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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앞에 선 바울 (행2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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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을 체포한 로마의 천부장은 바울을 심문하기 위하여 공회를 소집했다. 공회는 유대인들의 대법원이라할 수 있는 기관을 말한다. 이 공회는 72인의 회원으로 그 구성이되 있다. 참으로 사람의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 전엔 사도 바울도 이 공회의 회원이었는데 오늘은 이 공회 앞에 공회원이 아닌 피고의 입장이 되어서 서 있게 된 것이다. 공회가 다른 일들도 했겠지만 성경에 나타나 있는 사건들만을 보면 유대인의 공회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기 위한 강력한 집단으로 되 잇다. 마27;1절에 "새벽에 모든 대 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을 때에도 공회가 소집되었다. 행4;5절에 "이튼날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이때는 베드로를 재판하기 위하여 공회가 소집되었다. 행6;12절엔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여기에선 일곱 집사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을 심문하기 위하여 공회가 소 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사도 바울을 심문하기 위하여 공회가 소집이 되었다.
1,양심대로 산 사도 바울 " 심문을 받기 위하여 공회 앞에 선 바울은 23:1절에서 "바울이 공회를 주복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여기에서 형제들아"라고한 말은 옛날에 함께 공회원으로 있던 동료들을 존경해서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옛 동료들에 의하여 오늘은 심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오늘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한 것은 사도 바울이 공회원을 그만둔 다음부터 여러분들 앞에 선 지금까 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이다. 그럼 이 양심은 어떤 양심을 말ㅎ는가 성경엔 다음과 같은 양심들이 있다. 0
1,부패한 양심. 0
2,화인맞은 양심. 0
3,깨끝한 양심. 그럼 바울이 양심대로 살았다고한 양심은 어느 양심인가 고후1;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체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바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 한 말과 또 고후1;3-4절 "나의 밤 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나를 생각하며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던 말은 깨끝한 양심,즉 선한 양심을 말한다. 이 선한 양심이란 신앙적인 양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닮은 양심을 말한다. 고전1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얼마나 귀한 말인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되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우리 모두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끔 살아야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양심을 가진 사람을 찾으신다. 다시 말해서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양심자를 선택하시어 혼난한 믿음의 세대를 바로 인도해 갔다. 즉각 시대의 이정표를 세워서 길 잃은 자들의 갈길을 바로 잡아 주었던 것이다 차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면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이다. 이정표만 잘 되어 있으면 아므리 낫선 길이라도 힘들지 않게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정표가 없든지 있기는 있으나 제되로 되 있지 않으면 갈 길을 제대로 갈 수가 없게 된다. 사도 바울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산 당시의 이정표였다. 오늘 우리들은 바로 이 이정표와 같이 사신 사람들의 삶을 되새기면서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어떤 이정표라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오래도록 돌보지 않아서 방향표시가 흐려져 있지는 않은지 사도 바울은 공회 앞에서 힘있게 자기는 오늘이 있기가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대답하고 있다. 마5;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했는데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깻끝한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닮은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하니 대 제사장 아나니아가 곁에섯는 사람을 보고 바울의 입을 치라고 햇다. 불의하게 살고 있는 대 제사장 아나니아에겐 양심대로란 말이 마치 붉은 기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나니아는 바울의 입을 치라고 했다. 그럴때 3절에서 바울은 아나니아를 향하여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라고 했다. 회칠한 담이란 흙으로 담을 쌓고 그 겉을 회회색으로 칠한 것을 말한다. 그러니 겉은 멀정한데 속은 새카마케 석은 것을 말한다. 아나니아는 후대 역사에 의하면 "유대인의 전쟁"이라는 전쟁때 자객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대제사장인줄 모르고 그런 심한 말을 했엇다. 그래서 5절에 즉시 사과를 하고 있다.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 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고 했다. 이를 보아서도 우리들은 바울의 선한 양심을 볼 수 있다.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자기의 한 말을 변호하지도 않는다. 바울은 사실그대로 받아들이고 즉시 사과를 했다. 타락한 제사장이야 미웠지만 그 직위만은 존중을해야 했던 것이 바울의 양심이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란 모세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례 주일이다. 오늘 성례 주일과 본분을 비교하면서 우리들이 얻어야할 교훈은 무었인가 주님의 성찬에 참여를 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바울과 같은 양심의 소유자가 되어야한다. 왜내구 성찬에 참예함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동참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동참을 했다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것이기에 우리들은 당연히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되어야한다. 성찬에 수백 번 참예하면 무었하나 성찬에 참예 했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말아야한다.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알았으면 그리스도처럼 살아야한다. 그게 오늘 사도 바울의 삶의 고백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사도 바울처럼 "나는 오늘까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화인맞은 양심도 되지 말고 타락한 양심도 말고 그리스도를 닮은 깨끗한 양심으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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