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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살리자 (행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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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프리카 선교여행에서 많은 어려움과 위험한 순간들을 만났지만 여러분 의 기도를 통해서 그런 고비들을 잘 넘기고 선교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아프리카의 말라위, 모잠비크 같은 나라의 백성들이 너무나 비참하고 가난 하게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불쌍해서 선교여행 중에 계속 울 다가 왔습니다. 저는 2월 10일 아들 성주가 수술실로 실려가는 것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주님의 말씀이 귓전을 때려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김포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서울을 떠난지 36시간만에 첫목적지인 말라위의 브란타이어(Blantyre)라고 하는 도시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전에 공항부근을 내 려다보니까 흙덩이를 모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것과도 같 은 것을 보고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말라위 사람들의 집이었 습니다. 그 집은 대나무를 엮어서 흙을 발라 벽을 만들고 갈대로 지붕을 엮어놓 은 것이었습니다. 말라위(Malawi)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남한 넓이보다 좀더 넓지만 인구는 불과 900만입니다.
그런데 그중 80이상이 그런 움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1년에 비가 오는 때가 석달 밖에 없는데 마침 우기였기 때문에 옥수수가 자라고 산이 푸르 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기가 되면 비가 오지 않아 산천이 빨 갛게 되면서 풀한포기 남김없이 말라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아주 가난한 나라여서 TV방송국은 없고 라디오방송국이 하나 있는데 도시에 사는 잘사는 사람들만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가전제품이나 전기나 수도도 없는 곳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합니다. 음식은 주로 옥수수를 먹고 살며 물이 귀하기 때문에 여인들이 몇 십리를 걸어 가서 머리에 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다 먹는다고 합니다. 백년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독립된지는 26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대통 령이 26년동안 일당독재를 해서 서방측에서 원조를 중단해버려 더욱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옷을 벗고 살았는데 옷을 입은지는 20년이 되었고 도시 사람 들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만 시골사람들은 대부분 맨발로 걸어 다닙니다. 한 부부가 10-15명의 자식들을 낳지만 많은 아이들이 말라리아나 콜레라나 황 열병(Yellow fever) 등으로 죽어 절반가량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또 뱀에 물려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문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고 방도 흙바닥 그대로여서 뱀 이 들어와서 아이를 물어서 죽기도 하고 통채로 삼켜버리는 일도 허다합니다. 너무나 더운 지방이서서 그들의 평균수명은 40세에 불과합니다. 제가 60살이라 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병이 들면 무당을 찾아갑니다. 도시에는 병원이 더러 있는데 얼 마나 많은 환자들이 몰려드는지 약도 없어서 그냥 죽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녀의사(Witch Doctor)라고 씌여진 무당집을 찾 아가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90이상입니다. 도시에 학교가 더러 있지만 학교문턱을 밟아본 어린이는 20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첫날 밤을 공항에 차를 타고 마중나온 버크랜드(Buckland)선교사님 집에서 보 냈는데 창고같은 것을 세를 내어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뱀을 쫓아준다고 해서 검은 고양이 두마리를 기르고 있었고 도둑이 많아서 개와 경비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온이 35도가 넘는 가운데 비포장도로를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달려갔습니다. 길이 움푹 패인 곳에서는 사람들은 내려서 걸어 가고 다시 조금 평탄한 길이 나오면 타곤 했지만 얼마나 차가 위아래로 요동을 치는지 엉덩이가 아팠습니다. 마침내 난탈리(Nantali)라는 교회에 이르렀는데 그곳 팔롬베(Phalombe)지역의 17교회가 모여서 연합예배를 드렸습니다. 김종량목사가 7년전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해서 53개의 교회가 있는데 예배당이 건축된 교회는 몇 교회 안되었고 거의 노천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교회 를 개척하고 소명있는 사람을 택하여 통신 성경공부를 시켜서 일년에 몇 차례씩 세미나를 개최하여 신학교육을 한 후 그들에게 교회를 담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천여명의 주일학교과 장년 성도들이 저희가 탄 차 주위에 몰려와 서 노래를 부르며 환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정이 많은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님의 집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차 대접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우리를 초대하여 차를 대접하겠다고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차대접을 할 때 반드시 먼저 손을 씻어야 된다고 해서 조그마한 대야에 절반쯤 물을 떠나놓 고 내 앞에 가져오길래 손을 씻고 버리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그걸 들고 김 종양목사님에게 그 다음에는 버클랜드선교사님에게 그 다음 통역하는 원주민 목사님들에게 가져가서 손을 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도 버리지 않고 나중 에 식사하다가 닭같은 것을 먹고 거기에 또 손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손 을 씻는 것이 아니라 병균을 전염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말라위 특유의 차라는 데 거기에 염소젖을 타서 가지고 왔습니다. 먹을 수도 안먹을 수도 없어서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인도했는데 35도가 되는 날씨에 노천에서 4시간동안 햇빛이 내 리 쪼이는 가운데 2-3시간 동안 몇곡 정도의 찬송을 반복해서 춤추며 기뻐하며 불렀습니다. 저에게 와서 같이 춤추며 찬송하자고 해서 같이 춤을 추는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가난하게 어렵게 살면서도 그렇게 기뻐하면서 감사하며 찬송 부르는 것을 볼 때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증거하니까 아멘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믿음이 참 순수했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기도했습니다. 특별히 병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드렸는데 귀신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 속에서 귀신들이 괴성을 지르고 떠나가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병고침을 받는 역 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하게 되었는데 저와 김목사님, 버크랜드선교 사님을 빼놓고 천여명되는 사람들이 헌금한 것이 우리 돈으로 5천원도 못된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이 얼마나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차를 대접했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집으로 가서 귀한 손님이 왔 다고 닭찜과 쌀밥과 옥수수빵을 식탁에 올렸는데 보통 때는 옥수수빵으로 끼니 를 때운다고 합니다. 김목사님과 영국선교사님은 잘 먹었지만 저는 비위가 상해 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선교사님댁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끓는 물을 우리나라 에서 준비해 간 컵라면에 부어 라면을 먹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라면이 그렇게 맛있고 귀한 줄 처음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음식을 조심해서 괜찮았지만 그 다음날 김목사님은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와질랜드에 살면서 말라위를 자주 왕복하는데 조금 안먹다가 먹으니가 배탈이 난 것 같았습니다. 비상약으로 준비해간 해열제, 소 화제, 정장제, 지사제 등을 김목사님이 복용했는데도 쉽게 낫지 않았습니다. 그 렇게 오전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예배를 간단히 드렸는데 이곳 사람들은 밤에는 뱀과 맹수의 위험때문에 밖으로 다니기가 참으로 어려워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다고 합니다. 처음 계획에는 원주민의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는데 김목사님의 주선으로 차로 두시간쯤 걸리는 곳에 있는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하루 에 다섯시간쯤 달려가고 두번씩 예배를 드리니까 너무도 피곤해 밤에 단잠이 들 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식사를 간단히 하고 비포장도로를 2시간쯤 달려서 간 곳에 우리 교회 집사님이 건축헌금을 해서 건축을 하려고 벽돌을 준비해 놓 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차를 타고가다 보니까 조 그마한 강이 있어서 강변에다 차를 세워놓고 보트를 타고 건너가 다시 한시간쯤 걸어간 교회에서 일곱교회가 연합하여 4시간정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교회가 가 우리 교회 권사님이 건축헌금을 해서 벽돌을 쌓고 함석지붕을 얹은 교회였는 데 거의 다 완공된 상태였습니다. 그 교회가 엔티티(Nthiti)교회입니다. 그렇게 폭양속에서 4시간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흑인 사촌 쯤 되는 것 같이 얼 굴이 까맣게 탔습니다. 다시 모텔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감자와 닭요리를 먹을 수 없어서 저녁도 라면으로 때우다시피 했습니다. 몇일 이렇게 지내니까 좀처럼 체중이 줄지 않는 저도 체중이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버클랜 드선교사는 말라위에 오신지 1년반 동안에 16kg이 빠졌다고 합니다. 엔티티교회 건축을 하는 것을 보고 예배당 건축이 별로 힘들지 않고 건축비가 적게 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트럭으로 시멘트나 함석 목재 등을 강변으로 실어오면 보트로 싣고와 남녀교인들이 10리길을 머리에 이어 날랐습니다. 교인 들이 손수 일해서 황토를 파서 흙별돌을 굽고 가져온 시멘트 함석 목재 등을 가 지고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노임은 한푼도 들지 않는데 그렇게 자재값 만 있으면 됩니다. 말라위 농촌에 예배당 하나를 짓는데 우리 돈으로 백만원이 면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다시 마타케냐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4박5일의 말라위선교여행을 마치고 스와질랜드(Swaziland)의 김목사님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비포장도로로 5시간 달려가서 국경선을 넘어 모잠비크 (Mozambique)에 가게 되었는데 입국절차가 무척 까다로웠지만 여러분의 기도로 기적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5년동안 전쟁을 하던 나라였는데 석달전에 휴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곳이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곳곳에 전쟁 잔해물이 널려 있었습니다. 피난민촌에 들어가보니까 너무나도 비참한 모습을 보고 눈물 을 흘렸습니다. 차가 서기만 하면 15-20명의 아이들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몰 려와서 동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이미 김목사님이 전쟁 중에도 드나들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두교회에 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당이라 해야 갈대로 벽을 막고 천막조각으로 지붕을 덮 어놓은 엉성하고 초라한 움막이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들이 하는 말이 에배당 을 우리 힘으로 도저히 지을 수 없으니 지을 수 있도록 조금 도와주십시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잠비크 도시에 에배당을 지을 경우 3천불-5천불, 250-400 만원으로 벽돌과 함석으로 만든 예배당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라위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말라위에서 두번째 교회에서 예배 를 드린 후 모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시켜놓고 시간이 있어서 김목사님, 버크 랜드선교사, 원주민 통역 목사님 두분과 같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원주민 목사 한분이 도시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집이 없어 고생하면서 3년동안 집을 짓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목사님 이 당신을 도와주면 다른 사람들도 다 도와달라 할텐데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건 축비의 3분의 1은 무상증자해주고 3분의 2는 무이자로 빌려 드릴테니까 돈이 생 기는대로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원주민 목사님도 아이들이 13명이 있는데 그중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4명이 등록금을 내지못해 퇴학당하기 일보직전이니 등록금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아픈 이야기밖에 없었습니다. 방으로 돌아갔지만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꿇어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다가 "너희 나라가 복받고 사는 것이 무엇때문인 줄 아느냐 너희 교회가 부흥된 것이 바 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네가 도와라 너희 교회가 도와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몇시간 동안 계속 기도하다가 "주여 내가 돕겠나이다. 우리 교회에서 돕겠나이다"라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옆 침대에서 김목사 님도 안타까운지 잠을 못 이루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새벽 3시까지 대화를 나누 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목사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온 선교비 여비 다 털어서 한 목사님의 집을 짓는데 건축비로 드리고 다른 목사님의 자녀 등록금을 대드리고 나머지는 목사님 선교비로 쓰십시요"라고 말하면서 가지고 갔던 모든 것을 털어서 목사님에게 드렸더니 가슴이 후련하고 보람을 느끼며 얼마나 감사 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말라위에 우리 교회에서 지교회를 두개 세웠지만 하나님 이 허락하시면 더 많은 지교회를 말라위와 모잠비크 등지에 세우겠다고 약속하 였습니다.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보니까 그곳에서 선교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랜드 로바나 트럭같은 차인데 외국에서 수입해온 차값이 우리나라보다 몇배나 비싸다 고 합니다. 차가 고장이 나면 그 부속품을 신청하면 반년 혹은 일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합니다. 김목사님이 남아공에 가면 중고차를 살 수 있는데 3천불에 살 수 있다고 해서 제가 3천불을 보내줄테니 트럭을 사서 교회건축하는데 시멘트 목재 함석 등을 실어 나르고 교인들도 수송하는데 활용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스와질랜드에서는 사람을 물면 3분후에 즉사하고 마는 날으는 뱀이 있다는 정글지대에 가서 두려웠지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정글지대에 국민학교가 하 나 있는데 그 학교 교장은 김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믿고 성경공부하여 전도 사로 임명된 여자분이었습니다. 형편없는 건물에서 16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 었는데 주일이면 70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니 까 함께 찬송하면서 환영해 주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어려움을 겼었던 일 등 보고드릴 내용이 많지만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말씀드 리겠습니다. 모잠비크에서 하룻밤을 자고 스와질랜드 김목사님댁으로 돌아와 다 시 하룻밤자고 그 다음날 출발하여 30시간만에 김포공항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50년전 혹은 백년전의 우리나라 모습을 본 것 같았 습니다. 토인비(Toynbee)가 말하기를 사도 바울이 싣고간 복음선에는 유럽의 문 명까지 싣고 갔다고 했는데, 선교사들이 한국에 싣고 온 복음에는 한국의 문명 을 싣고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50년전, 백년전에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맨발로 다녔으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러다 먹었으며 몽당 치마 저고리 무명 바지 저고리를 입고 살았으며 보리겨죽과 깡보리밥과 나무껍질 등 으로 굶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해주고 구호 품을 전달해주고 우리가 예수믿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복받고 잘사는 나라 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고 선교사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을 졌으니 그 빚을 갚아야 되는데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다시 그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아프리카사람들 에게 빚을 갚아야 됩니다. 어린 아이들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허기진 배를 옥 수수로 채우다보니 배만 불룩하게 나온 불쌍한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눈물이 나 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약품이 없어서 병을 치료해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살리며 도울 수 있습니다. 그들을 살리는 길은 복음을 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물질로 선교하면 죽어가는 그들을 살려낼 것이며 많은 교회를 세워서 예배 드리며 주님께 영광돌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프리카를 살리는 일, 선교하는 일에 우리 모두 동참할 수 있게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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