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행28:25-28)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이 어떻게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구세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는가하는 그 과정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위한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잘 나타나 있다. 오늘 본문 28절에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여기에 저희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희란 오늘 저와 여러분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1,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 롬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기록 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그럼 이 믿음은 어떻게 생겨지는 것인가 롬10;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그렇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겨지는 것이다. 이 66권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서 믿음이 생겨지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으로 가득차 있다. 신31;9-13절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 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고 하시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온 이스라엘 자손들도 듣고 배우고 타국인들도 듣고 배우고 함께 우거하는 사람들도 듣고 배우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듣고 배우라는 것이다. 듣고 배워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었다. 듣고 배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온 우주적인 것임을 말한다. 물론 선민인 이스라엘은 필수적이고 타국인도 포함되고 함께 우거하는 사람들도 포함이 되었다. 창12;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어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땅의 모든 족속을 언급했다. 창17;4-5절에는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여기에서는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을 말씀하시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축복의 나라가 되고 열국의 아비의 나라가 되게 되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에덴동안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가 동산에서 내어 좇김을 당했고 노아 홍수며 소돔과 고모라며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찾기가 어려워 심판을 하셨던 것이다. A.D. 70년경에 있었던 예루살렘 대 말살 사건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였던 것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의 역사를 잘 관찰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한 사람들 보다는 그렇치 못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시었던 말씀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많은 예언들을 주시었다.
2,말씀된 것들의 실현 그 예언자 중에 한 사람인 이사야를 통하여 주셨던 말씀이 사6;9-13절의 말씀이시다. 이주에 특별히 9절과 10절에 이런 말이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 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오늘 본문 26절과 27절의 말씀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시었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여기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어 주신 복음 사역의 말씀을 듣고도 행함이 없으므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될 가망이 없겠기에 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와 눈을 막아서 구원의 문이 이방으로 향하에 하시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사도 바울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매 다메섹에서 바울을 부르시어 이방인을 위한 복음 사역의 일꾼을 삼으신 것이었다. 사도 바울이 그 험난한 길을 매맞으면서 로마까지 오게 된 것도 역시 이방인을 위한 구원사역 때문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예루살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배척하고 죽일 려고만 했는데 로마에 온 후로는 사도 바울의 강론을 듣고 날로 날로 믿는 사람들의 수효가 증가했던 것이다.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이 들을 수록 좋은 것이다. 성경에 보면 말씀을 잘 듣고 수지 맞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노아 아브라함 열문둥이 나아만 백부장 가나 혼인잔치의 하인들 참으로 많다.
3,저희는 들으리라 " 28절을 다시 같이 보자.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사도 바울로 시작하여 구원의 복된 소식이 이방인에게로 건너 오게 되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들을 향하여 왜치고 있다. "귀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들으라고 왜쳐대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시는가 오늘 나에게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시는가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라면 또 세상을 향하여 왜쳐야 한다.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들어야하는가 롭10;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하여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왜침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이다. 물론 수 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듣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써 이방인들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돌아 올 것을 내다 보면서 특별히 부분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롬11;25절의 말씀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비밀이란 말을 두번이나 반복을 했는데 그 반복한 비밀이 바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자인 것이다. 때도 시도 없이 무작정 복음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충만한 수의 기준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수자가 다 차면 이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다시금 이수라엘로 돌아 갈 것을 말함임을 알아야 한다. 제가 믿기로는 그 이방인의 충만한 수자가 거의 차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복음을 왜쳐야 할 마지막 주자들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구원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또 세상을 향하여 구원의 멧세지를 왜쳐야 한다. "저희는 또한 믿으리라" 내 이웃에 내가 전하지 아니했으므로 말미암아 듣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없는가 살펴보자. 예수 전하는 자가 되자. 예수 자랑하는 자들이 되자. 사도 바울처럼 목숨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예수를 전하자. "저희는 또한 믿으리라" 여러분들을 통하여 땅끝까지 복음의 역사가 일어 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
1,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 롬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기록 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그럼 이 믿음은 어떻게 생겨지는 것인가 롬10;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그렇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겨지는 것이다. 이 66권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서 믿음이 생겨지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으로 가득차 있다. 신31;9-13절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 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고 하시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온 이스라엘 자손들도 듣고 배우고 타국인들도 듣고 배우고 함께 우거하는 사람들도 듣고 배우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듣고 배우라는 것이다. 듣고 배워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었다. 듣고 배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온 우주적인 것임을 말한다. 물론 선민인 이스라엘은 필수적이고 타국인도 포함되고 함께 우거하는 사람들도 포함이 되었다. 창12;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어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땅의 모든 족속을 언급했다. 창17;4-5절에는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여기에서는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을 말씀하시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축복의 나라가 되고 열국의 아비의 나라가 되게 되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에덴동안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가 동산에서 내어 좇김을 당했고 노아 홍수며 소돔과 고모라며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찾기가 어려워 심판을 하셨던 것이다. A.D. 70년경에 있었던 예루살렘 대 말살 사건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였던 것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의 역사를 잘 관찰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한 사람들 보다는 그렇치 못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시었던 말씀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많은 예언들을 주시었다.
2,말씀된 것들의 실현 그 예언자 중에 한 사람인 이사야를 통하여 주셨던 말씀이 사6;9-13절의 말씀이시다. 이주에 특별히 9절과 10절에 이런 말이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 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오늘 본문 26절과 27절의 말씀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시었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여기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어 주신 복음 사역의 말씀을 듣고도 행함이 없으므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될 가망이 없겠기에 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와 눈을 막아서 구원의 문이 이방으로 향하에 하시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사도 바울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매 다메섹에서 바울을 부르시어 이방인을 위한 복음 사역의 일꾼을 삼으신 것이었다. 사도 바울이 그 험난한 길을 매맞으면서 로마까지 오게 된 것도 역시 이방인을 위한 구원사역 때문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예루살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배척하고 죽일 려고만 했는데 로마에 온 후로는 사도 바울의 강론을 듣고 날로 날로 믿는 사람들의 수효가 증가했던 것이다.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이 들을 수록 좋은 것이다. 성경에 보면 말씀을 잘 듣고 수지 맞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노아 아브라함 열문둥이 나아만 백부장 가나 혼인잔치의 하인들 참으로 많다.
3,저희는 들으리라 " 28절을 다시 같이 보자.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사도 바울로 시작하여 구원의 복된 소식이 이방인에게로 건너 오게 되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들을 향하여 왜치고 있다. "귀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들으라고 왜쳐대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시는가 오늘 나에게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시는가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라면 또 세상을 향하여 왜쳐야 한다.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들어야하는가 롭10;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하여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왜침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이다. 물론 수 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듣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써 이방인들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돌아 올 것을 내다 보면서 특별히 부분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롬11;25절의 말씀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비밀이란 말을 두번이나 반복을 했는데 그 반복한 비밀이 바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자인 것이다. 때도 시도 없이 무작정 복음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충만한 수의 기준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수자가 다 차면 이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다시금 이수라엘로 돌아 갈 것을 말함임을 알아야 한다. 제가 믿기로는 그 이방인의 충만한 수자가 거의 차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복음을 왜쳐야 할 마지막 주자들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구원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또 세상을 향하여 구원의 멧세지를 왜쳐야 한다. "저희는 또한 믿으리라" 내 이웃에 내가 전하지 아니했으므로 말미암아 듣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없는가 살펴보자. 예수 전하는 자가 되자. 예수 자랑하는 자들이 되자. 사도 바울처럼 목숨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예수를 전하자. "저희는 또한 믿으리라" 여러분들을 통하여 땅끝까지 복음의 역사가 일어 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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