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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누리는 화평 (롬5:1-5)

본문

지난 주 이시간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신득의 신앙은 바로 우리들의 신앙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 오늘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은혜로 얻은 성도의 삶은 어떤 삶인가 그저 일반인 보다 윤리적으로 조금더 나은 삶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특별한 어떤 무엇이 있는가 에 대해서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분은 신자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다. 이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수 있겠는데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편안하기만 한 삶으로 / 이 사람은 생각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으로 다소 제멋대로 일수가 있다. 이 사람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맘에 들면 혹은 내키면 하고 안그러면 아무 부담없이 거부하는 사람이다. 혹은 율법적인 부담의 삶으로 / 이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열심은 육적인 열심이요, 그의 신앙은 양심은 살아 있으나 육에 매여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지 않은 신자이다. 주로 어중간한 사람들 중에 이와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항상 매우 힘이 든다는 표현을 많이 하게된다. 아니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야하는 사명의 삶으로 . / 이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일을 이루어 가려하는 열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자신의 그 뜻에 부합하지 못함으로 해서 다분히 율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의 삶의 모습을 살펴 봄으로서 오늘 말세를 사는 우리의 모범으로 삼고자 한다.
1. 먼저 성도는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이다.(1 ) /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믿음으로 된 것이기에 이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 즉 교제하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종의 관계가 아니기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교제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볼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은 좋은 신앙점검의 척도가 된다. / 우리는 어떤가 과연 하나님을 생각하면 늘 마음에 평화가 밀려오는가 아니면 불안한 마음과 무언가 막혀진 담 같은 것이 느껴지는가 화평한 사람은 당사자가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정상적인가 하는 것은 자신이 알수있다. 하나님과의 맑은 관계 언제나 숨을 쉬듯이 동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관계는 율법적인 행위로 얻을 수 있는가 이미 성경에 전제하고 있지만 이 화평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된 것임을 전제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라고 한다. 이제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 율법적인 삶은 아무리 경건해 보여도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바리새인 처럼 )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은 항상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맑은 강물이 흐른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의 삶에서 가장 삶을 이어주는 열쇄는 바로 정직이요, 청결한 마음이다. 마태복음 5장 8 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잠언 3장 32절의 말씀 처럼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있는 것이다.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은 특권과도 같은 것이다. /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같이 정하셨기 때문이다. 본문 1절을 다시한번 읽어보자. 또한 이 하나님과의 화평의 삶은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잘 나타나 있다. "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같이 저희도 내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 이는 창세 때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신 목적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입은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2.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성도의 현재 삶을 은혜에 들어간 삶이라고 한다. (2 ) / 은혜를 이상한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않된다. 또한 어떤 가시적인 축복으로 생각해선 않된다. 은혜의 삶이라 함은 하나님과의 화평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삶 . 언제나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삶. 하나님의 요구를 주목하고 사는 삶. 바로 이것이 나그네요 행인과 같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도에게 있어서 최상의 은혜의 삶인 것이다.
예)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들이 모두 우리처럼 허물이 많았으나 모두가 하나님과 화평의 삶을 살았다. 내 평생에 소원이 있다면 위대한 목회자가 되는 것도 , 고상한 학자가 되는 것도 , 달변의 설교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언제나 하나님과의 꺼리낌 없는 교제가 있는 목회자가 되는 것이 내 평생에 소원요, 내 언제나 기도의 제목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어떻습니까 항상 드리는 기도는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 ! 아버지와 교통하길 원합니다. 세상 친구 다 떠나 가고 세상 재물 다 없어져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만 들을수 있다면 나는 만족합니다. 주님 주님과 언제나 화평하게 하옵소서 ! 맑은 생명의 강 가에서 주님과 만나게 하옵소서 !! "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3.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은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2b ) / 세상에 살면서 소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생명나무와도 같은 것입니다. 만일 인생에 소망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턱턱 막혀옵니다. 마치 감옥에 갇혀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죄수처럼 참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는 사람은 곧잘 자살로 자신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여러분 어려운 사람만이 소망이 없어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세상에는 원래 참소망이 없습니다. 죄로 얼룩지고 불의와 추악으로 더러워졌으며,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부자도 권세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영원하며 썩지아니하고 참으로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 그리고 그것은 확실하며 확고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자는 결코 부끄러워 하는 일이 닥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소망은 든든한 닷 같아서 세상의 모든 파도에서 우리의 인생을 그리고 믿음이 배를 지켜줄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대로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구름같이 둘러 싸고 있는데 그 분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 그 큰 은혜에 들어간 사람은 바로 이와같은 든든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소망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것처럼 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이 사람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삽니다. 잠시 다니러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함으로서 바로 이 소망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 초남교회 성도들의 진정한 소속은 하늘나라에 있는 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 더욱 놀라운 사실은 3절의 말씀에 기록이 되어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성도를 성도답게 구별해 주는 것입니다.(3 ) 환란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누가 환란중에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내집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환란은 단지 비극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은혜에 들어간 사람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환란도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선한 일만을 이루어 가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이루어 가는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환란이라 해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므로 얻는 그 즐거움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그 즐거움의 차원이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하늘의 소망이 너무 커서 세상의 어떤 환란도 (그것이 비록 죽음이라 해도.) 영원한 소망에 비하면 실로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서 역시 신령한 기쁨에 삼키운바 되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환란은 신앙을 위한, 혹 하나님과의 화평한 삶으로 말미암은 신앙의 환란과 핍박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상급을 생각할 때 역시 즐거운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현재 우리에게 닥친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롬8:18) 한가지 더 언급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도 환란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명심하십시요. 그리고 때로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환란도 있습니다. (욥처럼  ) 그러나 그것이 징계의 환란이든지 연단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중의 환란 이든지 (나면서 소경된 거지 )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시요. 환란을 만나고 있으니 나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제자식을 위험에 놓고 모른체 하는 부모가 없듯이 또 자녀가 병중에 있을 때 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떠나지 않듯이 환란중에 하나님은 더욱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환란은 이제 우리에게 인내의 신앙인격을 만들어 줍니다. / 환란을 격어보지 못한 세대는 인내가 없어도 환란과 산전 수전 다 격은 사람은 인내가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큰 신앙의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는 그 사람으로 많은 환란을 격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내의 신앙은 연단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
예) 철의 연단 많은 신앙의 인물들은 환란을 통한 인내의 신앙으로 일 평생을 살아온 분들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연단하신 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란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세상사람은 환란이 오면 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란 중에도 이유있는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비밀이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의 비밀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소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 보면 집사의 자격중에서 "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 " 라고 했습니다. (딤전 3:9 ) 이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연단한 믿음은 이제 너무도 확고한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 / 소망이 굳건히 되는 것은 바로 환란과 인내와 연단을 통한 믿은을 소유하는데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소망이 아로 새긴듯이 분명합니까 아니면 그저 오래된 옛 글처럼 희미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산 말씀이요, 그 약속을 받은 우리의 소망은 산소망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소망은 부끄럽게 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5 ) /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알고 있는 것,그것은 곧 소망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끄럽다라는 말은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에게 거절을 당할때 부끄럽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상근 목사님은 이 말을 배반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환난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절치 아니하시고 배반치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소망인 것입니다.루터는 소망이야말로 환난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이 부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환난이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즐거워 하게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난중에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해 우리는 연단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거절치 아니하시는 소망을 가지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분명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하신 소망의 약속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우리에게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확신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확신에 찬 자신있는 신앙의 열쇄는 바로 성령님과 교통이 있는 것이요,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의 신앙의 승리가 있는 것이지 어떤 인간적인 조건이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야 참으로 반석을 두드리는 방망이처럼 불처럼 강하게 부딧쳐 오는 것이다. (렘 23:29 ) 결언 / 우리의 신앙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은혜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에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은 세상의 환란이 빼앗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지고 인내와 연단의 신앙으로 만들어 주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확고한 소망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 그리고 이 신앙 이 평화는 오직 성령님안에서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합시다 " 주여 나의 평생에 최대 최고 소원이 오직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데 있게 하옵시고, 성령님의 충만을 주셔서 환란중에도 즐거워 하게 하옵시며,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한 소망중 능력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 아멘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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