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롬1:14-17)
본문
우리의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믿는다'는 고백에서 우리의 신앙은 출발 하게 됩니다.믿는다는 확신과 고백이 없으면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히브리서에서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믿음이 없이는 성경이 어떠 한 책인가 하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외아 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이 구원을 받을수가 있습니다.믿음외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 아니하신 것입니다.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사회주의에서는 당원을 보고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봅니다.학교에서는 공부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의 교회는 '믿음'을 보는 것입니다.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한다 하여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오직 믿음으로 만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만약에 천하를 다 얻고도 자신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그의 대작인 로마서에서 믿음을 대단히 강조하 고 있습니다.17절의 말씀은 로마서 전체 주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 의 뜻이며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하나님의 행동인데 그것은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함이라는 것입니다.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에' 라는 말을 주 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믿음 인 것입니다.지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믿음인 것입니다.우리는 지식이나 경험이나 이 해함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부시대의 안셀름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믿기 위하여 이해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 믿으면 이해가 되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그러나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하여서 믿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기독교의 진리에 접근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이해보다 믿음이 먼저인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로 마서에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와 시대가 어떠한 위기에 처할 때마다 로마서가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자 루터는 본문 로마서 1:17절의 말씀을 그의 종교개 혁의 원동력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중세의 교회는 우리가 잘 아는데로 기독교의 원래 정신을 다 상실해버리고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정치적으로 안정이 되고 경 제적으로도 풍요의 복을 누렸던 중세교회는 처음교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교회의 순수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세상권력과 편승하여 백성들에게서 떠나 있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에게서도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중세의 신학은 교리논쟁으 로만 얼룩이 졌고 점차 삶 과는 전혀 무관한 논쟁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그들이 했 던 논쟁에는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바늘 끝위에는 천사가 몇명이나 서 있을수 있겠는가성만찬때 파리가 포도주에 빠져 죽었는데 그 파리가 예수님의 피를 먹고 죽은 것이 되어, 그 파리는 구원을 받았겠는가 못 받았겠는가" 삶과는 무관한 자신들의 독선을 신학이고 교리인 것처럼 남발하였습니다.돈으 로 성직을 사고 팔았고 온갖 악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극기야는 면죄부 도 팔게 되었습니다.이 때 종교개혁자 루터가 가지고 나온 것이 '성서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그는 로마서를 주석하였습니다.여기에서 우리 개신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9세기의 교회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 이라는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자유주의 신학이라함은 성서를 해석하고 연구할 때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인 과학정신을 소 중히 생각하고 그러한 이성과 과학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신학사조입니다.성경을 이 성으로만 연구한 결과 성경에 있는 영성과 하나님의 계시를 잃어버리고 교회는 또한번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교회는 더이상 신성한 곳이 되지 못하였고 성경은 다른 고대문헌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일종의 종교경전으로 취급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이러할 때 소위 신정통주의라는 사조를 가지고 나와서 교회의 방향을 바꾸어버린 신학자가 바로 칼 바르트라는 사람입니다.그는 세 기의 신학자로 불리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그가 한일은 로마서를 강해하는 일이 었습니다.그 역시 로마서강해에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맞고 있습니다.오늘 우리의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오늘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문제는 바로 믿음 과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부모와 자식간에 믿음과 신뢰가 상실되고 있습니다.스승과 제자간에는 벌써 상실되었습니다.정치인들이 가장 거짓말을 잘하고 가장 믿을수 없는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이러할 때에 우리 교회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믿음'을 더 깊이 생각해보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결단해야 하는 때를 맞이한 것입니다.이 시간에 심각하게 자신 을 향하여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은 주실 뿐만이 아니 라 믿음은 우리 신앙의 내용이자 신앙의 주제이자 신앙의 출발점이 되는 신앙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이제 함께 생각해 보고져 합니다.우리가 믿는 믿음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복음'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인 것입니다.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그는 복음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일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그는 자신을 복음의 빚진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헬라인 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즉 모든 자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노라고
그러므로 갚아야겠노라고 그는 말하고 있스,빠니다.그래서 15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가 그토록 전하기를 원했던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구약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그것이 바울이 전하려 했던 복음인 것입니다.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요구되 고 있습니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본문 16절에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는 능력을 얻고 새 힘 을 얻으며 성령님의 충만함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임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1장 7절의 로마 에 있어라는 귀절이 어떤 사본에서는 빠져 있습니다.이 말씀은 로마서가 비단 로마 에 있는 성도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의 성도들에게도 보내어 졌음을 또는 읽혀 졌 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즉 로마인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 인데 특별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실존철학자들 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앞에 선 단독자입니다.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지극히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감사하고 감격해 하며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일평생의 삶을 헌신하였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지금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믿어야 합니다.우리집의 자녀들은 부모된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실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실천가능한 말씀을 주셨습니다.율법은 실천불가능한 말씀입니다.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고 다만 우리의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그러나 복음은 실천가능한 것입니다.율법으로는 원수사랑이 불가능하지만 복음으로는 가능합니다.왜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이 원수된 우리를 먼저 용서해 주셨다는 감사와 감격이 우리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원수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성경은 약속에 대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증언들입니다.먼저 이스라엘은 시내산의 언약을 맺었습니다.신명기 28:1-6에 하나님은 그 백성과 언약을 맺고 계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또한 로마서 10장 9절에는 복음의 언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 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 르고 입으로 시인 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믿음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믿음의 관계를 맺으 신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그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그는 너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하였 습니다.그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로마서 4장에서는 그의 믿음에 대해 소 개하고 있습니다.하브라함의 믿음은 17)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18)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없 이 신앙생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피곤하고 곤고하고 재미없고 그저 그렇습니다.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도 쉽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 기 때문인 것입니다.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4
둘째 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믿음이 없이는 성경이 어떠 한 책인가 하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외아 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이 구원을 받을수가 있습니다.믿음외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 아니하신 것입니다.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사회주의에서는 당원을 보고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봅니다.학교에서는 공부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의 교회는 '믿음'을 보는 것입니다.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한다 하여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오직 믿음으로 만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만약에 천하를 다 얻고도 자신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그의 대작인 로마서에서 믿음을 대단히 강조하 고 있습니다.17절의 말씀은 로마서 전체 주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 의 뜻이며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하나님의 행동인데 그것은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함이라는 것입니다.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에' 라는 말을 주 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믿음 인 것입니다.지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믿음인 것입니다.우리는 지식이나 경험이나 이 해함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부시대의 안셀름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믿기 위하여 이해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 믿으면 이해가 되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그러나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하여서 믿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기독교의 진리에 접근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이해보다 믿음이 먼저인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은 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로 마서에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와 시대가 어떠한 위기에 처할 때마다 로마서가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자 루터는 본문 로마서 1:17절의 말씀을 그의 종교개 혁의 원동력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중세의 교회는 우리가 잘 아는데로 기독교의 원래 정신을 다 상실해버리고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정치적으로 안정이 되고 경 제적으로도 풍요의 복을 누렸던 중세교회는 처음교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교회의 순수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세상권력과 편승하여 백성들에게서 떠나 있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에게서도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중세의 신학은 교리논쟁으 로만 얼룩이 졌고 점차 삶 과는 전혀 무관한 논쟁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그들이 했 던 논쟁에는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바늘 끝위에는 천사가 몇명이나 서 있을수 있겠는가성만찬때 파리가 포도주에 빠져 죽었는데 그 파리가 예수님의 피를 먹고 죽은 것이 되어, 그 파리는 구원을 받았겠는가 못 받았겠는가" 삶과는 무관한 자신들의 독선을 신학이고 교리인 것처럼 남발하였습니다.돈으 로 성직을 사고 팔았고 온갖 악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극기야는 면죄부 도 팔게 되었습니다.이 때 종교개혁자 루터가 가지고 나온 것이 '성서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그는 로마서를 주석하였습니다.여기에서 우리 개신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9세기의 교회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 이라는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자유주의 신학이라함은 성서를 해석하고 연구할 때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인 과학정신을 소 중히 생각하고 그러한 이성과 과학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신학사조입니다.성경을 이 성으로만 연구한 결과 성경에 있는 영성과 하나님의 계시를 잃어버리고 교회는 또한번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교회는 더이상 신성한 곳이 되지 못하였고 성경은 다른 고대문헌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일종의 종교경전으로 취급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이러할 때 소위 신정통주의라는 사조를 가지고 나와서 교회의 방향을 바꾸어버린 신학자가 바로 칼 바르트라는 사람입니다.그는 세 기의 신학자로 불리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그가 한일은 로마서를 강해하는 일이 었습니다.그 역시 로마서강해에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맞고 있습니다.오늘 우리의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오늘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문제는 바로 믿음 과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부모와 자식간에 믿음과 신뢰가 상실되고 있습니다.스승과 제자간에는 벌써 상실되었습니다.정치인들이 가장 거짓말을 잘하고 가장 믿을수 없는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이러할 때에 우리 교회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믿음'을 더 깊이 생각해보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결단해야 하는 때를 맞이한 것입니다.이 시간에 심각하게 자신 을 향하여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은 주실 뿐만이 아니 라 믿음은 우리 신앙의 내용이자 신앙의 주제이자 신앙의 출발점이 되는 신앙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이제 함께 생각해 보고져 합니다.우리가 믿는 믿음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복음'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인 것입니다.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그는 복음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일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그는 자신을 복음의 빚진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헬라인 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즉 모든 자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노라고
그러므로 갚아야겠노라고 그는 말하고 있스,빠니다.그래서 15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가 그토록 전하기를 원했던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구약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그것이 바울이 전하려 했던 복음인 것입니다.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요구되 고 있습니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본문 16절에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는 능력을 얻고 새 힘 을 얻으며 성령님의 충만함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임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1장 7절의 로마 에 있어라는 귀절이 어떤 사본에서는 빠져 있습니다.이 말씀은 로마서가 비단 로마 에 있는 성도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의 성도들에게도 보내어 졌음을 또는 읽혀 졌 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즉 로마인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 인데 특별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실존철학자들 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앞에 선 단독자입니다.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지극히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감사하고 감격해 하며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일평생의 삶을 헌신하였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지금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믿어야 합니다.우리집의 자녀들은 부모된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실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실천가능한 말씀을 주셨습니다.율법은 실천불가능한 말씀입니다.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고 다만 우리의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그러나 복음은 실천가능한 것입니다.율법으로는 원수사랑이 불가능하지만 복음으로는 가능합니다.왜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이 원수된 우리를 먼저 용서해 주셨다는 감사와 감격이 우리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원수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성경은 약속에 대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증언들입니다.먼저 이스라엘은 시내산의 언약을 맺었습니다.신명기 28:1-6에 하나님은 그 백성과 언약을 맺고 계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또한 로마서 10장 9절에는 복음의 언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 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 르고 입으로 시인 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믿음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믿음의 관계를 맺으 신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그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그는 너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하였 습니다.그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로마서 4장에서는 그의 믿음에 대해 소 개하고 있습니다.하브라함의 믿음은 17)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18)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없 이 신앙생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피곤하고 곤고하고 재미없고 그저 그렇습니다.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도 쉽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 기 때문인 것입니다.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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