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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유두고 (행20:7-12)

본문

바울이 드로아로 가서 머물던 중 칠일 째 마지막 날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한 본 문입니다. 드로아에 살고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정기적으로 경건하고 신앙적인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관례적인 모임은 안식후 첫날(주일)(고전16:2,계1:10)에 모였 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같이 안식일에 모였으나(행15:21), 동시 에 주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간의 첫날에 모이는 습관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와의 차이가 명백해지고, 도 교회가 회당에서 독립되므로 주일 도 인식일에 대치하여 그리스도교의 안식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의 날에 행하는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애찬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여 모두 떡을 떼어 먹고, 계속하여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였으나, 차차 두 가지가 분리 되어 전자를 애찬, 후자를 만찬(성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전자는 점점 교회 내에 폐단을 일으키므로(고전11:20-22) 칼타고 총회에서 이를 폐지하고 주의 만찬만 을 성찬으로 남기게 된 것입니다. 어쨌던 애찬은 교회의 가정적 성격, 가족으로서의 정신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념하여 지키는 주일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 사이에 계약의 징표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본론'
1.밤중까지 강론하는 바울 초대교회에 행하는 애찬과 함께 다른 한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말씀 강론입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밤 늦게까지 강론을 하였습니다.
2.삼층 누에서 떨어진 유두고 드로아의 성도들은 삼층 누의 윗다락에 모여 바울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아직 드 로아의 교회는 회당이나 예배당을 갖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가정집에 서 모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주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여 모이기를 힘썼으 며 함께 떡을 떼며 말씀을 들음으로써 부활의 신앙을 확고히 다져 나갔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자본주의 사회 발달로 교회 안에도 배금주의 사상이 침투하여 교회 성장 의 기준이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으로 기준을 삼는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외적 성장에 치중하고 성도들은 부담이 없는 대교회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롬8:17).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영광을 소망 하면서 기꺼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날이 새면 드로아에서 떠나기도 예정되어 있었기에 바울이 다시 이 곳을 언제 올 지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서 유리하는 양떼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드로아 성도들에게 많은 말씀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밤이 늦도록 말씀 이 계속되자 무리들 가운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서 바울의 강론을 듣 던 중 졸다가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유두고가 낮에 틀림없이 힘든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피곤한 청년 은 그만 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던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 모임은 잠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종종 의외의 불상사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인들로 하여 금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성도들은 더욱더 하나가 되어 그 사건을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3.날이 샐 때까지 친교하고 떠나는 바울
1)바울의 담대함 분명히 9절에서 3층 누에서 떨어진 유두고가 `죽었는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담대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두고에게 가서 엎드려 그의 몸을 안았습니다. 그리고는 (행 20: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몸 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수 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릴 때 취한 행동(왕상17:21)과 유사합니다. 이같은 바울의 행동은 사랑의 표현임과 동시에 자신의 몸 전체를 유두고에게 내어주어 그를 살리고 자기는 죽겠다는 대속의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늘 주님과 동행하였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유두고를 살린 바울은 다시 삼 층 다락으로 올라와 애찬의 떡을 나누며 날이 새기까지 드로아 교인들과 이야기하고 떠났습니다. 즉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드로아 교인들은 유두고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으로 인하여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나타남으로 그들에게 비난을 보내는 자들에게 복음을 믿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체험한 사람은 기쁨과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를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받는 신앙의 삶을 살며 바울 처럼 담대히 나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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