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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을 만난 원인과 결과 (행27,1-26)

본문

1,풍랑을 만난 원인
2,풍랑을 만난 결과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 찔려는 찔려를 내게 되 있는 것이고 장미는 장미 꽃을 피운다. 그런서 그 원인이 좋은 것이면 결과도 좋고 반대로 그 원인이 나쁘면 그 결과도 나쁘기 마련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알렉산드리아라 하는 큰 배가 그레데라는 해변을 끼고 항해하다가 큰 풍랑을 만난다. 왜 이 큰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과 풍랑을 만난 그 결과는 과연 무었인가를 살펴 보면서 함께 은해를 받고자 한다.
1,풍랑을 만난 원인 먼저 풍랑을 만나게된 원인을 알아보자.
1),시기가 아니었다.-- 고대의 지중해 항해일지등을 보면 9 월에서 명년 3 월까지는 풍랑의 시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좀 작다고 생각되는 배들은 항해를 중지했었다.
그런데 본문의 알렉산드리아 호가 출항한 시기는 금식하는 절기가 지난 다음이라고 했다. 금식하는 절기는 9월 초순이다. 그러니 알렉산드리아 호가 출항한 시기는 대략 9 월 20 일 경이 된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출항할 적절한 시기가 아니였다. 시기 선택을 잘못했음을 알 수 있다. 잘못 선택한 시기의 결과로 풍랑을 만났던 것이다.
2),잠시의 안일을 좋와했다.-12절에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함으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여기의 과동이라는 말은 겨울을 지나기가 불편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레데 항구의 지리적 상황은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한고로 겨울에 찬 바람인 서북풍을 막고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 그래서 그레데항구를 선택한 것인데 가다가 가지도 못하고 중도에 풍랑을 만낫던 것이었다. 육신적인 안일만 생각을 했던 결과였다.
3),남풍이 순하게 불었다.-13절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 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따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때아닌 남풍이 순하게 불어 왔다. 남풍을 조심해야 한다. 순풍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남풍이 순하게 불더라도 그것이 영적인 일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 순한 남풍일찌라도 불때 불어야지 때가 아닐땐 위험한 것이다. 순한 것이라고 반듯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때 아닌 남풍을 믿다가 때아닌 순풍을 믿다가 백부장과 알렉산드리아 호는 풍랑을 만났던 것이다.풍랑을 만났던 것이다.
4),선주와 선장의 말을 바울의 발보다 더 신뢰했다-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고 했다. 세상적인 지식을 바울의 말보다 더 중시했었다. 세상적인 경험을 바울의 말보다 더 신뢰했다. 이 말은 세상의 지식이 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세상의 상식과 경험이 쓸데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이런 것들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엇다는 말이다. 그 믿은 결과가 풍랑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기까지 단 한 번도 저들의 영혼을 위한 것들 때문에 무었을 했다는 말이 없다,. 전부가 세상적인 일들이었다. 전부가 육신적인 일들이었엇다. 육신 육신 하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다.
2,풍랑을 만난 결과 "
1),인간무능을 느낀다.-- 14-15절에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채를 둘러 감고 스르디에 걸릴까 하여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알렉산드리아 호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호에는 많은 부호들이 타고 있었다. 알렉산들리아 호에는 많은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호에는 선주도 선장도 선원들도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라굴라 광풍이 불어닥치자 그 누구 한 사람도 광풍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없었다. 말씀 그대로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고 있는 기약 없는 처량한 신세들이 된 것이다. 16절엔 간신히 거루를 잡았다고 했다. 여기의 거루는 배의 돛을 말한다. 풍랑이 심해서 돛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음은 배의 기능을 다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 17절엔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채를 둘러 감고." 선채가 산산 조각날까바 줄로 배를 동여 매었다.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다가" 스르디스라는 말은 바다 속의 사정 즉 모래 톱을 가리키는 말한다. 여기에 걸리게 되면 배와 사람 할 것 없이 다 산산 조각나고 마는 것이다.
2),소유를 다 잃었다.-- 18절에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튼 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이제는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배에 실었던 짐짝들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어떤 짐짝들이 버려졌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지금 바다에 버려진 짐들이야 말로 사람의 생명 다음으로 귀중한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금은 보화를 비릇하여 각가지 값진 것들이 한 순간에 바다에 수장되고 말앗다. 다시 말해서 커다랗게 부풀었던 꿈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사람이 살기위해선 이 모두를 다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풍랑만난 인생인 것이다. 아니 이런 것이 인생인 것이다. 인색하지 맙시다. 교만하지 맙시다. 투기하지도 맙시다. 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인 줄 압시다. 19절을 보시라 ''사흘째 되던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고 했다. 기구가 없는 배를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 까지도 버려야했다. 얼마나 귀한 것들인가 얼마나 아끼던 기구들인가.
3),소망이 끊어 졌다.-- 20절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광풍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더라"' 우리는 매년 년중 행사처럼 여름이면 큰 물난리를 당한다. 지난해에도 서울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엇다. 그것이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당하는 것인데도 그렇게 무섭고 사나운 것임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망망한 대해에서 그것도 배를 타고 만난 광풍이니 그 사나움이 얼마나 심했겠나 여러날 해와 별을 광풍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22절이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빼 뿐이니라" 이제는 항해의 근본인 배마져 잃게 되었다. 길떠나서 바다 가운데서 배마져 잃는다면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것이 혹시 여러분들의 간증이나 경험담이 아닌지요 오늘도 인생한해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을 하십다. 오늘 지금도 풍랑을 만난 인생을 향하여 서장되시는 주님은 말씀하신다. 25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슴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미 또 나를 믿으라" 바다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란다. 항햐의 참 선장이신 주님을 믿으시길 바란다. 주님만이 풍랑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바란다. 여러분이 믿는 그 주님게서 어려분들의 모든 풍랑 즉 마음의 풍랑, 가정의 풍랑, 사업의 풍랑 등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여 주실 것이다. 풍랑의 원인되었던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시고 갈릴리 바다를 잠잠케 하시었던 주님의 말씀을 따라 풍랑 없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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