 좋은 비결은 기도하고 말씀 먹고 찬송하고 교통하는 것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세월을 아꺼 성령님으 로 충만해야 한다. 이럴 때 당신은 성령님을 좇기가 쉽다. 기도하고 말씀 먹고 찬미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활에 찬미가 넘치는가 그렇지 않다면 성령님이 덜 충만한 것이다.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은 찬미가 넘친다. "이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됐네 신성과 인성도 있고. " 곡조가 틀려도 괜찮다.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을 주님께 맡 기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님이 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입에서는 찬미가 넘친다. 갈라디아서 5장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르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한다. 육체와 내 자신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싸움은 성령님과 육체와이 싸움이다. 당신이 맡기기만 한다면 성령님깨서 육체를 처리한다. 그럴 때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만들 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열매이다. 당신이 성령님께 지위 를 드릴 때 이러한 열매가 맺어진다. 성령님이 충만할 때 근심이 사라진다. "근심하는 자여, 네 모든 근 심 갖고 주깨로 나오라." 근심을 버리고 찬양하라! 구약의 율법 대 신약의 복음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왜 율법을 주셨는가 드러내기 위해 주신 것이다. 신약은 무엇인가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로마서 7장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이것을 깨닫는 데 4000년 이상이나 걸렸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셨다. 신양기도래했다. "내가 하겠다. 내가 너희를 위해 구속하 고, 구원하고, 너희의 생명이 되겠다. 내가 너희 속에서 승리하게 해 주겠다." 이것이 신약이다. 안식하면 된다. 기뻐하면 된다. 찬양하 면 된다. 왜 찬미하지 못하는가 신약의 복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을 받는다면 즉시 바뀔 것이다. 거듭난 후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서 신음한다면 다시 한 번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을 받는다면 몇 년 후에는 성장이 있게 될 것이다. 만 일에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 복음을 받기 바란다. 믿음의 문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믿기 쉭고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믿음이 부족한 데 있다. 말로는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나 실지로는 자 신이 다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이미 포도나무의 가지인 것을 아는가 "아버지는 농부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접붙였는가 농부가 하셨다. 당신은 가 시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의 풍성을 가져 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가지가 되었다. 노력해서 진액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성, 풍성, 생명, 영광, 모든 것을 주 시기로 작정하셨고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접붙이셨다.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된다. 흔드니까 떨어지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는 절로 맺히는 것이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깨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깨 못 박았다고 하면 못 박힌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면 생명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렇게 의심한다. "정말 내 속에 생명이 있는가 성령님이 정말로 내 속 에 계신가" 느낌을 주의하기 때문이다. 느낌과 감정을 믿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느낌과 나님의 말씀과는 관계가 없다. 느낌은 소용이 없다. 믿을만한 근거가 못 된다. 경험도 믿을만한 것 이 못 된다. 유일하게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마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모든 것을 준 것과 같다. 우리는 믿음으로 받으면 된다. 이미 우리는 거룩한 분 그리스도깨 연결되었다. 견고하게 접붙여 졌다. 우리는 그분과 함깨 연합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분의 모든 풍성, 모든 것이 우리 속에 매일매일 공급되며 열매가 맺힌다. 아주 쉽다 힘들여 죄짓는 사람이 있는가 수고해서 죄짓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들여야 의를 행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담이 죄를 범해 우리로 힘들이지 않고 죄를 짓게 하는 것보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고 순종하심으로 우리로 의로운 행동을 하 게 하는 것이 더 쉽다. 노력해서 승리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동적으로 의, 사랑, 등등 성령님의 열매가 맺힌다. 하루 아침 에 이렇게 될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수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믿는 것이다. 산에서 도를 닦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은 일순간에 죄와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일순간에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일순간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잡지 못한다. 죄는 우리를 잡지 못한다. 율법은 우리를 속박하지 못한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 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님을 따를 때 우리가 그렇게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 을 성령님께서 이루신다. 그분은 율법을 주셨을 뿐 아니라 율법을 이루 시는 분이다. 율법과 은헤는 반대되는 말이며, 상대되는 말이다. 율 법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며, 은혜는 내가 할 필요 없이 주님이 우리 속에서 거저 해주시는 것이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 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열쇠는 생각이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 나니" . 어떻게 영을 좇아 행하는가 여기에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의 특징이 있다. 영을 좇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 을 좇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 문제는 생각에 있다. 생각이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면 그는 육신을 좇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면 그는 영을 좇는 사람이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영적인 대화라 할지라도 여전히 육신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자신 안에 있을 때 육신 안에 있게 된다. 자신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잘하고 잘못하는 것, 성공과 실패, 다 의미가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분의 영원한 경 륜, 계획, 구속, 목적, 그분의 지혜, 이러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 자 신에게서 나오라. 자신 안에 있는 한 구원받지 못한다. 당신의 생각 이 어디에 있는가 영을 좇는 것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며, 육신 을 좇는 것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망이냐 생명이냐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육신 에 생각을 둔 결과는 무엇인가 사망이다. 사망에는 특징이 있다. 답 답하고 불안하다. 사망은 공허한 것이다. 당신의 느낌이 이러하다면 이것은 당신이 육신을 좇고 있다는 강한 증거이다. 주를 위한 일, 하나님깨 속한 일이라고 다 생명에 속한 것은 아니다. 물론 죄를 짓는 것은 사망이다. 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의 생각 속에 사망, 우울, 불안, 근심, 초조, 조금함 등이 있다면 당신은 돌이켜야 한다. "주 여, 육신에서 돌이킵니다. 나를 정결케 하시고 씻어 주소서. 영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 안이기 때문이다. 영에 생각을 둔 사람의 특징은 살아 있는 느낌이 충만하디. 생기가 솟고, 기쁨과 만족과 안식이 충만하다. 영광스러움 과 존귀함과 안식이 충만하다. 영광스러움과 존귀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당신의 상태가 이렇다면 영을 좇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떠 나, 육신을 벗어나 영 안으로 들어가라. 생명과 평안이 넘쳐날 것이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