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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 제사 (히9:23-28)

본문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모든 인간들은 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죄지은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자를 그냥 두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상태대로 간다면 인간은 멸절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시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언약을 세우시고 그것에 대한 예법을 주셨습니다. 인간들은 그 예법을 행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길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도록 하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새언약을 세우셔야만 했습니다. 새언약은 옛언약의 부족한 부분과 한계성을 극복하였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면서 제사를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새언약이 어떻게 완성되어져 나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더 좋은 제물의 필요성(23절) 새언약은 옛언약의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옛언약은 그 제물 자체가 하나님께 바른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더 좋은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옛언약 하에서 준 모형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형으로 준 옛언약은 인간을 죄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땅의 동물피의 제사는 의식적인 죄책을 제거하고 잠시적인 복락을 줄 수는 있었지만 도덕적 죄책을 제거하거나 영원한 복락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모형을 위한 동물 제사는 단지 일회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반복되는 제사로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반복 제사가 아닌 단번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 제사가 반복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성의가 사라진 제사와 제물을 드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외친 말씀을 보건대 그들은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타락이나 무성의와는 상관이 없는 완전한 것으로 단번에 드리는 제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드리시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중재를 이루셨고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평을 당신의 몸을 제사로 드리시면서 회복시켜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제사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즉 제물과 제사장과 제주의 사역을 완전히 갖추어서 한 번에 드리셨습니다. 당시에 있었던 5대 제사를 한 번에 다 이루셨습니다. 참고적으로 당시에 있었던 5대 제사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시의 5대 제사를 보면
첫째로 번제가 있습니다. 번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을 드리신 것을 상징합니다. 번제에는 향기로운 냄새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반드시 생명이 드려져야 하며 전부 태워져야 하는데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드리시므로 이것을 이루셨습니다. 제주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드렸습니다. 번제에서 소를 드린 것은 힘을 상징하며, 양을 드린 것은 순종을 상징하며, 비둘기를 드린 것은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며, 염소를 드린 것은 대신 희생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원해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정갱이와 내장을 씻어야 하는데 이것은 마음과 행위를 씻는 일을 말합니다. 번제는 마지막에 불로 태워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둘째로 소제가 있습니다. 소제는 피가 없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피 없이 드린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소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소제는 피를 드리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번제와 같이 드려져야 합니다. 고운 가루를 드린다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것이고 기름과 유향을 드린 것은 성령님의 역사 혹은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누룩을 넣으면 안되는 이유는 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꿀을 넣어서 안된다는 것은 쾌락이나 자기 만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소금을 친다는 말은 언약을 이루는 것을 말씀합니다.
셋째로 속죄제가 있습니다. 속죄제는 범한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사장의 죄를 위해서 드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위해서 드리고, 족장의 죄를 위해서 드리고, 평민들의 죄를 위해서 드립니다. 제물은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드려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만 죄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안수하고 죽이는 이유는 죄를 전가시키기 위한 것이고, 불을 태우는 것은 헌신을 의미하고, 재를 뭍는 것은 고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넷째로 속건제가 있습니다. 속건제는 알지 못하고 부지 중에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개인적인 범죄, 부정한 것과의 접촉, 할 것을 안한 죄, 하나님의 성물을 잘못 다룬 죄, 남의 물건을 두고 범한 죄, 부지중에 범한 죄를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런 모든 죄들은 자복하고 보상해야만 해결됩니다. 다섯째로 화목제가 있습니다. 이 제사는 대속을 통한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감사와 서원을 목적으로 드린 것입니다. 화목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목 속에 번영, 축복, 기쁨, 행복, 조화, 평화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 제사는 소, 양, 염소가 드려지며 새는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름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암컷이나 수컷이 구분 없이 드려지며 피는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이것은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화목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속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단번 제사, 더 좋은 제사는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여 한 번에 드리신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2. 참 하늘에 들어가시므로 드려졌습니다(24절). 그러면 예수님께서 모든 제사를 한 번에 드리신 방법은 어떠했습니까 24절 말씀에 보니 예수님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시므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제사를 단 번에 드리신 후에 참하늘 즉 하늘의 성소,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영광의 보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아론의 속죄는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속죄를 확증하는 행위였을 뿐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성취된 속죄를 하나님께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며 예수님의 승천은 교회에 제사로 말미암는 은택을 끼치는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로 구속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다만 예수님은 그 사역을 확증하시기 위해서 하늘 나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명칭이 강조된 것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강조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예수님은 그 일을 다 이루셨고 새언약의 본체인 하늘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만인이 다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여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대제사장으로 나타나셨고, 그 자신을 드리시므로 나타나셨고, 속죄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나타나셨고, 대변자로 나타나셨고, 구원과 은혜를 이루기 위해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들어가신 목적입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들어가셔서 변호인으로 재판장 앞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제 그 곳에서 그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3. 단번 제사는 모든 죄를 사하기에 유효합니다(25-28절). 그리스도의 제사는 왜 단번 제사여야만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계속 피흘리는 고난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희생 제물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지만 예수님의 제물은 온전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번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체설의 허구성을 지적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화체설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못박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공공연히 욕보이는 행위입니다(히6:6).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사를 매일 드리는 행위로 그리스도의 제사의 충족성과 최종성을 부인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시므로 모든 죄를 사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드림과 고난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드려질 수 없습니다. 아론은 드리기는 했으나 그는 고난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드리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단번에 드리심은 창세 전부터 구원받도록 되어 있는 모든 인간들의 죄를 속할 필연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의 제사도 그리스도의 제사의 효력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주님의 단번에 드리심은 율법의 힘과 그 지배력과 의무를 파괴하고 무효로 하여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죽음의 형벌을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믿음을 통해서 지금 우리들에게도 계속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4. 다시 나타나심은 단번제사의 완성입니다(28절). 예수님의 단번제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만 한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신다는 말은 심판을 위해 영광으로 오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딱 한 번 때가 되면 오십니다. 세상 끝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시기는 때가 찬 시기입니다(엡 1;10). 예수님은 택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제사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인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되어집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구원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심판을 행하시고 하나님께는 완전하고 충분하고 최종적인 만족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죄와 상관이 없는 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오십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구속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는 자들은 그가 나타나심을 확고히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요(요 14:2,3), 그의 나타나심을 실제로 사랑하는 자들이요(딤후 4:8), 그의 나타나심을 열렬히 갈망하는 자들이요(계 22:20), 그의 나타나심을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자들이요(약 5:7,8), 그의 나타나심의 때를 위해 자신을 예비하는 자들입니다(마 25:10, 눅 12:35-37). 주님은 다시 나타나실 때에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빌 3:20, 21). 이 때는 결혼도 없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주님의 단번 속죄로 모든 죄는 다 속하여 졌습니다. 이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단번에 이루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속죄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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