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 (롬1:18)
본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찬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 하나님 사랑은 손주가 수염을 다 뽑아 놓아도 `어허! 이놈이 …’하면서 연신 귀여워하는 할아버지의 사랑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노의 하나님이시다고 할때에 공의의 하나님 되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에 대하여 진노하신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본래적 신분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헬라어(원어)에서 진노를 의미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투모스로서 `아주 격렬하게 폭발하는 분노’를 의미하는 것이며, 또하나는, 오르가로서 `오래 기다리다가 마침내 굳어버린 분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용된 분노는 `오르가‘라는 단어로서 하나님이 진노가 순간적인 감정 폭팔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드러나는 진노입니다. 창6-7장에 보면, 악한 인간을 물로 심판하시려던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경고하시고도 120년을 참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패역과 반역을 보고서도 끝없는 사랑으로 참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으셨기에 이제 드디어 나타나는 진노이기에 더욱 엄중한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가운데서는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하나님 되심에 대하여 아예 처음부터 그 개념을 부정해 버리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해인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랑의 하나님과 진노의 하나님은 서로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사랑이시지 어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진노를 인정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인을 심판하려고 준비한 지옥까지 부정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간에, 진노, 지옥 같은 말은 사람들을 경고하기 위한 엄포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혹 지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몇일동안 가두어서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풀어주는 곳이지 영원히 벌주는 곳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듣기가 좋지 않습니까 얼마나 은혜되는 말입니까 진노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손해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할때 생기는 불쾌하고도 강한 적대감정’이라고 정의해 두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진노가 하나님에게는 어울리는 말이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손해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고 완전하신 분이신데 무슨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화를 내는 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말의 불완전 때문에 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이 아닌, 다른 면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말을 쓰다보니 진노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하기에 너무 초라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진노란
1)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는 그 거룩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거룩성입니다. 거룩이란 구별되다는 뜻으로서 죄와 상관이 없으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품고 있는 어떠한 인간과도 상관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죄를 품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어지지 않고,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일 우리가 죄악을 해결하지 않고, 가슴에 그냥 품고 있으면 기도에도 막힘이 됩니다. (시66:18)“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못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의 기도를 죄 때문에 안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에도 죄문제가 결정적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할 때마다 양의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 기도가 간합되어 지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기도 응답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출19:22)“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죄있는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다가는 목숨이 온전치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토록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합1:13)“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도 강하게 반응하시는 이유는 죄악과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거룩과 정결의 본성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그 거룩한 본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는 당신의 택한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징계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화가 나는 법이요, 사랑하면 징계합니다. 만일 남의 집 아이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속으로 "저런, 저런.”하면서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잘못을 만일, 자기 아들이 저질렀을 경우,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것을 못본척 하고 지나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훈계와 따끔한 징계가 가해질 것입니다. 다른 아이에게서는 별로 심각하지 않던 일이 왜 내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해 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진노를 제일 많이 받은 백성이 죄를 물먹듯이 범하던 이방 족속들이 아니라, 바로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저 바벨론, 앗수루, 애급, 블레셋, 가나안 족속들이 끝없는 타락과 우상숭배로 치달았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징계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조금만 틀려도 가혹하리 만큼 철저하게 징계를 당했습니다. (잠3: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바로 이것이 당신의 택한 백성을 향한 진노입니다. 사랑의 다른 일면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칼브라이트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진노 속에서 구체화된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에밀 부루너는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곧 사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거룩함의 일면이요, 그의 사랑의 일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 위해서는 사랑하시는 것 못지않게 진노하시는 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나쁜 짓을 해도 무감각하고 반응이 없는 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죄인을 놓고 심판하실 생각도 않고 먼 산만 쳐다보고 계시는 분을 하나님으로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그가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품성의 일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진노 하시는 이유 다시 본문 18절을 읽어 보십시다. (롬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 경건치 않음(종교적인 죄) 때문에 진노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를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나다. 지금, 죄를 가지고 진리를 고의적으로 막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십시요. 예수 그리스도를 고의적으로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어디 한 두명입니까 하나님이 “이래라!”하면, 저리하고 “저래라!”하면 이리하는 사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리를 보여주셨는데 그 진리를 발로 밟고 하늘을 향하여 주먹을 휘두르는 자들이 여기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때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는 죄는 19-25절 사이에 열거한 종교적인 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대한 공공연한 대적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이 죄중의 죄입니다.
2) 불의(도덕적인 죄) 때문에 진노 하십니다. 이 불의는 26-32절까지 나오는 죄목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 즉 이웃을 공격하는 죄들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도적적인 죄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갖가지 더러운 생각에서부터 이웃을 해치는 악한 행위까지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죄에 대하여 특별히 진노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믿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 마음 속에 쉴새없이 일어나는 나쁜 생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죄와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 진노하시느냐 하면, (시 7:11)절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이상, 하나님께서 사랑이신 이상은 그 진노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눅12: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때에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버릇없는 손자가 귀여워해 주는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고 늘어지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버릇없는 손자처첨 섬기기가 쉽습니다. 그래서는 큰일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왜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의 악한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가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이 정말로 매일 불의와 경건치 않는 죄를 향해 진노하고 계신다면 이 사회의 악한 사람들이 어쩌면 저다지도 득세할 수 있습니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다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같은 증거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때로 아니, 거의 대개 이 세상은 악한 자에게 벌을 받기보다, 오히려 선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이 진노의 대상이 된 것처럼 너무도 모순 투성이가 많습니다. 그러니 정말 하나님의 공정한 진노는 어디로 가셨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임하고 있다면, 절대로 무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저렇게도 건재하고 있는가 수십, 수백 만의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한 독재자들이 다른 나라에 돈을 싸 짊어지고 가서 팔십이 넘도록 장수하면서 생을 즐기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단 교리를 가르치면서 수많은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이 어떠게 저렇게 형통할 수 있는가 김일성과 문선명은 아직도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지 않는가’ 이같은 류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실체에 대해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을 범한 사람이나 나라를 사정없이 심판하시는 예가 가끔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어디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헤롯왕이 스스로 하나님인체 하며 자기를 높이며 거드름을 피우다가 하나님이 치시니 충이 먹어서 죽어버렸습니다. 요즘도 가끔 있는 일입니다. 어느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부가 2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자녀들을 셋을 낳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생을 좀 더 편하게 보내기 위하여 집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호숫가에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는 멋진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곳을 찾아 내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이어습니다. 그 집 주인과 거래가 시작되었는데, 그 집 주인의 부인은 세상을 떠났는지 아니면 이혼해서 나갔는지, 홀애비로 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집을 사기로 계약을 하고 몇달을 부인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두 달 가량 지난 어느날 느닷없이 부인이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혼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채 집을 떠나겠다는 것이었고 아이들마저 데리고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뜬 눈으로 지샌 남편이 커피 잔을 손에 들고 나오니 여자는 벌써 손가방 몇을 들고 나가면서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여자는 호숫가에 있는 그 집 주인한테 갔습니다. 그 홀애비하고 눈이 맞아 같이 살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미국 같은 곳에서는 예사로 생기는 일입니다. 그 여자가 가서 새살림을 꾸미고 호숫가에서 그야말로 꿈같은 나날을 약 2주간 보낸 어느날 갑자기 남자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습니다. 누가 진노하신걸까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경우는 즉각적으로 심판하신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남자를 죽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여자가 더 나쁜것 같은데 말입니다. 가끔 세상에 보면 어떤 잘못을 범했을 경우 여유를 주지 않고 당장 심판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희소합니다. 아주 희소하고 우리 눈에는 잘 안보입니다. 더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도 얼마나 잘 사는지 미국의 어느 여배우를 보니까 9번 결혼해도 잘만 살더라고요. 자기보다 30살이나 아래인 남자하고 마지막 결혼이라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런 사람은 가만히 두시는지 이해가 안가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 잘못하다가 당장 죽기도 했습니다. 벤스 헤브너라는 미국의 나이 많은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즘도 교회 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잘못한 사람들을 계속 심판하신다면 교회마다 지하실에 영안실을 만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 교포 교회에서 회계집사가 주일 헌금을 계산해서 들고 나가다가 고습톱판에 뛰어들었나 봅니다. 나중에 판돈이 모자라니까 교인이 헌금한 돈까지 걸고 노름을 하다가 즉석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대판 아나니아와 삽비라 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식 심판은 드뭅니다. 사람들이 너무 악을 행하고도 담대하고 맹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좀더 분명하게 실감나게 진노하시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못된 심리인지는 모릅니다만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고 세상도 훨씬 밝아질 것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생각대로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진노란 어떤 신학자가 말한대로 괜히 겁주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해 둔 공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데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진노의 3가지 성격
1)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방치해 두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롬1: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1: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롬1:28)“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라고 각각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라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란 사람이 욕심나는 대로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게 허용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것은 아주 무서운 진노입니다. 입시를 몇달 앞둔 고 3 아들이 공부가 지겨워서 집을 나가 탈선을 하였습니다. 이때 부모는 찾아내어 간절하게 설득을 합니다. 안되면, 호통도 쳐봅니다. 그러나, 어떤 수단을 다 동원해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역부족을 느낀 아버지는 “네 마음대로 해!”라는 막말을 해 버립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은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가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랐을 때 하는 말입니다.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진노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 곧바로 징계하시지 않는가 의아심을 가지기 전에 하나님의 내버려 두시는 무서운 진노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내버려 둔 자들이 갈 곳은 앞으로 한 곳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맞아서라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고전5:5절에 근친상간의 음란한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고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주어 멸한바 되고, 그 영은 구원받도록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 쌓아 놓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그때 심판하시지 않고 계속 쌓고 모아서 한꺼번에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롬2: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무슨 뜻입니까 두고보자는 것입니다. 정한 진노의 날까지 형벌을 유보한 채 쌓아 나가는 것입니다. 댐속에 물이 가득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면 한꺼번에 엽니다. 그러면 그 힘은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도 이같이 무서운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진노하지 않는 것을 보고, 미련한 자는 잘됐다고 계속 더 방종할 것이고, 지혜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입니다.
3) 폭로하지 않고 가만히 덮에 두는 것도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롬2:16)“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계속 숨겨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탄로가 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미련한 자이거나,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악한 행위가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밀하고도 캄캄한 중에 일어난 일들이 백주에 드러나게 될 것이고, 조용조용히 은밀히 속삭인 말이나, 속으로 뇌까린 말들까지 천둥같은 소리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비밀이 지켜진다고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이미 들어와 있는 자입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십자가 밑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 하여야 합니다. 행복한 자를 보는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들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보고 판단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없이 계속 성공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는 도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그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교만해져 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진노를 눈으로 보듯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용된 분노는 `오르가‘라는 단어로서 하나님이 진노가 순간적인 감정 폭팔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드러나는 진노입니다. 창6-7장에 보면, 악한 인간을 물로 심판하시려던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경고하시고도 120년을 참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패역과 반역을 보고서도 끝없는 사랑으로 참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으셨기에 이제 드디어 나타나는 진노이기에 더욱 엄중한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가운데서는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하나님 되심에 대하여 아예 처음부터 그 개념을 부정해 버리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해인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랑의 하나님과 진노의 하나님은 서로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사랑이시지 어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진노를 인정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인을 심판하려고 준비한 지옥까지 부정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간에, 진노, 지옥 같은 말은 사람들을 경고하기 위한 엄포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혹 지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몇일동안 가두어서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풀어주는 곳이지 영원히 벌주는 곳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듣기가 좋지 않습니까 얼마나 은혜되는 말입니까 진노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손해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할때 생기는 불쾌하고도 강한 적대감정’이라고 정의해 두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진노가 하나님에게는 어울리는 말이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손해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고 완전하신 분이신데 무슨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화를 내는 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말의 불완전 때문에 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사랑이 아닌, 다른 면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말을 쓰다보니 진노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하기에 너무 초라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진노란
1)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는 그 거룩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거룩성입니다. 거룩이란 구별되다는 뜻으로서 죄와 상관이 없으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품고 있는 어떠한 인간과도 상관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죄를 품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어지지 않고,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일 우리가 죄악을 해결하지 않고, 가슴에 그냥 품고 있으면 기도에도 막힘이 됩니다. (시66:18)“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못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의 기도를 죄 때문에 안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에도 죄문제가 결정적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할 때마다 양의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 기도가 간합되어 지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기도 응답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출19:22)“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죄있는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다가는 목숨이 온전치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토록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합1:13)“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도 강하게 반응하시는 이유는 죄악과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거룩과 정결의 본성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그 거룩한 본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는 당신의 택한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징계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화가 나는 법이요, 사랑하면 징계합니다. 만일 남의 집 아이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속으로 "저런, 저런.”하면서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잘못을 만일, 자기 아들이 저질렀을 경우,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것을 못본척 하고 지나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훈계와 따끔한 징계가 가해질 것입니다. 다른 아이에게서는 별로 심각하지 않던 일이 왜 내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해 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진노를 제일 많이 받은 백성이 죄를 물먹듯이 범하던 이방 족속들이 아니라, 바로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저 바벨론, 앗수루, 애급, 블레셋, 가나안 족속들이 끝없는 타락과 우상숭배로 치달았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징계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조금만 틀려도 가혹하리 만큼 철저하게 징계를 당했습니다. (잠3: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바로 이것이 당신의 택한 백성을 향한 진노입니다. 사랑의 다른 일면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칼브라이트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진노 속에서 구체화된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에밀 부루너는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곧 사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거룩함의 일면이요, 그의 사랑의 일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 위해서는 사랑하시는 것 못지않게 진노하시는 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나쁜 짓을 해도 무감각하고 반응이 없는 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죄인을 놓고 심판하실 생각도 않고 먼 산만 쳐다보고 계시는 분을 하나님으로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그가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품성의 일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진노 하시는 이유 다시 본문 18절을 읽어 보십시다. (롬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 경건치 않음(종교적인 죄) 때문에 진노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를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나다. 지금, 죄를 가지고 진리를 고의적으로 막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십시요. 예수 그리스도를 고의적으로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어디 한 두명입니까 하나님이 “이래라!”하면, 저리하고 “저래라!”하면 이리하는 사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리를 보여주셨는데 그 진리를 발로 밟고 하늘을 향하여 주먹을 휘두르는 자들이 여기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때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는 죄는 19-25절 사이에 열거한 종교적인 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대한 공공연한 대적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이 죄중의 죄입니다.
2) 불의(도덕적인 죄) 때문에 진노 하십니다. 이 불의는 26-32절까지 나오는 죄목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 즉 이웃을 공격하는 죄들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도적적인 죄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갖가지 더러운 생각에서부터 이웃을 해치는 악한 행위까지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죄에 대하여 특별히 진노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믿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 마음 속에 쉴새없이 일어나는 나쁜 생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죄와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 진노하시느냐 하면, (시 7:11)절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이상, 하나님께서 사랑이신 이상은 그 진노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눅12: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때에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버릇없는 손자가 귀여워해 주는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고 늘어지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버릇없는 손자처첨 섬기기가 쉽습니다. 그래서는 큰일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왜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의 악한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가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이 정말로 매일 불의와 경건치 않는 죄를 향해 진노하고 계신다면 이 사회의 악한 사람들이 어쩌면 저다지도 득세할 수 있습니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다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같은 증거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때로 아니, 거의 대개 이 세상은 악한 자에게 벌을 받기보다, 오히려 선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이 진노의 대상이 된 것처럼 너무도 모순 투성이가 많습니다. 그러니 정말 하나님의 공정한 진노는 어디로 가셨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임하고 있다면, 절대로 무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저렇게도 건재하고 있는가 수십, 수백 만의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한 독재자들이 다른 나라에 돈을 싸 짊어지고 가서 팔십이 넘도록 장수하면서 생을 즐기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단 교리를 가르치면서 수많은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이 어떠게 저렇게 형통할 수 있는가 김일성과 문선명은 아직도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지 않는가’ 이같은 류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실체에 대해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을 범한 사람이나 나라를 사정없이 심판하시는 예가 가끔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어디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헤롯왕이 스스로 하나님인체 하며 자기를 높이며 거드름을 피우다가 하나님이 치시니 충이 먹어서 죽어버렸습니다. 요즘도 가끔 있는 일입니다. 어느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부가 2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자녀들을 셋을 낳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생을 좀 더 편하게 보내기 위하여 집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호숫가에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는 멋진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곳을 찾아 내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이어습니다. 그 집 주인과 거래가 시작되었는데, 그 집 주인의 부인은 세상을 떠났는지 아니면 이혼해서 나갔는지, 홀애비로 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집을 사기로 계약을 하고 몇달을 부인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두 달 가량 지난 어느날 느닷없이 부인이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혼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채 집을 떠나겠다는 것이었고 아이들마저 데리고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뜬 눈으로 지샌 남편이 커피 잔을 손에 들고 나오니 여자는 벌써 손가방 몇을 들고 나가면서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여자는 호숫가에 있는 그 집 주인한테 갔습니다. 그 홀애비하고 눈이 맞아 같이 살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미국 같은 곳에서는 예사로 생기는 일입니다. 그 여자가 가서 새살림을 꾸미고 호숫가에서 그야말로 꿈같은 나날을 약 2주간 보낸 어느날 갑자기 남자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습니다. 누가 진노하신걸까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경우는 즉각적으로 심판하신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남자를 죽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여자가 더 나쁜것 같은데 말입니다. 가끔 세상에 보면 어떤 잘못을 범했을 경우 여유를 주지 않고 당장 심판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희소합니다. 아주 희소하고 우리 눈에는 잘 안보입니다. 더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도 얼마나 잘 사는지 미국의 어느 여배우를 보니까 9번 결혼해도 잘만 살더라고요. 자기보다 30살이나 아래인 남자하고 마지막 결혼이라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런 사람은 가만히 두시는지 이해가 안가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 잘못하다가 당장 죽기도 했습니다. 벤스 헤브너라는 미국의 나이 많은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즘도 교회 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잘못한 사람들을 계속 심판하신다면 교회마다 지하실에 영안실을 만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 교포 교회에서 회계집사가 주일 헌금을 계산해서 들고 나가다가 고습톱판에 뛰어들었나 봅니다. 나중에 판돈이 모자라니까 교인이 헌금한 돈까지 걸고 노름을 하다가 즉석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대판 아나니아와 삽비라 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식 심판은 드뭅니다. 사람들이 너무 악을 행하고도 담대하고 맹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좀더 분명하게 실감나게 진노하시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못된 심리인지는 모릅니다만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고 세상도 훨씬 밝아질 것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생각대로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진노란 어떤 신학자가 말한대로 괜히 겁주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해 둔 공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데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진노의 3가지 성격
1)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방치해 두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롬1: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1: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롬1:28)“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라고 각각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라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란 사람이 욕심나는 대로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게 허용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것은 아주 무서운 진노입니다. 입시를 몇달 앞둔 고 3 아들이 공부가 지겨워서 집을 나가 탈선을 하였습니다. 이때 부모는 찾아내어 간절하게 설득을 합니다. 안되면, 호통도 쳐봅니다. 그러나, 어떤 수단을 다 동원해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역부족을 느낀 아버지는 “네 마음대로 해!”라는 막말을 해 버립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은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가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랐을 때 하는 말입니다.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진노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 곧바로 징계하시지 않는가 의아심을 가지기 전에 하나님의 내버려 두시는 무서운 진노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온 자들입니다. 내버려 둔 자들이 갈 곳은 앞으로 한 곳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맞아서라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고전5:5절에 근친상간의 음란한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고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주어 멸한바 되고, 그 영은 구원받도록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 쌓아 놓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그때 심판하시지 않고 계속 쌓고 모아서 한꺼번에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롬2: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무슨 뜻입니까 두고보자는 것입니다. 정한 진노의 날까지 형벌을 유보한 채 쌓아 나가는 것입니다. 댐속에 물이 가득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면 한꺼번에 엽니다. 그러면 그 힘은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도 이같이 무서운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진노하지 않는 것을 보고, 미련한 자는 잘됐다고 계속 더 방종할 것이고, 지혜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입니다.
3) 폭로하지 않고 가만히 덮에 두는 것도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롬2:16)“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계속 숨겨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탄로가 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미련한 자이거나,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악한 행위가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밀하고도 캄캄한 중에 일어난 일들이 백주에 드러나게 될 것이고, 조용조용히 은밀히 속삭인 말이나, 속으로 뇌까린 말들까지 천둥같은 소리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비밀이 지켜진다고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이미 들어와 있는 자입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십자가 밑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 하여야 합니다. 행복한 자를 보는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들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보고 판단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없이 계속 성공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는 도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그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교만해져 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진노를 눈으로 보듯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