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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라 (마25:14-30)

본문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천정 벽화를 손수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천정은 까마득히 높았기 때문에 그 아래 에서는 사실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래도 그는 이 천정의 벽에 가까이 붙어서 선 하나 하나 를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친구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해두고 내려오게나."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천정에서 그 친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 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 하는가그야 자네겠지.맞네. 내가 알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는 없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자기의 삶에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만 큼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이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내 양심 앞에서 내게 주어진 이 삶의 과제를 위해서 얼마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질문해 보는 시간입니다. 한달란트는 요즈음 우리 돈으로 얼추 150만원 정도 됩니다. 그 러면 두달란트는 300만원 정도이고, 다섯 달란트는 750만원 정도 됩니다. 어쨋든 돈은 다 받았습니다. 못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재능과 직임을 맡은 여러분, 자 이제 말씀의 여 행을 떠나 봅시다. 작은일에 최선을! 오늘 본문에 보니, 두 달란트도 다섯 달란트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두달란트 받은 자는 있는 힘을 다해 두달란트를 남 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도 혼심의 힘을 기울여 다섯 달란 트를 남기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둘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의 질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의 질에도 차이가 없습니다. 똑 같습니다. 문자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윤을 많이 남 기고 적게 남기고는 주인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의 기쁨은 최선의 몸부림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 나라 건설 사업의 양적 크기에 따라 우리를 평가하는 분이 아닙니다. 최선을 보실 뿐입니다. 한 달란트 가진 자는 상대적인 빈곤의식이 있었습니다. '겨우'의 식입니다. 겨우 한달란트,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겨우 나 같은 사람이 뭘, 겨우 이런 형편에! 전부 한 달란트 의식입니다. 만약에 한 달란트 가진 자도 최선을 다했다면 하나님의 칭찬은 다섯 달 란트에 못지 않았을 것이고, 상도 다섯 달란트 만큼이나 컷을 것 입니다. 또한 달란트 받은 자는 두려워 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 라 심지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 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 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25:24-25) 주인이 인색하고 엄격하였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성공보 다는 먼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두려워 하면 이미 최선을 다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을 매일 째찍을 가지 고 다니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늘 하나님의 징계만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도 징계 피할려고 믿어요. 최선을 다할 수 없습니다. 매맞지 않는 최소한의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포는 최대의 적입니다. 실패와 병과 나쁜 인간관계의 배후에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공포를 물리칩니다. 사랑은 인생의 좋은것에 대한 정서적인 애착입니다. 나는 거룩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나는 증거할 수 있다. 이 렇게 성공에 반해야 합니다. 최선의 것을 즐겁게 기대하면서 생활하면, 최선의 것이 찾아 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 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히11:6)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포와 징계의 대상이 아 닙니다. 상주시는 분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두려워함으로 이미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할 의욕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 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조그만 구멍 가게나 큰 재벌 체인점이나 운영하는 것은 똑 같습니다. 이윤을 내기는 똑 같이 어렵고 힘이 듭니다. 노력과 땀이 있어야 합니다. 비율이 문제이지요. 최선의 비율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분문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 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리"(21절)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모두 작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일에 최선이면 더 크고 많은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칭찬의 양 은 똑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모두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크고 폼나고 멋있는 일은 없습니다. 중요한 일일 뿐입니다. 중요한 일과 작은 일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도 중 요한 일이 있고, 큰 일에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인생은 굉장 굉장한 것이 없 습니다. 모두가 작은 일이 모인 것입니다. 역사란 지나 놓고 보면 전부 작은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경제위기 관리 체제도 지나 놓고 보면 역사의 흐름에 있는 하나의 작은 사건일 뿐입니다. 개인의 역사도 그렇 습니다. 그렇게 심각하고 죽지 못해 하던 일도 지나 놓고 보면, 작은 하나의 추억으로 변해 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사춘기 시절, 미혼 시절 연애를 하던 때는 목숨 까지 버릴 것 같던 것이, 지나 놓고 보면 왜 그랬나 하고 웃음이 나오지요. 지나고 보면 그런 일이 되어 버립니다. 고통스러운 일도 환희에 가득찬 일도 다 지 나놓고 보면, 객관화 되고 보면 작은 일입니다. 그러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직 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순교를 해야 합니다. 이것 이 진정 믿음의 사람이 가야할 길입니다. 꼭 기억하실 일입니다. 성경에는 작은 일에 불신앙은 보인 자들은 큰 일에도 불신앙을 보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거인들은 모두 작은 일에 믿음의 결단을 한 자들입니다. 사울은 블레셋과 싸울 때 다급한 나 머지 제사장 없이 제사를 드립니다.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겠는 가 하고 정당화 합니다. 결국 사울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버림 을 받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하찮은 시골동네 촌 사람인 시므이 가 저주 할 때도 믿음의 방식을 지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압살롭의 반란을 평정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작은 유혹에 소홀하면 큰 유혹에 빠집니다. 작은 잘못에 너그 러우면 큰 잘못에 빠집니다. 작은 일에 봉사하지 못하면 큰 일에는 더욱 봉사할 수 없습니다.
작은 투쟁에 실패하면 평생 실패는 지속됩니다. 작은 일에 믿음의 선택을 못하면 큰 일에도 믿음의 선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의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유혹에 거룩한 투쟁을 하는 자입니다.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바로가서" 장사 를 했습니다. '바로'(유데오스) 라는 말은 재빨리 갔다는 말입니다. 물론 시간적으로 빨리 일에 착수했다는 말이 되기도 하겠지 만, 오늘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내 일 가서'가 아닙니다. 먼 훗날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최선은 지금의 일에 쏟아 부어져 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십니까 나중에 기도 자리에서 아닙니다. '지금 여기' 바로 오실 수 있습니다. 개인의 종말도 그렇고, 역사의 종 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이 여기에 오시면 미래의 계획서를 보고 평가 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보고 판단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님의 부 르심을 받는다면,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주님, 제 미래 계획은 이렇게 순수하고 거창했습니다. 10 년 후에는 정말 정직하게 살 려고 했습니다. 내년에는 정말 죄 안 짓고 거룩하게 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 계획서 를 한 번 보십시요. 5년 후에는 주님의 일을 정말 충성되게 하려 고 했습니다. 주님, 3년 후에는 정말 믿음 생활 열심히 하려고 했 습니다.' 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지금 여기의 그대 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제자훈련반 이제 방학을 합니다만, 사실 방학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 오시면 아마 방학 때 오실 것입니다. 방학은 타 율에서 자율의 시간으로의 전환일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일에 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최선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최선은 오늘입니다. 과 거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 물론 중요합니다만 오늘 최선이 아 니면 소용이 없습니다. 빛바랜 과거의 추억이 오늘의 구원을 이 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미래에 최선을 다할 각오와 계획 물론 좋습니다만 허황된 것입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일은 최선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일종의 도피입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위로요, 자기도피라는 말입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그 최선이 흘러가면 과거가 되고, 그 최선이 연결되면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 믿음의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오늘 성결해야 합니다. 오늘 깨끗해야 합니다. 오늘 거룩한 투쟁에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믿음의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을 향 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국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한 자의 것입니다. 천국은 남김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량의 문제도 아닙니다. 최선 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달란트 비유를 들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두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열심히 장사를 하다 가 엄청 큰 손해를 보았다면, 그 때도 주인은 똑 같은 칭찬을 했 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 하나님이 강조하는 것이 영업 실적이었다면 하나님은 손해 본 자를 크게 나무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냉혹한 이 세상의 돈벌이 경영자와 다를 게 무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앵벌 이가 아닙니다. 천박한 자본주의 신봉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 한 경쟁주의의 냉혹한 경경주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구원 의 주님이십니다. 온 세상 그 자체를 소유하신 창조주 이십니다. 평화와 사랑의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장사하다가 최선을 다하고 손해 보았을 지라도 똑 같은 칭찬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물량이 문제가 아닙니다. 보 세요!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남긴 자나 칭찬의 내용이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똑 같습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 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 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헬라어 원문의 글자로 봐도 똑 같습니다. 바로 천국의 법칙입니다. 주식 시장의 법칙, 은행 이자의 법칙, 자본증식의 법칙에는 모두 어긋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최선만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입니다. 천국은 최선을 다한 자들이 최상의 대접을 받는 곳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자들이 모여 합창을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최선만 다하면 당당한 천국의 합창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 하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두 달란트 도 다섯 달란트도 똑 같습니다. 천국에서 특석은 없습니다. 최선 을 다한 자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똑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크게 받은 사람은 크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 론 작게 받은 사람도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 니 부러워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가가자의 분량에 만족할 따름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천국의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최고만 뽑아 준다면 우리는 얼마나 실 망하게 될까요 얼마나 의기 소침할까요 여기에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얼굴이 못났어요. 가진 것이 없어요. 재능이 변변치 않아 요. 재산이 없어요. 배운 게 없어요. 저는 성격이 원만하지 않아 요.' 이렇게 말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오셔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시기를 촉구하십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작은 유혹에 소홀하면 큰 유혹에 빠집니다. 작은 잘못에 너그 러우면 큰 잘못에 빠집니다. 작은 일에 봉사하지 못하면 큰 일에는 더욱 봉사할 수 없습니다. 작은 투쟁에 실패하면 평생 실패는 지속됩니다. 작은 일에 믿음의 선택을 못하면 큰 일에도 믿음의 선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의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유혹에 거룩한 투쟁을 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곧 선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과 큰 일의 최선은 구분이 없습니다. 뛰어난 영웅의 삶이든 범부의 삶이든 차이는 없습니다. 최선만 다하면 됩니다. 최선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입니다. 사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자기의 지금의 시간에 최선의 몸부림을 치는 것 이것이 천국 백성의 할 일입니다. 하루 하루에 최선의 믿음의 투쟁을 하십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칭찬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 여기 에서 최선을 다하십시다. 이런 여러분에게 하늘 나라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주님의 초대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사랑하시는 주님 작은 일이라고 스쳐 지났습니다. 무관심하게 여겼습니다. 버렸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 처럼, 모든 것을 '겨 우'라고 하면서 하찮게 여겼습니다. 내일 열심히 할 것이라고, 내 일로 모든 것을 미뤄 버렸습니다.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한 자들 에게 천국을 주신 주님, 그 은혜에 감격합니다. 주님! 저희도 작 은 일에,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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