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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히 행하라 (롬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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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2000년 전의 사람이나, 2000년 후의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닮은 것이 하나있습니다.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항상 종말 의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왔구나! 예수님이 오실날이 닥아왔구나!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다른 말로하면 위기의식을 늘 갖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차이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1900년전 사도바울이 쓴 것입니다. 사도들도 우리와 똑 같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수 있지 앉습니까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얼마나 바울이 긴박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바울이 살았는가 하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읽을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만 아니고 그 다음 세기에 태어난 사람도, 중세기에 살다가 간 사람도 18세기에 살다간 사람도 하나도 빠짐없이 성령님을 모시고 산사람은 자기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보았고,종말로 보았고, 준비해야 하는 자신으로 항상 생각하면서 살 았다가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보면 모순갖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마지막이 가까왔다.자다가 깰때가 되었다고 외쳤지만 그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지도 않았고,종말이 오지도 않았습니다.그리고 1900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2000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날마 다 종말이라고 하면서 살아야 그것이 원칙이냐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논리대로 말하면 모순입니다.그러나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하나님, 어제도 계시고,오늘도 계시고 영원토록 동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모순 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마지막 때로 정해놓은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로 정해 놓은 시간 그 것이 생긴 그 때로부터 그 다음의 모든 역사의 과정은 종말이요, 마지막인 것입니다. 제가 예를 하나들지요. 우리 가정에 대학입시를 앞둔 자녀들있지 않습니까 교육부에서 <올해의 대학입 시는 12월 15일날 치룬다>하고 발표를 합니다. 그 발표가 나오자마자 그 때부터 부모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나,위기의식을 갖게 됩니다.그 기간이 1년이 남았 든지 반년이 남았든지 한달이 남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한 2년이 남아도 상관 이 없어요.일단 입시 날자가 정해지면, 입시를 치루는 학생에는 위깁니다. 종말 이에요.
그러므로 날마다 밤잠을 자기 않고 준비하는 것입니다.이게 뭐 이상합니 까 모순입니까 <야 이놈아,1년이나 남았는데 뭐 벌써부터 식구들을 들복고 야 단이냐 한달 남겨 놓고 공부해라>이럴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종말을 정해 놓고 있어요. 자명종 시계에 딱 맞추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정해 놓은 것을 어떻게 아느냐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성령님의 사람은 압니다! 알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위기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마지막이구나.
그러므로 성령님 받은 사람은 15C에 살았든, 18C에 살았든지 오늘 살고 있든지 항 상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보면 종말의식을 갖는 것은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설명이 필요없지 않느냐 하는 말입니다. 왜 설명도 안하고 다 안다고 말합니까 성령님의 모시고 사는 사람은 너나없이 똑같은 의식을 갖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님의 사람이냐 아니냐를 이시간 이것가지고 점검해 보세요. 나에게 종말의식이 있느냐 위기의식이 있느냐 날마다 눈 뜨고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생각을 가지고 경건 한 자세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있느냐
그렇다면 성령님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편하게 되는대로 살고,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 다 나도 누 리면서 살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를 천년 만년 다녀도 그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집에 화재가 날 위험이 있으면, 집안에 있는 쥐들이 먼저 소란을 피우고,집에서 빠져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에 불이 붙어서 냄새가 나는데 들어 누워서 일어날 생각도 안한다면 그것은 쥐도 아니지요. 태풍이 불어와서 배가 침몰할 위기가 생기면 쥐가 먼저 알고 배안에서 소란을 피 운다고 합니다. 배가 가라앉는데도 먹고마시고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면 쥐가 아 닙니다. 분명히 쥐라면 위기본능이 예민해야 쥐라는 말입니다. 제가 쥐를 비교해서 빗대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성령님의 사람은 아는 것 이 있습니다. 위기 의식입니다. 세상 사람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성령님의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 보시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그렇게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면 오늘 우리는 몇갑절로 더 큰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예를 들었지 않습니까
11절에 <왜 벌써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고 말할수 있느냐>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바울이 예수 믿은지가 기껏해야 30여년 전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예수 믿은지는 불과 10여년에 불과하지만 그 10년 전에 비해서 지금은 얼마나 마지막이 가까왔느냐 그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살던 시대보다 1900년이나 지난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긴장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정해놓은 시간이 분명히 있는데 그 시간에 1900년 만큼 가까워졌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재림과 함께 우리가 누리게 될 최후 의 영화를 가리킵니다.롬8:30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이 영화가 우리 앞에 있지 않습니까 이 영화가 우리 앞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새몸을 입고, 천군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영원토록 생명수 강가를 거니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 그 영화!,이것을 여기서 구원이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기도하고,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또 그 둘을 같이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됩니다.이것 이 여기서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하고는 떼어 놓을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까요 재림의 때는 하나님이 자기의 절대 주권을 가지고 정해 놓은 불변의 시간입니다.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절대적인 시간 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늦출수도 없고,앞당길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약속된 시간입니다. 타이머에 맞추어 놓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때 그 것은 정해져 있지만,그 때가 정확하게 언제인지를 알려주는 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죽음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죽음의 때가 정해져 있어요. 하나님 만이 아시는 때가 있습니다. 황목사가 언제 죽을 것인가-저는 언제부터인가 나의 죽음에 대 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감있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이 정해 놓았어요.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 있어요.그러나 그 일시가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황목사가 언제 죽을까 몰라요! 죽는 것은 분명하고 그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알지 만 그 시간은 아무도 몰라요
그러므로 이 미지의 약속된 사건이라고 할수 있는 죽음은 그 일시를 정확하게 모 르기 때문에 모르는 그 것으로 인해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우리에게 덮칠 수 있는 현재의 우리의 사건이요,현재의 위기라고 우리는 말할수 있습니다. 날마다 오늘 죽어야 한다는 생각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나간 사람들이 저녁에 시체가 되어서 들어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놀러 나간 사람들이 공동묘지로 직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청운의 뜻을 품고,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며 성공을 앞에 놓고 있는 청년이라도 찾아온 죽음을 거부하지 못하고 맞아들여야 합니다. 모르니까!
그러므로 날마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정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오신다는 때는 정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그 일시는 가르쳐 주시지를 않았기 때문에 <오늘이 아닐까 항상 오늘이 아닐까 내일이 아닐까>하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일어날수 있는 현재의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정신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르쳐주신 말씀들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우리가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기에 있는 것보다는 그 날이 언제인지,그 시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종말의식을 가져야 된다는 점에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 24: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계 역사의 종말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언제 올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이 예수그리스도 를 알게 된 때가 되어야 마지막 때가 올 것이요,예수님이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언제이냐 아직 세계 복음화가 시작되지도 않은 때입니다. 성령님 충만한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았던 때입니다. 그러니 감감하지요. 얼마나 걸릴지도 모릅니다.그런 때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24장에서 또,<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또 25장 13절에 가서 <께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세계 복음화가 다 되어야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고 가르치시고는 바로 깨어 있으 라고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아직 때가 많이 남은 것 같지. 그러나 그 때, 마지막 일시를 너희가 모르지 않느냐 그러니 매일매일을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확한 일시를 모를 때 실수를 하지 않는 비결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미 리가서 대기하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잘 모르는 우리를 성령님께서 가르치시고,일깨우시고, 권면하 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자각하고 사는 성령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1. 빛의 갑옷으로 무장하자. 12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 옷을 입자
2.단정히 행하라. 13절
3.그리스도로 옷입자 14절
이 세가지의 말이 본문에 나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사람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말은 잘 생각해 보면 다 같은 의미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단 정히 행하라>는 말속에 다 포함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종말의식을 가진 사람은 단정히 행하는 것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단정히 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단정히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떠게 행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보고 비교해 보면 좋겠습니다. 단정히 못하는 사람은 밤에 깨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밤 중에 깨지 못하고 뒤척거리면서 사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밤거리를 돌아 다니는 건달 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하나님은 이 세상의 역사를 밤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캄캄한 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침상에서 뒹구는 잠을 자는 사람에 비유하 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는 잠자는 것이 요,밤을 헤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은 난잡합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목적이 없습니다.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해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목적이 있기는 있어도 생명을 걸만한 목적이 되지를 못합니다. 영원한 목적이 되지를 못 합니다.영원한 진리가 되지도 못합니다.나름대로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것 같지 만, 허무한 것이요,나중에는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는 지푸라기와 같은 것들을 쥐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밤의 역사요, 밤의 역사를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그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 방탕한다고 그랬습니다.13절 밤에 길거리를 쏘다니는 건달을 말합니다. 목적이 없어요. 의미가 없어요.기분 내키는대로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돌아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를 않습니까 뭐 누구라고 말할 것없이 다그래 요. 무슨 목적이 있나요.의미가 있나요. 그들에게 하나님이 있습니까 없어요.
2. 술취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한잔두잔 마시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예 세상 재미에 푹 빠진 사람을 일컬어 술취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이가운데 술 좋아하는 사람있습니까 예수보다도 술을 좋아하는 분! 잠자는 사람입니다.
3.음란입니다. 코이테라는 말입니다. 침대라는 말입니다. 침대라는 말과 음란과는 뭐가 있습니다.하나님이 금하신 침대에 오르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이 금하신 성적인 관계 가 다음란입니다. 금지된 영역을 함부로 범하면서 너좋고 나좋으면 괜챦지 않느 냐 서로 눈만 잦으면 되지 않느냐하는 것이 음란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빠져 들어가는 무서운 함정입니다.
4.호색한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에 철판을 깐 파렴치를 가르칩니다.자기의 잘못을 감출려 고 하지를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내보란듯이 짓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짓을 해 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이게 호색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이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만난 여인들 <떨어져서 다음에 또 와야지>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뻔뻔스런 사람이지요.
5. 쟁투입니다. 난폭하고 악한 경쟁심을 가지고 언제나 자기만을 내세우는 이기주의입니다. 남을 짓밟고라도 자기만은 잘살겠다고 하는 무서운 욕망이 이 쟁툽니다.
6. 시기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탐하고, 비판하고, 욕하고, 악평하는 고약한 마음, 이것이 시깁니다.
그들의 생각에 위기가 없으니까,그들의 삶에 분명한 목적이 없으니까, 장차 누구 를 만나야 하겠다는 분명한 종말의식이 없기 때문에 되는대로 사는 거에요. 밤 골목길을 마음대로 쏘다니면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건달패처럼 사는 것이 오늘날 종말의식이 없는 세상 사람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단정하게 살아야하는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역사는 낮과 같습니다. 낮이 오면 밤은 점점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우리 앞에는 이 낮이 닥아오고 있습니다. 여 명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스스고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이래서는 안된다>자기를 나무라고 자기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이 단정히 행한다는 사전을 보면 얌전하고 바른 것을 말합니다. 품행이 단정하다 그러면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않습니까 단정히 앉아 있다.-그러니까 흐트러짐이 없는 언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좀더 우리 자신에게 와 닿는 표현을 붙인다면 <뭐 뭐 답다> 라는 말을 붙 일수가 있습니다. <학생답다><한국사람답다><충청도사람답다> <예수 믿는 사람답다> <내일 주님을 오실 것을 기다리는 사람답다>이것이 단정히 행하는 것입니다. 내일 모래 이 세상의 마지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종말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답다. 답다-왜 다우냐 흩트러진 모습이 안보이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이 단정하게 행동하는 삶은 되는대로 사는 잠자는 사람같은 그 들의 생활과는 벌써 칼라가 다르고, 벌써 겉모양이 다른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을 앞세우지만, 우리는 영을 앞세웁니다. 할렐루야! 그들은 세상을 항상 의식하고 살지만 우리는 내세를 항상 바라보고 삽니다. 할렐 루야! 그들은 모든 것을 다가지고 누릴 것처럼 살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날 사람처럼 삽니다. 무언가 달라요 그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고, 내일인지 모랜지 이 세상에 오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최상의 생의 목표로 삼고 하루하루를 삽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단정히 생활하는 자를 일컬어서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허 리에 띠를 띠고 문 열에 서있는 하인>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주인이 오늘밤에 오신다고 했으니까 분명히 오시는데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언제 오실지를 몰라요. 그래서 하인이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등불을 일찍 켜 놓고, 허리를 띠고 주인이 왔을 때 흩트러지지 않고 기쁘게 맞이할수 있게 문 옆에서서 기다리는 것에요. 이것이 단정히 행하는 것에요. 그럼으로 우리는 세상 사람처럼, 방탕할수 없습니다. 음란할수 없습니다. 호색할수 없습니다. 시기와 쟁투할수 없 습니다. 우리는 달라요. 주님을 만날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와같은 삶을 가리켜서 MADE IN KINGDOM OF GOD의 딱지를 달고 있는 사람의 삶이라고 했습니다.그렇죠. 우리의 경건한 삶. 단정히 행하는 삶은 천국 산 물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쓰여져 있나요.MADE IN 세상 그렇죠. 무엇인가 상표부터가 달라요.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말세를 대비하는-즉 단정히 행하는 삶은 그 긴장도가 높 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다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아니면 현실 생활을 떠나서 오 직 그날,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도피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이렇게 잘 못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례를 너무 많이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예수님이 오실 일시를 정확하게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돌 아 갑니까 두가지 말로 표현할수 있습니까 일상생활의 포기-가정도 포기하고,직장도 내버리고 무슨 돈이냐 무슨 출세냐 무슨 대학입시냐 하고 다 포기시키고,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직장 다니기 싫은 사람들, 집안일에 싫증난 여자들-잘됐다 다 포기하자! 그리고는 더 나아가서는 무엇입니까 도피하는 것입니다.-현실도피-그들끼리 모여서서는 그날 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정히 행하는 삶이냐하고 물을 때 성경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인이 자기 남편을 구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어요. 그 남편은 시한부 종말 론에 빠져 가지고 직장도 내버리고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도 몽탕 갖다 바쳐 버리 고 가정에도 돌아오지 아니하고,주님을 만날려면 24시간 기도만 해야 한다니까 기도만 하고 앉아있어요. 언제까지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그 때까지 기도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한 일시를 아니까 행동이 그렇게 나와요. 그래서 분명히 마지막 때를 정해 놓고서도 그 일시를 우리에게 정확히 알려 주시 지를 않고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예를들면 저의 죽는날자를 정확히 알려 주셨다면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한달 5 년후 10월 1일이다 이렇게 알려 주셨다면 다 집어치우고, 좀 그동안 편안하게 살 아 볼까 내가 미쳤다고 땀흘리고 무슨 계획을 세우며,책을 보고,새로운 것을 배 우고 하겠어요. 이러지 않겠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의 정확한 죽을 날을 알려 주시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고 요. 예수님의 재림을 정확하게 알려 주시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엉터리로 일시를 정해 놓아도 사람들이 다 미쳐 버리지 않아요. 미쳐서 돌아가 요. 그러니 일시를 알려 주지 않은 우리 하나님을 감사해야 돼요. 어떤 사람들은 일시를 왜 모르느냐 성경을 그렇게 보고, 연구했다고 하면서,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대들지 마세요. 알면 무엇할 것입니까 알 면 미치지.미치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일시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 것이 말세를 사는 방법이냐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단정히 행하라> 단정은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도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의 생활에 충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충실하되 한눈 팔지 말고, 좌우로 두리번 거리지 말고, 내일일지,모래일지 모르 지만 그 분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는 사람될려고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단정히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업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주님이 오 시는 그 날까지. 자녀 교육 시키느라고 밤낮없이 고생하는 주부들-열심히 해야합니다. 공부 못 하는 자식을 생각하면 입시전날 예수님이 오셨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정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산돌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단정히 사는 성도들이 많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모두 단정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늘 종말의식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살아야 하 겠습니다. 주머니에다가 카드를 놓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꺼내서 외우고, 두툼한 바인더를 꺼내 놓고 책을 펴면, 자녀들이 엄마도 숙제하는구나! <내가 좀 도와 줄까> 이웃에 이사온 사람만 있으면, < 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에 데려 갈 까><한번만 우리 교회에 와서 목사님 설교를 들어 보았으면 좋을 텐데> 궁리하는 사람들을 이런 사람들을 보고 누가 잔다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단정하지 않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이런 분들이 얼마나 많아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입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산돌교회를 나가라! 똑같은 예수쟁이라도 산돌교회 교인이라야 진짜다!하는 소리를 듣게 될 줄로 믿습니다.왜 그런이야기를 들을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단정히 행하고, 또 그렇게 노력하고 있으니까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도 그렇게 믿고 있는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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