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종교개혁 (롬1:16-17)
본문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마르틴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교회의 정문에 그의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인 것(1517년 10월 31일)을 기념하는 날로 금년이 478년째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은 우리에게 많은 의의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 후 개신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16세기의 개혁 당시의 뜨거운 열기가 다시 한번 한국 교회에 불어 개혁의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당시의 역사적인 의미와 오늘의 우리들의 상황과 신앙생활을 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종교개혁의 발생의 시대적 배경 15세기의 성도들은 누구나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외침은 타락하고 부패한 거대한 집단의 반항에 의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교리적인 타락은 이미 13세기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23세가 나폴리의 라디스라우스왕을 정복하기 위해 십자군을 일으키면서 여기에 참전하는 자들에게는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하였고. 어린아이들을 전쟁에 보내면 승리한다고 하여 어린아이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16세기의 유럽은 상업의 발달하고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화폐경제의 발달은 중세 봉건체제의 붕괴를 부추겼습니다. 당시 종교의 분위기는 날로 뜨거워져 가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이 발생하기 1세기 반전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종교적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16세기의 교황들과 신부들은 돈과 여자와 권력에 탐닉하여 부당한 세금을 받아들였고 축첩 제도까지 도입했으며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실시하면서 극도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1520년에 쓴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낸 서한' 에서 그 당시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황제가 일층 왕관을 쓰는데 교황은 삼층 왕관을 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교황청은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둑질, 강도질, 사치, 매춘행위, 협잡질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차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1538년 로마의 추기경들이 교화 바울 3세에 보낸 '개혁의 제안'이라는 글에서 로마 교회의 비리와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병폐는 성직자의 임명 문제입니다. 철없는 아이들, 심지어는 전적으로 자격이 없는 무뢰한과 타락자들이 성직자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병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바쳐진 돈이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입니다. 로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승려들이 무식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시 안에는 창녀들이 귀부인들처럼 왕래하는데 그 뒤를 성직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병폐가 중단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개혁의 반기를 들게 한 가장 큰 불쏘시개는 교황레오10세가 성베드로 대성당을 속히 완공하기 위하여 소위 면죄부를 판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는 사람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김을 받을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에 루터는 95개조 항의 질문을 비텐베르그 교회의 정문에 걸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루터의 개혁에 확신을 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원인을 요약해 보면
2. 종교개혁 발생의 원인
(1) 교회 내의 부패
(2) 교회의 교리적 탈선
(3) 사회적 계급과 빈부 격차
(4) 교회의 재정 압박
(5) 교직자들의 수준과 생활의 저하
(6) 성직자 부재
(7)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
(8) 대중의 종교적 열정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한국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의 어떤 것들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3. 개혁을 방해하는 자들과 개혁자들의 모습 그리고 우리의 모습 우리 신교를 가리켜서 신교(新敎) 또는 개신교(改新敎) 혹은 개혁교회(改革敎會)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Reformed Church라고도 하지만 대개 Protesta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즉 '항의한다' 혹은 '반대한다', '저항한다'고 하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신교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저항적인 무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는 중세기 Roman Catholic 교회의 그릇된 교리와 낡은 권위 의식에 대하여 반대하고, 저항하고 나섰다고 해서 '반항자들'이라고 처음에는 좋지 못한 이름으로 불려졌었지만, 그러나 문제는 Protestant가 무엇을 위해 저항하는가 무엇을 저항하고 있는가 혹은 그 저항하는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진리를 말하고 그대로 믿는 것이며, 또 성경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치 않기 위함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에 대하여 생명을 내 걸고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루터는 개혁을 방해하는 기득권자들과 많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논쟁을 벌일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1521년 4월 16일 루터는 윔스 국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장은 말합니다. 네가 한 말을 취소할 마지막 기회를 줄 터이니 취소하면 살아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는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그는 ‘무엇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결코 취소할 수 없다. 교회의 총회의와 교황을 결코 무오류라고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 고 담대히 말하면서 그를 위협하는 자들 앞에서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나는 변할 수 없다. 나는 여기 서 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무엇 때문입니까 돈이나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타락한 자들은 그것을 위해 그들의 교리를 주장하지만 루터는 죽음의 위협에서도 진리를 따르기로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며 ,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재판정에 나가고자 하는 Luther에게 그의 친구가 말렸습니다. 그 때에 Luther 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윔스 회의장의 기왓장처럼 마귀가 많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을 주면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다른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 이것이 종교 개혁자의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항은 생명의 표시입니다. '의'를 따르고자 하여 불의에 항거했습니다. 진리를 위하여 비 진리에 항거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완전히 힘입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개혁자의 힘이요, 용기요, 생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에 무엇이 개혁되어야 할까요 비성경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개혁을 원한다면 스스로를 진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심각할 정도로 깊은 병에 걸려 있는 것을 몇 가지 말할 수 있다면
1) 물질만능주의 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돌아와야 합니다. 1907년 부흥운동 이 후 한국 교회는 성경공부와 사경회를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60년대 이 후 ‘잘살아보세’ 라는 명제 아래 성도들의 신앙은 세속화되고 교회 안에 까지 들어왔습니다.
2) 기복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에 언젠가부터 물질 축복이 신앙생활의 잘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상한 신학이 생겨났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해 이상한 방법들이 교회에서 행해집니다.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성도들에게 오직 물질만을 구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제목으로 걸고 예배와 집회를 하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은사가 어떤 사람들의 특권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것을 말합니까 이러한 신앙 때문에 진정한 예배가 없어졌고, 교회의 본질이 상실되어 버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평가절하 되어 버렸습니다.
3)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주의는 곧 이기주의와 사촌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개인주의의 사회를 만들려 하다가 이제는 그것이 크게 실패한 것을 깨닿고 이제는 가족중심주의 등 다시 반성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에 가장 옳지 못한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우리나라 지식층은 거의다 미국유학을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이 마치 우리가 따라가야 할 표상이나 된 것처럼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노인 문제가 생깁니다. 젊은이들이 늙은 부모를 모시지 않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심각합니다. 마약 성폭행등 그들이 한 번 범죄에 빠지면 인생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교회에도 개인주의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습니다. 사명을 생각지 않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생각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신앙에 게으름이 개인주의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의 빈곤입니다. 세상 지식과 정보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우리의 흥미를 일으키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고 , 성경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분별력이 없고, 언제나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이 현대인들에게는 없습니다. 감동 받아서 헌신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곧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수한 인간의 번뇌만 있을 뿐입니다.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한 적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결정만 있을 뿐입니다. 결론 알콜 중독자인 창녀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딸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곁에서 또렷하게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떠나 각각 독립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큰 딸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큰 딸은 가슴 아프게도 자기와 똑같이 창녀가 되어 있었고 더욱이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어머니는 이윽고 둘째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가정의 착실한 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떻게 이렇게 되었니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놀랍게도 두 딸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을 스스로 깨워야 합니다. 그러나 잠을 깨우기를 원치 않는 자들의 입김은 언제나 더 센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바로선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구약에서 어두운 시대에 개혁을 일으킨 왕중에 히스기야 왕은 그의 개혁에서 가장 먼저 레위 사람들을 성결케하고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했 음.대하29:5 온 백성으로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 음.대하30:1 주상과 목상을 제하고 멸했음.대하31:1 신당을 제하고 멸하였다.대하31:1 모든 개혁을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음 .대하31:20 몇 명이라도 좋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며, 주님이 기뻐하시면 한다는 용기와 믿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큰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결단하십시오.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할 당시의 로마 기독교인구는 전 인구의 9%에 불과했다. 신자 수가 많지 않았어도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이 생명력을 가졌고 로마인의 사회 윤리를 앞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이 중국 대륙을 비인간적인 아편의 소굴로 만들면서 아편전쟁을 일으킬 당시의 기독교인구는 전 인구의 97%였다. 한 사람의 신자를 전도하는데 5%의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 신자가 질적으로, 참된 신앙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95% 필요한 것이다. 진실한 기독교인 1%가 껍데기 기독교인 99%보다 더 강한 힘을 보여 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쫓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썩어져 가는 세상의 소금으로 주님이 쓰시기 원하십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무신론자 쟌 자크 루소는 프랑스 혁명 때 종교를 아주 속되게 했습니다. 어떤 때 영국에 갈 일이 생겨 도버해협을 건너는데, 바로 그때 바다가 흉용해져 그의 탄 배가 난파되려 하자, 그는 급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그의 친구는 그에게 "지금와서 하나님께 빈다는 것은 얼이 빠져서 인가, 참으로 무신론을 버림에서 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루소는 진지하게 "진심일세"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친구는 이제 무사히 상륙하면 곧 잊어버릴 것이라고 냉소했는데 과연 상륙한 루소는 친구를 데리고 술집으로 갔습니다. 혹시 위급할 때만 주님을 찾는 무신론자가 아닌가요 그 때는 진심이겠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개혁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1. 종교개혁의 발생의 시대적 배경 15세기의 성도들은 누구나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외침은 타락하고 부패한 거대한 집단의 반항에 의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교리적인 타락은 이미 13세기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23세가 나폴리의 라디스라우스왕을 정복하기 위해 십자군을 일으키면서 여기에 참전하는 자들에게는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하였고. 어린아이들을 전쟁에 보내면 승리한다고 하여 어린아이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16세기의 유럽은 상업의 발달하고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화폐경제의 발달은 중세 봉건체제의 붕괴를 부추겼습니다. 당시 종교의 분위기는 날로 뜨거워져 가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이 발생하기 1세기 반전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종교적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16세기의 교황들과 신부들은 돈과 여자와 권력에 탐닉하여 부당한 세금을 받아들였고 축첩 제도까지 도입했으며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실시하면서 극도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1520년에 쓴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낸 서한' 에서 그 당시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황제가 일층 왕관을 쓰는데 교황은 삼층 왕관을 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교황청은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둑질, 강도질, 사치, 매춘행위, 협잡질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차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1538년 로마의 추기경들이 교화 바울 3세에 보낸 '개혁의 제안'이라는 글에서 로마 교회의 비리와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병폐는 성직자의 임명 문제입니다. 철없는 아이들, 심지어는 전적으로 자격이 없는 무뢰한과 타락자들이 성직자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병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바쳐진 돈이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입니다. 로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승려들이 무식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은 분통이 터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시 안에는 창녀들이 귀부인들처럼 왕래하는데 그 뒤를 성직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병폐가 중단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개혁의 반기를 들게 한 가장 큰 불쏘시개는 교황레오10세가 성베드로 대성당을 속히 완공하기 위하여 소위 면죄부를 판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는 사람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김을 받을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에 루터는 95개조 항의 질문을 비텐베르그 교회의 정문에 걸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루터의 개혁에 확신을 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원인을 요약해 보면
2. 종교개혁 발생의 원인
(1) 교회 내의 부패
(2) 교회의 교리적 탈선
(3) 사회적 계급과 빈부 격차
(4) 교회의 재정 압박
(5) 교직자들의 수준과 생활의 저하
(6) 성직자 부재
(7)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
(8) 대중의 종교적 열정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한국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의 어떤 것들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3. 개혁을 방해하는 자들과 개혁자들의 모습 그리고 우리의 모습 우리 신교를 가리켜서 신교(新敎) 또는 개신교(改新敎) 혹은 개혁교회(改革敎會)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Reformed Church라고도 하지만 대개 Protesta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즉 '항의한다' 혹은 '반대한다', '저항한다'고 하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신교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저항적인 무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는 중세기 Roman Catholic 교회의 그릇된 교리와 낡은 권위 의식에 대하여 반대하고, 저항하고 나섰다고 해서 '반항자들'이라고 처음에는 좋지 못한 이름으로 불려졌었지만, 그러나 문제는 Protestant가 무엇을 위해 저항하는가 무엇을 저항하고 있는가 혹은 그 저항하는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진리를 말하고 그대로 믿는 것이며, 또 성경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치 않기 위함입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에 대하여 생명을 내 걸고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루터는 개혁을 방해하는 기득권자들과 많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논쟁을 벌일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1521년 4월 16일 루터는 윔스 국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장은 말합니다. 네가 한 말을 취소할 마지막 기회를 줄 터이니 취소하면 살아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는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그는 ‘무엇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결코 취소할 수 없다. 교회의 총회의와 교황을 결코 무오류라고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 고 담대히 말하면서 그를 위협하는 자들 앞에서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나는 변할 수 없다. 나는 여기 서 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무엇 때문입니까 돈이나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타락한 자들은 그것을 위해 그들의 교리를 주장하지만 루터는 죽음의 위협에서도 진리를 따르기로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며 ,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재판정에 나가고자 하는 Luther에게 그의 친구가 말렸습니다. 그 때에 Luther 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윔스 회의장의 기왓장처럼 마귀가 많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을 주면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다른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 이것이 종교 개혁자의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항은 생명의 표시입니다. '의'를 따르고자 하여 불의에 항거했습니다. 진리를 위하여 비 진리에 항거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완전히 힘입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개혁자의 힘이요, 용기요, 생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에 무엇이 개혁되어야 할까요 비성경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개혁을 원한다면 스스로를 진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심각할 정도로 깊은 병에 걸려 있는 것을 몇 가지 말할 수 있다면
1) 물질만능주의 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돌아와야 합니다. 1907년 부흥운동 이 후 한국 교회는 성경공부와 사경회를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60년대 이 후 ‘잘살아보세’ 라는 명제 아래 성도들의 신앙은 세속화되고 교회 안에 까지 들어왔습니다.
2) 기복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에 언젠가부터 물질 축복이 신앙생활의 잘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상한 신학이 생겨났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해 이상한 방법들이 교회에서 행해집니다.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성도들에게 오직 물질만을 구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제목으로 걸고 예배와 집회를 하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은사가 어떤 사람들의 특권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것을 말합니까 이러한 신앙 때문에 진정한 예배가 없어졌고, 교회의 본질이 상실되어 버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평가절하 되어 버렸습니다.
3)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주의는 곧 이기주의와 사촌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개인주의의 사회를 만들려 하다가 이제는 그것이 크게 실패한 것을 깨닿고 이제는 가족중심주의 등 다시 반성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에 가장 옳지 못한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우리나라 지식층은 거의다 미국유학을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이 마치 우리가 따라가야 할 표상이나 된 것처럼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노인 문제가 생깁니다. 젊은이들이 늙은 부모를 모시지 않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심각합니다. 마약 성폭행등 그들이 한 번 범죄에 빠지면 인생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교회에도 개인주의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습니다. 사명을 생각지 않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생각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신앙에 게으름이 개인주의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의 빈곤입니다. 세상 지식과 정보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우리의 흥미를 일으키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고 , 성경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분별력이 없고, 언제나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이 현대인들에게는 없습니다. 감동 받아서 헌신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곧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수한 인간의 번뇌만 있을 뿐입니다.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한 적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결정만 있을 뿐입니다. 결론 알콜 중독자인 창녀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딸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곁에서 또렷하게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떠나 각각 독립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는 수소문 끝에 큰 딸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큰 딸은 가슴 아프게도 자기와 똑같이 창녀가 되어 있었고 더욱이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어머니는 이윽고 둘째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가정의 착실한 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애야, 어떻게 이렇게 되었니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과 다르게 될 수 있었겠어요" 놀랍게도 두 딸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을 스스로 깨워야 합니다. 그러나 잠을 깨우기를 원치 않는 자들의 입김은 언제나 더 센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바로선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구약에서 어두운 시대에 개혁을 일으킨 왕중에 히스기야 왕은 그의 개혁에서 가장 먼저 레위 사람들을 성결케하고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했 음.대하29:5 온 백성으로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 음.대하30:1 주상과 목상을 제하고 멸했음.대하31:1 신당을 제하고 멸하였다.대하31:1 모든 개혁을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음 .대하31:20 몇 명이라도 좋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며, 주님이 기뻐하시면 한다는 용기와 믿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큰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결단하십시오.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할 당시의 로마 기독교인구는 전 인구의 9%에 불과했다. 신자 수가 많지 않았어도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이 생명력을 가졌고 로마인의 사회 윤리를 앞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이 중국 대륙을 비인간적인 아편의 소굴로 만들면서 아편전쟁을 일으킬 당시의 기독교인구는 전 인구의 97%였다. 한 사람의 신자를 전도하는데 5%의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 신자가 질적으로, 참된 신앙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95% 필요한 것이다. 진실한 기독교인 1%가 껍데기 기독교인 99%보다 더 강한 힘을 보여 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쫓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썩어져 가는 세상의 소금으로 주님이 쓰시기 원하십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무신론자 쟌 자크 루소는 프랑스 혁명 때 종교를 아주 속되게 했습니다. 어떤 때 영국에 갈 일이 생겨 도버해협을 건너는데, 바로 그때 바다가 흉용해져 그의 탄 배가 난파되려 하자, 그는 급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그의 친구는 그에게 "지금와서 하나님께 빈다는 것은 얼이 빠져서 인가, 참으로 무신론을 버림에서 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루소는 진지하게 "진심일세"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친구는 이제 무사히 상륙하면 곧 잊어버릴 것이라고 냉소했는데 과연 상륙한 루소는 친구를 데리고 술집으로 갔습니다. 혹시 위급할 때만 주님을 찾는 무신론자가 아닌가요 그 때는 진심이겠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개혁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