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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중에 평안하려면 (행27:13-26)

본문

"인생은 항해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그리고 그말에 실감하십니까 항해에는 순항만이 있을 수 없듯이 인생항해도 순항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선장이나 승객은 난항을 대비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타고 있는 구원선의 선장이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미리 난항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소망은 뱃길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난파되지 아니하며 결국은 하늘나라의 안식의 포구에 도달한다는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니까 위험한 항해임이도 불구하고 그 풍랑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16:33에도 주님께서 친히 이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기 주님의 약속은 환란중임에도 불구하고 누리는 평안, 곧 풍랑중의 평안입니다. 이것이 또한 바울의 항해의 경험이었습니다. 행27:은 바울이 로마까지 가기까지 긴 항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는 바울이 죄수로서 항해의 길이 작정되었습니다. 4절에는 바람의 거스림을 받아 항해가 어려워 집니다. 7절에 가면 바람이 더욱 심하여 항해는 더디어 지기 시작합니다. 9절에는 바울이 항해의 앞길에 큰 위험이 있을 것임을 예감합니다. 그러나 13절에 잠시동안 순조로운 순항이 계속되다가 14절에 갑작스럽게 유라굴라라 불리우는 광풍속에 배가 휩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20절에 드디어 배의 승객들은 속수무책한 절망적인 시점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항해의 과정이 어쩌면 그렇게 인생의 항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다 목적지를 정하고 항해를 시작합니다. 인생의 항해가 계속되는 동안 때로는 순풍에 돛달 때도 있는가 하면 때로는 역풍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닥쳐오는 광풍으로 인하여 절망적인 상태로 빠져 들게 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이 풍랑의 와중에서도 큰 평안을 누리며 오히려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승객을 안심시켰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죽을 지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러한 평안과 다른 사람을 안심시킬 수 있는 담대함이 나올 수 있습니까 이 비밀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풍랑중에 평안하려면" 오늘 여러분이 듣게 될 세가지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풍랑중에 평안하려면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의 이 담대함, 이 확고함, 이 태연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습니까 주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신분, 바다와 파도를 디스리시는 그분께 바울은 촛점을 두었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풍랑중에 바울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울이 풍랑중에도 하나님과의 교통을 끊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 교통이 있는 한 바울에게는 절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락크를 탈출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습의 공포보다 전화와 교통의 단절, 그리고 텅빈 거리를 볼 때 더 큰 공포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 혼자라는 생각,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것이 인간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하갱도가가 무너졌을 때 구조대가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은 갇힌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을 취해서더라도 지금 구조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밖에는 나를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희망을 가질 때 초인적인 생존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통 그 자체가 희망인 것입니다. 바울도 여기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었기에 그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담대할 수 있었고 태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풍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마치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상실될 때 남는 것은 인간의 절망뿐입니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으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의 앞길을 가장 잘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와 말씀의 채널을 통해 나에게 여기 바울에게 말씀하셨듯이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고 계시는 한 그리고 그말씀이 내게 들려오고 있는 한 풍랑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와 찬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체험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주의 음성을 들을 때 풍랑중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놀라운 신비의 체험을 하게 될것입니다.
2.풍랑중에 평안하려면 인생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자기가 해야 할일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풍랑중에 평안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괴롭지만 무엇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지를 모를 때, 이고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금방 넘어지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야 말로 고난과의 대결에서 용기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고난을 극복하는 비밀이 있습니다.본문 24절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자기 존재이유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바울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풍랑속이지만 자기는 결코 죽지 아니하고 결국은 가이사앞에 서야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가이사앞에 세우시나를 즉각 깨달았습니다. 로마를 복음화 시키시키시고 나아가서 로마를 통하여 전세계를 복음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한 자기는 죽지 아니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이 있는 한 바울에게 있어 풍랑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하나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함이러라" 배에 탄 모든 사람을 돌볼 책임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이 사명을 깨닫는 그 순간 바울이 자기의 목숨을 걱정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였습니다. 그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선장도 있고 백부장도 있건만 한낱 죄수에 불과한 바울이 그 상황의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습니까 바로 그의 사명감입니다. 사명감이 그를 지도자다운 지도자로 만든 것입니다. 요셉이 비록 보디발집에 팔려간 노예였지만 그는 다른 노예를 지도하는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수를 관리하는 감옥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노예출신의 이방인인 그가 한 나라의 살림을 총괄하는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도 지도자였습니다. 환경이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사명이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입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환경도 두려움일 수는 없습니다. 탐험가 리빙스톤이 그의 안부를 염려하며 탐험을 중지할 것을 권고하는 주위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나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나의 숙제, 존재 이유를 다 할때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풍랑에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침몰시키려는 그 풍랑속에서 평안하게 찬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사람을 오히려 돕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바울이 주변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부터 온것이겠습니까 자기의 사명을 아는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이시간까지 살아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흘리는 이유를 아십니까 불후의 명작 실락원의 저자 죤 밀턴이 어렸을 때 창:1-3까지 읽고 큰 총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이것을 주제로 멋진 한편의 소설을 썼으면 좋게다고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꿈을 펼칠 마땅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서 소년시대의 꿈이 부활하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밀턴을 많은 사람이 염려하자 밀턴은 그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했습니다. "여러분, 오히려 기뻐해 주십시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장소가 감옥말고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기서 그는 그가 읽었던 성경을 주제로 펜을 움직이기 시작하여 드디어 실락원이라는 대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그가 무엇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나" 하는 사명을 아는 한 오히려 감옥은 새로운 작품의 산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명을 알고 계십니까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나같은 사람을 구원하셨는지.,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은데 하필이면 나를 지목하셨는 지.,많은 교회중에 왜 그물교회를 선택하게 하셨는 지.,그리고 왜 나같은 사람에게 집사,교사와 같은 직분을 맡기셨는 지.그 이유를 아십니까 이 사명을 깨달을 때 비로소 여러분이 만난 풍랑속에서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지도 모르는 그 직분에서도 여러분들은 자유할 수 있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풍랑중에 평안하려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심하라. 나는 내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노라" 그 풍랑의 와중에서 승객들에게 외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말씀속에서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바울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을 절대로 절대로 신뢰하는 인간 바울의 모습을 말입니다. 무디 신학교 학장 죠지 스웨트가 이런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위기를 접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가 비로소 들어나게 된다" 평시 순탄한 환경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진정한 위기가 부딪쳐 왔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들어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가 미국 선교를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을 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선교사였습니다. 풍랑이 너무나 두려운나머지 선실에서 벌벌떨고 있을 때 아련히 갑판 쪽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무나 의아해서 나가보니 모라비안 교도 몇사람이 풍랑이 이는 그 와중에 갑판에 꿇어 앉아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천국 향할 때 주내게 순풍주시니 참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쉬지 못하나 이풍랑인연하여서 더빨리 갑니다. 웨슬레는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들은 풍랑이 두렵지도 않소" 그들이 대답합니다. "두렵기는요,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으니 감사하지요." 훗날 웨슬레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때 풍랑보다 그들의 고백이 더 큰 충격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라비안 형제들과 같은 담대함과 평아함은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 사도신경을 암송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적용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삶이 풍랑을 만났을 때 ,내가 벼랑 끝에 섰을 때에도 이 고백이 아직도 가능하신지요 정말로 가능합니까 어느 부부가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풍랑이 닥쳐오자 아내는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지만 남편은 너무나 태연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풍랑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남편은 대답대신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고 아내를 죽이려는 듯 칼을 겨누었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어버렸습니다. 이때 남편이 아내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내가 칼을 겨누고 있는데도 두렵지 않소" 아내가 대답합니다. "두렵기는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그때에 비로소 남편이 칼을 거두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바로 그거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이 풍랑으로 우리를 죽이시겠오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 하는 고백이 풍랑속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면 여러분은 풍랑속에서도 능히 평안할 수 있습니다. 풍랑중의 평안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타고 있는 배에 풍랑이 엄습해 왔지만 풍랑과 함께 동시에 다가 오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풍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풍랑속에는 늘 함께 계실 것은 기꺼이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바울에게 다가오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바로 이시간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가 오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풍랑의 현장속에, 고난의 현장속에, 골짜기 깊숙한 곳에 반드시 찾아 오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마14:에 보면 풍랑을 만난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이 다가 오십니다. 그리고 공포와 겁에 질린 제자들을 향해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엎치락 뒷치락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이여 왜 의심하느냐" 우리가 조금만 더 믿음을 가졌더라면, 조금만 더 주님을 신뢰했더라면, 모라비안 형제들처럼 이 풍랑속에서도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었을 것을.여러분은 본문 사건의 절정을 아십니까 34-35절을 보면 바울이 배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풍랑이 휘몰아 칩니다. 겉잡을 수 없는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성난 파도는 배를 부술 듯 덮쳐옵니다. 배는 미친듯이 널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토해내며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을 진정시켜 한군데 모아놓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십시오. 풍랑과 죽음의 한복판속에서 오히려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는 이 당당함, 여러분은 이 장면이 보이십니까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께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풍랑속 하고 있습니까 " 여러분의 삶에 풍랑이 닥쳐왔을 때, 그 풍랑이 내적이든 외적이든 오늘 내 삶이 풍랑속에 쳐박혀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바울처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까 찬양했습니까 감사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평안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은 분명히 본문의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그 평안을 얻고 싶지 않으십니까 "풍랑주의 평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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