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 앞에서의 바울 (행23:1-9)
본문
사도행전 22장 30절에서 23장9절까지는 바울이 산헤드린 앞에 서게 된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산헤드린이란 유대인의 최고 법정 기관입니다. 바울은 이곳 에서 하나님의 왕국 선언에 대하여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은 대제사장의 집 에서 열렸습니다. 이 재판이 어떻게 열릴 수 있었는가 행22:30절에 보면 무슨 이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송사하는지 그 실상을 알고자 하여 천부장 루시아가 주 선함으로 열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두종류의 신앙인을 보게 됩니다. 일찌기 아일랜드의 사회 비 평가이자 극작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는 인간의 본 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을 하였습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동물은 인간이다. 맹수 중의 왕인 사자는 그렇게 무섭지 않다
왜냐하면 사자는 먹으려는 욕망만 채워지면 그 이상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상과 정치와 윤리와 그밖의 목적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자신의 신 념과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고 끊임없이 덤벼든다. 일찌기 인간의 해악성에 대하여 통찰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신앙인의 범주에 국한 시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양심적 신앙인 바울은 본문 1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여기서 영심은 선한 양심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양심도 마비 된 악한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섬겼노라는 헬라어로 (페로폴리튜마이), 그 의미는 시민으로서 행하다, 어떤 원리나 규칙으로 살다 입니다. 양심이란 용어는 선악을 아는 기능인 동시에 도덕적 의무감을 자극하는 정서 로서, 바울 서신에는 20회, 베드로전서에 3회 그리고 사도행전에 2회(본절과 24:16)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법으로서 영원히 여러분의 편 이 아닌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양심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양심이 무너지면 신앙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양심은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 최후의 보류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양심에 비추어 보아서 일절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구약 시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죄악이 관영하여 그 죄악상이 하늘에 까지 치 솟았을 때 깨끗한 양심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입니다. (창18:22,23)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보실 때 최선을 다하였고, 나아가 자신의 양심에 비추 어 보아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이러한 바울은 후일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 에게 보낸 편지에서 딤전1:19절에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하였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 라' 베드로 사도도 벧전3:16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범사에 야심에 따라 살고 이것 위에 하나님의 법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양심에 비 추어서도 부끄러운 삶을 사는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타락한 신앙인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이 있지만 타락한 신앙인 처럼 무서운 사람이 없읍니다. 인간의 생명과 정의를 귀하게 여기고, 나아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신앙인이 도리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망각한 채, 탐욕을 위하여 난폭한 수 단을 사용한다면 , 이는 신앙인이 아니요 종교 장사꾼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최고의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에 타락한 신앙인 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먼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을 맡은 대제사장 아 나니아를 보십시요. 그는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바울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2 절에 그 입을 치라 고 합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입을 때리는 행위는 사람의 인 격을 극도로 모독하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에 대해 사리를 따져 보기 전 에, 즉각적으로 입을 치라고 명하는 것은 폭력적 성격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여실 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좌우에 버티고 앉아 바울을 재판 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역사의 지배 역사는 신적인 목적을 가지며 개인의 자유 주장 원 리 하나님에 의하여 다스려 진다
천 사 론 천사와 마귀의 존재 인정 천사와 마귀의 존재를 인정내 세 존재를 믿음 존재를 믿지 않음 성 격 외식자요 위선자 율법자 정권과 결탁한 현실주의 자
3 바울이 이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3절에 '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이 표현은 일찌기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 하여 회칠한 무덤이여 라는 말씀과 일한 말씀입니다. 회칠한 담이여, 회칠한 무 덤이여 라는 표현의 말씀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회칠한 무덤 은 겉은 깨끗한 것 같으나 속은 썩어 빠진 상태를 의미하고, 회칠한 담 은 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못해 흔들거리면서 겉은 흰 회를 칠해서 튼튼한 것처럼 꾸미는 것 을 뜻합니다. 타락한 신앙인은 이러한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이 말은 저주의 말이자 예언의 말입니다. 이 말 대로 아나니아는 열심당(셀롯당)이 주동이 예루살렘을 점령 하였을 때 아나니아는 그의 형제 히스기야와 함께 암살 되었습니다.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양심적 신앙인과 타락한 신 앙인의 말로는 어떠하였습니까 바울은 분명히 면류관을 썼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일절 부족함이 없고, 스스로 양심에 비추어서 부족함이 없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먹으려는 욕망만 채워지면 그 이상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이상과 정치와 윤리와 그밖의 목적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자신의 신 념과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고 끊임없이 덤벼든다. 일찌기 인간의 해악성에 대하여 통찰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신앙인의 범주에 국한 시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양심적 신앙인 바울은 본문 1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여기서 영심은 선한 양심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양심도 마비 된 악한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섬겼노라는 헬라어로 (페로폴리튜마이), 그 의미는 시민으로서 행하다, 어떤 원리나 규칙으로 살다 입니다. 양심이란 용어는 선악을 아는 기능인 동시에 도덕적 의무감을 자극하는 정서 로서, 바울 서신에는 20회, 베드로전서에 3회 그리고 사도행전에 2회(본절과 24:16)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법으로서 영원히 여러분의 편 이 아닌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양심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양심이 무너지면 신앙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양심은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 최후의 보류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양심에 비추어 보아서 일절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구약 시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죄악이 관영하여 그 죄악상이 하늘에 까지 치 솟았을 때 깨끗한 양심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입니다. (창18:22,23)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보실 때 최선을 다하였고, 나아가 자신의 양심에 비추 어 보아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이러한 바울은 후일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 에게 보낸 편지에서 딤전1:19절에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하였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 라' 베드로 사도도 벧전3:16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범사에 야심에 따라 살고 이것 위에 하나님의 법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양심에 비 추어서도 부끄러운 삶을 사는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타락한 신앙인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이 있지만 타락한 신앙인 처럼 무서운 사람이 없읍니다. 인간의 생명과 정의를 귀하게 여기고, 나아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신앙인이 도리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망각한 채, 탐욕을 위하여 난폭한 수 단을 사용한다면 , 이는 신앙인이 아니요 종교 장사꾼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최고의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에 타락한 신앙인 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먼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을 맡은 대제사장 아 나니아를 보십시요. 그는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바울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2 절에 그 입을 치라 고 합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입을 때리는 행위는 사람의 인 격을 극도로 모독하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에 대해 사리를 따져 보기 전 에, 즉각적으로 입을 치라고 명하는 것은 폭력적 성격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여실 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좌우에 버티고 앉아 바울을 재판 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역사의 지배 역사는 신적인 목적을 가지며 개인의 자유 주장 원 리 하나님에 의하여 다스려 진다
천 사 론 천사와 마귀의 존재 인정 천사와 마귀의 존재를 인정내 세 존재를 믿음 존재를 믿지 않음 성 격 외식자요 위선자 율법자 정권과 결탁한 현실주의 자
3 바울이 이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3절에 '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이 표현은 일찌기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 하여 회칠한 무덤이여 라는 말씀과 일한 말씀입니다. 회칠한 담이여, 회칠한 무 덤이여 라는 표현의 말씀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회칠한 무덤 은 겉은 깨끗한 것 같으나 속은 썩어 빠진 상태를 의미하고, 회칠한 담 은 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못해 흔들거리면서 겉은 흰 회를 칠해서 튼튼한 것처럼 꾸미는 것 을 뜻합니다. 타락한 신앙인은 이러한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이 말은 저주의 말이자 예언의 말입니다. 이 말 대로 아나니아는 열심당(셀롯당)이 주동이 예루살렘을 점령 하였을 때 아나니아는 그의 형제 히스기야와 함께 암살 되었습니다.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양심적 신앙인과 타락한 신 앙인의 말로는 어떠하였습니까 바울은 분명히 면류관을 썼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일절 부족함이 없고, 스스로 양심에 비추어서 부족함이 없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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