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단순한 삶 (전7:29)

본문

얼마 전에 백화점에 갔다가 몰랐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화장실을 갈 일이 생겼습니다. 백화점 1층 매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찾아 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1층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안내하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지하층이나 2층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대형백화점마다 1층에 화장실이 없답니다. 저는 그날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백화점 1층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백화점 직원 설명이 백화점 1층에 화장실을 없앤 것은 바로 마케팅 전략 때문이랍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지하로 가든지 2층으로 가면서 최소한 한 층을 더 둘러보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백화점 매장에는 창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1층에서 맨 윗 층까지 상품이 진열된 매장에는 창문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 백화점만이 아니었습니다 백화점마다 매장에는 창문이 없었습니다. 만일 창문 밖으로 비나 눈이 오는 것을 보면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올 걱정,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 걱정 이런 저런 생각에 쇼핑을 방해받게 됩니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창살을 뚫고 들어오면 조명으로 치장한 상품이 초라하게 보이게 됩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없애버렸답니다. 알고 보니 백화점 매장 곳곳에 마케팅 전략이 가득 숨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그 전략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전략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상품만 보게 하고, 상품에만 신경을 쓰게 하고, 상품에 현혹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요란하게 인테리어를 합니다. 그럴싸하게 포장을 합니다. 조명을 화려하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상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상품에 눈이 멀게 됩니다. 상품에 현혹되어 가족도 잊어버립니다. 집안 일도 잊어버립니다. 직장도, 사업도, 자신도 잊어버립니다. 정신도 빼앗기고, 마음도 빼앗기고, 결국은 돈도 빼앗기게 됩니다. 눅 2장에 보면 마리아와 요셉이 12살 된 예수를 데리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다녀온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볼일을 다 보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쯤 걷다가 보니 예수가 곁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놀라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사흘 후에나 예수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시골 마을 나사렛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도시였던 예루살렘에 올라 와 보니 사람도 많고, 복잡하고, 볼 것도 많고 정신없이 한눈을 팔다가 정작 예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 속에 현대인의 자화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에 한 눈 팔다가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수를 잃어버립니다. 가장 소중한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현대성의 문제와 원인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오늘의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대개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변화성입니다. 모든 것이 급변합니다. 가전 제품은 6개월이 멀다고 신 모델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 산 냉장고가 일년도 않돼서 구 모델이 됩니다. 컴퓨터는 사기가 무섭게 또 업그레이드해야 할 판입니다. 유행은 한 강을 흐르는 물살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변해갑니다. TV에는 이름도 못 들어본 가수들, 연예인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집니다.
옛날에는 30년이 한 세대라 해서 세대 차는 부모와 자식 세대가 느꼈습니다. 웃자는 얘기로 요즘 쌍둥이도 세대 차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런 빠른 변화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정신없이 뛰어야 합니다. 숨차도록 따라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잠깐만 쉬다가는 어느새 뒤쳐져 쉰 세대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하나는 다원성입니다.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사러 나가보면 너무도 많은 종류의 제품들이 있음을 보고 놀랍니다. 국산도 여러 회사 제품들이 있고, 거기다가 외제품까지 난립하고 있습니다. 한 회사 제품도 여러 가지 기능 따라 다양한 제품이 있습니다. 어떤 제품을 사야할지 고민이 보통이 아닙니다. 상점도 다양합니다. 재래 시장이 있고, 백화점이 있고, 동네 구멍가게가 있고, 슈퍼마켓이 있고, 또 할인 매장이 있습니다. 사는 상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물건을 살 때 늘 불안합니다. 다른 곳에 더 싼 데가 있을 텐데.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어디서 더 싸게 샀다고 하면 속상합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이런 다양성 속에서 선택의 고민을 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 까 보통 걱정이 아닙니다.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쓴 앨빈 토플러는 현대인들의 삶이 너무도 복잡하고, 이런 복잡한 삶 속에서 현대인들은 너무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 하도 다양한 것들로 가득 찬 세상 그 한 복판에서 살아가려다 보니 모든 것이 복잡합니다. 생각도 복잡하고, 마음도 복잡하고, 생활도 복잡합니다. 그래서 고단하고, 그래서 힘이 듭니다. 본문 말씀은 세상이 복잡하게 된 원인을 밝혀 줍니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먼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나의 깨달음은 이것이라. 곧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여기서 '정직하게'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솨르"입니다. 이 말은 영어로는 'upright', 우리말로는 '똑 바로 서다'란 뜻을 가집니다. 히브리어로 그 사람이 야솨르하다고 하면 하나님 앞이나 사람들 앞에 숨김없는 모습,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밖에는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이 단순합니다. 사는 태도가 단순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하게 만드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할 줄 알고, 서로 인간끼리 사랑할 줄만 알도록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많은 꾀'란 말은 히브리어로 '히솨본'이란 말입니다. 사람이 많이 생각을 하고, 많이 고민을 하고, 많이 연구한 끝에 만들어 낸 발명, 고안, 방책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해서 만들어 냈지만 그 결과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오래 생각하고 많이 연구한다고 선한 것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속일까 어떻게 하면 내게 이익이 될까 생각하다보니 모든 것이 복잡해 졌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을 보면 그 뜻이 보다 분명해 집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말씀 안에서 오늘의 현대 사회를 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돌 지난 어린아이가 잘 치워놓은 방에 들어가서 경대를 뒤집어 엎고, 가재 도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저런 꾀를 내고, 나만 잘 살겠다고 궁리하는 것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세상이 복잡하게 되어 버린 원인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자기 쾌락만 얻으려 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졌다는 것입니다. 잔꾀를 부리고, 잔머리를 굴리다가 세상을 이처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복잡해진 결과 그 피해는 다름 아닌 사람 자신이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제 꾀에 제가 빠졌다는 말처럼, 자기가 놓은 덧에 자기가 걸리고 만 것입니다. 사회학자 에릭 프롬은 이런 현상을 인간 소외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기계를 만들었는데 그 기계로 자동화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 때문에 인간이 억압당하고 고통을 겪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편리하기 위해서 핸드폰과 삐삐를 차고 다닙니다. 어디서는 누구하고도 연락할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그런데 이제사생활이 없어졌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전화가 오기 때문에 일의 노예가 되고, 어디에 있어도 삐삐가 울리기 때문에 혼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인간 소외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고생하는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안타깝게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하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결책 본문 말씀은 그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한마디로 단순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복잡한 꾀를 만들어내지 말고 단순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살라는 말은 바보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신박약아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자 토마스 켈리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변함없는 삶의 원리나 기준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거룩한 중심을 세우고 그 중심을 의지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뚝이를 생각해 봅니다. 이리 밀어도 다시 일어나고, 저리 밀어도 다시 일어납니다. 이리 저리 흔들어도 제자리를 찾습니다. 심지어 뒤집어 놔도 제자리를 찾습니다. 오뚝이를 분해해 보면 밑바닥에 무거운 납덩이로 중심을 잡아 놓았습니다. 그 중심이 있어서 늘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중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늘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그 중심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중심을 세우고 사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튼튼한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가 우리 삶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삶의 우선 순위가 분명합니다. 예수를 먼저 생각합니다. 예수가 먼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선 순위를 결정할 때 원리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구하라'는 명령에 있습니다. 구하라는 말은 찾으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처지에서도, 어떤 일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아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상황,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교회의 일 이외의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집안 일에도, 직장 일에도, 국가 일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먼저 생각하고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로 그 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그 중심을 흔드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 중심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근심입니다. 걱정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는 근심을 쫓고 안전을 가져다 줄 것처럼 양의 옷을 입고 와서는 근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부가 사람에게서 근심을 쫓고 안전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마치 양을 늑대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늑대를 양에게 들여보내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면 근심 걱정이 없을 것 같아서 많은 것을 가지려 합니다. 재물도 갖고자 합니다. 명예도 갖고자 합니다. 권력도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또 다른 근심을 가져다줍니다. 오히려 근심을 가중시킵니다. 그러면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까 무소유가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까 다시 말해서 거지가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소유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려면 소유에 대한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소유에 대한 중심이 바로 서면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소유에 대한 중심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가족도, 내 재산도, 내 건강도 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는 빈손으로 왔고, 또 빈손으로 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쓰다가 돌려드리고 간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둘,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때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돈은 돌고 돕니다. 내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때만 유지된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셋,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위해 쓰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서만 쓰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쓰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복잡하게 사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단순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단순하게 사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 거룩한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지켜가야 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