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자의 행복 (행20:24-35)
본문
최근에 들어서서 봉사라는 단어가 우리들 가운데 익숙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는 21세기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봉사하는 교회 즉 사회를 향해 사랑을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 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구제, 봉사, 베풂, 주는 것 등은 같은 맥락 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 가운데서도 철저히 주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셨습니다. "남을 대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구하는 자에게 주라", "구제하라". 등으로 주님께서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봉사의 기준은 주는 것입니다.
1. 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몇 가지 원리를 가르쳐 주시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멸망당하 고 실패하고 절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거저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가를 받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의 구제의 윈리입니다. 예수님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자기를 나태내지 말라고 하 시는 말씀입니다. 구제할 때 자기가 하는 일을 나타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구제도 할 때도 외식이 가득찬 자들이었기에 주님께서는 호되게 책망하시길 "화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아!"하시면서 꾸중하시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주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영적인 것 입니다. 즉 복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육신적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제라는 말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골 3:17절에 구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 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누구든지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다 있습니다. 마치 눅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재산을 축적하고, 가득 쌓아 두고 싶은 마음은 있겠 지만 그러나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은 이 땅에 쌓아 두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즉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 확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나의 가진 소유를 가지고 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2. 누가 봉사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 문에서 "범사에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노라"고 했습니다. 봉사할 것을 찾아 보십시오. 내 이름이 발표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예배당 에 사찰이 없었습니다. 토요일이면 누구든지 나와서 기쁨으로 예배당 청 소를 했으며 지금이야 교회 안에 기름 온풍기를 사용해서 난방을 하지만 그전에는 자원해서 교인들이 산에 올라가서 솔방울 따다가 사용하고 나 무를 베어다가 연료로 사용하여 성도들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뿐 입니까 지금은 교회를 건축해도 업자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전 에는 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벽돌을 만들고, 나무를 베어다가 다듬고, 수 고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힘들 지만 손수 땀을 흘려 수고하고 봉사하는 미덕이 한국 교회의 미덕이요,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회의 일꾼들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 은 직장 일이 바쁘다고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분들, 학교 공부하는 일이 바쁘다고 사양하시는 분들, 농사일이 바쁘다고 사양하시는 분들, 나 름대로 사연이 있고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지만 주님의 교회의 일꾼들이란 지금 나의 형편과 상황이 어렵지만 믿음으로 감당할 때 교회가 성장하고, 나의 신앙에 큰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알의 밀알로 썩어 지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의 속죄물로 죽으셨기에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가덕교회의 믿음의 식구들인 우리들이 좀 내가 물질에 손해가 되고, 시 간적으로 손해가 되고, 지금 나의 상황이 봉사할 수 없는 입장이라 할지 라도 묵묵히 감당할 때 주님의 모습을 본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 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 이라"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모습을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친히 섬기다가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대강절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주간에 섬김의 종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본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 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혼탁한 시대에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시대였습니다. 종교적으로 우상이 판을 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부르시면서 일 꾼을 찾으실 때 이사야 선지자의 결단을 오늘 우리들은 교훈으로 얻어야 될줄 믿습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삶을 통해 영적인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 가덕교회도 선교회가 창설된지 3년이 되어 갑니다. 아마 아직까지 선교회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선교회에 대해 알고 계시지만 무관심하신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우리 교회가 선교회를 시작할 때 우리 교회도 농촌교회이고, 쓸것도 많은데 어떻게 농촌 미자립 교회를 도우려고 합니까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을 돕자고 합니 까 무슨 선교 단체를 돕자고 합니까 반대하시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농촌 미자립 교회를 매달 10 만원씩 3교회를 도왔습니다. 장애인 단체인 사랑의 종 선교회와 선교단 체인 중부해외 선교회 그리고 소년 소녀가장 한 가정을 도우며 3년을 보 내왔습니다. 회원도 90명 이상이 힘을 모아 선교비를 내고 재정으로도 지원하여 매달 45만원씩 선교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극히 미약하고 적은 액수지만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실줄 믿는 것입니다. 현대에 있어서 선교하면 2가지로 봅니다. 직접 찾아가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직접 자기가 선교의 현장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들이지요. 참으로 귀중한 분들입니다. 또한 보내는 선교사가 있는데 나는 가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선교사들과 봉사하는 분들을 물질로 지원하여 동참하는 보내는 선교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직접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늘진 곳으로 찾아가서 복음 을 전하지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 못하기에 간접적으로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봉사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 가 어저께 TV를 보는데 음성의 꽃동네 마을이 나왔습니다. 사회에서 버 림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곳입니다.
그런데 감동 받 은 내용은 자원 봉사자가 하루에 500명 이상 찾아와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 분이 등장하는데 이분은 날마다 찾아오는 내방객들 의 신발을 정리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어느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소한것 같지만 그러나 숨은 봉사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 사회가 썩은 것 같지만 그래도 훈훈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읽 어 보아도 숨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이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도와주었던 헌신적인 봉사자였으며 베다 니의 마리아는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십자가의 죽 음을 준비한 헌신적인 일꾼이었습니다. 베다니의 마르다는 주님이 찾아 오실 때마다음식을 준비해서 시장하신 주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숨은 봉 사자였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교회의 일꾼들은 하나님이 일꾼으로 세우실 때 그저 직분만 주신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계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하나님께서는 충성되이 여겨 일꾼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을 (딤전1:12) "나 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들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서 사명을 주셨다는 것이 귀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96년도 한 해를 돌아 볼 때 과 연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불평없이 기쁨으로 잘 감당했습니까 교사로, 성가대로, 집사, 권사, 장로, 목사로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 주님의 입장에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일꾼의 자세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 하면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의 일꾼으로 세움을 입은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참된 일꾼을 사람을 의식 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직책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나의 한 해동안을 평가하실 때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칭찬을 받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예수님을 소유한 기쁨입니다. 또한 주의 사랑을 값지게 나누어 주는 삶인 것 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을 향하여 도와 달라고 굶주려 있는 사람들 이 많이 있는데 주의 사랑을 베푸는 성도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1. 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몇 가지 원리를 가르쳐 주시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멸망당하 고 실패하고 절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거저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가를 받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의 구제의 윈리입니다. 예수님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자기를 나태내지 말라고 하 시는 말씀입니다. 구제할 때 자기가 하는 일을 나타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구제도 할 때도 외식이 가득찬 자들이었기에 주님께서는 호되게 책망하시길 "화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아!"하시면서 꾸중하시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는 주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영적인 것 입니다. 즉 복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육신적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제라는 말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골 3:17절에 구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 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누구든지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다 있습니다. 마치 눅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재산을 축적하고, 가득 쌓아 두고 싶은 마음은 있겠 지만 그러나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은 이 땅에 쌓아 두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즉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 확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나의 가진 소유를 가지고 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2. 누가 봉사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 문에서 "범사에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노라"고 했습니다. 봉사할 것을 찾아 보십시오. 내 이름이 발표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예배당 에 사찰이 없었습니다. 토요일이면 누구든지 나와서 기쁨으로 예배당 청 소를 했으며 지금이야 교회 안에 기름 온풍기를 사용해서 난방을 하지만 그전에는 자원해서 교인들이 산에 올라가서 솔방울 따다가 사용하고 나 무를 베어다가 연료로 사용하여 성도들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뿐 입니까 지금은 교회를 건축해도 업자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전 에는 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벽돌을 만들고, 나무를 베어다가 다듬고, 수 고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힘들 지만 손수 땀을 흘려 수고하고 봉사하는 미덕이 한국 교회의 미덕이요,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회의 일꾼들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 은 직장 일이 바쁘다고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분들, 학교 공부하는 일이 바쁘다고 사양하시는 분들, 농사일이 바쁘다고 사양하시는 분들, 나 름대로 사연이 있고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지만 주님의 교회의 일꾼들이란 지금 나의 형편과 상황이 어렵지만 믿음으로 감당할 때 교회가 성장하고, 나의 신앙에 큰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알의 밀알로 썩어 지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의 속죄물로 죽으셨기에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가덕교회의 믿음의 식구들인 우리들이 좀 내가 물질에 손해가 되고, 시 간적으로 손해가 되고, 지금 나의 상황이 봉사할 수 없는 입장이라 할지 라도 묵묵히 감당할 때 주님의 모습을 본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 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 이라"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모습을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친히 섬기다가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대강절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주간에 섬김의 종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본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 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혼탁한 시대에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시대였습니다. 종교적으로 우상이 판을 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부르시면서 일 꾼을 찾으실 때 이사야 선지자의 결단을 오늘 우리들은 교훈으로 얻어야 될줄 믿습니다.
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삶을 통해 영적인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 가덕교회도 선교회가 창설된지 3년이 되어 갑니다. 아마 아직까지 선교회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선교회에 대해 알고 계시지만 무관심하신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우리 교회가 선교회를 시작할 때 우리 교회도 농촌교회이고, 쓸것도 많은데 어떻게 농촌 미자립 교회를 도우려고 합니까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을 돕자고 합니 까 무슨 선교 단체를 돕자고 합니까 반대하시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농촌 미자립 교회를 매달 10 만원씩 3교회를 도왔습니다. 장애인 단체인 사랑의 종 선교회와 선교단 체인 중부해외 선교회 그리고 소년 소녀가장 한 가정을 도우며 3년을 보 내왔습니다. 회원도 90명 이상이 힘을 모아 선교비를 내고 재정으로도 지원하여 매달 45만원씩 선교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극히 미약하고 적은 액수지만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실줄 믿는 것입니다. 현대에 있어서 선교하면 2가지로 봅니다. 직접 찾아가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직접 자기가 선교의 현장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들이지요. 참으로 귀중한 분들입니다. 또한 보내는 선교사가 있는데 나는 가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선교사들과 봉사하는 분들을 물질로 지원하여 동참하는 보내는 선교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직접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늘진 곳으로 찾아가서 복음 을 전하지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 못하기에 간접적으로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봉사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 가 어저께 TV를 보는데 음성의 꽃동네 마을이 나왔습니다. 사회에서 버 림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곳입니다.
그런데 감동 받 은 내용은 자원 봉사자가 하루에 500명 이상 찾아와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 분이 등장하는데 이분은 날마다 찾아오는 내방객들 의 신발을 정리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어느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소한것 같지만 그러나 숨은 봉사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 사회가 썩은 것 같지만 그래도 훈훈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읽 어 보아도 숨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이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도와주었던 헌신적인 봉사자였으며 베다 니의 마리아는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십자가의 죽 음을 준비한 헌신적인 일꾼이었습니다. 베다니의 마르다는 주님이 찾아 오실 때마다음식을 준비해서 시장하신 주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숨은 봉 사자였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교회의 일꾼들은 하나님이 일꾼으로 세우실 때 그저 직분만 주신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계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하나님께서는 충성되이 여겨 일꾼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을 (딤전1:12) "나 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들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서 사명을 주셨다는 것이 귀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96년도 한 해를 돌아 볼 때 과 연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불평없이 기쁨으로 잘 감당했습니까 교사로, 성가대로, 집사, 권사, 장로, 목사로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 주님의 입장에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일꾼의 자세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 하면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의 일꾼으로 세움을 입은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참된 일꾼을 사람을 의식 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직책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나의 한 해동안을 평가하실 때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칭찬을 받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예수님을 소유한 기쁨입니다. 또한 주의 사랑을 값지게 나누어 주는 삶인 것 입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을 향하여 도와 달라고 굶주려 있는 사람들 이 많이 있는데 주의 사랑을 베푸는 성도들이 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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