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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고생 (행26:9-18)

본문

우리말 중에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괜한 고생, 안해도 되는 고 생을 가리켜 "사서 고생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고생은 정말 안하면 더 좋 은 것입니다. 고생, 다시 말하면 고난 중에서는 복된 고난도 있습니다. 무조건 고난이라 고 해서 다 나쁜 것인 줄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0)" 사도 베드로도 똑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벧전3:14)" 바울도 이 사실을 알고서 말합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 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하면서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는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 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오히려 받으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난은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오히려 다 나중에 자기에게 큰 상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받아 보았자 아무런 상급이 없는 고난, 괜한 고생, 사서 고생하는 것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살면서 될 수 있으면 안 받으면 좋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나면 좋은 고난들입니다. 우리가 새해를 살아가는 데에 많은 고난도 당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의로운 고난은 복이기 때문에 받을수록 좋지마는 이러한 사서 고생하는 고난 은 우리가 되도록 받지 않고 사는 한해가 되었으면 해서 오늘은 이 문제를 좀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직 사도가 되기 전에 청년 사울이었을때에 사서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 받아도 되는 그러한 고난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아직 변화 받기 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넣기 위해서 길을 가다 가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광채 가운데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보여주시고 말씀 하시는 장면이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벌써 사도행전에 세 번씩이나 나오는 장면입니다. 본문의 기사는 헤롯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이 자기가 어떻게 해서 예수 전하는 사도가 되었는 지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주님이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나셔서 청년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의 이 한마디의 말씀은 지금 이 바울이라는 청년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 로 표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 바울은 현재 주님을 핍박하고 있고, 이것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요, 또한 이것은 바울에게 고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채란 가시처럼 만들어진 채찍, 즉 가시와 같은 쇠붙이가 달린 채찍을 말합니다. 맞으면 따끔따끔합니다. 쟁기질하는 소 뒤에서 방향을 잡아 주고 그 다음에 앞으로 가라고 채찍질을 하는데 그 소는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가시와 같은 채찍에게 오히려 뒷발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아플 것 아닙니까 이것이 웬 고생입니까 바로 주님의 말씀이 그러한 말씀입니다. 그 당시의 이 청년 바울의 마음 상태를 보십시다.
11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평화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심히 격분한 상태로 바울은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까 마음에 평화가 없이 심히 격분한 상태로 지금 바울은 마음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지금 바울이 왜 채찍질을 당합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모태에서 조성되기 전부터 택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리고 이제 바울로 하여금 예수 믿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 의 사도가 되도록 그 동안 계속 채찍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도리어 뒷발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뒤에서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뒷발길질 하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주님께서 가끔 채찍을 들고 때리십니다. 그러면 앞으로 잘 나가야 하는데 앞으로 가지는 않고 제자리에 서서 오히려 뒷발질하고 있으니 더 아플 뿐입니다. 자기가 도리어 가시 채찍에다가 뒷발질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완 전히 사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해 오자 이제는 주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하신 것입니다. 정면으로 보이셔서 바울을 책망하신 후에 그 다음에 무엇을 하셨습 니까 바울을 세게 내리치셨습니다. 이 청년 바울로 하여금 눈이 멀어 버리게 하셨습니다. 계속 됫발질 하는 이 바울에게 주님은 이제 최종적으로 더욱 아 픈 채찍을 때리신 것입니다. 나타나 보이시며 그 동안 계속해서 뒷발질해 오 던 바울의 눈을 멀어 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신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는 이 말씀을 좀 분석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동안 가시 채찍을 가지고 바울에게 분명 접근을 해 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이 다메섹 체험 전에 도대체 무슨 가시채로 주 님께서는 바울에게 접근을 해 오셨는가를 살펴보십시다. 사도행전 7장 51절로 잠깐 넘어가시겠습니다. 7장 1절부터 53절까지는 스데 반의 최후의 설교가 나옵니다. 구구 절절히 유대인들 앞에서 감동스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좀 보십니다. 51절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스 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 박치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러자 이것을 듣고 있던 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54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들은 분명 마음에 찔 림을 받았습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 리에 누가 있었습니까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을 돌로 치는데 주동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자 잡아죽이는데 주동자였었습니다. 사울 도 스데반의 최후의 설교를 분명 듣고 있었습니다. 사울도 마음에 찔림을 받 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스데반의 설교"라는 채찍으로 사울의 마음에 채찍을 때리신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라고 말씀의 위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바울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으나 그러나 뒷발질 해 버렸습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고도 오히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두 번째로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이처럼 마음에 찔림을 받고도 말씀을 되받 아 치자 구약의 말씀들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갑자기 하늘나라 의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스데반이 자기가 보 고 있는 것을 말하게 하십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 이제까지는 구약의 말씀으로만 말하게 하신 주님이 이제는 하늘의 모습, 부 활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자 스테반이 눈 으로 보며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하늘 나라의 모습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를 갈던 이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저희가 큰 소리를 지 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행7:57) 사울은 아마도 돌로 직 접 치지는 않았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는 주동자였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라 고 했습니다.
8장 1절에도 보면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고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에 가편 투표를 했다고 했습니다. 큰 소리로 저놈 죽여라 하고 사울도 외쳤던 것입니다. 첫 번째로 성경 말씀을 들려주어서 마음이 찔렸는데도 발길질했습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스데반에게 하늘이 열려서 보여주셔서 그 보여주신 장 면을 말하게 했는데도 또 발길질했습니다. 계속 발길질을 한 것입니다. 주님 이 찾아 오셔서 깨닫게 해주시고 간증을 들려 주셨는데도 계속 발길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님이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하늘의 광채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눈이 멀어 버리게 사울이라는 청년을 한대 때 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보면 종종 어떤 사람들에게 하늘의 환상을 계시로 보 여주십니다. 다니엘, 예레미야,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전부 하늘 보좌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 도 이 땅의 사람들이 말씀을 안 믿으니까 하늘의 모습과 마지막 때의 심판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 보여주신 것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박용규 목사님의 간증 "내가 가본 천국과 지옥"은 환상 가운데서 가 본 것 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내 자신에게 깨달음이 오는가, 아니면 사울 처럼 믿지 못하겠다고 마음속에서 반발이 일어나는지 한번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펄시콜레 박사가 쓴 "내가 본 천국"은 많은 신앙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은 혜를 주었던 책입니다. 이것을 보고 정신 차리고 신앙 생활 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간증을 듣고도 거부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해서 전하는 데에 있어 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 수도 있고 본 것을 그대로 전하는 대는 무리가 있습니다. s조금씩 잘못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이런 사람들 에게 보여 주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 있는 자들을 구원시키려고 하십니다. 말씀으로 전해서 안되니까 간증을 통해서 전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거부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안 가 보았으니 못 믿겠다는 사람이 많 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간증을 믿지 못한 사울도 나중에는 똑같은 체험을 합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몸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지 만 기가 막힌 삼층천까지 갔다 왔다고 간증합니다. 펄시콜레나 박용규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거의 죽은 상태에서 그의 영혼만 이 신비한 체험을 하고 다시 건강하게 살아나 전하는 모습인데 이것을 입신이 라고도 합니다. 또한 저 자신도 직접 예수님의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음성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밤새도록 그 음성을 들려주셔서 그 다음날 설교를 바꾼 적도 있습니다. 못 견디게 주십니다. 아주 생생하게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이 많이 상담을 해 오십니다. 꿈속에서 광채가운데 주 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믿습니다. 하도 많은 보고들이 오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옛날에 천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모습으로 다시 힘을 내면서 주님을 잘 섬기기로 다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기도를 방해하는 사단의 모습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도들이 체험적인간증을 할 때 거부하지 않습니다. 다 공통적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돌이킵니다. 지금까지 대항 하던 바울은 드디어 깊이 깨닫고 자기의 인생을 돌이킵니다. 19절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지금까지는 마음 고생만 하고 있던 바울. 그러나 주님의 커다란 채찍을 한 대 맞고서는 그는 다행스럽게도 돌이킵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소리가 나고 보여 주셔도 그리고 눈이 멀게 하는 채찍을 내리 치셔도 그래도 돌이키지 않고 계속 거스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징계를 받아도 계속 하나님의 하늘의 뜻을 거스리면서 고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바울은 다행스럽게도 이 눈이 멀게 되는 징계를 받고서 그는 금방 깨닫고 돌이키게 됩니다. 그래서 며칠만에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하늘을 거스리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혹시 나는 하나님을 거스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것은 내게 고생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압박을 하실 것입니다. 빨리 말씀으로 나를 깨우치실 때에 돌이켜야 합니다. 덜 아픈 채찍으로 접근해 오실 때에 돌이켜야 합니다. 씨 에스 루이스는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교회의 큰 일군으로 쓰시려고 뜻을 작정하시고 계실 수 있습니다. 나를 전도자로, 선교를 위하여 일하는 자로, 헌신하며 봉사하는 사람으로, 혹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거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먼저 세미한 말씀으로 접근해 오십니다. 그래도 안되면 더 큰 것으로 때리십니다. 틀림없습니다. 목 회자들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저도 대학 시절에 목회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다가 주님께 너무 심하게 얻어맞았습니다. 안 맞아도 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어떤 여인이 "당신을 젖먹인 태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된 자다" 말씀으로 접근해 오실 때에 빨리 깨달 으셔서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마시고 순종하면 이것이 바로 복입니다. 그렇지 않고 뒷발질하면 자기에게 고생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보았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도 마.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보여주시면서 "네가 보는 고로 믿느 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올 한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뒷발질하는 사서 고생하는 고난은 없도록 하십시다. 말씀을 주실 때 깨닫고 내 마음에 찔릴 때 또는 무 슨 사건으로 깨달아지고 어떤 간증의 체험적인 것으로 깨달음이 올 때 뒷발질 하여 더 큰 채찍을 맞아 어려움 당하지 않고 빨리 돌이키고 순종하며 하늘의 뜻을 행하셔서 주님이 복된 자라고 칭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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