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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 없는 죄인 (롬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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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한때 적극적 사고방식 으로 유명하였 분입니다. 이 목사님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각종 메스컴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었습니다. 그 주요한 이유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요지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영향을 받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설교자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며 설교할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왜 로버트 슐러가 많은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금방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러한 주장이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넘께서 사람을 똑바로 직시하며 '너는 죄인이야!'라는 말씀은 하신 일이 없지만,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기를 밝히시면서 분명히 우리 모두를 죄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눅5: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보셨고 죄인으로 다루셨고 죄인으로 알고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말만 골라서 들려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인기를끄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못됩니다. 유명한 종교 개혁가 칼빈이 한 말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존심이 골수에까지 박혀 있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매사적인 언사를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 굉장히 기뻐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청중들 앞에서 인간성을 가장 듣기 좋은 말로 찬양하면 그의 말을 사람들이 경청하고 그에게 갈채를 보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듣기에 좋은 말을 하고 그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는 아첨의 말을 하면 사람들은 모여들게 되어 있고 칭찬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본론' 우리가 로마서 1장17절부터 시작하여 여러 시간 공부해 오면서 분명하게 확인한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고듣기 좋은 말샴만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를 고무시키고 칭찬하는 말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만 하셨습니다 마치 우리의 기분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계시는 것처럼 냉정하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사정없이 벌거벗겨 놓고 악한 것, 부끄러운 것만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의 처지가 좋은 말을 하고 있을 형편이 아닌 것입니다. 병원을 가보셨지요 의사가 씩 웃으면서 “별거 아니네오 이 약가지고 일 주일만먹으세요!”라고 하는 기분 좋은 말을 듣고 돌아올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떤 때는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병이 심상치 않으면 의사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함께 읽은 말씀은 아주 듣기 싫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을수 없는 하나님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죽 답답하시면 그러시겄습니까 이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 인격을 이처럼 모독한 다른 사례가 또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얼마나 심한 모독입니까 목구멍은 뭐 같다고 했는지 보세요. '열린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읽어보세요. 기가 막혀 머리가돌 정도로 심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흘리는데 빠른지라” 하나님은 인정 사정 두지 않고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계십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결론적으로 정리한 것이라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참담한 처지에 놓여있는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9절 초두에 “그러면 어떠하뇨”라는 말이 나습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해서 무엇이라고 할까”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나으뇨’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유대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고봅니다. “예수 믿는다는 우리는 안믿는 자와 비교해서 나은 데가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나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인간은 본질상 밑바탕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조금 차이가 있어도 그것은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인하있느니라” 너 나 할 것 없이 다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오늘 메시지에서 가장중 요한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서 죄는 단수입니다. ‘죄들’이 아니고 ‘죄’라는 말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죄'라고 하는 단수를시옹할 때와 '죄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할 때의 의미가 좀다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단수 복수의 개념이 약간 애매한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정확하게 구별이 됩니다. 로마서에서 죄를 복수로사용할 때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여러가지 악한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저것 잘못하는 것들을 두리뭉실 모아서 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를 단수로 쓴데에는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 즉, 죄의 실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에베소서에서는 '공중의 린세 잡은자'라고 부릅니다(엡2:2). 권세 잡은자라고 하는것을 보면 이것은사람을 지배하는 어떤 세력이 틀림없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사단, 마귀, 악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강할실체가 배후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말하는 죄는 마귀와 비교되는 무서운 실체입니다.'죄 아래'의 '아래' 라는 말은 헬라어 전치사 중의 유명한 전치사인데 입니다. 휘포라는 건치사인데, 이 말이 디모데전서 6장 1절에도 나옵니다.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이라는 말에서 '아래'라는 단어와 똑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멍에 아래 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쇠사슬에 묵여 무거운 짐지고 평생 종살이 하는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비교해서 생각하면 '죄 아래 있다'는 말씀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무서운 힘을 가긴 자의 손아귀에 꼭 잡혀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하나 예외없이 죄의 권세 아래 짓눌려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류 역사를 보면 사회 전반에서 독버섯처럼 고개를 쳐드는 범죄를 막아보려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온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왜 경찰의 수가 자꾸 늘어나야 합니까 왜 파출소가 점점 많아야 합니까 왜 첨단 기계를 도입해서 범죄를 예방해야 합니까 죄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누르면 처음에는 조금 효과가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경찰이 많아지는 것만큼 범죄도 많아지고 장비가 발전하는 것만큼 지능범은 더 늘어나는 답답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발자취입니다. 왜 그러면 범죄를 근본적로 퇴치하지 못합니까 '죄들'은 다소 막을 수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죄'의 실체를 처리할 수 없다는 데 그 근본적인 왼인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뭔가가 잘못할때는 단순히 마음을 나쁘게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자기 배후에는 자기를 조종하는 강한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 죄의 세력을 처단하지 못하는 이상, 사회의 범죄가 사라질 수없습니다. 아무리 경찰수 를 늘리고 최첨단 장비를 끌어들여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도 안됩니다. 이것은 열이 나서 두통이 심한 사람의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합니다. 얼음주머니가 병 그 자체는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죄의 세력을 꺾어야합니다. 그러나 죄의 권세는 우리가 상대할수 없다고 합니다. 로마서 7징23절을 보세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가 꼼짝할 수 없는 힘입니다. 숨도 못쉬게 우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제 마음대로 끌고 가는 죄의 세력이 우리 배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지배 아래 속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스스로 이 무서운 리의 굴레를 벗지 못합니다. 그 죄는 우리 몸을, 우리의 인간관계를, 우리의 사회생활을, 심지어 우리의 잠재의식까지 지배하면서 파괴하고 있습니다. 존샌리 조웻이라고하나신학자는 이 무서운죄시 세력 밑에서 인간이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는기를 다음과같이 아주웅변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죄는 파피적인 존재이다. 모든 선한 힘은 죄의 파괴적인 힘에 의해 위축되고 시들어 버린다. 모든 영적인 섬세함은 죄의 저주스러운 접촉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죄는 시각을 손 상시켜 맹목적으로 일하도록 만든다. 죄는 청각을 마비시켜 사람들을 귀머거리로 만든다. 죄는 미각을 왜곡시켜 쓴 것을 단 것으로, 단 것을 쓴 것으로 혼돈시켜 버린다. 죄는 촉각을 마비시켜 사람들을 과거의 느낌만을 갓도록 만든다. 죄는 영적인 모든 좋은 감각을 막아버리고 질식시킨다. 우리는 죄에 의해서 무감각해지고 둔감해지며 우리가 반응하는 범위는 축소되어 버린다. 죄는 무감각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영혼을 짓밟음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이것이 죄입니다. 죄의 세력입니다. 이와같이 잔혹한죄의 발밑에 짓밟히는 인간이 얼마나 처걸하고 악 하냐를 바울이 구약성경에 있는내용율 인용하여 1이걸에서 18절까지 말 샴하고 있샵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던 당시에는구약성경을들고 다닌다나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양피지에다 궁직긍긱하게 기록해서 말아 놓은 것이 책이니까 만약에 시편을 들고 다니라고 하면 아마 지게 에다 지고 다너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한껸의 두루마리 성경을 개 인이 가긴다나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불껸한 검은 이것만이 아 니었습니다. 당시에는으즈음시 우리 성경처럼 멵장녚절로구븐이 안되 어 있었습니다. 시편 중에 어느 본문을 하나 챂으려면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즐줄이 읶어 내려가야 했습니다. 얼마나 빈러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에 기록한구절은 성경을 일일이 찻아가면서 인용 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삐 감동으로 건에 읽었던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대 강 정리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같은 방범을 랍비들은 구찰켜기 한다고 말합니다 대단한 기억력을 으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기록한기자들이 비상한기억력의 소유자였다아것은이미 잘알 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기억력 역시 성령님의 영감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주로 시껸과 이사야에서 인용을 했는데 시편14장띠 조,5절콰 1이장7걸, 1쐬장3절,쪼장1절과이사야59장7,8절입니다. 그러 니까구약성경이 진단하는 인간의 처참한모습을다시 정리해 놓은말씀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뉸 그 내용을 이렇게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고생각합니다. 인간이란아주무능하다, 이주부패했다, 아주절망 이다. 우선 민저 무능하다는 것을봅시다. 11걸부터 1조걸 사이에 해당하 말씀이 무능을잘설명하고 있습니다드의인은없나니 하나도없으며 깨 닫는자도 없고''어느 정도로무능한지 아십니까 깨닫지도못할 정도 라고합니다. 무엇을깨닫지 못한다는말입니까 예를듄다면 자기에게 선한데가한곳도없다는사실조차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어느정도 무능합니까 본문11절을다시 보십시오드하나넘을찾는자도없고''라 고 했앾다. 이 말은 인간이 본능적인 신의식마저 갖지 않았다뉸 의미 가아넙니다드신이 있겠지'하는애매한생각은다가지고 있랶다 여 기서 하나넘을 챂는자가없다는 말은신명기4장2엫에서 잘지적하고 있습니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 우리에게는 건심건력을 다해 하나넘을 찾을 만한능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로마서1장21절에뉸''하나넘을 알되 하나넘으로 영화릅게도아니하 고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했삽니다. 이것이 무능이 아니고 무엇입니 까 알면서 마땅히 해야 할일율하지 못하는 것만큼 철떠한 무능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걱 다시 본문을 주의하십시오.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무 익하게 되었다는말은우유가쉬어서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뜻을가지고 있습니다. 쉬어버린 우유처럼 우리의 영과 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말샴은하나넘이 겅해 놓은 표준에 일치하뉸 거룩한 룰을사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이 하늘에서 세상을 구석구석 다 살펴보아도 자기 뜻에 맞는 선을 행하는 자가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만큼사람은 하나넘 앞에서 철저 하게 무능한 자가되어버렸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생각도 못하고 해서는안될 일에는친재성을보일 정도로비정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넘 이 명하시뉸 선은 행할 능력이 없으면서 자기의 우심을 채우는 데는 힘 이 넘치는 것입니다 어두움을사랑할수는 있지만 빛으로 나울수 있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넘께 나아갈 수 있는 자유는 있긱만 하나넘을 찾 능력이 없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죽지 부러진 새와 같습니다. 즉지 부러진 새는 날부바는 있습니다 그러나 날지는 못합니다. 이 것이 영적으로 무능해진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 예수 없이 살고 있는 모든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기가원하는 일은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넘이 원하시는 일은 손가락하나까딱 할 수 없는 무능자입니다 두번째로 사람은 아주 부패했습니다.
1조절부터 15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그 혀로는속 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 득하고그 발은피흘리는 데 빠른지라' 엣날사람듦은목구멍, 혀, 입술, 입은 마음으로 통하는통로로생각헸습니다. 그들은 미음이 기슴에 있다 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헌대 의학용어로 뱌서 이비 인후과에 해당하는 부위들이 모두 다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뉸 것 같지 않습니까 목구멍이 열린 무덤의 출입구 같다면 무덤은 틀림없이 마음 가리키뉸 것이 사실입니다. 동양문화인떼 속한사람들은 열린 무덤이 란어떤 깃을 말하는지 알기가어렵습니다. 그러나유대나라에서는금방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장례지넬 때 당을 콰서 시신을 묻고 덮어 버리지 않샵니까 짐승들이 파헤치지 않는 한 시체가 다시 노출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나라 무덤은 석회암 파서 만든자그마한동굴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 동굴 하나가한 집안의 공동매장지로사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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