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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고의 죽음이 주는 교훈 (행20:7-12)

본문

오늘 본문을 보니 예배 시간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 앉아서 졸다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 했습니다. 이 유두고의 죽음의 사건을 사도행전 기자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본문의 사건을 상세히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1,바울의 설교 " 7절 말씀을 보면 이 날 바울의 설교가 좀 길었던 같습니다. 성만찬식을 겸한 예배이기에 시간이 더 길어던 것 같습니다. 이유야 어떻든간에 설교가 긴것은 현대인에게 용납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현대인은 뭐든지 다 간단해야 좋와들합니다. 전자제품들을 보면 날이 갈 수록 소형화 추세에 있습니다. 비디오 촬영기 카메라 래디오 우리가 일상용으로 하는 식사도 간단한 것을 원하는 시대입니다. 인스턴트 식품 빵류 라면류 짜파케티, 농심 너구리, 삼백량, 얼큰한 맛 육개장, 순한 면 이라면, 이백량, 샤우면, 사발면, 큰 사발면, 순한면, 컵라면, 소쎄지 짜장면, 좌우간 간단한 것을 좋들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모두 조급증 환자가 되어가는 것 갔습니다. 횡단 보도 없는 곳의 통과 하는 모습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애타게 쳐다보는 모습들. 엘리베이터의 문앞 대기자들의 모습… 저는 저렇게 바뿌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고 싶어서 가끔 그분들이 무었을 하시기에 그렇게들 바쁘게 설치시는 것일까 하고 살펴 보곤 합니다. 굉장히들 바뿐것 같은데 막상 그렇게들 서둘러서 목적하는 곳에 당도하면 그렇게 바빠야 했던 것과는 좀 다른 현상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방에 있는 시간이 좀 긴 편이랍니다. 그리고 전화 통화가 내용의 가치를 비교할 때 터무니 없을 정도로 긴것도 사실입니다. 30분 정도의 대화는 예사입니다. 그리고 T.V. 의 연속극을 보는 시간엔 어쩌면 그렇게들 시간에대해 관용 들 하신지 신가할 정도 입니다. 또 극장에 한 번 드어가면 거의 세시간을 아무런 불평 없이 잘 버티는 것을 봅니다. 물론 돈 주고 들어가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설교가 30분을 지나면 엉뎅이에 가시가 돋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전신에 좀이 쑤시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에 은근 슬적 불평 아닌 불만이 고개를 속-내미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제가 설교를 좀 길게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 긴 설교를 정당화 하고자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들이 설교를 포함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길어바야 한시간 이쪽 저쪽입니다. 이 한시간의 예배와 내 사사로운 생활의 시간들과 비교를 해 보면서 좀 부끄럽게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가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초저녁 부터 강론을 하기 시작을 해서 밤이 깊도록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8절을 보니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한것을 보아 다락이 굉장히 컷던 모양이고 또 그 큰 다락에서 예배를 들이고 있는 성도들의 수효도 상당히 많았던것 갔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였는데 모두들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유두고가 졸고 있었습니다.
2,졸고 있는 유두고 "
1),먼저 유두고의 앉은 위치부터 살펴 봅시다. 유두고는 청년인데 창에 걸터 앉았더라고 했습니다((9) 결론부터 말씀을 하면 유두고의 앉은 위치는 처음부터 많이 잘 못되었습니다. 유두고 창에문에 걸터 앉아다고 함은 아마도 예배 시간 제시간에 못 온 것 으로 자리를 남들이 다 찾이 했으니 자리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배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뒷 자리에 앉을려고 하지 말고 앞자리에들 앉고록 힘써야합니다. 모든 면에서 뒤편에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집중 되질 못하고 산만해 집니다. 그리고 창문에 걸터 앉은 자세는 예배자의 태도는 아닙니다.
2),유두고는 졸고 있었습니다. 9절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 창문에 걸터 앉았다는 것부터가 처음부터 졸기로 작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유두고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성전에서 졸게 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치쳐 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오후나 밤을 세상 삶에 전력을 쏟아부어서 심신이 피곤한 상태로 예배에 임하게 되니 자연히 졸음이 오게 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나아 오기는 하는데 왜 나오는지의 목적이 뚜렸하지 못할 때 무관심으로 졸게 되어 있습니다. 세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째는 예배에 나의 생과 사를 걸지 않은때문입니다. 물건을 팔고 살때 졸지 않습니다. 밥 먹으면서 졸지 않습니다. 끝미치는 폐회송 부를 때는 졸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은 아니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감람산 에서 땀 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의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아니 졸고 있는게 아니라 아에 자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좀 길다고 청년 유두고는 창문에 걸터 앉아 신나게 졸고 있습니다. 설교가 길어지는 것은 한 말씀이라도 더 전하고 싶은게 교역자의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성경대로라면 설교가 짧으면 교역자에게 왜 오늘은 설교를 그렇게 짧게 합니까라고 불평을 해야하는데 이상하게도 단 한 사람도 설교 짧은 것엔 불평이 없습니다. 여러분 ! 졸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다 고개를 삐딱히 제치고 또 입은 헬거니 벌리고 침을 직-흘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가장 보기 흉한 모습이 졸고 있는 것입니다. 아에 죽은듯이 잠자는 것은 자는 것이고 조는 것은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않자는 것도 아니니 조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기에 보기에 제일 흉칙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들이는 시간에 존다는 것은 더 흉한 모습이 됩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졸지 않기 위하여 미리 미리 졸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3,떨어지면 " 9절을 다시 봅니다. "유두고라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 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루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유두고가 창에 걸터 앉아 졸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떨어졌습니다. 몇층에서 떨어졌습니까 3층루라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져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종말에 있을 일들을 말심하시다가 다음 일을 강조하셨습니다. 마24;42-44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우리들의 육신의 잠이 곧 영적인 잠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들의 육신의 피곤함이 곧 영적인 피곤이 됩니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만 특히 하나님 앞에 들이는 예배 시간엔 더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합니다만 유두고는 예배 시간에 졸다가 창에서 떨어져 즉사 했습니다. 예배의 자세가 좋지 못하면 졸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졸게 되면 믿음이며 영력이며 다 떨어지게 되 있습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죽게 되 있는 것이 신앙의 원리들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이 내려가서 그에게 엎드려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바울의 기도로 유두고는 다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느낀 것인데 이 날 이후로 유두고가 그 교회에 계속해서 다녔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예배 시간에 졸았다는 것만도 창피한 일인데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으니 사람들이 유두고를 볼 때마다 무어라 했겠습니까 우리들의 믿음도 3층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우리가 죽겠다고 예수 믿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들일 수 있는 일은 오직 예배 뿐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십시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위하여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간에도 신경을 좀 써야 되겠고 예배의 태도 즉 자리도 될 수 있는대로 앞자리에 앉으실 수 있도록 그리고 절대로 졸지 않겠다는 각오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청년 유두고 처럼 예배에 불성실한 예배를 드리다가 3층 루에서 떨어지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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