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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된 생명 (롬6:1-11)

본문

하나님은 광대무변한 분이십다. 그의 지혜는 측량할 길이 없고, 그의 능력은 끝 이 없으시고, 그의 창조의 역사는 신기하고 황홀합니다. 그래서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볼 때에는 완전하게 이해하기 보다는 오해 하는 경 우가 많습니다.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그 것이 하나님의 성품인양 생각하고, 어는 한쪽만을 바라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모습인양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시다.는 말은 맡습니까 예 맞습니다. 사랑인 하나님이 왜 '죄'를 짓도록 인간을 버려 두셨습니까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셔서 아담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셨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들을 지옥에 보낼수 있습니까 지옥은 없습니다.이 런 생각들을 가질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강조하다보면 어떤 오해 에 빠집니까 행함 즉 순종을 등한히 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5장21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말씀 을 배울 때에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것참 좋은 말씀이다. 내가 듣기 원하던 바로 생수와 같은 말씀이구나. 이런 놀라운 말씀이 성경에 있다니,얼마나 귀한 일인가 이것도 오해의 하나님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니까 이제는 죄를 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고 마구 방탕한 생활에 빠지고,무 질서 한 생활을 하면서도 "은혜를 더 받기 위한 것인데 어떠냐"는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대해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은혜의 절대성과 은혜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보니까 논리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 입니다. 방종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처럼 받아들일수도 있습니다. 사랑엔 언제나 이런 헛점이 있고 맹점이 있습니다. 사랑은 가장 위대합니다만,때로는 사랑처럼 맹목적이고,애매하고,맹랑한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라고 말해 버리면 속수무책입니다. 유럽에서는 길거리에서 껴안고 입맞추는 일듸을 흔히 본다고 합니다.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무엇을 해도 괜챦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도 일종 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의 확대해석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계속 용서하게 되면 무질서를 낳는 것 같고,죄도 묵인 하면 범죄의 가능성을 도와주는 측면이 있습니다.죄는 즉시즉시 벌을 해야지 용서 가 지나치면 죄의 관영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취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균형감각입니다. 어린아들은 좋으면 그것이 다입니다. 좋은 사람이다고 생각하면 모든것을 그렇 게 믿어버리는 것이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좋다는 것은 그 때의 상황에서,또는 그일에 있어서,어떤 직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입니다. 우리가 이런 균형있는 생각을 가지고 성서를 대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바 라볼수 있는 것보다 더 깊고,넓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편협해지면 편협해질수 록 그 만큼 성서를 좁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단들의 잘못이 바로 이런것입니다. 성서를 자기들의 주관에 딱 못박아 놓고 그것만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생각으로 죄를 더 많이 지으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체하지 않고 준엄하게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말합니다. 거한다는 말 은 죄를 계속해서 죄를 짓는 다는 말이고, 죄를 끊지 못한다는 말이요,회개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단호합니다.그럴수 없니라. 하나님은 죄 에 대해서 종종 이렇게 단호합니다. 말도하지 말라.말할 필요도 없다.묻지도 말라는 뜻입니다.설명이 무엇이 필요하냐 죄에 대해서 오해하고 악용하는 사람을 향 해서는 이렇게 강경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어디있느냐 2절에 보면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라는 말이있습니다. 즉 죽은 우리가 어떻 게 죄를 지을수 있느냐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의 죽음은 과거에 죽었던 사건을 말합니다.한번 죽은 것으로 끝난 것을 말합니다. 매일 내가 죽어지내야지 하는 죽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언제 죽었느냐 11절에 보면 이와같이 이것 때문에 우리가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죽었고, 이것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10절에 보면 그의 죽으심에 .죽었고,그의 .살으심에 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실 때에 나도 죽었고,예수님이 살으셨을 때에 나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죄가 왕노릇하는 영역으로 들어 오셨다는다는 의미입니다. 여자에게서 났습니다. 죄의 지배아래 나셨다는 것입니다.율법 아래 매이셨습니다. 즉 율법의 권세가 미치는 곳에 오셨습니다. 그는 천사보다 못 했습니다.즉 죄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셨고, 죄인처럼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고, 죄인처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그의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죄인처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모두가 죄의 통치의 영향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죄인처럼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단번의 죽음입니다.한번 죽음으로 끝난 죽음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은 죄와의 관계에서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영역에서 벗어났고, 죄의 고통이 끝났고,더 이상 죄에 끌려 다니지 않았습니다.죄의 영역에서 자유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랬다면 우리에게 적용할 때, 이와같이 나도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4절에 보면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성령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행2장24절에 보면 사망에게 예수님은 매여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죽음이 아 무리 그를 붙들어 놓을려고 발악을 했지만, 돌을 가지고 입구를 막고,인봉하고.파 수군을 세우고, 사람들을 매수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밀치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께 대하여 살아 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절 .다시는 죽지 않으신다.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제는 다시는 절대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예수님도 가지고 계셨던 영광을 다시 찾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절대적으로 죽으시지 않으십니다. 요17장5절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 지금도 아버지와 누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을 부활을 통해서 성취하셨습니다. 의의 영역에 이르신 것입니다. 심판의 영역에 이른 것입니다. 계 1:18절에 보면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서 음부와 사망의 열쇠를 가졌다." 고 했습니다. 생명이 왕노릇하는 의의 나라에서 심판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 예수님의 부활이 미래의 일이 아닌것처럼 우리의 사는 것도 이미 과거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죽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것도 아닙니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일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와같이 라는 사건이 나에게 해당할수 있는가 11절 중간에 ,,,,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이것은 바울 신학의 중요한 단어입니다. 164-200번 정도 바울서신에 쓰였습니다.제일 깊은 의미를 담고 있고, 바울 사상을 전부포함 하는 한마디의 말입니다. 3-9절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연합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와 우리가 한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하면 세례를 받은 때부터입니다. 세례는 "잠근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목욕탕에서 완전히 잠기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요단강 물을 떠서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속에 잠기는 순간에 내가 완전히 죽어지는 것을 말합니다.그리고 나왔을 때 다시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을 때 무엇이 죽습니까 본문 6절에 "옛사람"이라고 했습니다.또 "죄의 종노릇하는 나"입니다. 옛사람은 예수를 알기 전의 나를 말합니다, 죄된 나는 갈라디아서5:24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정과 육과 욕심으 못박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은자는 욕심이 없습니다.세상적인 욕심이 있을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대학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축하객들과 악수를 나누며 울고 있습니다. 교수가 찾아가서 "왜 좋은 날 우느냐"고 물었습니다."이제 나는 죽었습니다. 오늘이 나의 청춘의 매장식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세례란 옛사람이 완전히 죽고,그리스도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벌 써 죽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앞으로 죽을 것이 아니라,이미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기쁨도 슬픔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불만과 불평도 없습니다. 6장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주었으면,또한 그와 함께 살 줄 을 믿노니"라고 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자원적인 죽음입니다. 죽는다가 아니라 죽었다입니다. 죽어져서 죽는 것은 그냥 죽음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스스로 죽이는 사람은 바로 사는 사람입니다. 죽어져서 죽으면 심판입니다.그러나 죽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것은 신앙 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이 나의 잘못을 비판하면 그것은 심판입니다,그러나 내가 나를 심판하고 드러내면 그것은 회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죽일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죽여야 그리스도께서 부활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부활을 보증 받은 죽음입니다. 8절 끝에 가서 살줄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다시 정리하면
1.그리스도와 함게 죽는 죽음
2.옛사람의 죽음
3.자원적인 죽음
4.부활을 보증받은 죽음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해서 그의 은혜 안에서 죽어 갈수 있습니다.주님의 은혜 앞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6:9절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사셨으매,다시 죽지 아니 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 됩니다. 죽음으로 끝나면 억울하지만 살기 위해서 죽는다면 죽을 수 있습니다.이것은 또 만유의 법칙입니다. 씨를 땅에 넣고 밟습니다.왜 죽입니까 다시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30배,60 배,100배의 열매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도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영생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부활을 위해서 자원해서 죽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고 했습니다. 여길지어다는 그렇게 간주하고 그렇게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미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입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죄 때문에 자꾸만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내가 범죄하는 일이 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하나님 나라에서 제하지는 못합니다. 육신의 약함 때문에 넘어지기는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아무 도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소망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어느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값진 물건을 빼앗았습니다.집문서 통장,패물을 모두 강도가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당신이 우리집의 아버지가 남편이 되어 우리의 주인입니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빼앗겨도 주인의 자리는 내 줄수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약해서 넘어지고, 죄를 잠시 짓는다로 하더라 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생을 소유한 천국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에 잠시 빠질수는 있어도 거기에 오래 머물수는 없습니다.거기가 자기집이 아 니기 때문입니다. 시집간 사람은 친정에서는 죽은 사람입니다.그리고 시집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어는 여인은 굶어죽을 지경인데도 친정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친정부모님이 찾아오는 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만 , 지금도 결혼해서 예전의 사람이 죽지 않으면 좋은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첫사랑을 생각하고,처녀 때 잘해주던 총 각들을 생각하는 여자는 어리석은사람입니다. 내가 나를 생각할 때 쓸모없는 죄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볼때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사랑하는 자녀입니다.하나님께 순종하며,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정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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