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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책임-목자의 삼신 (행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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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예수교장로회 제21회 총회를 당하여 조선 교회의 장래를 축복하여 총회원 제씨의 평강을 축원합니다.
 반 세기의 조선 교회 역사를 회고하건대 주님깨 감사할 은혜가 하늘같 이 높고, 주의 교회를 위하여 진심 갈력하는 제현의 공적도 천추에 빛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의 교회를 보고 교역자 제위에게 일연이 없지 않습니다. 교인 집회 석상에서 교직자를 권하기에는 조심할 점이 없지 아니한 고로 가히 말할 만한 마땅한 처소를 기다렸더니, 오늘 밤 교회의 중직을 맡은 목사, 장로, 선교사 제씨가 일당에 모인 이 자리에서는 간담을 헤 치고 긴중한 일언을 가히 전할 만한 줄로 생각하고 강단에 임하노니, 총 회원 제씨는 나에게 일언을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적심(적심)에 오래 쌓인 숙회를 단시간에 말하고저 하매 말이 격하여 차례가 없고 예 예 결함이 있을 것도 양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사도 바울은 제3차의 전도길을 마치고 순교의 각오로 장차 예루살렘 에 돌아가려 하여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작별하는 마당에 서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삼가고 온 무리를 위하여 삼가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 를 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최후의 고별로 에베소 장로 들에게 남기는 말슴이니 그 얼마나 심각하고 긴중한 부탁이었습니까. 나는 이제 바울의 입장과 태도로서 감히 제위를 권함은 아니나, 목자된 우리도 또한 바울의 부탁에 조심스럽게 순복하여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삼가 고, 온 무리를 위하여 삼가고, 주의 교회를 위하여 삼가야 할지니 이를 '목자의 삼신(삼신)'이라 할 것입니다. 직위가 높으면 책임이 중하다 아담과 하와가 일시에 범죄하였지만 그 죄의 걸과가 6쳔년 인류역사에 미친 것처럼 감독된 목자 1인이 실수하면 그 영향은 전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주 대 전란 때에 독일은 적군의 장교를 목표하고 사격하는 전술을 써서 연합군 측에서는 2천5백의 영장을 잃고 패전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탐지한 연합군 측에서는 장교들도 모두 보통 병사의 군복을 입 고 출전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마귀도 먼저 교회의 지도자를 향하여 넘어뜨리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가령 새신자 수백인이 타락하는 것보다 목사 1인이 타락하는 것이 해독이 더욱 큰 것입니다. 성경 역사에서 예를 들면 다윗 왕이 요압의 간언을 불납하고 국민의 수효를 조사한 죄벌로 인하여 전 이스라엘 민족이 온역의 재벌을 받아 3일 동안에 7만명이란 많은 인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윗 왕 1인 의 교만한 죄가 7만명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목자의 과실로 인하여 망한 심령은 얼마나 될 것입니까 몇 해 전에 모 교회에 교적을 둔 한 청년 교인이 총회 방청을 왔었습니다. 총회 구경하고 돌아가서는 교회에 나오지 아니하기로 그 이유를 물은 즉 총회에 가보고 예수 믿을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평교인 중에는 노회나 총회를 성희로 알고 우러러보다가 정작 회장에 와 보 고는 되지 아니하였다고 낙망하는 사람이 적지 아니합니다. 그러면 우리 의 일언 일동을 어찌 삼가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어떠한가, 양으로 보아서는 많이 부흥되었다 하 더라도 질로 보아서는 한심한 일이 많습니다. 교회는 날로 속화하여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신앙은 박약하고, 사랑은 아주 식어져서 열심과 능 력을 잃어버린 형편입니다. 제위깨서는 오늘의 교회를 어떻게 봅니까 낙관을 불허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오, 근심할 바 적지 아니합니다 그러면 금일 교회가 왜 이렇게 부진, 무력, 속화의 상태에 떨어지는 것입니까 그 책임이 여기 모인 우리 교직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보아 그 교역자를 녁녁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교인이 불행합니까 그 것은 그 목사가 그러하였던 것이요, 교인이 사랑합니까 그것도 그 목사 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교인은 목사의 사진이라고 할 만합니다. 교직자의 두려워할 것 첫재, 금일 교인들이 주일을 잘 지키지 아니하는 불경건한 폐풍은 날 로 심하여 갑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교역자 중에 주일을 존중히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하는 사람이 많은 때문입니다. 주일 날에 음식을 사 먹으며 여행하는 목사가 있으며 주일에 물품을 매매하는 장로 가 적지 않으니 어떻게 교회가 주일을 신성하게 지키겠습니까 노회나 총회가 작정한 규레는 엄수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인 주일을 등한시함은 본말전도입니다. 이는 사람의 유전을 중히 여기되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는 말기 바리새교인이 빠졌던 과오와 다름이 없습니다. 상회의 규례 도 지켜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계명은 그보다 더 중하지 아니합니까 현 대 교회가 성수주일하라는 계명을 존중히 지키지 아니하면 부흥의 희망 없습니다.
둘째는 가정 예배를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가정 예배는 가정의 제단입니다. 그ㅡ런데 오늘날 교인의 가정에 찬송 소리가 끊어져 감은 어찜입 니까 나는 가정 예배 보지 아니하는 목사의 가정과 장로의 가정을 여러 군데서 보았습니다. 가정의 제단이 무너지고야 어떻게 가정이 완전하며, 가정이 불완전하고야 어떻게 교회가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세째, 정신상 과실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능역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기교대로 하는 것과, 자기보다 나은 일군을 시기하는 것과, 명예 를 탐하는 것들이 정신상 과실입니다. 이는 다 교인보다 목사가 흔히 범 하는 과실이오, 이밖에 목사의 나태한 정신은 가장 교회를 병들이는 것 입니다. 교인들이 열심으로 기도하되 목사가 기도에 게으르며, 교인들이 전도하되 목사가 전도에 게으른 일은 근래에 흔히 볼 수 있는 한심한 일 입니다. 네째, 취직 방면의 임직은 목사가 범하기 쉬운 과실입니다. 우리가 생 계를 위하여 교회 일을 한다면 그 얼마나 퉁탄한 일입니까
그런데 교회 역사를 통하여 이런 불순한 일군이 때때로 적지 아니하였고, 모든 부패 의 작용은 여기에서 양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불순한 일군이 성 행하고 있지 아니합니까 내가 왕년에 출옥하였더니 모 자매가 일금 십원을 내게 주기로 이유를 물은 즉 자기가 매일 한끼씩 금식하여 모은 돈이라고 합니다. 그 돈이 곧 자매의 기름인 것을 생각할 때에 나는 두려움을 깨닫고 그 돈을 부인 전도회에 연보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교인에게서 받은 월급은 푼푼 전 전이 교인의 기름입니다. 우리 목사된 자가 취직 방면으로 교회 일을 본 다면 그 불충의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에스켈이 일찍 말하기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 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내가 목자들을 대적하 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찌라. 내 양을 그들의 입 에서 건져내여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에스겔34:8-10 )고 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과 사랑은 모든 것의 이상이다 나는 교회의 암흑면을 폴로하려 함이 아니오, 교회 소퇴의 책임소재를 추궁하려 함도 아니라 금일의 현황이 이러하니 어떻게 하여야 명일의 교회를 선도할가 함입니다.
첫째, 신앙으로써 교인을 먹이라. 과거 10여년 동안에 목사부터 과학 앞에 무릎을 꿇어 스스로 신앙의 힘을 잃고, 사회 폐풍에 부종하여 스스로 모욕을 사고, 사업을 선(선)하 고 영화(영화)를 후(후)하여 영능을 잃었습니다. 세상과 연합하면 일시 환영을 받는 것 같으나 최후의 결과는 교역자와 교인과 교회가 함깨 망할 것뿐입니다. 신앙은 본(본)이오 사업은 말(말)이며, 신앙은 먼저요 지식은 나중입니다. 본말이 바르면 흉하지 아니할 리가 없고, 선후가 전 도되고는 망하지 아니할 자 없는 것입니다. 둘재, 사랑으로 인도하라. 조선에 왔던 고 보(보) 의사는 그리스도와 조선인을 위하여 소유와 생 명까지 드리어 저는 장가도 아니가고 마침내 병들어 별세하였습니다. 씨는 조선 모 부인의 유방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치료하기까지 남을 사랑하였습니다. 오늘날 예의와 체면으로 능사를 삼는 선생들은 그게 예에 어긴다고 평할는지 모르나 사랑은 예의와 체면 이상입니다. 키포 선교사는 조선인 하부를 불쌍히 여겨 자기 말을 빌려 주었더니 그 말이 짐을 실은 채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하부는 키포 선교사를 향 하여 단신의 말 때문에 하물을 잃었으니 짐값을 내 달라고 호원하였습니다. 키포 선교사는 말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부에게 물건값을 지 불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모 선교사는 짐값을 내어 줄 것 없 다고 경위를 내세웠으나 키로 선교 선교사는 "우리가 경위로 예수를 증 거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예수를 증거할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금일의 교역자나 평교인이나 상회, 하회를 막론하고 경위와 규칙으로 일을 하자니 각박하여 가기만 한 것입니다. 속살은 망하는데 외면으로 규칙이나 찾고, 사랑의 내용도 없이 모여 결의나 해놓으면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기름이 없이 윤전기는 돌지 못하나님 기름 없는 윤전기를 운전하려면 기계는 파괴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 없는 교회는 전행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름은 기계 이상이오 사랑은 규익과 경 위 이상입니다. 우리 장로회는 20만 교인을 포용한 조선교회 32분의 2이상을 당하는 중심 교회입니다(1932년 당시). 그런즉 조선에 대한 장로교회 책임도 큰 것입니다. 20만 교인과 1천 교역자를 영도하는 총회원 제현은 삼가 사랑 과 신앙으로써 교회를 먹이고 인도하되,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삼 가고 온 무리를 위하여 섬기고 주의 교회를 위하여 삼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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