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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첫째로 두라 (행25:13-27)

본문

1,유대인;살려두지 못할 사람 (24)
2,베스도;짐작 이상의 사람 (18)
3,아그립바;만나고 싶은 사람 (22) 상점이나 백화점에서 옷을 실때에 그 옷에 자기 몸에 잘 어울릴까하여 그 옷을 몸에 걸치고는 큰 거울 앞에 서서 앞으로 뒤로 그리고 좌우로 또 빙그르 돌면서 거울에 비춰진 자신을 살핀다. 또 함께한 동료에게 옷이 몸에 잘 어울리는냐고 물어도 본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사람들도 그렇다. 한 번쯤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고는 출발을 하곤 한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이다. 나는 어떻게 출발을 해야할 것인가 또 우리는 이 새로운 한 해를 살면서 세상이란 커다란 거울 앞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시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은 세상인란 거울 앞에 어떻게 그의 모습이 비취어 졌는지를 살피면서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은 모습으로 비취어 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유대인;살려두지 못할 사람으로 "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을 바라보는 세가지 면의 시각이 있다. 그 첫째가 유대인들에게 비춰진 바울의 모습이다. 24절에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들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나이다" 유대인들의 모든 무리 앞에 비춰진 바울의 모습은 "살려 두지 못할 사람"으로 나타났다. 그 유대인들의 중요 인물들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 같이 바울과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형제들이다.
그런데 저들은 바울을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외쳐된 것은 저들이 싫어하는 것을 바울이 좋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메시야로 오실 구세주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오신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를 아니했다. 바울이 예수를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외치고 또 전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 오신 메시야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함께 증거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사게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길 박에는 없다고 전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럼 오늘 우리들 주위에 있는 현대판 유대인들은 누구들인가 그리고 우리들은 현대판 유대인들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구원의 길을 전하면 역시 미움을 받을 것이니까 지난해와 같이 한 사람 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고 대는대로 살것인가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미움 그 이상인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저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만 했었다. 갈6;14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2,베스도;짐작 이상의 사람으로 "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 베스도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이 떠들어 대고 있는 것처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들리는 소리마다 바울을 죽여야한다고 했기에 베스도는 그 소문들이 맞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다. 18절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이 말은 원고들이 상소를 하기 전에도 이미 사도 바울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으로 짐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8절을 다시 본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베스도가 평소에 가졌던 바울에대한 짐작은 전적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평소에 짐작했던 것 한 가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만약에 베스도가 오늘처럼 사도 바울을 대면하지 못했다면 , 바울과 대화하지 못했다면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언제든지 베스도는 짐작으로만 살 수밖에 엇었을 것이다. 에수쟁이들은 죽일놈들이라는 짐작만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로 짐작만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에도 베스도와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교회라면 덮어 놓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인이라면 상대조차 하지 않을려는 사람들이 많다. 저들은 교회와 성도를 제되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야한다.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한다. 많은 교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울처럼 짐작 이상의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평소에 짐작으로만 알고 있던 그런 예수쟁이가 아님을 생활로 부여 줄 수 있어야한다.
3,아그립바;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 13절에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아그립바왕은 헤롯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다. 아그립바 왕이 왕비와 함께 총독 베스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총독 베스도는 아그립바왕에게 지난 번 총독이었던 벨릭스가 미결로 남겨 두었던 죄수들을 보고하는 가운데 특히 사도 바울에 대하여 자세한 보고를 하자 아그립바왕은 22절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로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아그립바왕이 바울의 말을 듣고싶어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웬지 피하고 싶어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꾸 자꾸 만나보고 싶은 그런 사람들도 있다. 오늘 헤롯 아그립바왕은 바울을 만나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다. 일국의 왕이 죄인을 만나고 싶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수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다. 왕은 아무나 만나고 싶다고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온 백성들이 죽여야한다고 외쳐되는 죄인인대. 반대로 바울이 왕을 대면하고자 탄원을 했다하더라도 오히려 귀챤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아그립바왕이 죄수인 바울을 만나서 그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23절 "이튼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크게 위의를 배설했다. 천부장들을 불렀다. 성중의 높은 사람들을 배석시켰다. 아그립바왕은 죄인 한 사람을 만나는데 마치 국가의 최고 내빈을 영접하는 것처럼 극진한 준비를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첫 주일이다. 세상이라는 큰 거울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사도 바울처럼 주 에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시는 이 되어야 하겟다. 사도 바울처럼 세상 사람들의 짐작을 바꾸워 놓을 수 있는 생활이  도엔 있어야 하겠다. 사도 바울처럼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만나서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야하겟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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