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무죄성 (행25:1)
본문
바울 사도은 가이사랴에서 감옥생할을 하는 중에 세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첫째는 24장의 벨리스총독 앞에서의 재판이고, 두번째는 25장의 베스도총독 앞 에서의 재판이며, 세번째는 아그립바왕 앞에서의 재판입니다. 이 시간은 사도행전 25장을 중심으로 하여 사도 바울의 무죄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고소인들의 허위 하나님의 말씀 행25:7절에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 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고 하였읍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2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예전에 더둘로를 동원했던 것과는 달리,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울에게 위압감을 주며, 재판의 결과에 영향 을 끼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고소는 더둘로의 고소 내용에 비하여 새 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한 가지도 능히 증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실 무죄하였습니다.
2. 본인의 변호 사도 바울은 양심에 비추어 꺼리킴이 없이 8절, 10절, 11절에 자신을 변호합니다. 8절에 말합니다.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 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에게 제기된 모든 고발을 집약적 으로 종합하여 변호하였습니다. 율법이나, 성전은 유대인에게 관련된 것이고/ 가이 사에 대한 것이란 로마를 대하여 소요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라는 말은 유대인의 입을 봉해 버리는 말입니다. 본문 10절에 바울은 베스도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 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이 말은 베스도총독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말입니다. 베스도라는 이름의 뜻은 제일(祭日) 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는 단기 간 유대 총독으로 재임하였으며, 휼룡한 행정관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명 석한 베스도총독은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을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이유는 유대인의 호감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선보다는 사람의 시선이 더 중요했읍니다. 진실보다는 사람의 인기가 더 중요하였습니다. 월리암 캐리는 인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자 힘쓴 선교사입니다. 오늘날 선교 역사에 있어서 윌리암 캐리 선교사님을 기독교 선교사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성경을 34개 방언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 본국으로 돌 아와 선교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선교 보고를 할 때 어떤 사람이 불쑥 일 어나 질문을 하였습니다. '캐리씨! 당신은 선교사를 하기 전에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다면서요'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사역하는 캐리 선교사를 시기하였던 사람입니다. 이같은 질문을 받고 캐리 선교사는 오히려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 습니다. '네, 저는 구두를 만들 정도의 기술을 갖지 못했습니다. 다만 떨어진 구두 를 수선하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캐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쓰임받았던 비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체면 에 연연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 보다 더 많이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다. '만 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死罪)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 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 게 내어줄 수 없나이다' 우리도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총독 베스도의 선언 베스도는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유력한 산헤드린 의원들이 바울을 고소하였을 때,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망으로 보아 문제거리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제기한 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베스도는 필시 바울이라는 자가 상당히 중대한 악행을 범하였으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재판을 열고 보니 베스도의 짐작을 빗나 가고 말았습니다. 본문 18-19절 말씀을 보십시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 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하는 문제뿐이라' 베스도는 바울의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에 대하여 본문 25절에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는 바울의 무죄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행23:29 절에서 천부장 루시아도 알고 있었고, 24:22,23절에서 벨릭스총독도 알고 있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무죄하였던 것 입니다.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 고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혔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전혀 낙심해 하지 않고 그것을 도리어 전도의 기회로 활용하 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리 또한 바울 사도처럼 떳떳하게 사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고소인들의 허위 하나님의 말씀 행25:7절에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 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고 하였읍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2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예전에 더둘로를 동원했던 것과는 달리,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울에게 위압감을 주며, 재판의 결과에 영향 을 끼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고소는 더둘로의 고소 내용에 비하여 새 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한 가지도 능히 증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실 무죄하였습니다.
2. 본인의 변호 사도 바울은 양심에 비추어 꺼리킴이 없이 8절, 10절, 11절에 자신을 변호합니다. 8절에 말합니다.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 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에게 제기된 모든 고발을 집약적 으로 종합하여 변호하였습니다. 율법이나, 성전은 유대인에게 관련된 것이고/ 가이 사에 대한 것이란 로마를 대하여 소요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라는 말은 유대인의 입을 봉해 버리는 말입니다. 본문 10절에 바울은 베스도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 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이 말은 베스도총독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말입니다. 베스도라는 이름의 뜻은 제일(祭日) 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는 단기 간 유대 총독으로 재임하였으며, 휼룡한 행정관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명 석한 베스도총독은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을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이유는 유대인의 호감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선보다는 사람의 시선이 더 중요했읍니다. 진실보다는 사람의 인기가 더 중요하였습니다. 월리암 캐리는 인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자 힘쓴 선교사입니다. 오늘날 선교 역사에 있어서 윌리암 캐리 선교사님을 기독교 선교사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성경을 34개 방언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 본국으로 돌 아와 선교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선교 보고를 할 때 어떤 사람이 불쑥 일 어나 질문을 하였습니다. '캐리씨! 당신은 선교사를 하기 전에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다면서요'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사역하는 캐리 선교사를 시기하였던 사람입니다. 이같은 질문을 받고 캐리 선교사는 오히려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 습니다. '네, 저는 구두를 만들 정도의 기술을 갖지 못했습니다. 다만 떨어진 구두 를 수선하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캐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쓰임받았던 비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체면 에 연연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 보다 더 많이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다. '만 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死罪)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 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 게 내어줄 수 없나이다' 우리도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총독 베스도의 선언 베스도는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유력한 산헤드린 의원들이 바울을 고소하였을 때,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망으로 보아 문제거리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제기한 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베스도는 필시 바울이라는 자가 상당히 중대한 악행을 범하였으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재판을 열고 보니 베스도의 짐작을 빗나 가고 말았습니다. 본문 18-19절 말씀을 보십시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 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하는 문제뿐이라' 베스도는 바울의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에 대하여 본문 25절에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는 바울의 무죄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행23:29 절에서 천부장 루시아도 알고 있었고, 24:22,23절에서 벨릭스총독도 알고 있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무죄하였던 것 입니다.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 고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혔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전혀 낙심해 하지 않고 그것을 도리어 전도의 기회로 활용하 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리 또한 바울 사도처럼 떳떳하게 사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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