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롬4:18-25)
본문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대표적인 인물로 기록합니다.다 른말로 말하면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 은 표준적인 믿음,모범적인 믿음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구원 받기를 원하느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라. 네가 의롭게 되기를 원하느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라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이냐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늘 기록한 말씀에 설명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미는 풍성하고 깊이가 있습니다.그래서 믿음에 대해서 말 할때에 본문을 꼭 이야기 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명심해야 할 것은 구원 받는 믿음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그리고 2차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에 대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구원받기 원하는 믿음과 의인이 되기 위한 믿음은 같은 것입니다구원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대로 소유해야 합니다. 22절에 저희로 의롭다 여기셨느니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에게만 아니라,24절에 보면의롭다여김을 받을 우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은 단순한 것이다 이것저것 붙이지 말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기도 하고,어떤 사람은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복음주의적 학자들 간에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제인 해지스라는 달라스 신학교 교수는 요6:47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는자는 누구든지 이해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어렵게 이것저것을 자꾸 붙이고 요구해 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반해서 존 맥아더 목사는 마 7:21 같은 말씀을 들고 나와서 나더러 주 여,주여 하는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 로 행하는 자에게 천국에 들어 갈것이니라고 주장합니다. 단순한 믿음 만 보아서는 어떻게 신용할수 있느냐 믿음 후의 회개,하나님께 대 한 의탁,성도의 삶을 보아야지 어떻게 믿는다는 말만 말만하는 것을 인정할수 있 느냐 이것은 두가지 다 옳다. 오른편 강도와 데마의 비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18절에 말한대로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 든 믿음입니다. 18절과 19절은 같은 시대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20년의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할 것이라고 말씀할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그 후에 정말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그에게 아들도 주시고,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지금 이스라엘 국민이 200만이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태인이 그정도 된다고 보면 아브라함의 이후 지금까지 그의 후손의 숫자는 셈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도 예수님 이후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한국에만 현재 1000만 교인을 이야기 하는데 세계적으로는 수십억의 성도입니다. 이것을 2000년으로 계산을 하면 컴퓨터로 계산을 해도 몇일은 걸릴 것입니다.그래도 정확 한 숫자는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 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으로서는 믿을 만한 아무런 증 거를 가지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증표를 주시면서 믿으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무조건 믿은 것입니다.믿을수 없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의 허물은 쳐다보시지도 않 고 의인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면 17절에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 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죽은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그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은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창창한 하늘을 바라보면서,한없이 펼쳐져 있는 백사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이나, 증거로 보아서 믿을 만 한데 믿는 것은 우리를 구원할 믿음이 아닙니다.그것은 세상적인 자기 중심적인 믿음입니다.그것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잡히는 것이 없는데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한번 우리의 신앙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하나님 하는 데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성령님을 손으로 만져 보았 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옆에서 지켜보고,그의 십자가에 죽으시는 모습을 사진으 로 찍어서 보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했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다니까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자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인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죽은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한번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 이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네가 믿는 것을 보니까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소중한 합니다.큰 믿음을 얻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그래서 겨자씨 만한 믿음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나에게 있는 이 믿음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며,의인으로 인정함을 받게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확신하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약속을 받은후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상황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얼마 나 증거가 나타났습니까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별처러,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들을 얻을 희망은 더 캄캄해졌습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완전 절망이라고 합니다. 19절에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라고 말한 상태입니다. 처음 말씀하시던 80살 무렵만 해도, 이제나 저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그러나 그러기를 20여년이 흐른 후에는 그런 기대감 조차조 가질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했습니까 19절 하반절에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않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대단하시다고 생각을 합니다.다른 말로하면 짖 독하신 분이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약속하시고,1-2년 지나도록 아브라함이 믿음을 지켰으면 아들 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위에 사는 이방사람들은 결혼했다하면 아들을 쑥쑥 잘 낳는데,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라함은 나이는 먹어 죽을 날이 닥아오는데 20년 동안이나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면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이 깊은 뜻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그래서 철저하게 완전하고 순 수한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가야 할 모범을 보여야 했습니다.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게 해서 철저하게 코 너로 몰아넣어서 자기 자신의 부인하고 자기가 의지하던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때 까지 갔습니다.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라고 했습니다. 의심할수 밖에 없는 자리에 놓여 있는 데도 오히려 의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견고하여졌으니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완전무결한 믿음이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된것이 아닙니다. 또 의심치 않고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의심치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사라가 하갈을 첩으로 줄 때에 믿음이 약해져서 의심함:믿음이 좋아질 때도 가까운 사람의 영향이 크고,믿음이 나빠질 때도 가까운 사람 의 영향이 큼 .밤하늘의 별을 가리키는 그 시간에도 아브라함은 의심하고 있었음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한 아브라함을 두고 "의심치 않고" 하는 말씀은 과장이냐 그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믿음,흔들리는 믿음이 확신해서 의심하니 않는 자리까 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은 다음에 바로 죽지 않는 다음에는 확신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의심과 믿음은 별개입니다. 로이드 믿음은 의심을 극복하고 대답하게 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도 의심을 함-그러나 그 의심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 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또같은 햇볕을 받아도 왁스는 녹아 내리지만,진흙은 굳어진다.=참 믿음은 의심 을 통해서 더 확신한다. ex) 교회학교 여선생이 결혼의 고민을 담임전도사에게 상의-나쁜 과거 때문에 고민:함께 걱정을 하고 교수를 찾아감/교수도 다시 전도사에게 물음/의논해서 결 혼하게 함 의심을 통해서 믿음이 자람=의심과 싸우다가 보면 의심하지 않는 자리까지 가 게 됨 끝으로 아브라함이 이처럼 의심하면서도 그렇게 확신하는 자리에까지 갈수 있었 습니까. 아브라함이 의심 할 때는 꼭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믿음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는 하나님이 오셔서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그리고 의심하는 그를 책망하지 않 으셨습니다. 20절의 견고하여져서는 수동형입니다. 또 21절의 확신하였으니는 능동형으로 되었으나, 원문에는 수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견고하게서고,확신하도록 도우시고 붙잡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습니다고 다짐을 해도 내 스스로 자신을 추스릴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찬송가 399장을 부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 은 표준적인 믿음,모범적인 믿음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구원 받기를 원하느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라. 네가 의롭게 되기를 원하느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라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이냐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늘 기록한 말씀에 설명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미는 풍성하고 깊이가 있습니다.그래서 믿음에 대해서 말 할때에 본문을 꼭 이야기 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명심해야 할 것은 구원 받는 믿음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그리고 2차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에 대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구원받기 원하는 믿음과 의인이 되기 위한 믿음은 같은 것입니다구원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대로 소유해야 합니다. 22절에 저희로 의롭다 여기셨느니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에게만 아니라,24절에 보면의롭다여김을 받을 우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은 단순한 것이다 이것저것 붙이지 말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기도 하고,어떤 사람은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복음주의적 학자들 간에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제인 해지스라는 달라스 신학교 교수는 요6:47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는자는 누구든지 이해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어렵게 이것저것을 자꾸 붙이고 요구해 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반해서 존 맥아더 목사는 마 7:21 같은 말씀을 들고 나와서 나더러 주 여,주여 하는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 로 행하는 자에게 천국에 들어 갈것이니라고 주장합니다. 단순한 믿음 만 보아서는 어떻게 신용할수 있느냐 믿음 후의 회개,하나님께 대 한 의탁,성도의 삶을 보아야지 어떻게 믿는다는 말만 말만하는 것을 인정할수 있 느냐 이것은 두가지 다 옳다. 오른편 강도와 데마의 비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18절에 말한대로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 든 믿음입니다. 18절과 19절은 같은 시대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20년의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할 것이라고 말씀할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그 후에 정말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그에게 아들도 주시고,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지금 이스라엘 국민이 200만이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태인이 그정도 된다고 보면 아브라함의 이후 지금까지 그의 후손의 숫자는 셈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도 예수님 이후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한국에만 현재 1000만 교인을 이야기 하는데 세계적으로는 수십억의 성도입니다. 이것을 2000년으로 계산을 하면 컴퓨터로 계산을 해도 몇일은 걸릴 것입니다.그래도 정확 한 숫자는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 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으로서는 믿을 만한 아무런 증 거를 가지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증표를 주시면서 믿으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무조건 믿은 것입니다.믿을수 없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의 허물은 쳐다보시지도 않 고 의인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면 17절에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 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죽은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그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은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창창한 하늘을 바라보면서,한없이 펼쳐져 있는 백사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이나, 증거로 보아서 믿을 만 한데 믿는 것은 우리를 구원할 믿음이 아닙니다.그것은 세상적인 자기 중심적인 믿음입니다.그것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잡히는 것이 없는데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한번 우리의 신앙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하나님 하는 데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성령님을 손으로 만져 보았 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옆에서 지켜보고,그의 십자가에 죽으시는 모습을 사진으 로 찍어서 보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했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다니까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자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인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죽은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한번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 이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네가 믿는 것을 보니까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소중한 합니다.큰 믿음을 얻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그래서 겨자씨 만한 믿음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나에게 있는 이 믿음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며,의인으로 인정함을 받게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확신하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약속을 받은후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상황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얼마 나 증거가 나타났습니까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별처러,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들을 얻을 희망은 더 캄캄해졌습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완전 절망이라고 합니다. 19절에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라고 말한 상태입니다. 처음 말씀하시던 80살 무렵만 해도, 이제나 저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그러나 그러기를 20여년이 흐른 후에는 그런 기대감 조차조 가질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했습니까 19절 하반절에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않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대단하시다고 생각을 합니다.다른 말로하면 짖 독하신 분이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약속하시고,1-2년 지나도록 아브라함이 믿음을 지켰으면 아들 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위에 사는 이방사람들은 결혼했다하면 아들을 쑥쑥 잘 낳는데,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라함은 나이는 먹어 죽을 날이 닥아오는데 20년 동안이나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면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이 깊은 뜻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그래서 철저하게 완전하고 순 수한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가야 할 모범을 보여야 했습니다.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게 해서 철저하게 코 너로 몰아넣어서 자기 자신의 부인하고 자기가 의지하던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때 까지 갔습니다.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라고 했습니다. 의심할수 밖에 없는 자리에 놓여 있는 데도 오히려 의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견고하여졌으니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완전무결한 믿음이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된것이 아닙니다. 또 의심치 않고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의심치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사라가 하갈을 첩으로 줄 때에 믿음이 약해져서 의심함:믿음이 좋아질 때도 가까운 사람의 영향이 크고,믿음이 나빠질 때도 가까운 사람 의 영향이 큼 .밤하늘의 별을 가리키는 그 시간에도 아브라함은 의심하고 있었음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한 아브라함을 두고 "의심치 않고" 하는 말씀은 과장이냐 그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믿음,흔들리는 믿음이 확신해서 의심하니 않는 자리까 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은 다음에 바로 죽지 않는 다음에는 확신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의심과 믿음은 별개입니다. 로이드 믿음은 의심을 극복하고 대답하게 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도 의심을 함-그러나 그 의심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 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또같은 햇볕을 받아도 왁스는 녹아 내리지만,진흙은 굳어진다.=참 믿음은 의심 을 통해서 더 확신한다. ex) 교회학교 여선생이 결혼의 고민을 담임전도사에게 상의-나쁜 과거 때문에 고민:함께 걱정을 하고 교수를 찾아감/교수도 다시 전도사에게 물음/의논해서 결 혼하게 함 의심을 통해서 믿음이 자람=의심과 싸우다가 보면 의심하지 않는 자리까지 가 게 됨 끝으로 아브라함이 이처럼 의심하면서도 그렇게 확신하는 자리에까지 갈수 있었 습니까. 아브라함이 의심 할 때는 꼭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믿음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는 하나님이 오셔서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그리고 의심하는 그를 책망하지 않 으셨습니다. 20절의 견고하여져서는 수동형입니다. 또 21절의 확신하였으니는 능동형으로 되었으나, 원문에는 수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견고하게서고,확신하도록 도우시고 붙잡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습니다고 다짐을 해도 내 스스로 자신을 추스릴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찬송가 399장을 부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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