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롬2:17-3:8)
본문
우리는 로마서 1,2장을 걸쳐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인간이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인간을 해부하여 깊은 부분들을 드러내는데 모두 우상숭배자요, 각종 불의를 행하는 자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가진 자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지적에 대하여 감히 ‘나는 아닙니다!’라고 항변할 어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 끝까지 자기들만은 아니라고 고집하는 자만스런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지적대로 바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 수십년을 고생하기도 하였던 전력이 있습니다. 그같은 고초 속에서 회개하므로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 자랑할 만한 과거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란 말의 뜻은 ‘칭찬’ 또는 ‘찬송’이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름에 못지않게 유대인은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혈통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졌던 우월감이란 정말 대단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을 보기를 ‘지옥불의 땔감’정도로 여겼겠습니까 그만큼 그들은 위대한 민족이라고 과시하고 자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민족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내주시겠다는 것과 그분을 통하여 온 세계가 복을 받도록 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이정도로 하나님께 보장을 받은 백성이라면 분명 대단한 축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만도 합니다. 그러나 우월감이 지나친 나머지 그들은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멸망 받아도 자기 민족만은 구원받는다는 유아독존적인 교만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이방인들 보다도 더 악한 죄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유대인들이 왜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인이 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렇게하여 드러나는 그들의 문제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본론'
1. 유대인의 치명적인 문제점(17-24) 17절에,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뜻을 세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라는 말은 유대인의 긍지를 꼬집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유대인이라고 우줄대는 네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가진 좋지못한 특권의식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율법에 의지하여’라는 말은 율법에 기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가장 복된 민족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느때고 율법을 가지고 나오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라는 말은,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독선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지름이 약 20cm 쯤 되는 빵모자인데 회당에 예배드리러 나갈 때는 물론, 심지어 전쟁터에 나갈 때도 철모밑에 받쳐 쓰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가 오직 유대 민족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내보이는 행동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18절에,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자녀를 낳으면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철저히 가리킨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 계명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십계명을 배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아는데 남다른 영적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고”라는 말씀은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이 유대인들에게는 있다는 뜻입니다. 19절을 보십시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지닌 자로서”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 때문에 진리가 무엇인가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실제적인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민족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만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을 배울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롬3:1-2)을 보십시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의 특별히 우월한 점이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신명기4: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소유한 것 때문에 지혜로운 민족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신4:6)“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그만큼 유대인은 율법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가 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컸던 만큼 유대인의 우월의식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자기 교만에 빠져드는 함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내용이 19절 마지막 부분부터 나옵니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나” 여기서 소경, 어두움에 있는 자, 어리석은 자, 어린아이, 이런 말은 모두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유대인이 율법을 갖지 못한 이방사람들을 얼마나 깔보고 있었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갖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한 선생으로 자처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이방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을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자기부터 먼저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롬2: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얼마나 신랄한 책망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실 때, 밑도끝도 없이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 대시며 나무라십니다. 그들이 왜 이런 책망을 받아야 하는지를 사례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여기서 반포한다는 말은 큰 소리로 떠든다는 뜻이요, 도적질하는 것은 8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8계명에 저촉되는 줄 잘 알면서 겁 없이 남의 것을 훔쳤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고리대금업으로 악명을 떨쳤던 민족입니다. 그들의 상술과 금전욕은 정말 지독해서 인정 사정없이 악랄한 방법으로 재물을 긁어 모으는 것으로 정평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 중에 나오는 샤일록 같은 인물이 바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직접, 간접으로 도적질을 자행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례가 나옵니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구약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면서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많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간음죄는 7계명을 범하는 것이라고 남을 가르쳐면서 그들 자신은 은밀한 방법으로 그 계명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인류 역사상 유대인들 만큼 우상숭배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들도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도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우상 쪽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유대민족의 종교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대로, 유대민족은 우상숭배로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아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었습니다. 그곳에서 7-80년의 엄청난 고난을 겪으며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들이 해방되어 귀환했던 주전 538년부터 시작하여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던 당시까지 약 600년 동안 한번도 우상숭배에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유대인이 우상을 가증히 여겼다고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리가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우상숭배는 멸시했지만, 돈을 벌 수 있을 때는 우상을 훔쳐서 팔아먹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직접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지만 이방인들에게 우상숭배에 필요한 물건을 팔아서 돈벌이 하는데는 열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고 이방이들은 우상 섬기는데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았던 것입니다. 훔쳐서 파는 장물은 아무래도 값이 떨어지기 마련이니, 어떻게 보면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식으로 된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몰라서 그런 죄를 지었느냐 차라리 몰라서 그랬다면 변명의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알면서 훔치고 알면서 남을 죄짖게 만들었으니 그 죄를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도적질, 간음, 우상물건을 훔쳐 팔아먹는 것 등은 유대인의 죄상을 몇가지 예를 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그들은 온갖 가증스런 죄악을 거침없이 자행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롬2:23-24)“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들의 언행을 보고 욕을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의 율법이니 하고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죄를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적 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선은 겉으로만 착한 척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으로는 거룩한 말을 늘어놓지만 행동은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요즘같이 악한 세상에서 도적질, 간음, 우상숭배 따위는 흔히 볼 수 있는 죄입니다.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범할 가능성이 많은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일하게 지은 죄라도 유대인이 범할 때는 그 죄가 더 무겁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대략 3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2. 유대인 범죄의 심각성
1) 나쁜줄 알면서도 죄를 범하기 때문에 그 죄가 심각하다. 이런 의미에서 세리와 창기의 죄보다 바리새인의 죄가 더 크고, 불신자의 죄보다도 신자의 죄가 더 크며, 이방인의 죄보다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표리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 죄가 심각하다. 입으로는 거룩을 외치지만 행동은 가증스러운 짓을 함부로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가 됩니다. 이런 이중서을 꼬집어 예수님은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한다’(마23:3)고 꾸짖으시고 이것을 회칠한 무덤에다 비유하셨습니다. 겉모양은 호화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차 있다는 말입니다. 표리가 다른 행동 때문에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그 죄가 심각하다. 이방인이 죄를 범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죄를 범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죄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우리도 섬깁니다. 유대인이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는 율법을 우리도 배웁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고 거룩한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나쁜줄 알면서도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불신자의 범죄보다 신자의 죄가 더 크게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반드시 명심해야 됩니다.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베푸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도 위선을 할 수 있습니다. 성직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위선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유대민족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더욱 위선자가 될 소지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참 믿음은 순종을 통하여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좀 안다고 거드름을 피우지 마십시요. 중한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당당하지 마십시요. 진실된 말씀의 순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위선자가 되고 맙니다.
3. 할례에 대한 유대인의 교만(또 다른 유대인의 문제점)(25-29) 25-29절까지는 유대인의 할례문제를 다룹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의 표로 행하는 의식으로, 남자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지 8일만에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것을 가르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유대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언약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는 약속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유대민족이 선민으로 택함받은 동시에 하나님은 유대민족의 주권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며 축복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자격증을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태어난지 8일만에 꼭 할례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할 수있는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할례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이 할례를 너무 귀하게 여긴 나머지 잘못된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할례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할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쓴 글 중에는 이같은 글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 자격으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구원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개인은 자동적으로 그 구원에 포함된다. 할례만 있으면 비록 죄인이라도, 순종치 않아도,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난 자손들은 천국을 상속받게 된다.” 이 얼마나 비약인 논리입니까 할례라는 형식만 있으면 구원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졌던 것입니다. 25-29절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순종없는 할례는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25). (롬2:25)“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아무리 할례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순종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할례는 무효입니다.
2) 할례없는 순종이 유효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26) (롬2:26)“그런즉 무할례자 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것이 아니냐” 할례받 지 않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오히려 그 사람은 할례받은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하나님은 가르친다. 27절에 나오는 ‘의문’이라는 말은 글로 씌어진 율법책을 의미합니다. 율법과 할례가 있어도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보다 율법책도 없고 할례도 없이 순종하는 이방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3) 진짜 할례는 몸에다 표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마음이 변화되는 데 있다고 가르칩니다(29). (롬2: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 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면적 유대인, 즉 영적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짜 유대인이지 몸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통하여 마음이 할례를 받아 새사람이 된 자라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몸에다 할례 자국만 남겼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할례받은 사람이 순종하지 않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의 주권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할례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절대 권력자로 모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순종하겠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할례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복종을 서약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갈5: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할례를 받으면 율법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순종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할례를 형식이라 한다면 순종은 내용입니다. 형식과 내용을 함께 갖추는 것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는다면, 내용을 취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할례를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편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할례만 남고 즉, 형식만 남고 내용인 말씀에 대한 순종은 없어졌으니 큰 죄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형식주의는 굉장히 위험한 함정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분 중에는 신앙생활을 타성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또 기도를 건성으로 드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사람은 형식적인 신자입니다. 이런 신자는 마치 비행기에서 낙하산 대신에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걸치고 띄어내리는 사람과 같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다시말해 형식주의는 자살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형식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4. 유대인들의 궤변(3:3-8) 이 본문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궤변을 기록한 것입니다. 앞에서 유대인들을 위선자요, 형식주의자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혹독하게 바울이 비판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듣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예상한 바울이 예상되는 반박에 선수를 쳐서 입을 막는 내용인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만일 바울을 향하여 “당신 말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하고 약속한 언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리는 것이 아닙니까 할례받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우리를 버릴 때는 언제입니까 그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미리 바울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순종하지 못한 죄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가 됩니다. 죄를 적당히 봐주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소 말도 안됩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것이나 의롭지 않는 것이 없고 하나님의 판단은 어느 것이나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신 분이오” 그러자, 유대인이 또 질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소, 당신 말을 들으니 우리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호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서 잘된 것 아니요
그런데 왜 우리를 향해 진노하는 거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은 더 의롭게 보일것이 아니요
그런데도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요. 오히려 우리에게 공로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소” 이에 대해, 바울은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는 당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오!” 이렇게 해서 논쟁이 끝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조금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특별히 선택하셨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위선과 형식주의를 정당화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한번 죄에 빠직도 즉시 회개하지 않을 때는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는 데 놀랍도록 영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대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완악해 지는데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회개하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 단계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은 악해질 대로 악해지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죄는 비단 유대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교회를 드나드는 형제들 중에 이렇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습성에 빠져있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테스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유대인 처럼 자시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다음 이야기에서 한 가지라도 공감되는 것이 있으면 자신도 유대인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도 될 것입니다. 가룟유다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려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데, 그러면 누군가가 예수를 팔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기에 유다가 생각다 못하여 자기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가룟 유다를 욕하느냐 오히려 상을 주어야지!” 이에 공감하십니까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대해서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심어놓고 유혹을 받게 하냐 그리고는 왜 그 결과를 힘없는 인간에게 뒤집어 씌우느냐 말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한한 사랑을 가진 분이라면 만인을 무조건 구원해야 마땅하지, 왜 믿는 자만 구원하냐 째째하게 믿기만하면 구원받는다 해놓고 왜 자꾸만 순종하라고 하는가 그러면 행위 구원에 빠지지. 이렇게 악한 세상에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어”하고 은근히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 자체가 유대인의 근성과 흡사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론' 참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변호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정당화를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설혹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은 옳습니다. 제가 잘못해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하고 겸손하게 무릎꿇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비록 말씀을 배우고 아는만큼 순종해 보려고 몸부림쳐보지만, 온전하게 순종하지 못하여 고통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위선도 합니다. 어떤 대는 형식주의자로 행세합니다. 어떤 때는 잘못을 변호하려고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저런 구실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긍정하는 사람이요, 말씀을 아는만큼 순종하지 못하는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요, 말로만 떠들고 행동이 따라오지 못하는데 대해서 가책을 받는 성령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은 은혜를 주신것에 대해서 감사드립시다. 유대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 끝까지 자기들만은 아니라고 고집하는 자만스런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지적대로 바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 수십년을 고생하기도 하였던 전력이 있습니다. 그같은 고초 속에서 회개하므로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 자랑할 만한 과거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란 말의 뜻은 ‘칭찬’ 또는 ‘찬송’이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름에 못지않게 유대인은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혈통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졌던 우월감이란 정말 대단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을 보기를 ‘지옥불의 땔감’정도로 여겼겠습니까 그만큼 그들은 위대한 민족이라고 과시하고 자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민족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내주시겠다는 것과 그분을 통하여 온 세계가 복을 받도록 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이정도로 하나님께 보장을 받은 백성이라면 분명 대단한 축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만도 합니다. 그러나 우월감이 지나친 나머지 그들은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멸망 받아도 자기 민족만은 구원받는다는 유아독존적인 교만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이방인들 보다도 더 악한 죄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유대인들이 왜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인이 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렇게하여 드러나는 그들의 문제점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본론'
1. 유대인의 치명적인 문제점(17-24) 17절에,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뜻을 세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라는 말은 유대인의 긍지를 꼬집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유대인이라고 우줄대는 네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가진 좋지못한 특권의식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율법에 의지하여’라는 말은 율법에 기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가장 복된 민족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느때고 율법을 가지고 나오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라는 말은,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독선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지름이 약 20cm 쯤 되는 빵모자인데 회당에 예배드리러 나갈 때는 물론, 심지어 전쟁터에 나갈 때도 철모밑에 받쳐 쓰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가 오직 유대 민족만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내보이는 행동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18절에,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자녀를 낳으면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철저히 가리킨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 계명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십계명을 배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아는데 남다른 영적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고”라는 말씀은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이 유대인들에게는 있다는 뜻입니다. 19절을 보십시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지닌 자로서”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 때문에 진리가 무엇인가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실제적인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민족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만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을 배울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롬3:1-2)을 보십시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의 특별히 우월한 점이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신명기4: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소유한 것 때문에 지혜로운 민족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신4:6)“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그만큼 유대인은 율법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가 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컸던 만큼 유대인의 우월의식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자기 교만에 빠져드는 함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내용이 19절 마지막 부분부터 나옵니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나” 여기서 소경, 어두움에 있는 자, 어리석은 자, 어린아이, 이런 말은 모두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유대인이 율법을 갖지 못한 이방사람들을 얼마나 깔보고 있었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갖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한 선생으로 자처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이방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을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자기부터 먼저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롬2: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얼마나 신랄한 책망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실 때, 밑도끝도 없이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 대시며 나무라십니다. 그들이 왜 이런 책망을 받아야 하는지를 사례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여기서 반포한다는 말은 큰 소리로 떠든다는 뜻이요, 도적질하는 것은 8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8계명에 저촉되는 줄 잘 알면서 겁 없이 남의 것을 훔쳤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고리대금업으로 악명을 떨쳤던 민족입니다. 그들의 상술과 금전욕은 정말 지독해서 인정 사정없이 악랄한 방법으로 재물을 긁어 모으는 것으로 정평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 중에 나오는 샤일록 같은 인물이 바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직접, 간접으로 도적질을 자행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례가 나옵니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구약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면서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많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간음죄는 7계명을 범하는 것이라고 남을 가르쳐면서 그들 자신은 은밀한 방법으로 그 계명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인류 역사상 유대인들 만큼 우상숭배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사람들도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도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우상 쪽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유대민족의 종교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대로, 유대민족은 우상숭배로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아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었습니다. 그곳에서 7-80년의 엄청난 고난을 겪으며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들이 해방되어 귀환했던 주전 538년부터 시작하여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던 당시까지 약 600년 동안 한번도 우상숭배에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유대인이 우상을 가증히 여겼다고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리가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우상숭배는 멸시했지만, 돈을 벌 수 있을 때는 우상을 훔쳐서 팔아먹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직접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지만 이방인들에게 우상숭배에 필요한 물건을 팔아서 돈벌이 하는데는 열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고 이방이들은 우상 섬기는데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았던 것입니다. 훔쳐서 파는 장물은 아무래도 값이 떨어지기 마련이니, 어떻게 보면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식으로 된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몰라서 그런 죄를 지었느냐 차라리 몰라서 그랬다면 변명의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알면서 훔치고 알면서 남을 죄짖게 만들었으니 그 죄를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도적질, 간음, 우상물건을 훔쳐 팔아먹는 것 등은 유대인의 죄상을 몇가지 예를 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그들은 온갖 가증스런 죄악을 거침없이 자행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롬2:23-24)“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들의 언행을 보고 욕을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의 율법이니 하고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죄를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적 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선은 겉으로만 착한 척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으로는 거룩한 말을 늘어놓지만 행동은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요즘같이 악한 세상에서 도적질, 간음, 우상숭배 따위는 흔히 볼 수 있는 죄입니다.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범할 가능성이 많은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일하게 지은 죄라도 유대인이 범할 때는 그 죄가 더 무겁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대략 3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2. 유대인 범죄의 심각성
1) 나쁜줄 알면서도 죄를 범하기 때문에 그 죄가 심각하다. 이런 의미에서 세리와 창기의 죄보다 바리새인의 죄가 더 크고, 불신자의 죄보다도 신자의 죄가 더 크며, 이방인의 죄보다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표리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 죄가 심각하다. 입으로는 거룩을 외치지만 행동은 가증스러운 짓을 함부로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가 됩니다. 이런 이중서을 꼬집어 예수님은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한다’(마23:3)고 꾸짖으시고 이것을 회칠한 무덤에다 비유하셨습니다. 겉모양은 호화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차 있다는 말입니다. 표리가 다른 행동 때문에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그 죄가 심각하다. 이방인이 죄를 범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죄를 범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죄가 더 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죄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우리도 섬깁니다. 유대인이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는 율법을 우리도 배웁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고 거룩한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나쁜줄 알면서도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불신자의 범죄보다 신자의 죄가 더 크게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반드시 명심해야 됩니다.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베푸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도 위선을 할 수 있습니다. 성직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위선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유대민족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더욱 위선자가 될 소지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참 믿음은 순종을 통하여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좀 안다고 거드름을 피우지 마십시요. 중한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당당하지 마십시요. 진실된 말씀의 순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위선자가 되고 맙니다.
3. 할례에 대한 유대인의 교만(또 다른 유대인의 문제점)(25-29) 25-29절까지는 유대인의 할례문제를 다룹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의 표로 행하는 의식으로, 남자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지 8일만에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것을 가르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유대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언약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는 약속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유대민족이 선민으로 택함받은 동시에 하나님은 유대민족의 주권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며 축복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자격증을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태어난지 8일만에 꼭 할례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할 수있는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할례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이 할례를 너무 귀하게 여긴 나머지 잘못된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할례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할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쓴 글 중에는 이같은 글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 자격으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구원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개인은 자동적으로 그 구원에 포함된다. 할례만 있으면 비록 죄인이라도, 순종치 않아도,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난 자손들은 천국을 상속받게 된다.” 이 얼마나 비약인 논리입니까 할례라는 형식만 있으면 구원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졌던 것입니다. 25-29절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순종없는 할례는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25). (롬2:25)“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아무리 할례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순종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할례는 무효입니다.
2) 할례없는 순종이 유효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26) (롬2:26)“그런즉 무할례자 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것이 아니냐” 할례받 지 않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오히려 그 사람은 할례받은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하나님은 가르친다. 27절에 나오는 ‘의문’이라는 말은 글로 씌어진 율법책을 의미합니다. 율법과 할례가 있어도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보다 율법책도 없고 할례도 없이 순종하는 이방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3) 진짜 할례는 몸에다 표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마음이 변화되는 데 있다고 가르칩니다(29). (롬2: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 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면적 유대인, 즉 영적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짜 유대인이지 몸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통하여 마음이 할례를 받아 새사람이 된 자라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몸에다 할례 자국만 남겼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할례받은 사람이 순종하지 않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의 주권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할례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절대 권력자로 모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순종하겠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할례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복종을 서약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갈5: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할례를 받으면 율법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순종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할례를 형식이라 한다면 순종은 내용입니다. 형식과 내용을 함께 갖추는 것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는다면, 내용을 취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할례를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편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할례만 남고 즉, 형식만 남고 내용인 말씀에 대한 순종은 없어졌으니 큰 죄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형식주의는 굉장히 위험한 함정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분 중에는 신앙생활을 타성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또 기도를 건성으로 드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사람은 형식적인 신자입니다. 이런 신자는 마치 비행기에서 낙하산 대신에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걸치고 띄어내리는 사람과 같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다시말해 형식주의는 자살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형식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4. 유대인들의 궤변(3:3-8) 이 본문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궤변을 기록한 것입니다. 앞에서 유대인들을 위선자요, 형식주의자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혹독하게 바울이 비판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듣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예상한 바울이 예상되는 반박에 선수를 쳐서 입을 막는 내용인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만일 바울을 향하여 “당신 말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하고 약속한 언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리는 것이 아닙니까 할례받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우리를 버릴 때는 언제입니까 그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미리 바울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순종하지 못한 죄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가 됩니다. 죄를 적당히 봐주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소 말도 안됩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것이나 의롭지 않는 것이 없고 하나님의 판단은 어느 것이나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신 분이오” 그러자, 유대인이 또 질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소, 당신 말을 들으니 우리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호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서 잘된 것 아니요
그런데 왜 우리를 향해 진노하는 거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은 더 의롭게 보일것이 아니요
그런데도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요. 오히려 우리에게 공로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소” 이에 대해, 바울은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는 당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오!” 이렇게 해서 논쟁이 끝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조금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특별히 선택하셨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위선과 형식주의를 정당화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한번 죄에 빠직도 즉시 회개하지 않을 때는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는 데 놀랍도록 영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대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완악해 지는데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회개하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 단계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은 악해질 대로 악해지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죄는 비단 유대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교회를 드나드는 형제들 중에 이렇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습성에 빠져있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테스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유대인 처럼 자시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다음 이야기에서 한 가지라도 공감되는 것이 있으면 자신도 유대인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도 될 것입니다. 가룟유다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려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데, 그러면 누군가가 예수를 팔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기에 유다가 생각다 못하여 자기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가룟 유다를 욕하느냐 오히려 상을 주어야지!” 이에 공감하십니까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대해서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심어놓고 유혹을 받게 하냐 그리고는 왜 그 결과를 힘없는 인간에게 뒤집어 씌우느냐 말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한한 사랑을 가진 분이라면 만인을 무조건 구원해야 마땅하지, 왜 믿는 자만 구원하냐 째째하게 믿기만하면 구원받는다 해놓고 왜 자꾸만 순종하라고 하는가 그러면 행위 구원에 빠지지. 이렇게 악한 세상에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어”하고 은근히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 자체가 유대인의 근성과 흡사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론' 참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변호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정당화를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설혹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은 옳습니다. 제가 잘못해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하고 겸손하게 무릎꿇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비록 말씀을 배우고 아는만큼 순종해 보려고 몸부림쳐보지만, 온전하게 순종하지 못하여 고통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위선도 합니다. 어떤 대는 형식주의자로 행세합니다. 어떤 때는 잘못을 변호하려고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저런 구실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긍정하는 사람이요, 말씀을 아는만큼 순종하지 못하는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요, 말로만 떠들고 행동이 따라오지 못하는데 대해서 가책을 받는 성령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은 은혜를 주신것에 대해서 감사드립시다. 유대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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