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법에서 해방된 사도 바울 (롬7:6-8:2)
본문
로마서 7장과 8장은 사도 바울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기 이전과 내주한 후에 실제적으로 경험한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 진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로마서 7장6절-8장2절은 성경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이며, 가장 핵심적인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연구한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이 부분이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요. 이 말씀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 접한 성도들 가운데서 거룩한 생활을 간절히 추구하며 지고한 신앙의 경지를 사모하는 성도들 이 경험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에는 인간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가장 깊은 죄문제가 경험적으로 해결되는 원리가 기록되어 있어요. 그 중에서 로마서 7장은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 때문에 항상 고민하는 경험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 먼저 중요시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증거하는 경험적 진리는 불신자였을 때나 초보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의 경험을 기록한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서 7장의 고민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보려고 최선을 다할 때, 죄 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경험적으로 깨달은 성도 즉 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출애굽하게 되면 빛과 어둠, 선과 악에 대하여 점점 폭넓게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선과 악, 빛과 어둠에 대한 지식을 경험적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은 곧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철저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내면적인 죄악의 세력이 얼마나 추악하고 강한지를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철 저하게 생활하고자 하지 않는 성도들은 로마서 7장의 말씀과 같이 내면적인 죄 때문에 심각하 게 고민하는 경험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의 경험과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과 8장을 통해서 증거한 경험적 진리를 연구해 보도록 하겠 습니다. 로마서 7:19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 이 흠이 없고 완전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바울 사도께서 원하는 선한 마음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악심이 자꾸만 마음 속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만을 가지고 생활하기를 원하는데,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같이 마음과 행실로서 완전한 사랑과 겸손과 충성과 절제 그리고 온유와 인내로서 생활하기를 원하는데, 항상 흠과 티가 많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고 절망했던 바울 사도의 괴로운 심정을 로마서 7장 에 기록한 것이지요. 이 말씀 중에서 '악'은 표면적인 죄악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악을 가리켜 말 합니다. 여기에서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의 말이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하여 죄가 나타나는 것, 즉 겉으로 범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가 철저하게 노력하면 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공자님이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 들은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갖추신 분들이었습니까 오늘날에도 각 분야에서 훌륭한 인격을 갖 추고 도덕적으로 뛰어난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 분들은 행실 가운데 표면적인 죄악을 쉽게 나 타내지 않음으로써 존경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인 행실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 면적인 죄를 나타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19절에 "원치 아 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 즉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내면적인 죄는 어느 때 나타날까요 억울한 일 을 당하거나, 애매한 말을 듣거나,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침을 뱉고 얼굴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을 때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분노나 미움, 혈기가 나타나게 됩니다. 음란한 잡지나 VTR, 영화 같은 것을 볼 때, 순간순간 마음 속에 여러가지 음란한 마음이 떠오르게 되지요. 또한 큰 자랑거리가 생기거나 무시를 당할 때는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경쟁자가 자기보다 모든 일이 잘 되고 높아질 때는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와같이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기 회가 생겼을 때 내면적인 죄가 나타나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자면 깨끗하게 정돈이 된 집안에 아이들이 개구장이같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온 집안의 물건들을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거나 온갖 더러운 쓰레기나 먼지 같은 것으로 더럽혀 놓았을 때, 마음속 으로도 성내지 않고 주님과 같이 온유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하는데도 순식간에 마음가운데 분노나 신경질이나 미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겉으로 행하는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악 때문에 고민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15절의 말씀을 보면 "나 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 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행한다고 표현한 부분 때문에 마치 행실로 나타나는 죄 로 인하여 고민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하였 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해 보면, 행실로 범하는 죄가 아니라 내면적인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요. 다시 말해서 이 말씀에 나타난 죄는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였으므로 "내 속" 즉 내 마음속에 나타난 죄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 면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해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내면적인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원죄 즉 죄악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에 나타난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 1서를 보면 "형제를 향하여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했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미움 즉 악심을 범죄한 것으로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구약시대의 율법은 주로 표면적인 죄 즉 행실로 범한 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우리를 괴롭히거나 애매한 말로 비방을 하거나 손해와 고통을 줄 때, 참고 견디다가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미움이나 분노 같은 악심이 나타났다면 비록 폭언이나 폭행이 없을지라도 그 악심자체를 살인죄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께서는 여 러가지 죄악 중에서 이기주의 즉 탐심이 강했기 때문에 "내 속에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고백 한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7가지 죄악성은 다 가지고 있지만 개인별로 어떤 죄악성은 강하고 어떤 죄악성은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7가지 죄악성중에서 아집성이 특별히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죄가 기회를 타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죄'는 마음속에 나타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 즉 근본적으로 영속에 뿌리박 혀 있는 죄악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죄악성이 육체와 영속에 뿌리박혀 있다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지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포학성이 강한 사람은 포학성이 나 타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마음속에 혈기가 나타나게 되는데, 포학성이 약한 사람은 포학성에 의하여 생기는 악심이나 악행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범 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질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죄를 크게 구분하 자면 영과 육체가운데 뿌리박힌 죄악성과, 마음가운데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 그리고 행실로 나타나는 표면적인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영속에 뿌리박힌 죄악성은 그리스도의 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을 때 제거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면적인 죄는 범죄하기 쉬운 기 회가 생길 때 영과 육체가운데 뿌리박혀 있던 죄악성이 자극되어 나타나는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죄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죄의 열매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와같이 죄 에 대하여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만 진리 전체를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내면적인 죄 바울 사도께서는 마음속에 나타난 탐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계명으로 말미암아 자신 의 그 탐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이 새겨지게 되면 성도들은 그 계명대로 생활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범죄하기 쉬운 기회 가 나타나게 되면 마음속에 내면적인 죄악 즉 악심이 생기는 것을 양심에 새겨진 계명 때문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 자 하면 내면적인 죄를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되지요.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랑 과 인내와 겸손을 실천하려고 결심했는데,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조건이 생길 때마다 순간순간 미움이나 분노나 음욕, 질투, 교만, 거짓과 같은 악심이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어 설명하자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음 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결심했는데, 벌거벗고 춤을 추는 여자를 보니까 원하지 않던 음욕이 마음 속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음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음 욕이 느껴지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시해야 할 것은 내면 적인 죄 때문에 고민하기 전에는 죄가 없었는데, 계명을 알게 됨으로써 죄가 생긴 것으로 착각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성도들이 예수님의 계명 즉 빛에 대한 말씀을 몰랐을 때는 마음속에 나 타나는 죄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 계명을 통하여 죄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계명 에 따라 철저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죄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계명을 통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혹은 무엇이 빛이고 어둠 인지를 알면 알수록, 그리고 그 계명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 로마서 7장의 고민은 더 욱 심하게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고민 제가 83년도에 성결교 신학교에 다니던 학생 한분에게 진리를 증거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신학생은 로마서 7장을 공부하던 중에 주장하기를, "원죄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마음속에 죄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신학생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내면적인 죄를 억제함으로써 표면적으로 죄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강조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아무리 신앙과 인격이 좋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 이었어요.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 신학생이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앞에서 고민했던 모 든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종교라고 할 수 있겠 습니까 사도 바울은 죄 짓기 쉬운 환경이 나타났을 때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악심까 지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롬 7:11-24에 내 면적인 죄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속으로 티끌만한 악심이라도 나타나지 않기를 소원하면서 정결한 생활을 추구하는 성도들만 성결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마른 자는 내게 오라"고 하시는 성경말씀과 같이 갈급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러한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면적 인 죄 때문에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그 해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죄은총과 성결 은총을 준비해 놓으셨을지라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시 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제부터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롬 7:9절을 보면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한 때" 즉 성도들이 의와 죄, 빛과 어둠에 대한 법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내가 살았었는데, "계명이 이르매" 즉 성도들의 양심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이 들어오고 그 계명대로 실천하고자 하는데 도리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마치 계명이 마음속에 죄악을 공급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살았다는 말은 무엇이며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을 정 확하게 깨달아야 생명과를 먹는 진리가 이해됩니다. "내가 살았더니나는 죽었도다"라는 말씀 은 선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절망에 빠 진 경험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의 경험을 참고로 하여 설명해보겠습니다. 대부분 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뜨거운 심정으로 깨닫게 될 때 원수까지도 쉽게 사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실천하려고 하지요. 이 때 성도들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계명을 실천해 보고 자 하는 마음을 "내가 살았더니"라는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의 선한 의지 즉 나의 선한 마음을 가리켜 말하는데, 성도들이 인내와 겸손, 또한 자비와 온유를 가지고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마음자세를 "내가 살았더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원수가 나타나 비방을 하거나 무시하고 폭행을 하면서 큰 손해를 끼치는 등 갑 자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순간 마음속에 교만이나 미움이나 분노가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티 끌만한 미움이나 분노 혹은 교만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그 원수를 사랑하고자 하는데, 선한 마음만 가지고 생활하고자 하는 소원과는 반대로 미움이나 교만이나 분노 같은 죄가 마음을 순 간적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나는 죽었도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하기 쉬운 그 순간에 말과 행동으로는 범죄하지 않을 수 있어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정확하게 해석되어야만 로마서 8장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님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보도록 하지 요. 유교의 경전 논어에는 공자님의 사상과 교훈이 담겨져 있는데, 이조시대에는 논어에 기록된 유교사상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죄악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공자님의 교훈 이 너무나 엄격하여 온전하게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에 대한 예화들 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님의 가족들이 입고 살던 옷을 도둑 맞은 적이 있었는데, 공자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 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맷방석을 가져다가 가족들의 숫자대로 구멍을 뚫어서 그 구멍으로 목만 내놓고 생활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출해야 할 경우에는 한벌 옷을 가지고 번갈아 가며 입었다고 하지요. 이와같이 도덕군자였던 공자님께서 임종할 때 탄식하시기를 "내가 70평 생 도를 닦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쳤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은 없애버리지 못했다"고 하셨답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군자였는데도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탐심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법에 대하여 깨달은 사도 바울 사도 바울께서 18절에 "행하는 능력은 없노라"고 하신 말씀도 공자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을 없애버릴 능력은 없다는 것을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1 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 말씀에서 '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지금까 지 증거했던 경험적 진리와 전부 연관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 길 때마다 마음에 나타나는 죄의 법을 가리켜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자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는 것, 음란한 영화나 책이나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 음욕이 나타나는 것, 밉살스러운 사람이 나타나서 얄미운 짓을 할 때 마음속에 미 움이 느껴지는 것 등, 이러한 악심이 나타나지 않기를 언제나 소원하는데도 마음속에 나타나는 그 악심이 바로 '죄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악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칙과 같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법칙'이라는 말은 항상 똑같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원리를 설명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뉴톤이 발견한 만유인 력의 법칙은 공기보다 더 무거운 물체를 공중에서 놓게 되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죄를 범하기 쉬운 환경이 생길 때마다 법칙과 같이 죄 즉 악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법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 자면 죄악성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롬7장에 기록한 죄라는 말을 해석할 때 그 것이 자범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하는지, 죄악성을 가리 켜 말하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죄의 법은 바로 죄악성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죄악성의 능력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죄가 능력이 아니라면 악심을 품지 않으려 고 노력할 때마다 순간적으로라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 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고 항상 노력을 했는데도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꼭 나타나기 때문에 '죄의 법' 즉 죄의 법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죄의 법칙을 좀 더 구체적으 로 표현한다면 교만의 법칙, 분노의 법칙, 미움의 법칙, 짜증의 법칙, 음란의 법칙 등등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죄악성 중에서도 강한 죄악성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 야 하지요. 어떤 사람이 화는 쉽게 내지 않는데 질투성이 강하다면,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잘되거나 더 이쁘거나 목소리가 아름답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교만성이 강한 사람은 자기와 경쟁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들을 때 기 분이 나빠지거나 헐뜯는 말을 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죄의 법칙이 나타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죄악성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성결은총을 받기전에는 이러 한 죄의 법칙을 자신의 마음 가운데서 언제나 발견하면서 고민해 왔던 것입니다. 로마서 7장22 절과 23절을 보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도 즉 계 명을 따르고자 하는데, 순간순간 죄의 법 즉 죄의 법칙이 나타나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적 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방해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마음의 법'은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 를 말하는데, 그 의지가 순간순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히더라는 것입니다. 죄의 법 때문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그런데 신자든 불신자든 죄의 법칙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신자라고 할지라도 자기 아들이 서울대나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혹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에 당선되었을 때는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감이 꽉 차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는 누가 비난을 하 거나 욕설을 할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악심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오랫동안 고통을 주던 질병이 고침받거나 성령님충만함을 받거나 특 별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악심 즉 죄의 법칙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에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어떤 성도가 포학성이 강해서 원 망과 불평을 잘하는 부인에게 분노나 미움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성도님은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 십시오. 특별히 원망과 불평을 잘하는 아내를 향해서 미움을 품거나 분노를 나타내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중에 뜨거운 불이 내리면서 방언이 터지는 등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님은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앞으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처음 몇 일 동안은 부인이 아무리 불평을 하고 원망하여도 은혜받은 기쁨이 있기 때문에 잘 인내하였습니다. 그러나 참고 참다가 나중에는 과거보다 더 심한 분노와 짜증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범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죄의 법칙 에서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을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절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사망의 몸이란 죄악성이 뿌리박혀서 마음 속에 죄의 법칙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게 한 생명의 성령님의 법 이와 같이 절망적인 탄식을 하다가 사도 바울은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게 하시는 큰 은총이 있다는 것을 롬 7:25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문제 즉 병이나 사업, 자녀문제등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극심하게 고민하던 사도 바울의 죄 문제 즉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증 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 사도로 하여금 오랜 세월동안 고민하고 탄식하게 했던 죄 의 법칙에 대한 문제가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결교 신학교에 다니던 신학생이 사람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내면적 인 죄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웨 슬레신학에서는 완전성화 즉 성결은총이라고 하는데 곧 죄의 뿌리가 제거되는 체험이라고 증거 하고 있어요. 이와같이 예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는 말씀이 로마서 8장1절-2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 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중에서 죄와 사망의 법을 구분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 겠습니다. 먼저 죄의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을 가 리켜 말합니다. 또한 사망의 법은 육체의 죽음이 법칙과 같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망의 법은 육체 가운데 죄악성의 뿌리가 박혀 있고 마음 가운데 죄의 법칙이 나타나도록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죄의 법칙이 나타 나기 때문에 육체는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칙이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롬 8:2를 보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마음 가운데 나타날 때 비로소 죄의 법에 서 해방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법에서 해방되게 하신 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면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님의 법 칙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때 비로소 죄의 법칙에서 근본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 2:7을 보면,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한 성도들을 생명과를 먹은 성도들 즉 이기는 자들이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이치를 볼 때, 롬8장은 생명과를 먹은 성도들에 대한 경험적 진리이 고, 롬7장6절-24절에 기록된 말씀은 아직 생명과를 먹지 못한 성도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경험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음속에 죄의 법칙이 나타나지 않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휴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는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롬7:25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롬7장과 8장에 기록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장2절에 나오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속에 내주하셔야만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사 실을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생명의 법칙은 생명의 초인간적인 능력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데, 성도들은 생명과를 먹는 순간부터 영원토록 그 능력의 법칙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5절에 "내세의 능력을 맛보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능력'은 병을 고치거나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거나 환상을 보고, 입신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명의 법 칙 즉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법칙과 비교하면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죄의 법이 능력으로 나타 나는 법칙이기 때문에 생명의 성령님의 법도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성도 즉 생명과를 먹은 성도는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휴거될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레 선생님은 성결은총에 대하여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휴거될 성도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 다음에 나오는 예화는 성결은총을 받은 어느 성도님이 1983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로마서 7장 과 8장을 중심으로 휴거되는 성도의 자격에 대하여 증거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권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는데, 그분은 어느 큰 교회의 교인으로서 J목사님이 그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충성스럽게 봉사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께서는 대화를 하는 가운데 롬7장 과 8장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매우 안타까워 하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권사님께서 안 타깝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1980년대 초에 J목사님을 이단시하는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때 그 교회의 부목사님 한 분이 그 책을 읽어보고 J목사님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J목사님께서 그 책을 받아서 읽어보니 자기를 이단시 하는 내용인데,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얼마전까지 같은 교단 내에서 함께 일하던 교역자들이 J 목사님을 이단시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합세하여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책의 내용을 보니 자신의 부족한 점도 깨달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 과장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J목사님께서는 몹시 분노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이런 사람들이 이런 책을 쓰도록 내버려두셨습니까"라고 기도하 였답니다. 이와같이 한동안 항의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 "너는 강단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지 않았느냐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느냐"라는 영감이 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J목사님은 "하나님, 제가 어떻게 그 나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 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 목사님 자신이 설교하실 때 "여러분, 우리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했던 것이 깨달아지면서 진지한 회개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이시여, 제가 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되기를 원합니다"라 고 기도를 드리는데,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찼던 가슴이 풀어지면서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 답니다. 그때 원수같이 느껴지던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을 이단시하는 사람들 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향하여 욕하지도 말고 미워하거나 분노하지도 맙시다"라 고 열변을 토하셨는데, 그때 그 교회의 성도들은 큰 감동을 받고 J목사님을 더욱 더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단시하던 교계의 분위기 때문에 타교회의 교역자들이나 교인들로 부터는 많은 비난공격을 받고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그 교회 안에서는 대부분의 교인들로부터 더욱 더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께서 J목사님에 대하여 안타 까워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J목사님께서 그 교회의 교인들 대부분이 휴거될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 목사님 자신도 휴거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설교를 하셨는데, 아직도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지 않은 분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안타까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권 사님은 J목사님께서 자신을 이단시하면서 괴롭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미움 과 분노를 나타내는 모습을 볼 때, 아직 휴거될 자격을 갖춘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 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방송설교를 통해서 가끔 시험을 당하는 중에 혈기를 내고 회개하셨 다는 간증을 듣게 되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J목사님은 매우 훌륭한 신앙인격을 가지고 많은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면 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아직 롬8장 경험에 들어간 성도는 아닌 것입니다. 다 시 말해서 그 J목사님은 마음가운데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이 나타나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이란 범죄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라도 성령님의 열매 즉 빛의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의 법칙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즉 하나님의 영속에는 신성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랑과 화평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 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겸손과 정직과 용기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법칙입니다. 또한 죄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법칙도 능력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침투하고자 하는 죄의 법칙 을 막아줌으로써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8장2절을 경험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나타날지라도 범죄하지 않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롬7장과 8장에 기록한 사도 바울의 경험적 진리를 통하여 성도들의 신앙은 마음속 에 나타나는 죄의 법 때문에 고민하는 과정이 있는가 하면,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풍성한 자유 를 누리며 빛의 열매를 맺는 높은 경지의 신앙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서 성도들의 영적성장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교육과 훈련과정을 통해서 점 진적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완전히 닮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다메섹 도상에서 발현하신 예수님을 눈부신 빛 가운데서 보았고, 성령님충만이나 환 상, 입신, 방언체험도 풍성하게 하셨으며, 수많은 신비체험과 성령님의 은사체험들을 하면서 누구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깨닫고 전도하였으며,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할 정도로 하나님의 큰 신임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어떠한 체험보다도 하나님 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함으로써 죄의 법에서 해방되는 체험이야말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신령한 복이라고 강조하며 증거하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롬8 장 경험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는 가운데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통 해서 가장 큰 은혜를 받는 목표와 방향과 가치관을 알게 된 여러분, 높은 경지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면서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지름길로 달려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의 말씀은 밝은빛 기독신보 8월호에 실렸던 진리증거면입니다. 밝은빛 기독신보는 하나님의 거룩 한 빛을 밝게 증거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신문입니다. 더 많은 도움을 받고자 하는 분은 밝은빛 기독신보 관리부(전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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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철 저하게 생활하고자 하지 않는 성도들은 로마서 7장의 말씀과 같이 내면적인 죄 때문에 심각하 게 고민하는 경험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의 경험과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과 8장을 통해서 증거한 경험적 진리를 연구해 보도록 하겠 습니다. 로마서 7:19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 이 흠이 없고 완전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바울 사도께서 원하는 선한 마음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악심이 자꾸만 마음 속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만을 가지고 생활하기를 원하는데,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같이 마음과 행실로서 완전한 사랑과 겸손과 충성과 절제 그리고 온유와 인내로서 생활하기를 원하는데, 항상 흠과 티가 많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고 절망했던 바울 사도의 괴로운 심정을 로마서 7장 에 기록한 것이지요. 이 말씀 중에서 '악'은 표면적인 죄악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악을 가리켜 말 합니다. 여기에서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의 말이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하여 죄가 나타나는 것, 즉 겉으로 범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가 철저하게 노력하면 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공자님이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 들은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갖추신 분들이었습니까 오늘날에도 각 분야에서 훌륭한 인격을 갖 추고 도덕적으로 뛰어난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 분들은 행실 가운데 표면적인 죄악을 쉽게 나 타내지 않음으로써 존경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인 행실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 면적인 죄를 나타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19절에 "원치 아 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 즉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내면적인 죄는 어느 때 나타날까요 억울한 일 을 당하거나, 애매한 말을 듣거나,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침을 뱉고 얼굴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을 때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분노나 미움, 혈기가 나타나게 됩니다. 음란한 잡지나 VTR, 영화 같은 것을 볼 때, 순간순간 마음 속에 여러가지 음란한 마음이 떠오르게 되지요. 또한 큰 자랑거리가 생기거나 무시를 당할 때는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경쟁자가 자기보다 모든 일이 잘 되고 높아질 때는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와같이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기 회가 생겼을 때 내면적인 죄가 나타나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자면 깨끗하게 정돈이 된 집안에 아이들이 개구장이같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온 집안의 물건들을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거나 온갖 더러운 쓰레기나 먼지 같은 것으로 더럽혀 놓았을 때, 마음속 으로도 성내지 않고 주님과 같이 온유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하는데도 순식간에 마음가운데 분노나 신경질이나 미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겉으로 행하는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악 때문에 고민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15절의 말씀을 보면 "나 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 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행한다고 표현한 부분 때문에 마치 행실로 나타나는 죄 로 인하여 고민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하였 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해 보면, 행실로 범하는 죄가 아니라 내면적인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요. 다시 말해서 이 말씀에 나타난 죄는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였으므로 "내 속" 즉 내 마음속에 나타난 죄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 면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해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내면적인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원죄 즉 죄악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에 나타난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 1서를 보면 "형제를 향하여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했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미움 즉 악심을 범죄한 것으로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구약시대의 율법은 주로 표면적인 죄 즉 행실로 범한 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우리를 괴롭히거나 애매한 말로 비방을 하거나 손해와 고통을 줄 때, 참고 견디다가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미움이나 분노 같은 악심이 나타났다면 비록 폭언이나 폭행이 없을지라도 그 악심자체를 살인죄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께서는 여 러가지 죄악 중에서 이기주의 즉 탐심이 강했기 때문에 "내 속에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고백 한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7가지 죄악성은 다 가지고 있지만 개인별로 어떤 죄악성은 강하고 어떤 죄악성은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7가지 죄악성중에서 아집성이 특별히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죄가 기회를 타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죄'는 마음속에 나타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 즉 근본적으로 영속에 뿌리박 혀 있는 죄악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죄악성이 육체와 영속에 뿌리박혀 있다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지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포학성이 강한 사람은 포학성이 나 타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마음속에 혈기가 나타나게 되는데, 포학성이 약한 사람은 포학성에 의하여 생기는 악심이나 악행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범 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질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죄를 크게 구분하 자면 영과 육체가운데 뿌리박힌 죄악성과, 마음가운데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 그리고 행실로 나타나는 표면적인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영속에 뿌리박힌 죄악성은 그리스도의 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을 때 제거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면적인 죄는 범죄하기 쉬운 기 회가 생길 때 영과 육체가운데 뿌리박혀 있던 죄악성이 자극되어 나타나는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죄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죄의 열매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와같이 죄 에 대하여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만 진리 전체를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내면적인 죄 바울 사도께서는 마음속에 나타난 탐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계명으로 말미암아 자신 의 그 탐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이 새겨지게 되면 성도들은 그 계명대로 생활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범죄하기 쉬운 기회 가 나타나게 되면 마음속에 내면적인 죄악 즉 악심이 생기는 것을 양심에 새겨진 계명 때문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 자 하면 내면적인 죄를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되지요.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랑 과 인내와 겸손을 실천하려고 결심했는데,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조건이 생길 때마다 순간순간 미움이나 분노나 음욕, 질투, 교만, 거짓과 같은 악심이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어 설명하자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음 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결심했는데, 벌거벗고 춤을 추는 여자를 보니까 원하지 않던 음욕이 마음 속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음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음 욕이 느껴지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시해야 할 것은 내면 적인 죄 때문에 고민하기 전에는 죄가 없었는데, 계명을 알게 됨으로써 죄가 생긴 것으로 착각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성도들이 예수님의 계명 즉 빛에 대한 말씀을 몰랐을 때는 마음속에 나 타나는 죄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 계명을 통하여 죄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계명 에 따라 철저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죄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계명을 통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혹은 무엇이 빛이고 어둠 인지를 알면 알수록, 그리고 그 계명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 로마서 7장의 고민은 더 욱 심하게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고민 제가 83년도에 성결교 신학교에 다니던 학생 한분에게 진리를 증거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신학생은 로마서 7장을 공부하던 중에 주장하기를, "원죄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마음속에 죄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신학생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내면적인 죄를 억제함으로써 표면적으로 죄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강조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아무리 신앙과 인격이 좋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 이었어요.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 신학생이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앞에서 고민했던 모 든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종교라고 할 수 있겠 습니까 사도 바울은 죄 짓기 쉬운 환경이 나타났을 때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악심까 지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롬 7:11-24에 내 면적인 죄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속으로 티끌만한 악심이라도 나타나지 않기를 소원하면서 정결한 생활을 추구하는 성도들만 성결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마른 자는 내게 오라"고 하시는 성경말씀과 같이 갈급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러한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면적 인 죄 때문에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그 해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죄은총과 성결 은총을 준비해 놓으셨을지라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시 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제부터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롬 7:9절을 보면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한 때" 즉 성도들이 의와 죄, 빛과 어둠에 대한 법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내가 살았었는데, "계명이 이르매" 즉 성도들의 양심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이 들어오고 그 계명대로 실천하고자 하는데 도리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마치 계명이 마음속에 죄악을 공급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살았다는 말은 무엇이며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을 정 확하게 깨달아야 생명과를 먹는 진리가 이해됩니다. "내가 살았더니나는 죽었도다"라는 말씀 은 선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절망에 빠 진 경험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의 경험을 참고로 하여 설명해보겠습니다. 대부분 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뜨거운 심정으로 깨닫게 될 때 원수까지도 쉽게 사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실천하려고 하지요. 이 때 성도들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계명을 실천해 보고 자 하는 마음을 "내가 살았더니"라는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의 선한 의지 즉 나의 선한 마음을 가리켜 말하는데, 성도들이 인내와 겸손, 또한 자비와 온유를 가지고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마음자세를 "내가 살았더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원수가 나타나 비방을 하거나 무시하고 폭행을 하면서 큰 손해를 끼치는 등 갑 자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순간 마음속에 교만이나 미움이나 분노가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티 끌만한 미움이나 분노 혹은 교만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그 원수를 사랑하고자 하는데, 선한 마음만 가지고 생활하고자 하는 소원과는 반대로 미움이나 교만이나 분노 같은 죄가 마음을 순 간적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나는 죽었도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하기 쉬운 그 순간에 말과 행동으로는 범죄하지 않을 수 있어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정확하게 해석되어야만 로마서 8장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님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보도록 하지 요. 유교의 경전 논어에는 공자님의 사상과 교훈이 담겨져 있는데, 이조시대에는 논어에 기록된 유교사상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죄악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공자님의 교훈 이 너무나 엄격하여 온전하게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에 대한 예화들 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님의 가족들이 입고 살던 옷을 도둑 맞은 적이 있었는데, 공자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 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맷방석을 가져다가 가족들의 숫자대로 구멍을 뚫어서 그 구멍으로 목만 내놓고 생활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출해야 할 경우에는 한벌 옷을 가지고 번갈아 가며 입었다고 하지요. 이와같이 도덕군자였던 공자님께서 임종할 때 탄식하시기를 "내가 70평 생 도를 닦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쳤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은 없애버리지 못했다"고 하셨답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군자였는데도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탐심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법에 대하여 깨달은 사도 바울 사도 바울께서 18절에 "행하는 능력은 없노라"고 하신 말씀도 공자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을 없애버릴 능력은 없다는 것을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1 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 말씀에서 '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지금까 지 증거했던 경험적 진리와 전부 연관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 길 때마다 마음에 나타나는 죄의 법을 가리켜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자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는 것, 음란한 영화나 책이나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 음욕이 나타나는 것, 밉살스러운 사람이 나타나서 얄미운 짓을 할 때 마음속에 미 움이 느껴지는 것 등, 이러한 악심이 나타나지 않기를 언제나 소원하는데도 마음속에 나타나는 그 악심이 바로 '죄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악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칙과 같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법칙'이라는 말은 항상 똑같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원리를 설명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뉴톤이 발견한 만유인 력의 법칙은 공기보다 더 무거운 물체를 공중에서 놓게 되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죄를 범하기 쉬운 환경이 생길 때마다 법칙과 같이 죄 즉 악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법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 자면 죄악성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롬7장에 기록한 죄라는 말을 해석할 때 그 것이 자범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하는지, 죄악성을 가리 켜 말하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죄의 법은 바로 죄악성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죄악성의 능력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죄가 능력이 아니라면 악심을 품지 않으려 고 노력할 때마다 순간적으로라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 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고 항상 노력을 했는데도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꼭 나타나기 때문에 '죄의 법' 즉 죄의 법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죄의 법칙을 좀 더 구체적으 로 표현한다면 교만의 법칙, 분노의 법칙, 미움의 법칙, 짜증의 법칙, 음란의 법칙 등등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죄악성 중에서도 강한 죄악성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 야 하지요. 어떤 사람이 화는 쉽게 내지 않는데 질투성이 강하다면,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잘되거나 더 이쁘거나 목소리가 아름답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교만성이 강한 사람은 자기와 경쟁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들을 때 기 분이 나빠지거나 헐뜯는 말을 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죄의 법칙이 나타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죄악성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성결은총을 받기전에는 이러 한 죄의 법칙을 자신의 마음 가운데서 언제나 발견하면서 고민해 왔던 것입니다. 로마서 7장22 절과 23절을 보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도 즉 계 명을 따르고자 하는데, 순간순간 죄의 법 즉 죄의 법칙이 나타나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적 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방해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마음의 법'은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 를 말하는데, 그 의지가 순간순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히더라는 것입니다. 죄의 법 때문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그런데 신자든 불신자든 죄의 법칙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신자라고 할지라도 자기 아들이 서울대나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혹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에 당선되었을 때는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감이 꽉 차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는 누가 비난을 하 거나 욕설을 할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악심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오랫동안 고통을 주던 질병이 고침받거나 성령님충만함을 받거나 특 별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악심 즉 죄의 법칙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에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어떤 성도가 포학성이 강해서 원 망과 불평을 잘하는 부인에게 분노나 미움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성도님은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 십시오. 특별히 원망과 불평을 잘하는 아내를 향해서 미움을 품거나 분노를 나타내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중에 뜨거운 불이 내리면서 방언이 터지는 등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님은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앞으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처음 몇 일 동안은 부인이 아무리 불평을 하고 원망하여도 은혜받은 기쁨이 있기 때문에 잘 인내하였습니다. 그러나 참고 참다가 나중에는 과거보다 더 심한 분노와 짜증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범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죄의 법칙 에서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을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절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사망의 몸이란 죄악성이 뿌리박혀서 마음 속에 죄의 법칙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게 한 생명의 성령님의 법 이와 같이 절망적인 탄식을 하다가 사도 바울은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게 하시는 큰 은총이 있다는 것을 롬 7:25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문제 즉 병이나 사업, 자녀문제등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극심하게 고민하던 사도 바울의 죄 문제 즉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증 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 사도로 하여금 오랜 세월동안 고민하고 탄식하게 했던 죄 의 법칙에 대한 문제가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결교 신학교에 다니던 신학생이 사람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내면적 인 죄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웨 슬레신학에서는 완전성화 즉 성결은총이라고 하는데 곧 죄의 뿌리가 제거되는 체험이라고 증거 하고 있어요. 이와같이 예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는 말씀이 로마서 8장1절-2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 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중에서 죄와 사망의 법을 구분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 겠습니다. 먼저 죄의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을 가 리켜 말합니다. 또한 사망의 법은 육체의 죽음이 법칙과 같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망의 법은 육체 가운데 죄악성의 뿌리가 박혀 있고 마음 가운데 죄의 법칙이 나타나도록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죄의 법칙이 나타 나기 때문에 육체는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칙이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롬 8:2를 보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마음 가운데 나타날 때 비로소 죄의 법에 서 해방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법에서 해방되게 하신 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면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님의 법 칙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때 비로소 죄의 법칙에서 근본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 2:7을 보면,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한 성도들을 생명과를 먹은 성도들 즉 이기는 자들이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이치를 볼 때, 롬8장은 생명과를 먹은 성도들에 대한 경험적 진리이 고, 롬7장6절-24절에 기록된 말씀은 아직 생명과를 먹지 못한 성도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경험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음속에 죄의 법칙이 나타나지 않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휴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는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롬7:25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롬7장과 8장에 기록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장2절에 나오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속에 내주하셔야만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사 실을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생명의 법칙은 생명의 초인간적인 능력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데, 성도들은 생명과를 먹는 순간부터 영원토록 그 능력의 법칙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5절에 "내세의 능력을 맛보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능력'은 병을 고치거나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거나 환상을 보고, 입신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명의 법 칙 즉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법칙과 비교하면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죄의 법이 능력으로 나타 나는 법칙이기 때문에 생명의 성령님의 법도 성령님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성도 즉 생명과를 먹은 성도는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휴거될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레 선생님은 성결은총에 대하여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휴거될 성도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 다음에 나오는 예화는 성결은총을 받은 어느 성도님이 1983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로마서 7장 과 8장을 중심으로 휴거되는 성도의 자격에 대하여 증거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권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는데, 그분은 어느 큰 교회의 교인으로서 J목사님이 그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충성스럽게 봉사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께서는 대화를 하는 가운데 롬7장 과 8장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매우 안타까워 하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권사님께서 안 타깝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1980년대 초에 J목사님을 이단시하는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때 그 교회의 부목사님 한 분이 그 책을 읽어보고 J목사님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J목사님께서 그 책을 받아서 읽어보니 자기를 이단시 하는 내용인데,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얼마전까지 같은 교단 내에서 함께 일하던 교역자들이 J 목사님을 이단시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합세하여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책의 내용을 보니 자신의 부족한 점도 깨달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 과장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J목사님께서는 몹시 분노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이런 사람들이 이런 책을 쓰도록 내버려두셨습니까"라고 기도하 였답니다. 이와같이 한동안 항의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 "너는 강단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지 않았느냐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느냐"라는 영감이 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J목사님은 "하나님, 제가 어떻게 그 나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 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 목사님 자신이 설교하실 때 "여러분, 우리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했던 것이 깨달아지면서 진지한 회개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이시여, 제가 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되기를 원합니다"라 고 기도를 드리는데,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찼던 가슴이 풀어지면서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 답니다. 그때 원수같이 느껴지던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을 이단시하는 사람들 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향하여 욕하지도 말고 미워하거나 분노하지도 맙시다"라 고 열변을 토하셨는데, 그때 그 교회의 성도들은 큰 감동을 받고 J목사님을 더욱 더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단시하던 교계의 분위기 때문에 타교회의 교역자들이나 교인들로 부터는 많은 비난공격을 받고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그 교회 안에서는 대부분의 교인들로부터 더욱 더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께서 J목사님에 대하여 안타 까워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J목사님께서 그 교회의 교인들 대부분이 휴거될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 목사님 자신도 휴거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설교를 하셨는데, 아직도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지 않은 분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안타까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권 사님은 J목사님께서 자신을 이단시하면서 괴롭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미움 과 분노를 나타내는 모습을 볼 때, 아직 휴거될 자격을 갖춘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 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방송설교를 통해서 가끔 시험을 당하는 중에 혈기를 내고 회개하셨 다는 간증을 듣게 되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J목사님은 매우 훌륭한 신앙인격을 가지고 많은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면 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아직 롬8장 경험에 들어간 성도는 아닌 것입니다. 다 시 말해서 그 J목사님은 마음가운데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이 나타나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칙이란 범죄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라도 성령님의 열매 즉 빛의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의 법칙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즉 하나님의 영속에는 신성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랑과 화평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 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겸손과 정직과 용기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법칙입니다. 또한 죄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법칙도 능력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침투하고자 하는 죄의 법칙 을 막아줌으로써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8장2절을 경험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나타날지라도 범죄하지 않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롬7장과 8장에 기록한 사도 바울의 경험적 진리를 통하여 성도들의 신앙은 마음속 에 나타나는 죄의 법 때문에 고민하는 과정이 있는가 하면,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풍성한 자유 를 누리며 빛의 열매를 맺는 높은 경지의 신앙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서 성도들의 영적성장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교육과 훈련과정을 통해서 점 진적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완전히 닮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다메섹 도상에서 발현하신 예수님을 눈부신 빛 가운데서 보았고, 성령님충만이나 환 상, 입신, 방언체험도 풍성하게 하셨으며, 수많은 신비체험과 성령님의 은사체험들을 하면서 누구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깨닫고 전도하였으며,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할 정도로 하나님의 큰 신임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어떠한 체험보다도 하나님 의 생명이 영속에 내주함으로써 죄의 법에서 해방되는 체험이야말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신령한 복이라고 강조하며 증거하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롬8 장 경험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는 가운데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통 해서 가장 큰 은혜를 받는 목표와 방향과 가치관을 알게 된 여러분, 높은 경지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면서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지름길로 달려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의 말씀은 밝은빛 기독신보 8월호에 실렸던 진리증거면입니다. 밝은빛 기독신보는 하나님의 거룩 한 빛을 밝게 증거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신문입니다. 더 많은 도움을 받고자 하는 분은 밝은빛 기독신보 관리부(전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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