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여호와께로 (암5:1-15)
본문
우리 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는 여러 징후를 볼 수 있습니다. 국민복지라는 측면이나 선진국과의 비교가 아니라 예전 어릴 때의 생활과는 천지 차이만큼이나 잘 살게 되었는데도 어쩌다가 오늘에 이르 게 되었는가하고 생각하면 안타까워 할 기력마저 잃게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에 종교라는 너울을 쓴 사탄의 앞장이들이 뭇 영혼을 불구덩이로 파멸로 끌고가고 있는 이러한 비상 한 때에 우리는 어쩔 것입니다. 이 비상한 때에 여호와께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하는 사슴처럼 기필코 달려 나가야 합니다. 세상사의 많고 많은 별 희한한 사건들이 다 있지만 그 원인과 결과의 분 석이며 처방이 다 무엇입니까 결국 인생의 문제이거든 창조주 여호와께로 지체없이 달려 나와야 바니다.
아모스 5장 1-2절은 애가이고 3절은 이스라엘이 파괴되어 십분의 일 만 남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며 4-5절은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절을 보면 한때는 아름다웠고 찬란하고 강하고 번영했던 처녀 이스 라엘이 졸지에 넘어지고 무너지고 엎드려져 망하게 된 것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처년란 주변나라에 침략당하지 않았던 여로보암2세 때의 찬란 하고 아름답고 번영했던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강대했던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망하게 되고 다시는 일어나지 도 못하고 일으켜 줄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때에 그들은 벧엘을 찾았습니다. 벧엘이 그들의 향 수가 담겨 있었습니다. 창세기 28장을 참고할 수 있는 대로 야곱이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갈 때 한밤 루스라는 들판에서 잠들게 되었는데 그 밤에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셨고 미래가 불확실한 그에게 확실한 약속 넘치는 소망을 주셨 으니 그것은 꿈에 본 이상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며 그곳에 돌을 취 하여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에게 있어 벧엘은 위로의 장소이며 은혜의 향수의 장소임은 사실 이었기에 역경을 당한 그들이 조상들의 정취가 담긴 곳을 찾아 위로와 소망을 얻기를 시도하려는 그들에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그곳 벧엘 을 찾지 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 길갈을 찾았습니다. 길갈 역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여호수아서 4장에 보면 이 장소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 유숙한 장소였고 요단강을 대로처럼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강심에서 주워 온 열두개의 돌을 세운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이 장소야말로 그들의 옛 죄와 수치가 굴거간 그리고 언약의 백성으 로 다시 세움받은 곳이기도 하며 초대왕 사울이 왕위에 올랐던 장소이 기도 합니다. 역사의 아름다운 이끼가 낀 이런 장소성에 의미를 두고 그곳에라도 찾아가서 위로와 은혜를 받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받고 싶었습니다. 이 동일한 장소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어떤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캐낼 수 있는 것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인생 삶의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또 번영을 찾는 백성들은 브엘세바를 향하였지만 그곳이 너희의 찾을 곳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1장을 보면 이방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기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을 들었던 곳입니다. 26장에 보면 나구네로 우거하며 양 치는 이삭이 생명과도 같은 우물 의 문제로 다투게 될때 두려워 말라는 약속의 보증을 얻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의미있는 장소를 찾아서 위로받기를 원하나 선지자는 그곳은 찾을 곳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왜 그들에게 그 의미있는 장소가 더 이상 효험없는 약처럼 되었습니까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은 강퍅해졌고 본문 10절을 참고할 수 있는 대로 정직히 말하는 자를 미워하는 시대가 되었고 당시의 유행어는 살 려거든 조용히 지내라는 형편이었습니다. 공의로운 법은 쓴 독초로 변했고 정의는 땅에 팽개쳐졌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없고 정의로운 재판관이 없고 신실한 경제 인이 없습니다. 사기 약탈 억압만이 횡행하는, 공의에 무뎌진 심령으로서는 어떤 은 혜로운 지역성이라도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등국가라는 선진화 된 그런 지역성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헤와 소망과 변화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역대하 15장에서 보면 그 때의 상황이 이스라엘에 참 신도 없고 가르 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고 시대는 악하여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을 치는 혼탁한 때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하였던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가 큰 승리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여호와를 찾고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기를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합니다. 세상풍조는 바뀌어도 변치않으시는 하나님, 그에게 위로와 소망과 살길이 있음을 확신하시 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5장 1-2절은 애가이고 3절은 이스라엘이 파괴되어 십분의 일 만 남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며 4-5절은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절을 보면 한때는 아름다웠고 찬란하고 강하고 번영했던 처녀 이스 라엘이 졸지에 넘어지고 무너지고 엎드려져 망하게 된 것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처년란 주변나라에 침략당하지 않았던 여로보암2세 때의 찬란 하고 아름답고 번영했던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강대했던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망하게 되고 다시는 일어나지 도 못하고 일으켜 줄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때에 그들은 벧엘을 찾았습니다. 벧엘이 그들의 향 수가 담겨 있었습니다. 창세기 28장을 참고할 수 있는 대로 야곱이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갈 때 한밤 루스라는 들판에서 잠들게 되었는데 그 밤에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셨고 미래가 불확실한 그에게 확실한 약속 넘치는 소망을 주셨 으니 그것은 꿈에 본 이상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신다며 그곳에 돌을 취 하여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에게 있어 벧엘은 위로의 장소이며 은혜의 향수의 장소임은 사실 이었기에 역경을 당한 그들이 조상들의 정취가 담긴 곳을 찾아 위로와 소망을 얻기를 시도하려는 그들에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그곳 벧엘 을 찾지 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 길갈을 찾았습니다. 길갈 역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여호수아서 4장에 보면 이 장소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 유숙한 장소였고 요단강을 대로처럼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강심에서 주워 온 열두개의 돌을 세운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이 장소야말로 그들의 옛 죄와 수치가 굴거간 그리고 언약의 백성으 로 다시 세움받은 곳이기도 하며 초대왕 사울이 왕위에 올랐던 장소이 기도 합니다. 역사의 아름다운 이끼가 낀 이런 장소성에 의미를 두고 그곳에라도 찾아가서 위로와 은혜를 받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받고 싶었습니다. 이 동일한 장소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어떤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캐낼 수 있는 것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인생 삶의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또 번영을 찾는 백성들은 브엘세바를 향하였지만 그곳이 너희의 찾을 곳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1장을 보면 이방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기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을 들었던 곳입니다. 26장에 보면 나구네로 우거하며 양 치는 이삭이 생명과도 같은 우물 의 문제로 다투게 될때 두려워 말라는 약속의 보증을 얻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의미있는 장소를 찾아서 위로받기를 원하나 선지자는 그곳은 찾을 곳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왜 그들에게 그 의미있는 장소가 더 이상 효험없는 약처럼 되었습니까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은 강퍅해졌고 본문 10절을 참고할 수 있는 대로 정직히 말하는 자를 미워하는 시대가 되었고 당시의 유행어는 살 려거든 조용히 지내라는 형편이었습니다. 공의로운 법은 쓴 독초로 변했고 정의는 땅에 팽개쳐졌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없고 정의로운 재판관이 없고 신실한 경제 인이 없습니다. 사기 약탈 억압만이 횡행하는, 공의에 무뎌진 심령으로서는 어떤 은 혜로운 지역성이라도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등국가라는 선진화 된 그런 지역성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헤와 소망과 변화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역대하 15장에서 보면 그 때의 상황이 이스라엘에 참 신도 없고 가르 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고 시대는 악하여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을 치는 혼탁한 때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하였던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가 큰 승리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여호와를 찾고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기를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합니다. 세상풍조는 바뀌어도 변치않으시는 하나님, 그에게 위로와 소망과 살길이 있음을 확신하시 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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