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주님 (행23,11-13)
본문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로는 줄곳 한 길만 걸어 온 사도이다. 주님만을 위한 한 길을 걷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산헤드린 공회원의 직위를 버렸다. 베냐민 지파중 베냐민 사람의 긍지며, 헬라 문화속의 높은 학문이며, 그의 삶의 경력에 의한 명성이며, 그에게 보장된 앞날의 출세 길도 주님을 따르는 한 길 때문에 다 헌신짝 같이 내 팽개쳐 버린 것이다. ''' 내가 농사일을 버리지 못해 하던 날들의 회고'''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전도를 맡아서 무려 세번씩이나 해외 전도를 다녀 온 것이다. 요지음 같아서야 해외에 나들이 하는 것은 쉬운일이나 당시의 형편으로는 즉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였다. 그 세번의 여행 가운데도 바울을 해치려는 무리들의 박해도 많았다. 많은 매질을 당해야 했고, 감옥에도 수차레 갔었고, 강도 만난 일이며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린 일들은 말로다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이것을 자기가 가야할 길이란 것을 알게된 바울은 자기의 목숨보다도 그 길을 소증하게 여기면서 힘차게 달려 온 것이다. 이제 에루살렘에서 그의 인생 마지막 가는 길에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여 달려 왔는데 막상 그를 맞아주는 것은 그를 잡아 죽일려는 유대인들의 중상과 모략들이었다.
1,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과 위험 12절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13절에 이같이 동맹한 자가 40 여명이더라" 바울이 마치 흉악한 범죄인것처럼 바울을 죽이지 아니하면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맹세까지 하고 있는 못된 무리들이 무려 40 여명이면 맹세까지는 하지 않했더라도 바울을 죽이기 위하여 둘러싸고 무리들을 다 계산 한다면 굉장히 많은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대로 전개가 된다면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처형한 저 무리들에 의하여 또 사도 바울도 처형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항 것이다. 또한가지는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유대인들의 고소로 인하여 빌라도에게 체포 되었을 때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업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예수님에게 얼토당토 않은 판결을 내려 십자가에 못을 박에 했던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다. 지금 로마의 천부장 손에 있지만 그게 무슨 힘이 되는가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 하고 몇번 크게 고함만 질러대면 법정의 판결은 예수님때 처럼 바울을 죽이는 쪽으로 판결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다.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그것도 재판관인 빌라도도 주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시인까가지 하면서도 십자가에가 죽이라고 꺼리낌도 없이 내어 주었는데 바울쯤이야 말해서 무었 하겠는가 이제는 영락 없이 죽어야하는게 사도 바울의 신세이다.
2,바울 곁에 서신 주님 " 사도 바울도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40여명이 죽이지 아니하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고 또 그외에도 흥분을 가라않치지 못하고 있는 수 많은 무리들이 지금도 이 감옥 박에 있을 것을 생각하고 있는 바울의 심저은 … 그것도 밤이 깊어가고 있는 한 밤중에 어둑캄캄한 감옥에 혼자 있는 바울의 심기는 매우 착찹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 캄캄한 그 밤 그 시각에 주님은 바울을 찾아 주신 것이다. 11절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지금 주님께서 사도 바울 곁에 서서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진정 주님의 일군이라면 주님은 결코 자기의 일군을 버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주님과 주님의 일군간의 사이가 아니라고 치자.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생명을 다하여 여러분들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광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던 분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모른체 하실 것인가 사람대 사람도 그렇게 못하는 것인데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의 일군에게 모른체 하실순 없는 것이다. " 천로역정"을 쓰신 Jojn Bunyan(1628-1688) 이 감옥에 같여 있을 때 퀘익 교도 한분이 번연을 찾아 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퀘익교도는 번연에게 "친구여 주님께서 나를 당신에게 보내셨소, 나는 영국의 많은 감옥 중 절반이나 헤메여서 당신을 찾은 것이요" 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죤 번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니요 그럴리가 없오, 만일 주님께서 당신을 내게 보내 셨다면 당신은 단번에 이곳으로 왔을 것이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미 몇년 전부터 나와 함께 이곳에 계시기 때문이요"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만 계셔도 얼마나 영광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계신다면 더 영광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밤인데 주님은 옥 중에 있는 사도 바울 곁에 서서 계신 것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계시던 그 주님의 모습을 지금은 사도 바울이 보고 있는 것이다. 마28;20절에서 주님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최후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시었다. 항상 함께 계시마고 하시던 그 주님께서 지금 사도 바울 곁에 서서 계시는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고 물 으시돈 그 주님께서 지금 바울 곁에 서 계시는 것이다. 이때 바울이 다메섹의 일이 생각 났을런지도 모른다. 다메섹에서 바울을 부리시던 그 주님께서 지금 또 바울곁에 서서 바울을 위로하고 있다. "어린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을 때 아이를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아이의 어머니 밖엔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바울을 진정으로 위로 할 수 분은 주님밖엔 아무도 없다. 그런 주님이신데 꼭 필요한 시간에 주님은 바울을 찾으신 것이다.
3,바울에게 말씀을 주시는 주님 "
1),주님의 인정-11절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것같이." 이는 주님께서 오늘 날까지의 사도 바울의 업적을 인정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이시다. 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나의 한 일을 알고 계시는 주님! 나의 걸어 온 길을 인정해 주시는 주님! 오늘까지 나와 쭉 함께 이 길을 같이 걸어 오신 주님이 아니신가 물론 내 한 일이 미비하고 보잘 것은 없으나 주님께서 아시고 인정을 해 주시니 얼마나 기쁜가 "네가 예루살레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정말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잘 지켜 온 분이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자기의 생명 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면서 그의 생을 바쳐 온 사람이다. 아무도 세상 사람들은 인정해 주지 않는 초라한 삶이였지만 오늘 밤에 곁에 서서 위로해 주시는 주님 한분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바울이다. 소아시아에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더다" (계3;8) 라고 칭찬을 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 하시던 그 주님이 지금 바울에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2),담대하라-` 주님께서 특별히 부탁을 하고 있는 말씀은 "담대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너를 돕고 있으니 너는 "담대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향하여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수1;9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에게 하시던 그 말씀 사도 바울에게 하시던 그 말씀을 지금은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믿는가 우리들도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무었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나의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후 사도 바울은 그의 옥중 서신인 빌립보서1;20절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라고 그의 삶을 고백했던 것이다.
3),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Roma 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주님께서 지나 온 과거만을 아시는 그런 주님이 아니시다. 지난 과거사만을 칭찬하시는 주님이 아니시라 이제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까지도 아시고 미리 말씀해 주시는 위로의 주님이시다. 이 말씀 속에는 "바울아 담대하라 지금이 너의 인생의 끝장이 아니다 앞으로 이보다 할 일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결코 예루살렘에서 죽지 않는다. 이제 네가 로마에 가서 거기서 더 큰 일을 해야한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내ㅍ되 있는 것이다. 사실 로마로 가고 싶었던 것은 사도 바울의 일생 일대의 소원이었다. 꼭 한 번이라도 로마에 가서 거기서 말씀을 증거하고 싶었던 것이 사도 바울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예루살렘에서 좌절되는가 싶었던 찰나에 주님이 나타 나셔서 확신을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얼마나 멎진 장면인가 얼마나 위대한 주님이신가 이 주님이 바로 여러분들의 주님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어떤 일에나 용기를 가지십시요.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이시다. 바울의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들과 함게 계신다.
1,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과 위험 12절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13절에 이같이 동맹한 자가 40 여명이더라" 바울이 마치 흉악한 범죄인것처럼 바울을 죽이지 아니하면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맹세까지 하고 있는 못된 무리들이 무려 40 여명이면 맹세까지는 하지 않했더라도 바울을 죽이기 위하여 둘러싸고 무리들을 다 계산 한다면 굉장히 많은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대로 전개가 된다면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처형한 저 무리들에 의하여 또 사도 바울도 처형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항 것이다. 또한가지는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유대인들의 고소로 인하여 빌라도에게 체포 되었을 때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업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예수님에게 얼토당토 않은 판결을 내려 십자가에 못을 박에 했던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다. 지금 로마의 천부장 손에 있지만 그게 무슨 힘이 되는가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 하고 몇번 크게 고함만 질러대면 법정의 판결은 예수님때 처럼 바울을 죽이는 쪽으로 판결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다.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그것도 재판관인 빌라도도 주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시인까가지 하면서도 십자가에가 죽이라고 꺼리낌도 없이 내어 주었는데 바울쯤이야 말해서 무었 하겠는가 이제는 영락 없이 죽어야하는게 사도 바울의 신세이다.
2,바울 곁에 서신 주님 " 사도 바울도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40여명이 죽이지 아니하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고 또 그외에도 흥분을 가라않치지 못하고 있는 수 많은 무리들이 지금도 이 감옥 박에 있을 것을 생각하고 있는 바울의 심저은 … 그것도 밤이 깊어가고 있는 한 밤중에 어둑캄캄한 감옥에 혼자 있는 바울의 심기는 매우 착찹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 캄캄한 그 밤 그 시각에 주님은 바울을 찾아 주신 것이다. 11절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지금 주님께서 사도 바울 곁에 서서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진정 주님의 일군이라면 주님은 결코 자기의 일군을 버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주님과 주님의 일군간의 사이가 아니라고 치자.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생명을 다하여 여러분들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광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던 분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모른체 하실 것인가 사람대 사람도 그렇게 못하는 것인데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의 일군에게 모른체 하실순 없는 것이다. " 천로역정"을 쓰신 Jojn Bunyan(1628-1688) 이 감옥에 같여 있을 때 퀘익 교도 한분이 번연을 찾아 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퀘익교도는 번연에게 "친구여 주님께서 나를 당신에게 보내셨소, 나는 영국의 많은 감옥 중 절반이나 헤메여서 당신을 찾은 것이요" 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죤 번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니요 그럴리가 없오, 만일 주님께서 당신을 내게 보내 셨다면 당신은 단번에 이곳으로 왔을 것이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미 몇년 전부터 나와 함께 이곳에 계시기 때문이요"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만 계셔도 얼마나 영광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계신다면 더 영광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밤인데 주님은 옥 중에 있는 사도 바울 곁에 서서 계신 것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계시던 그 주님의 모습을 지금은 사도 바울이 보고 있는 것이다. 마28;20절에서 주님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최후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시었다. 항상 함께 계시마고 하시던 그 주님께서 지금 사도 바울 곁에 서서 계시는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고 물 으시돈 그 주님께서 지금 바울 곁에 서 계시는 것이다. 이때 바울이 다메섹의 일이 생각 났을런지도 모른다. 다메섹에서 바울을 부리시던 그 주님께서 지금 또 바울곁에 서서 바울을 위로하고 있다. "어린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을 때 아이를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아이의 어머니 밖엔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바울을 진정으로 위로 할 수 분은 주님밖엔 아무도 없다. 그런 주님이신데 꼭 필요한 시간에 주님은 바울을 찾으신 것이다.
3,바울에게 말씀을 주시는 주님 "
1),주님의 인정-11절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것같이." 이는 주님께서 오늘 날까지의 사도 바울의 업적을 인정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이시다. 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나의 한 일을 알고 계시는 주님! 나의 걸어 온 길을 인정해 주시는 주님! 오늘까지 나와 쭉 함께 이 길을 같이 걸어 오신 주님이 아니신가 물론 내 한 일이 미비하고 보잘 것은 없으나 주님께서 아시고 인정을 해 주시니 얼마나 기쁜가 "네가 예루살레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정말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잘 지켜 온 분이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자기의 생명 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면서 그의 생을 바쳐 온 사람이다. 아무도 세상 사람들은 인정해 주지 않는 초라한 삶이였지만 오늘 밤에 곁에 서서 위로해 주시는 주님 한분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바울이다. 소아시아에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더다" (계3;8) 라고 칭찬을 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 하시던 그 주님이 지금 바울에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2),담대하라-` 주님께서 특별히 부탁을 하고 있는 말씀은 "담대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너를 돕고 있으니 너는 "담대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향하여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수1;9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에게 하시던 그 말씀 사도 바울에게 하시던 그 말씀을 지금은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믿는가 우리들도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무었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나의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후 사도 바울은 그의 옥중 서신인 빌립보서1;20절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라고 그의 삶을 고백했던 것이다.
3),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Roma 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주님께서 지나 온 과거만을 아시는 그런 주님이 아니시다. 지난 과거사만을 칭찬하시는 주님이 아니시라 이제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까지도 아시고 미리 말씀해 주시는 위로의 주님이시다. 이 말씀 속에는 "바울아 담대하라 지금이 너의 인생의 끝장이 아니다 앞으로 이보다 할 일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결코 예루살렘에서 죽지 않는다. 이제 네가 로마에 가서 거기서 더 큰 일을 해야한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내ㅍ되 있는 것이다. 사실 로마로 가고 싶었던 것은 사도 바울의 일생 일대의 소원이었다. 꼭 한 번이라도 로마에 가서 거기서 말씀을 증거하고 싶었던 것이 사도 바울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예루살렘에서 좌절되는가 싶었던 찰나에 주님이 나타 나셔서 확신을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얼마나 멎진 장면인가 얼마나 위대한 주님이신가 이 주님이 바로 여러분들의 주님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어떤 일에나 용기를 가지십시요.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이시다. 바울의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들과 함게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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