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기회에 영원한 해답을 (행8:26-40)
본문
저는 옛날부터 성격상 남에게 말을 건네고 하는 것을 잘 못했습니다. 그러니 전도가 너무 어려웠고, 또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도무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강단에서는 전도하라!고 했지만,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지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게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는 꼭 다녀야 되겠다기 보다는, 막연히 지옥이 있다면 가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자꾸만 다녔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계속 교회 깊숙히 들어가 보니까, 너무나도 많은 교인들이 많은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더욱 더 전도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뚜렷한 방향도 잘 모르고, 거저 가장 보람된 일이 목회자가 되는 것이겠다!는 생각에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하면서 갈수록 내 체질과는 맞지 않다는 생각에 신학대학 3학년 때에는 학교를 포기하려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애매한 응답을 받고, 계속 버티어 나온 겁니다. 그러면서 부목사가 되고 하였지만, 갈수록 교회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모든 것이 풀려졌습니다. 많은 신자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고배이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기도를 하였지만, 기도의 힘이 없었습니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좌우지간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빈 시간에 계속 기도할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있어도 안했고, 나름대로 기도를 해도, 기도 응답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더 강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신약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전부 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리스도가 전부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주가 맞지마는 전부 다다!는 답은 제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답이 나왔을 때에, 모든 것이 쉬워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므로 모든 것이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므로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뒤를 돌아보고 나서, ‘아하,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 하면서 깨닫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문제는 앞에서 응답이 없는 겁니다. 한 참있다가 보면, 그게 응답이고, 한참 있다가 보면 그게 축복이고 그러한 것입니다. 문제는 앞에 응답이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살면서 응답이 보여야 힘이 날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부분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열렸느냐 현장에 대하여 깨닫고나서 부터입니다. 현장에 답을 얻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고,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밀을 알고부터 비로소 내 앞에서 응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앞에 응답이 보이는 겁니다. ‘아하, 이것은 이러한 것이구나!’가 되어지는 겁니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답이 먼저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이 복음운동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목회와 신학에서 기자가 다 연구하여서 지지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연구기관중 하나인, 현대 종교에서도 다 연구하여 결론적으로,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시대적인 복음운동이다!’고 결론을 내렸습나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이 복음운동을 학문적으로 정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다락방 말씀운동을 조사하러 왔다가 회개하고, ‘내가 그리스도를 증거해야지 무슨 뒷것을 캘것이 있는가’하면서 회개하였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와 하나님과 이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학원, 공단, 직장 등에서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큰 문들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는 사명자도 있고, 좋은 일꾼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전부 다른데 시간을 다 허송하고 있다는 겁니다. 거저 일에 파뭍히고, 모여서 회의하는데 모든 것을 다 걸고 있을 정도인 겁니다. 아니면 자리를 놓고, 싸우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논리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고서는 바로 일꾼을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꾼을 키우되 다른 일꾼이 아닌, 그리스도 아는 일꾼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는 일꾼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약점이 나오는가 하면, 과정과 행정상에서는 조금 어리석게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좀 무관심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김치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것이 옛날 같았으면 너무너무 중요하였는데, 현장을 알고나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치는 잘담궈도 되고, 못담거도 큰 상관이 없고, 사먹어도 됩니다. 문제는 지금 현장에서는 너무너무 길을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무리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답답하여 갈데가 없어서 무당을 찾아가는데 이것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런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금 대학에서는 인재중에 인재들이 어디로 다 갔느냐 다 사이비에 빠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놓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미래도 없고, 영안도 없습니다. 대학 안에는 희안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대학 안에는 타고난 저질이 있고, 타고난 타락꾼이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는 팀이 있습니다. 또한 대학 안에는 타고난 정직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타락해도 자기들은 타락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안에는 시대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그룹들이 있습니다. 이 구룹들을 한 교회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슬적 건드리면 완전히 따라올 사명자들이 있습니다.
실력도 있고, 성품도 좋고, 미래도 알고 하는 아이들이 대학에 쫘악 깔려서 요소요소에 있는데, 그것을 전부 이단들이 다 끌고 가는 겁니다. 사이비들이 다 끌고가고, 무교회주의자들이 다 끌고 갑니다. 정말 우리는 좋은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 현장으로 안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장으로 자꾸만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국내외에 우상에 빠진 자들을 건져내면 우리 사명은 다 하는 겁니다. 전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고,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식, 비밀, 보화가 다 감추어져” 있는데 우리는 어찌하여서 저 세상 사람들을 건져내지 못합니까 에디오피아 내시를 빌립이 가서 전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위해서 오래 전부터 작업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우리의 스케줄이 아니고, 하나님의 스케줄입니다. 하나님이 수백년 전부터 벌써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10년, 20년 전부터 에디어피아를 살리기 위하여 그 나라의 공무원으로 집어 넣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왕의 배경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오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왔는데, 하필이면 마가 다락방에 오지 않고, 예루살렘 대성전에 가서 예배에 실패하고 돌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여서 돌아가기는 아까우니까, 돈으로 두루마리 성경책을 샀습니다. 이 성경책을 사서 가다가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중에서 어디를 읽었느냐 이사야 53장의 그리스도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빌립을 거기에 붙이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움직이고, 전도한 곳에 우리는 그냥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거기에 예비해 놓고 사람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행8:26)“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얼마나 중요하였던지 29절에, (행8:29)“성령님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전부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주의 사자를 보내어 지시하고 섭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만난 것은 하나님께서 벌써 전부터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벌써 전부터 이것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전도자의 걸음을 지키십니다. 여러분이 오늘부터 전도한다!가 아닙니다. ‘지금 우상 가운데 빠진 자를 건져내 주어야 되겠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흑암권세에 빠진 자를 도와 주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여러분의 한걸음 한걸음을 하나님은 전부 축복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빌립이 움직이는 것 하나 하나를 간섭하셨듯이 간섭할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베드로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벌써 이 사건을 구약시대 때부터 예비하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 베드로가 그 앞에 도달하도록 하나님은 모든 준비를 다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거기에 올때에 하나님은 앉은뱅이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데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강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보다 더 한 일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발걸음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어떤 목사님 사모님은 20년 동안 병을 앓다가, 이 복음 전할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 분이 합숙훈련에 오셔서 울었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셨는데, 내가 지금까지 사모로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정말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딸로서 내가 지금까지 무엇에 시달려 왔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자기 몸에 이상한 느낌이 오더랍니다. 그때 이후로 20년동안 앓았던 병이 나아버렸답니다. 무슨 병고쳐 달라!고 기도도 안했는데, 그렇데 되었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한 결단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그런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동기만 뜯어 고친다면, 여러분의 걸음이 얼마나 귀중한 걸음이 되는지 모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내다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빌립의 걸음과 내시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맞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업과 구원받아야 될 사람과 맞추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이것을 맞추신 것입니다. 이때 일어나는 기쁨이나 응답을 말을 다 못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바울이 전도하러 돌아 다니다가 어떤 여자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 여자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루디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루디아라고 하는 여자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였다가 바울의 걸음과 맞추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만사 돌아가는 것과 여러분의 걸음과 맞추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복음 전하기 위해서 뭉치고 기도하는 남양주 교회와 지역 민족 세계 복음화와 맞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큰 것을 보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골목도 보아야 되지마는 큰 길을 보아야 됩니다. 여러가지 작은 방법도 보아야 되지만, 하나님이 크게 움직이는 노선을 쳐다 보아야 됩니다. 지금 현장에서는 많은 단체와 우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장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단 한번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기적적으로 빌립을 만났습니다. 그러니, 단 한번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빌립이 무슨 새마음 갖기 운동을 강의하였다면, 그것은 저주받을 일입니다. 이때 만약에 빌립이 산에 가서 받았던 공동체 훈련을 말했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이때 만일 봉사훈련을 이야기 했다면, 실수하는 겁니다. 이때 만일 교회 행정을 말하고, 여러가지 조직을 이야기 했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이때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정확하게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단 한번의 기회에 영원한 해답을 주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지역 살리고, 민족 살리고, 세계 살리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지금 기독교를 비웃듯이 무당 50만 역술인 40만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내년에는 역술인을 키우는 역학 대학을 세워서 길 잃어버린 한국 민족을 건지자!고 지금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첫째주 주간한국 잡지에 뭐라고 나왔느냐 ‘한국에 왜 갑작스럽게 역술인과 무당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가’는 글에서 우리를 너무나 부끄럽게 하는 글이 나왔습니다.첫째는 한국 정국이 혼란하니, 사람들이 불안하고 뭔가 잘되지 않아서 무당을 찾고 역술인을 찾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두번째 이유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둘째 이유는 한국에는 진정한 종교가 부재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끌어줄 단체가 없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기독교를 비웃는 듯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대 교단을 비웃듯이 지금 현장에서는 무당과 역술인들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끌고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엉뚱한데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기가막힌 것은 대학 안에 인재중 인재는 전부 무교회로, 전부 사이비로, 전부 이단으로! 다 끌려가 버리는 것입니다. 상상외로 신실한 일꾼들이 많은 겁니다. 목사 아들, 장로 아들은 어쩔수 없어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눈 바로뜬 아이들은 전부 무교회로 다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눈 바로 뜬 아이들은 전부 다른 단체에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확실한 답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무엇이냐 이것을 설명만 해도 하나님의 성령님은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말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은 구원받은 우리가 부르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말은 전도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 3가지를 해결하는 이름입니다.
절대로 의사도 과학자도, 학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3가지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1당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통 당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2당신 집에 임하는 저주와 모든 재앙을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 모든 것이 죄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해결하시므로 근본 해결을 주신 분입니다. 3당신 집에 임한 영적인 문제와 사단의 권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 말만 해주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강하게 역사해 버립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누구에게 기름을 붓느냐 왕, 선지자,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어서 직책을 임명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참 왕으로, 참 세사장으로, 참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아 듣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면 거기에 성령님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영적으로 시달리는 사람은 이 그리스도 이름 앞에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왜 이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체험해 보면, 정신이 돌은지, 일주일 안에 예수 영접하면 거의 100% 다 낫습니다. 이것이 1년, 2년 지나면 어렵습니다. 벌써 그 인격이 잡힙니다. 현장에서 정신이 돌아서 방황하는 사람이 1주일 이내로 예수님 만나면 해결되는데, 그것을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없습니다. 교회는 많지마는 한번 들어가 보세요! 교회 문들은 다 잠겨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답답해서 교회가서 울고 기도하고 있어 보세요! 잘못하면 실컫 욕얻어 먹습니다. 사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왜 그럽니까 사찰이 일하기 힘들고, 지쳐서 누구 하나 오는 것이 귀챦습니다. 누가 와 있으면, 나가라!는 겁니다. 목사님들은 또 얼마나 바쁩니까 무슨 조찬기도회, 중식 기도회, 석식 기도회 자꾸 나가야지, 시찰회, 노회, 갈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 하나 놓으면 낳았다고 출산예배 가여지, 백일때 가야지, 돌이라고 가지요. 사람 하나 죽어 보세요. 죽기 전에 가지요, 죽고난 뒤에 임종예배 가지요, 관 안에 넣으 놓으면 또 섭섭하니까 입관예배 가야지요, 발인예배할 때에 가지, 하관예배 하지, 또 갖다와서 삼오라고 예배하지요. 완전히 목사를 바쁘게 묶어 버립니다. 그러니, 밖에 나가서 할 것이 없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불신자 만날 길이 없는 겁니다. 불신자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뭔가 갈망이 오는데 어디를 가야 되겠는데, 갈데가 없습니다. 교회 가보니,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교회 모처럼 가보니, 오래 다닌 자기들끼리 막 싸웁니다. 지금 영적으로 갈등이 있어서 교회에 도움을 받으러 왔는데, 가만히 보니, 패거리 나누어서 싸웁니다. 그러니, 눈치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얼른 빠져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어디로 갑니까 이단으로, 사이비로 빠지는 겁니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 앞에서 어마어마한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을 깨달으면 응답받는다, 못받는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가 된다, 안된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양심으로 말할때, 이것은 전도가 전도가 아니라, 우리의 생 자체요, 우리가 받은 구원의 축복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는 날마다 응답의 문이 열립니다. 복음 전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왜냐 지금까지 복음 전하는 자들을 가만히 놓아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진짜 복음 전하는 나라를 그냥 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열어 주실 것입니다.
첫째 무엇을 주시느냐 건강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흥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꾼도 보내주실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염려가 생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염려가 생기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자꾸만 불안하느냐 그리스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자라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불신앙의 중심을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였을 때에, 비록 나중에 베드로가 넘어지겠지마는 예수님은 그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구나!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아니 무엇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겁납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니까요. 무엇 때문에 마리아를 들고 나옵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거든요. 무엇 때문에 문선명이를 들고 나옵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박태선이를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틀린 길을 가르쳐 주는 자나,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 사람이 알고보면 죄질이 같은 종류입니다. 길가다가 길을 물어 보았는데, 엉터리로 ‘저쪽으로 가보라!’며 잘못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아예 길을 막아놓고 가지 못하게 하는 자나 비슷합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교회보다, 틀리게 가르치는 교회는 갈때에 엉터리이지만 확신은 있습니다. 틀린 길을 확실하게 갑니다. 그래서 갈 동안에는 엉터리지만 행복하게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말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교회 다니면서 어려움 당하고, 실패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기도응답 못받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성경에 실패가 있고, 고난이 있지 않습니까’고 반문합니다. ‘예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실패를 통하여 답이 먼저 나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고난 당하다가 답이 나왔지 않습니까 요셉이 노예로 갔지만, 답 나왔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답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것과 그것은 다른 말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문을 우리에게 여십니다. 하나님이 에디오피아 내시와 빌립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면, 하나님은 나머지 모든 문을 다 여실 것입니다.
모든 건강과 사업과 미래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전하는 것은 특별한 전도라기 보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살아서 내게 역사하시는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만 말하면 됩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세가지 중요한 일을 해결하셨다!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고, 그 어마머아한 권세를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왕, 선지자, 제사장의 사명을 주시면서 우리를 향하여 세상에 나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흑암권세를 깨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왕의 사명입니다. 지금 불신자들이 답을 못얻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지내놓고도 답을 못얻고 감옥에 가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또한, 이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올 때에 그리스도를 설명해서 구원받도록 만드는 제사장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사며을 다 해버리면 굉장한 축복이 임합니다. 교회가 정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면, 굉장한 것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주장하십니다. 이번 주간이 큰 응답의 주간이 되시기를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도무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강단에서는 전도하라!고 했지만,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지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게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는 꼭 다녀야 되겠다기 보다는, 막연히 지옥이 있다면 가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자꾸만 다녔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계속 교회 깊숙히 들어가 보니까, 너무나도 많은 교인들이 많은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더욱 더 전도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뚜렷한 방향도 잘 모르고, 거저 가장 보람된 일이 목회자가 되는 것이겠다!는 생각에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하면서 갈수록 내 체질과는 맞지 않다는 생각에 신학대학 3학년 때에는 학교를 포기하려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애매한 응답을 받고, 계속 버티어 나온 겁니다. 그러면서 부목사가 되고 하였지만, 갈수록 교회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모든 것이 풀려졌습니다. 많은 신자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고배이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기도를 하였지만, 기도의 힘이 없었습니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좌우지간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빈 시간에 계속 기도할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있어도 안했고, 나름대로 기도를 해도, 기도 응답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더 강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신약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전부 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리스도가 전부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주가 맞지마는 전부 다다!는 답은 제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답이 나왔을 때에, 모든 것이 쉬워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므로 모든 것이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므로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뒤를 돌아보고 나서, ‘아하,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 하면서 깨닫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문제는 앞에서 응답이 없는 겁니다. 한 참있다가 보면, 그게 응답이고, 한참 있다가 보면 그게 축복이고 그러한 것입니다. 문제는 앞에 응답이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살면서 응답이 보여야 힘이 날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부분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열렸느냐 현장에 대하여 깨닫고나서 부터입니다. 현장에 답을 얻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고,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밀을 알고부터 비로소 내 앞에서 응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앞에 응답이 보이는 겁니다. ‘아하, 이것은 이러한 것이구나!’가 되어지는 겁니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답이 먼저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이 복음운동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목회와 신학에서 기자가 다 연구하여서 지지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연구기관중 하나인, 현대 종교에서도 다 연구하여 결론적으로,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시대적인 복음운동이다!’고 결론을 내렸습나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이 복음운동을 학문적으로 정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다락방 말씀운동을 조사하러 왔다가 회개하고, ‘내가 그리스도를 증거해야지 무슨 뒷것을 캘것이 있는가’하면서 회개하였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와 하나님과 이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학원, 공단, 직장 등에서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큰 문들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는 사명자도 있고, 좋은 일꾼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전부 다른데 시간을 다 허송하고 있다는 겁니다. 거저 일에 파뭍히고, 모여서 회의하는데 모든 것을 다 걸고 있을 정도인 겁니다. 아니면 자리를 놓고, 싸우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논리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고서는 바로 일꾼을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꾼을 키우되 다른 일꾼이 아닌, 그리스도 아는 일꾼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는 일꾼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약점이 나오는가 하면, 과정과 행정상에서는 조금 어리석게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좀 무관심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김치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것이 옛날 같았으면 너무너무 중요하였는데, 현장을 알고나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치는 잘담궈도 되고, 못담거도 큰 상관이 없고, 사먹어도 됩니다. 문제는 지금 현장에서는 너무너무 길을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무리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답답하여 갈데가 없어서 무당을 찾아가는데 이것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런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금 대학에서는 인재중에 인재들이 어디로 다 갔느냐 다 사이비에 빠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놓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미래도 없고, 영안도 없습니다. 대학 안에는 희안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대학 안에는 타고난 저질이 있고, 타고난 타락꾼이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는 팀이 있습니다. 또한 대학 안에는 타고난 정직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옆에서 아무리 타락해도 자기들은 타락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안에는 시대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그룹들이 있습니다. 이 구룹들을 한 교회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슬적 건드리면 완전히 따라올 사명자들이 있습니다.
실력도 있고, 성품도 좋고, 미래도 알고 하는 아이들이 대학에 쫘악 깔려서 요소요소에 있는데, 그것을 전부 이단들이 다 끌고 가는 겁니다. 사이비들이 다 끌고가고, 무교회주의자들이 다 끌고 갑니다. 정말 우리는 좋은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 현장으로 안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장으로 자꾸만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국내외에 우상에 빠진 자들을 건져내면 우리 사명은 다 하는 겁니다. 전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고,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식, 비밀, 보화가 다 감추어져” 있는데 우리는 어찌하여서 저 세상 사람들을 건져내지 못합니까 에디오피아 내시를 빌립이 가서 전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위해서 오래 전부터 작업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우리의 스케줄이 아니고, 하나님의 스케줄입니다. 하나님이 수백년 전부터 벌써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10년, 20년 전부터 에디어피아를 살리기 위하여 그 나라의 공무원으로 집어 넣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왕의 배경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오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왔는데, 하필이면 마가 다락방에 오지 않고, 예루살렘 대성전에 가서 예배에 실패하고 돌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여서 돌아가기는 아까우니까, 돈으로 두루마리 성경책을 샀습니다. 이 성경책을 사서 가다가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중에서 어디를 읽었느냐 이사야 53장의 그리스도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빌립을 거기에 붙이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움직이고, 전도한 곳에 우리는 그냥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거기에 예비해 놓고 사람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행8:26)“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얼마나 중요하였던지 29절에, (행8:29)“성령님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전부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주의 사자를 보내어 지시하고 섭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만난 것은 하나님께서 벌써 전부터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벌써 전부터 이것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전도자의 걸음을 지키십니다. 여러분이 오늘부터 전도한다!가 아닙니다. ‘지금 우상 가운데 빠진 자를 건져내 주어야 되겠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흑암권세에 빠진 자를 도와 주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여러분의 한걸음 한걸음을 하나님은 전부 축복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빌립이 움직이는 것 하나 하나를 간섭하셨듯이 간섭할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베드로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벌써 이 사건을 구약시대 때부터 예비하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 베드로가 그 앞에 도달하도록 하나님은 모든 준비를 다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거기에 올때에 하나님은 앉은뱅이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데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강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보다 더 한 일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발걸음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어떤 목사님 사모님은 20년 동안 병을 앓다가, 이 복음 전할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 분이 합숙훈련에 오셔서 울었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셨는데, 내가 지금까지 사모로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정말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딸로서 내가 지금까지 무엇에 시달려 왔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자기 몸에 이상한 느낌이 오더랍니다. 그때 이후로 20년동안 앓았던 병이 나아버렸답니다. 무슨 병고쳐 달라!고 기도도 안했는데, 그렇데 되었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한 결단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그런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동기만 뜯어 고친다면, 여러분의 걸음이 얼마나 귀중한 걸음이 되는지 모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내다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빌립의 걸음과 내시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맞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업과 구원받아야 될 사람과 맞추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이것을 맞추신 것입니다. 이때 일어나는 기쁨이나 응답을 말을 다 못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바울이 전도하러 돌아 다니다가 어떤 여자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 여자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루디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루디아라고 하는 여자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였다가 바울의 걸음과 맞추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만사 돌아가는 것과 여러분의 걸음과 맞추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복음 전하기 위해서 뭉치고 기도하는 남양주 교회와 지역 민족 세계 복음화와 맞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큰 것을 보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골목도 보아야 되지마는 큰 길을 보아야 됩니다. 여러가지 작은 방법도 보아야 되지만, 하나님이 크게 움직이는 노선을 쳐다 보아야 됩니다. 지금 현장에서는 많은 단체와 우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장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단 한번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기적적으로 빌립을 만났습니다. 그러니, 단 한번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빌립이 무슨 새마음 갖기 운동을 강의하였다면, 그것은 저주받을 일입니다. 이때 만약에 빌립이 산에 가서 받았던 공동체 훈련을 말했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이때 만일 봉사훈련을 이야기 했다면, 실수하는 겁니다. 이때 만일 교회 행정을 말하고, 여러가지 조직을 이야기 했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이때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정확하게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단 한번의 기회에 영원한 해답을 주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지역 살리고, 민족 살리고, 세계 살리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지금 기독교를 비웃듯이 무당 50만 역술인 40만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내년에는 역술인을 키우는 역학 대학을 세워서 길 잃어버린 한국 민족을 건지자!고 지금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첫째주 주간한국 잡지에 뭐라고 나왔느냐 ‘한국에 왜 갑작스럽게 역술인과 무당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가’는 글에서 우리를 너무나 부끄럽게 하는 글이 나왔습니다.첫째는 한국 정국이 혼란하니, 사람들이 불안하고 뭔가 잘되지 않아서 무당을 찾고 역술인을 찾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두번째 이유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둘째 이유는 한국에는 진정한 종교가 부재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끌어줄 단체가 없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기독교를 비웃는 듯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대 교단을 비웃듯이 지금 현장에서는 무당과 역술인들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끌고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엉뚱한데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기가막힌 것은 대학 안에 인재중 인재는 전부 무교회로, 전부 사이비로, 전부 이단으로! 다 끌려가 버리는 것입니다. 상상외로 신실한 일꾼들이 많은 겁니다. 목사 아들, 장로 아들은 어쩔수 없어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눈 바로뜬 아이들은 전부 무교회로 다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눈 바로 뜬 아이들은 전부 다른 단체에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확실한 답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무엇이냐 이것을 설명만 해도 하나님의 성령님은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말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은 구원받은 우리가 부르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말은 전도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 3가지를 해결하는 이름입니다.
절대로 의사도 과학자도, 학자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3가지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1당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통 당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2당신 집에 임하는 저주와 모든 재앙을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 모든 것이 죄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해결하시므로 근본 해결을 주신 분입니다. 3당신 집에 임한 영적인 문제와 사단의 권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 말만 해주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강하게 역사해 버립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누구에게 기름을 붓느냐 왕, 선지자,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어서 직책을 임명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참 왕으로, 참 세사장으로, 참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아 듣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면 거기에 성령님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영적으로 시달리는 사람은 이 그리스도 이름 앞에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왜 이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체험해 보면, 정신이 돌은지, 일주일 안에 예수 영접하면 거의 100% 다 낫습니다. 이것이 1년, 2년 지나면 어렵습니다. 벌써 그 인격이 잡힙니다. 현장에서 정신이 돌아서 방황하는 사람이 1주일 이내로 예수님 만나면 해결되는데, 그것을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없습니다. 교회는 많지마는 한번 들어가 보세요! 교회 문들은 다 잠겨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답답해서 교회가서 울고 기도하고 있어 보세요! 잘못하면 실컫 욕얻어 먹습니다. 사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왜 그럽니까 사찰이 일하기 힘들고, 지쳐서 누구 하나 오는 것이 귀챦습니다. 누가 와 있으면, 나가라!는 겁니다. 목사님들은 또 얼마나 바쁩니까 무슨 조찬기도회, 중식 기도회, 석식 기도회 자꾸 나가야지, 시찰회, 노회, 갈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 하나 놓으면 낳았다고 출산예배 가여지, 백일때 가야지, 돌이라고 가지요. 사람 하나 죽어 보세요. 죽기 전에 가지요, 죽고난 뒤에 임종예배 가지요, 관 안에 넣으 놓으면 또 섭섭하니까 입관예배 가야지요, 발인예배할 때에 가지, 하관예배 하지, 또 갖다와서 삼오라고 예배하지요. 완전히 목사를 바쁘게 묶어 버립니다. 그러니, 밖에 나가서 할 것이 없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불신자 만날 길이 없는 겁니다. 불신자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뭔가 갈망이 오는데 어디를 가야 되겠는데, 갈데가 없습니다. 교회 가보니,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교회 모처럼 가보니, 오래 다닌 자기들끼리 막 싸웁니다. 지금 영적으로 갈등이 있어서 교회에 도움을 받으러 왔는데, 가만히 보니, 패거리 나누어서 싸웁니다. 그러니, 눈치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얼른 빠져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어디로 갑니까 이단으로, 사이비로 빠지는 겁니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 앞에서 어마어마한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것을 깨달으면 응답받는다, 못받는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가 된다, 안된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양심으로 말할때, 이것은 전도가 전도가 아니라, 우리의 생 자체요, 우리가 받은 구원의 축복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는 날마다 응답의 문이 열립니다. 복음 전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왜냐 지금까지 복음 전하는 자들을 가만히 놓아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진짜 복음 전하는 나라를 그냥 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문열어 주실 것입니다.
첫째 무엇을 주시느냐 건강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흥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꾼도 보내주실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염려가 생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염려가 생기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자꾸만 불안하느냐 그리스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자라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불신앙의 중심을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였을 때에, 비록 나중에 베드로가 넘어지겠지마는 예수님은 그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구나!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아니 무엇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겁납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니까요. 무엇 때문에 마리아를 들고 나옵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거든요. 무엇 때문에 문선명이를 들고 나옵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박태선이를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가 모자라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틀린 길을 가르쳐 주는 자나,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 사람이 알고보면 죄질이 같은 종류입니다. 길가다가 길을 물어 보았는데, 엉터리로 ‘저쪽으로 가보라!’며 잘못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아예 길을 막아놓고 가지 못하게 하는 자나 비슷합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교회보다, 틀리게 가르치는 교회는 갈때에 엉터리이지만 확신은 있습니다. 틀린 길을 확실하게 갑니다. 그래서 갈 동안에는 엉터리지만 행복하게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말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교회 다니면서 어려움 당하고, 실패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기도응답 못받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성경에 실패가 있고, 고난이 있지 않습니까’고 반문합니다. ‘예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실패를 통하여 답이 먼저 나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고난 당하다가 답이 나왔지 않습니까 요셉이 노예로 갔지만, 답 나왔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답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것과 그것은 다른 말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문을 우리에게 여십니다. 하나님이 에디오피아 내시와 빌립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면, 하나님은 나머지 모든 문을 다 여실 것입니다.
모든 건강과 사업과 미래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전하는 것은 특별한 전도라기 보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살아서 내게 역사하시는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만 말하면 됩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세가지 중요한 일을 해결하셨다!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고, 그 어마머아한 권세를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왕, 선지자, 제사장의 사명을 주시면서 우리를 향하여 세상에 나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흑암권세를 깨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왕의 사명입니다. 지금 불신자들이 답을 못얻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지내놓고도 답을 못얻고 감옥에 가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또한, 이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올 때에 그리스도를 설명해서 구원받도록 만드는 제사장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사며을 다 해버리면 굉장한 축복이 임합니다. 교회가 정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면, 굉장한 것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주장하십니다. 이번 주간이 큰 응답의 주간이 되시기를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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