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는 사람아 (롬2:1-11)
본문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속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판단하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 판단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의 사이에 금이 가고 결국에는 그로 말미암아 교회의 분열이 생기고 교회에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서신을 쓰면서 먼저 1장에서 우리 인간들의 죄악을 고발했는데 그 죄악 된 더러운 죄를 낱낱이 다 열거하고 결국에는 우리 인간들이 그 죄악됨의 한계를 넘어섰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범죄한 인간들을 내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후 에 바울은 2장으로 넘어와서 그렇게 죄를 짓는 모습들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한 문제를 제시함으로서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경각심을 던져줍니다. 판단의 문제입니다. 롬 2:1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 판단 문제에 대한 사도바울의 호된 지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게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 얼 마나 준엄한 꾸지람입니까 이제 이 시간 우리는 이런 준엄한 꾸지람 앞에 우리 들 자신을 조명해 보아야만 합니다.
1. 이 꾸지람은 누구에게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준엄한 꾸지람은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선민이라고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기도를 할때마 다 '주여 ! 나로 하여금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남을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대단한 자부심의 사람들인 유대인들에게 한 것입니다. 유대 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자기들 스스 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선민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사마리아인들을 개처럼 여기면서 살아왔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 습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참으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우월감에 빠져있는 유대 인들에게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같은 일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방인이나 너희들 유대인들이나 다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이런 사도바울의 유대인들에 대한 지적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내세우면서 우리 스스로만을 위한 우월감이 우리들 마음속에 얼마나 많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물론 이 분분에 대해 우리가 지적을 받을때 마다 철저하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을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 중에, 우리의 몸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행동중에 그런 우월감이 깊숙이 자리를 잡 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제 2의 유대인이 되어가 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런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주님앞에 바로 설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비록 다메섹도상에서 주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고 삼층천에 갔다온 경험이 있었지만 철저하게 타락한 자신의 본질을 고백했습니다.
롬 7:23-24의 내용입니다. "내 지체속에는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 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 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기독교 교리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도 기초적인 것은 전적타락입니다. 자 기의 죄인됨에 대한 전적인 인정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의 출발인 것입니다. 이런 인정함이 없이 자기만 옳고 자기만 의인이고 그래서 남을 판단만 하는 위치에 선다면 그것은 지극히 잘못된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2절과 3절 말씀 을 통해 알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하자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선민인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사람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6-9절 말씀을 보면 더욱 더 생동감있게 이 부분에 대해 자세 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6절,"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라고 하시면서 먼저 7절을 보면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두번째로 8-9절을 보면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 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 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판단하시되 그 결과까지도 자세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이 이런 말씀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 당시 의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이 강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기들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좋은 판단을 받으리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극히 잘못된 것임을 바울은 저들 유대인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인격 한 인격을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공 정하기 때문에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력자나 힘없는 자가 다 같은 판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들 자신을 다시 한 번 더 되돌아 보아야 만 합니다. 더욱 더 겸허해지는 우리들 자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절대로 어떤 우 월 의식속에서 남을 판단하거나 비웃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상대방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인간 쓰레기같이 보일지라도 그 사람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차이가 없다는 그런 심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는 똑같은 죄인임을 감 상적으로가 아닌 실제적으로 가슴 깊이 인정을 해야만 합니다. 바로 여기에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이제 어 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롬 2:13의 말씀이 그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율법을 듣고 깨닫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듣고 깨달았다면 이제 그 듣고 깨달은 것을 행동에 옮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본분됨을 잊어버리 고 판단을 했다면 이제는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약 4:12에서는 말씀 하십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되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형제를 비방하며 판단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월권하는 교만한 자이니 이러한 자는 하나님이 멸하 신다는 무서운 경고인 것입니다. 1856년 5월 7일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궁중에서 나올때 적의 습격을 받았 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정부의 고관대작들 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위문차 방문을 했습니다. 방문을 받은 비스마르크의 부인은 기뻐서 연회를 열면서 말하기를 "-참으로 고약한 놈이예요. 그런 놈 은 죽더라도 반드시 천당에는 못갈거예요 !"라고 하면서 습격을 받았던 남편을 생각하면서 분이 나서 악담을 했습니다. 이때 비스마르크 재상은 말하기를 "흥 ! 그런 말을 하는 당신도 천당에 가기가 어려울걸 !"이라고 하면서 주위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비방하는 자는 천국의 시민으로서 합당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 학자는 "비방하고 판단하는자는 삼중의 독을 흘리게 된다. 곧 비방하는 자신과 비방을 듣는자와 비방을 당하는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산소망교회는 1995년을 말씀으로 전진하는교회라는 표어를 내어걸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런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할 부분이 바로 오늘의 말씀의 내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아름다운 예배당을 가졌다 하더라도 남을 판단을 하는 일이 성행하는 교회라면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썩어서 부패하는 더러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겉모양은 아름다운 예배당을 가지지 못해도 베드로전서 4:8의 말씀대로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말씀이 실천되어지는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될것입니다. 우리 산소망교회는 후자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보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의 말씀과 결부가 되어지는 이솝의 이야기 하나를 함으로 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번은 동물의 왕인 사자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러자 숲속에 있는 온갖 동물들이 사자에게 와서 병문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일 에는 누치빠르게 제일 먼저 와 있곤 하던 여우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우에게 평소에 여러번 골탕을 먹었던 늑대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사자에 게 살살 다가가서 여우의 그런 비리를 다 폭로했습니다. 여우가 병문안을 안오는 이유는 사자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증거라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여우가 들어왔습니다. 이제껏 늑대에게서 여우의 못된 것을 듣고 있던 사자는 여 우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놈 여우야 ! 괘씸한 놈 같 으니라구" 들어오다가 늑대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여우는 조금도 겁을 내거나 움추러 들지 않고 말했습니다. "대왕님 병문안을 빨리 오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 시오. 그러나 저도 놀다만 온것이 아닙니다. 실은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의사들 에게 대왕님의 병을 고치는 법을 알아왔습니다." 그 말에 화가 풀린 사자가 "오 그래 그러면 도데체 어찌해야 내 병이 낫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여우는 "그건 저 늑대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 아픈 곳에 붙이시면 낫는답니다."라고 대 답했습니다. 여우의 말에 사자는 당장 부하들로 하여금 늑대의 가죽을 벗기게 했 답니다. 성도 여러분 !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파악했는줄로 압니다. 남의 잘못을 비방하면 결국에는 그 결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지금 이 시간에도 호시탐탐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방참 으로 잘못 판단함으로 악한 마귀의 노략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1995년도도 우리 성도님들 판단의 자리에 서지않고 서로 위해주고 사랑 으로 덮어주는 한해가 되시시를 바랍니다.
1. 이 꾸지람은 누구에게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준엄한 꾸지람은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선민이라고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기도를 할때마 다 '주여 ! 나로 하여금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남을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대단한 자부심의 사람들인 유대인들에게 한 것입니다. 유대 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자기들 스스 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선민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사마리아인들을 개처럼 여기면서 살아왔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 습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참으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우월감에 빠져있는 유대 인들에게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같은 일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방인이나 너희들 유대인들이나 다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이런 사도바울의 유대인들에 대한 지적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내세우면서 우리 스스로만을 위한 우월감이 우리들 마음속에 얼마나 많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물론 이 분분에 대해 우리가 지적을 받을때 마다 철저하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을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 중에, 우리의 몸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행동중에 그런 우월감이 깊숙이 자리를 잡 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제 2의 유대인이 되어가 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런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주님앞에 바로 설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비록 다메섹도상에서 주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고 삼층천에 갔다온 경험이 있었지만 철저하게 타락한 자신의 본질을 고백했습니다.
롬 7:23-24의 내용입니다. "내 지체속에는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 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 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기독교 교리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도 기초적인 것은 전적타락입니다. 자 기의 죄인됨에 대한 전적인 인정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의 출발인 것입니다. 이런 인정함이 없이 자기만 옳고 자기만 의인이고 그래서 남을 판단만 하는 위치에 선다면 그것은 지극히 잘못된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2절과 3절 말씀 을 통해 알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하자면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선민인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사람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6-9절 말씀을 보면 더욱 더 생동감있게 이 부분에 대해 자세 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6절,"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라고 하시면서 먼저 7절을 보면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두번째로 8-9절을 보면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 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 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판단하시되 그 결과까지도 자세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이 이런 말씀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 당시 의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이 강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기들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좋은 판단을 받으리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극히 잘못된 것임을 바울은 저들 유대인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인격 한 인격을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공 정하기 때문에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력자나 힘없는 자가 다 같은 판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들 자신을 다시 한 번 더 되돌아 보아야 만 합니다. 더욱 더 겸허해지는 우리들 자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절대로 어떤 우 월 의식속에서 남을 판단하거나 비웃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상대방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인간 쓰레기같이 보일지라도 그 사람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차이가 없다는 그런 심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는 똑같은 죄인임을 감 상적으로가 아닌 실제적으로 가슴 깊이 인정을 해야만 합니다. 바로 여기에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이제 어 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롬 2:13의 말씀이 그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율법을 듣고 깨닫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듣고 깨달았다면 이제 그 듣고 깨달은 것을 행동에 옮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본분됨을 잊어버리 고 판단을 했다면 이제는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약 4:12에서는 말씀 하십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되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형제를 비방하며 판단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월권하는 교만한 자이니 이러한 자는 하나님이 멸하 신다는 무서운 경고인 것입니다. 1856년 5월 7일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궁중에서 나올때 적의 습격을 받았 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정부의 고관대작들 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위문차 방문을 했습니다. 방문을 받은 비스마르크의 부인은 기뻐서 연회를 열면서 말하기를 "-참으로 고약한 놈이예요. 그런 놈 은 죽더라도 반드시 천당에는 못갈거예요 !"라고 하면서 습격을 받았던 남편을 생각하면서 분이 나서 악담을 했습니다. 이때 비스마르크 재상은 말하기를 "흥 ! 그런 말을 하는 당신도 천당에 가기가 어려울걸 !"이라고 하면서 주위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비방하는 자는 천국의 시민으로서 합당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 학자는 "비방하고 판단하는자는 삼중의 독을 흘리게 된다. 곧 비방하는 자신과 비방을 듣는자와 비방을 당하는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산소망교회는 1995년을 말씀으로 전진하는교회라는 표어를 내어걸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런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할 부분이 바로 오늘의 말씀의 내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아름다운 예배당을 가졌다 하더라도 남을 판단을 하는 일이 성행하는 교회라면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썩어서 부패하는 더러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겉모양은 아름다운 예배당을 가지지 못해도 베드로전서 4:8의 말씀대로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말씀이 실천되어지는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될것입니다. 우리 산소망교회는 후자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보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의 말씀과 결부가 되어지는 이솝의 이야기 하나를 함으로 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번은 동물의 왕인 사자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러자 숲속에 있는 온갖 동물들이 사자에게 와서 병문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일 에는 누치빠르게 제일 먼저 와 있곤 하던 여우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우에게 평소에 여러번 골탕을 먹었던 늑대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사자에 게 살살 다가가서 여우의 그런 비리를 다 폭로했습니다. 여우가 병문안을 안오는 이유는 사자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증거라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여우가 들어왔습니다. 이제껏 늑대에게서 여우의 못된 것을 듣고 있던 사자는 여 우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놈 여우야 ! 괘씸한 놈 같 으니라구" 들어오다가 늑대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여우는 조금도 겁을 내거나 움추러 들지 않고 말했습니다. "대왕님 병문안을 빨리 오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 시오. 그러나 저도 놀다만 온것이 아닙니다. 실은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의사들 에게 대왕님의 병을 고치는 법을 알아왔습니다." 그 말에 화가 풀린 사자가 "오 그래 그러면 도데체 어찌해야 내 병이 낫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여우는 "그건 저 늑대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 아픈 곳에 붙이시면 낫는답니다."라고 대 답했습니다. 여우의 말에 사자는 당장 부하들로 하여금 늑대의 가죽을 벗기게 했 답니다. 성도 여러분 !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파악했는줄로 압니다. 남의 잘못을 비방하면 결국에는 그 결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지금 이 시간에도 호시탐탐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방참 으로 잘못 판단함으로 악한 마귀의 노략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1995년도도 우리 성도님들 판단의 자리에 서지않고 서로 위해주고 사랑 으로 덮어주는 한해가 되시시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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