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병기 의의 병기 (롬6:1-23)
본문
지난 주일 우리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의 놀라움이라는 사실을 살펴 보며 은혜를 나누었다. 특히 십자가의 한편 강도의 구원사건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 얼마나 놀라웁게 역사하여 사람(죄인)을 구원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는 한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는 멸망의 폐해보다 훨씬 월등한 것으로서 죄는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가져왔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는 많은 범죄라 할찌라도 오히려 은혜와 구원의 풍성을 나타내 준다. 죄와 사망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대속에 삼키운바 되는 것이다. 이제 오늘 바울은 6장의 서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 ) "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 / 이는 그당시 비방자들의 말이었고 율법주의자의 변으로 바울을 율법을 폐한 자로 몰아붙여 곤경에 빠뜨리려는 시도로 한 말들이었다. 즉 바울의 전한 복음은 바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되니 율법과 어긋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혹은 당시 이러한 말의 함정에 빠져 마음대로 죄를 짓는 자들의 합리와 하는 변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의 풍성하심은 죄인들로 하여금 별 큰 두려움이 없이 죄를 짓게 조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복음에 충실하게 살지 않으면서, 죽기를 각오한 담대한 의의 열정보다 단지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차서 하나님께서 나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생각으로 취해보려고 애를 쓴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스스로 더욱 죄악에 빠져가는 것을 방임하는 마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결론은 명백하다. (2 ) " 그럴수 없느니라 !! " / 말도 안되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가 은혜를 더 받기위해 죄에 거한다고 말도 않되는 논리라는 말이다. 아주 까무러치면서 부인하는 말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우리는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다. /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 죽었다는 말은 " 반응하지 않는다 . " 라는 말이다. 죽은 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죄에 반응하여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되며 있을 수도 없는 말이다. 성도는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이다. 죄가 아무리 와서 미혹하여도 이에 대해서 무반을하는 것이 성도이다.
2) 우리가 세례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3 ) / " 합하여 " 라는 말은 동일시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자가 죄와 연합할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아가 본문은 " 장사지낸바 되었다. " 고 함으로서 완전한 죽음을 말한다. 죽어가는 중이 아니요, 이미 장사지내어 다시 살 가망성이 없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다시 일어나 활동할 수 없음 같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어 장사지낸바 된 성도는 다시 일어나 죄와 연합할 수 없고 반응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만일 장사지낸 바된 시체가 일어나서 다닌다면 그 얼마나 추하겠는가 세상에서 이보다 더 흉한 꼴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와 연합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괴상하며, 소름끼치는 일인 것이다.
3)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15,16 ) /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는데 죄에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죄의 조정을 받는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죄가 그를 주장하게 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죄의 종이 되는 것을 " 몸의 사욕을 순종하면 . 죄가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한다. " 고 함으로 몸의 자연스러워 보이는 욕망을 따라가면 그리된다고 하신다. 바울은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한다 " 고 함으로 육신의 정욕을 따르지 말라고 경계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살려고 하면 죄의 종이 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사망은 .
1) 육신의 소욕대로 살 때 오는 영적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됨이요, / 그래도 회개치 않고 계속해서 죄의 종노릇하면.
2) 육신의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요, / 그래도 계속 죄로 자신에게 왕노릇하게 하면. 이 관문을 지나서 바로.
예) 실제로 죄로 인해서 육신이 죽은 이들 /
1) 오스트로 고트족이 이태리 평원을 정복하고 오스트로 왕국을 건설했을 때 테오드리쿠스라는 유명한 왕이 있었다 . 그는 친한 친구를 사소한 일로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비참하게 목매어 죽였는데 나중에 이 이로 인해서 계속 괴로와 하다가 어느 날 요리사가 아주 훌륭한 생선 요리를 해 왔는데 그 생선의 눈에서 친구의 눈이 보이고, 그 이빨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친구로 보여 두려워하여 자리에 누웠는데 그는 이로 인해서 그는 삼일 후에 고통 중에 죽었다. 이같이 죄가 주는 것은 주려움과 고통 그리고 사망 뿐이다.
2) 조선 시대 6째 임금 단종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 가시고 아버지 문종이 갑자기 서거하여 그 나이 12세 왕위에 올랐다. 그 숙부 수양대군은 즉위한지 3년만에 즉위한 단종을 몰아내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보낸 후 17세 되던 때에 사약을 보내어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단종을 죽인 세조의 꿈에 형수가 나타나 가래침을 뱉는데 피하다가 등짝에 맞았다. 그 자리에 부스럼이 생기고 종기가 생겨 수년 동안 백약이 무효로 생살이 썩어 들어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비사가 전해내려온다. 죄는 이같이 육체의 생명도 죽게한다.
3) 영원한 하나님과의 단절이 되어지는
둘째 사망이다. /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또한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장사지내신 목적에 있다.(4-9 )
1).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시려고.(4 ) / 옛 생명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았던 삶이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생명 가운데 살게 하려하심이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심은 바로 여기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나를 부자로 만들거나 굉장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신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의 제목도, 그리고 인생의 목적도, 자녀를 위한 기도의 제목도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예) 어느 장로님의 자녀를 위한 기도 (입시 날 ) " 이 계기로 하여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 결국 이와같이 될 때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생명, 기업, 축복, 영생.
2)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 주님의 구속은 나로 하여금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게 하려하심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망이 다시는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이 사망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상고한 바 있다. "
그런데 어찌 우리가 은혜를 핑계 삼아 죄에 더 거할 수 있느뇨 "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심상히 여기고 몸의 사욕을 순종하여 죄에 거한다면 이는 당연히 죄의 종이 된 연고요, 주님의 구속하신 분명하신 목적을 알지 못함이고, 사실상 그는 복음을 깨닫지도 못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를 위해서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심이다. (10 )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은사(선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인 것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11 ) / 이제 그 크신 은혜로 구원얻은 우리는.
1) 죄에 대해서는 죽은자요 / 무반응 !!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로 여기라. / 민감한 반응 !! 오감과 지정의를 다해서 하나님께 반응하는 삶이 성도의 삶이요, 은혜 받은 삶이요, 살아 있는 삶이다. 만일 꺼꾸로 육신의 소욕에는 반응이 민감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는 무반응이라면 이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거나 한참 회개해야 할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은 과연 어떤가
2)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12-13 ) 여기서 병기라 함은 전쟁터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다. 만일 병기가 없으면 그는 전쟁에 패배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이 우리 몸으로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도 승리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육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신앙의 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병기가 되는 것이다.
예) 나의 손을. 내 입을. 내 재능을 .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 만일 어떤 이가 육신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도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우기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자로서 이미 사단의 퀘휼에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만일 눈이 너로 범죄케하거든 뽑아버려라 ! 한 눈을 가지고,.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범죄케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한 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은혜받은 자로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적어도 이같이 되어야 한다. 이같이 될 때 의의 종이 되고, 순종의 종이 되며, 거룩함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4-19 ) 결론 / 이제 그 이전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던 삶을 부끄러워 한다. 이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머고,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딩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은혜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괜찮은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오히여 은혜 안에 있기에 죄가 우리를 주장치 못하는 것이다. (14 ) 만일 우리가 법 아래 있다면 죄의 기회를 용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은혜 가운데 있기에 본질 상 죄를 용납하여 거기에 종노릇 할 수 없으며, 율법보다 더 크고 강력한 은혜의 강권하심에 밀려 범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은 . 먼저 옛사람이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삶이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이요, 의밖에 모르는 순종의 삶이요, 의의 병기로서 모든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전사로서의 삶이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의 반응하는 삶 이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산소망이 있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셨다. 이제 초남교회 모든 성도들은 다 이와같은 성도 되셔서 산소망이 있으시기를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명백하다. (2 ) " 그럴수 없느니라 !! " / 말도 안되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가 은혜를 더 받기위해 죄에 거한다고 말도 않되는 논리라는 말이다. 아주 까무러치면서 부인하는 말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우리는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다. /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 죽었다는 말은 " 반응하지 않는다 . " 라는 말이다. 죽은 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죄에 반응하여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되며 있을 수도 없는 말이다. 성도는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이다. 죄가 아무리 와서 미혹하여도 이에 대해서 무반을하는 것이 성도이다.
2) 우리가 세례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3 ) / " 합하여 " 라는 말은 동일시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자가 죄와 연합할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아가 본문은 " 장사지낸바 되었다. " 고 함으로서 완전한 죽음을 말한다. 죽어가는 중이 아니요, 이미 장사지내어 다시 살 가망성이 없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다시 일어나 활동할 수 없음 같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어 장사지낸바 된 성도는 다시 일어나 죄와 연합할 수 없고 반응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만일 장사지낸 바된 시체가 일어나서 다닌다면 그 얼마나 추하겠는가 세상에서 이보다 더 흉한 꼴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와 연합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괴상하며, 소름끼치는 일인 것이다.
3)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15,16 ) /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는데 죄에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죄의 조정을 받는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죄가 그를 주장하게 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죄의 종이 되는 것을 " 몸의 사욕을 순종하면 . 죄가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한다. " 고 함으로 몸의 자연스러워 보이는 욕망을 따라가면 그리된다고 하신다. 바울은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한다 " 고 함으로 육신의 정욕을 따르지 말라고 경계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살려고 하면 죄의 종이 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사망은 .
1) 육신의 소욕대로 살 때 오는 영적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됨이요, / 그래도 회개치 않고 계속해서 죄의 종노릇하면.
2) 육신의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요, / 그래도 계속 죄로 자신에게 왕노릇하게 하면. 이 관문을 지나서 바로.
예) 실제로 죄로 인해서 육신이 죽은 이들 /
1) 오스트로 고트족이 이태리 평원을 정복하고 오스트로 왕국을 건설했을 때 테오드리쿠스라는 유명한 왕이 있었다 . 그는 친한 친구를 사소한 일로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비참하게 목매어 죽였는데 나중에 이 이로 인해서 계속 괴로와 하다가 어느 날 요리사가 아주 훌륭한 생선 요리를 해 왔는데 그 생선의 눈에서 친구의 눈이 보이고, 그 이빨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친구로 보여 두려워하여 자리에 누웠는데 그는 이로 인해서 그는 삼일 후에 고통 중에 죽었다. 이같이 죄가 주는 것은 주려움과 고통 그리고 사망 뿐이다.
2) 조선 시대 6째 임금 단종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 가시고 아버지 문종이 갑자기 서거하여 그 나이 12세 왕위에 올랐다. 그 숙부 수양대군은 즉위한지 3년만에 즉위한 단종을 몰아내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보낸 후 17세 되던 때에 사약을 보내어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단종을 죽인 세조의 꿈에 형수가 나타나 가래침을 뱉는데 피하다가 등짝에 맞았다. 그 자리에 부스럼이 생기고 종기가 생겨 수년 동안 백약이 무효로 생살이 썩어 들어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비사가 전해내려온다. 죄는 이같이 육체의 생명도 죽게한다.
3) 영원한 하나님과의 단절이 되어지는
둘째 사망이다. /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또한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장사지내신 목적에 있다.(4-9 )
1).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시려고.(4 ) / 옛 생명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았던 삶이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새생명 가운데 살게 하려하심이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심은 바로 여기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나를 부자로 만들거나 굉장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신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의 제목도, 그리고 인생의 목적도, 자녀를 위한 기도의 제목도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예) 어느 장로님의 자녀를 위한 기도 (입시 날 ) " 이 계기로 하여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 결국 이와같이 될 때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생명, 기업, 축복, 영생.
2)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 주님의 구속은 나로 하여금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게 하려하심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망이 다시는 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이 사망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상고한 바 있다. "
그런데 어찌 우리가 은혜를 핑계 삼아 죄에 더 거할 수 있느뇨 "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심상히 여기고 몸의 사욕을 순종하여 죄에 거한다면 이는 당연히 죄의 종이 된 연고요, 주님의 구속하신 분명하신 목적을 알지 못함이고, 사실상 그는 복음을 깨닫지도 못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를 위해서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심이다. (10 )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은사(선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인 것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11 ) / 이제 그 크신 은혜로 구원얻은 우리는.
1) 죄에 대해서는 죽은자요 / 무반응 !!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로 여기라. / 민감한 반응 !! 오감과 지정의를 다해서 하나님께 반응하는 삶이 성도의 삶이요, 은혜 받은 삶이요, 살아 있는 삶이다. 만일 꺼꾸로 육신의 소욕에는 반응이 민감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는 무반응이라면 이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거나 한참 회개해야 할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은 과연 어떤가
2)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12-13 ) 여기서 병기라 함은 전쟁터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다. 만일 병기가 없으면 그는 전쟁에 패배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이 우리 몸으로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도 승리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육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신앙의 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병기가 되는 것이다.
예) 나의 손을. 내 입을. 내 재능을 .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 만일 어떤 이가 육신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도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우기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자로서 이미 사단의 퀘휼에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만일 눈이 너로 범죄케하거든 뽑아버려라 ! 한 눈을 가지고,.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범죄케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한 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은혜받은 자로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적어도 이같이 되어야 한다. 이같이 될 때 의의 종이 되고, 순종의 종이 되며, 거룩함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4-19 ) 결론 / 이제 그 이전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던 삶을 부끄러워 한다. 이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을 도로 머고,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딩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은혜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괜찮은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오히여 은혜 안에 있기에 죄가 우리를 주장치 못하는 것이다. (14 ) 만일 우리가 법 아래 있다면 죄의 기회를 용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은혜 가운데 있기에 본질 상 죄를 용납하여 거기에 종노릇 할 수 없으며, 율법보다 더 크고 강력한 은혜의 강권하심에 밀려 범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은 . 먼저 옛사람이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삶이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이요, 의밖에 모르는 순종의 삶이요, 의의 병기로서 모든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전사로서의 삶이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의 반응하는 삶 이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산소망이 있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셨다. 이제 초남교회 모든 성도들은 다 이와같은 성도 되셔서 산소망이 있으시기를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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