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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이 열린 자들 (행1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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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뛰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눈이 열린 사람이 됩니다. 고집이 센 사람 보다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고집 쎈 사람은 그 고집 고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을 못살았지만, 돈버는 사람을 보면, 돈버는 눈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 못버는 사람을 보면, 돈 못버는 눈이 있습니다. ‘아하, 저 사람은 저러니까 돈을 버는구나!’가 이해되는 겁니다. 돈버는 것도 눈이 있어요! 그냥 새벽에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온다고 돈버는 것은 아니지요 새벽에 일찌기 나가서 밤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은 길거리 청소하는 사람들보다 일찌기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법니까 그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돈버는 사람은 돈버는 눈이 있고, 사람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돈 못버는 사람들은 한가지에 대한 고집은 센데, 눈이 없으니까 안되는 겁니다. 고집을 너무 세우다 보니, 어디 가서 고생이 많이 되는 겁니다. 이중삼중 고생이 되는 겁니다. 학교는 왜 다닙니까 눈 열리게 하기 위해서 다니는 겁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정치하는 분야도 눈이 열려야 정치를 잘합니다. 벌써, 미국과 같은 큰 나라들이 ‘우루구라이 라운드’같은 것을 시행하니까, 일본 같은데서는 일찌기 대비를 해서, 세계시장이 열리면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이며, 무엇이 손해겠는가 하는 것을 미리 잡아 놓고 교섭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농산물 개방은 결사반대! 그렇게 나갑니다.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는 겁니다. 지금 세계시장이 문이 안열릴 수가 없지 않습니까 국회의원들이 피켓들고 나온다고 그게 열릴 것이 안열리겠습니까 우리가 피켓 들고 나가면 소나기 오던 것이 안옵니까 그러니, 참으로 답답한 거지요 대통령이 골치 아플 일이지요 저런 국회의원들을 데리고 어떻게 청치를 하겠습니까 이유는 있어요! 농촌이 망한다!는 이 말이지요 농촌이 망하더라도 열리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대비를 해야지 않겠습니까 농촌이 손해보면, 다른 것에서 이익을 보는 것이 무엇인가 빨리 알아서 전환을 시키고 그렇게 발이 빠르게 움직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정치도 눈이 열려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눈이 열려야 됩니다. 찬양도 영안이 열려야 바른 찬양이 됩니다. 지식도 글 보는 눈이 열려야 됩니다. 우리가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고 그럽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제목은 다른 것이 아니고, 주로 주님 내 눈을 열어 주옵소서!라는 겁니다. 바울의 중보기도 내용의 핵심도 골1:9-10절에, ‘영적 지혜의 눈을 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께 합당히 행하여 열매가 맺혀 자라게 되고, 계속 자라면, 새생명을 탄생시키고 양육시킬 정도로, 다시말해 자식낳고 기를 정도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엡1:17-19절에 바울 자신의 기도의 핵심도 “내 영안을 여사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보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여사 하나님의 주신 기업을 알게 하옵소서!”입니다. 일천 번제 이후에, 솔로몬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내 영안을 여사 하나님의 지혜를 내게 주옵소서!”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세상을 이길수 있고, 복음 전할 수 있는 영안이 열려져야 합니다. 영안이 열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1. 구약 시대에 말하던 메시야 그 분이 그리스도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구나!’ 이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구나!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구나! 이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6:16절에, “주는 그리스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깜짝 놀라서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구나! 이것을 네가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네게 알게 하셨구나!” ‘네가 영안이 열렸구나!’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자가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드디어 바울이 어떤 눈이 열렸느냐
1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식, 모든 지혜,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구나(골 2:2-3)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사업에 성공합니다. 바울이 드디어 예수믿고, 십년 몇만에 고백하기를 ‘모든 배경, 학벌, 가문을 가지고도 안되는데,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기를 ‘이제부터 내가 가진 모든 배경, 학벌, 가문, 지식, 직분, 믿은 년수자랑을 배설물로 여긴다! 왜냐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바울이 무슨 눈이 열렸는가 하면, 사람 중심으로 해나가는 것 그것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패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 그래서, 그리스도께 발견되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빌3:7-9). 빌3:7-9절에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3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을 찾아 내기만 하면 승 리한다고 깨닫는 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사람의 배경은 한계가 있지만, 하늘 나라에서 내리는 이 신령한 능력은 한계가 없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땅에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하지만 위에 신령한 복을 받 으면 땅에 것도 이길 수 있구나!가 보이는 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5 이 영안들이 열리면, 구원받을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때부터는 다락방에 가도, ‘저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이구나!’가 깨달아지고,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은 무르익은 사람이구나!’가 보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노라!’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안이 완전히 열리는 것입니다.
2. 세상에는 다 있는데, 하나만 없구나!를 발견하는 것이 영안이 열린 것이다. 미국에 가면, 다 있어요! 풀밭도 있고, 연못도 있고, 얼마나 집도 넓은지 모릅니다. 일본에도 전부 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없습니다. 뭐가 없습니까 영적인 문제 해결하는 길 하나만 없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깨닫는 날, 그날로부터 교회가 되는 것이고, 성도가 이것을 깨닫는 날, 그날로부터 성도가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 깨달을 때에, 정치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 깨달은 사람이 사업하면 사업이 살아납니다. 왜냐 하나님 만나는 길과 저주에서 빠져 나오는 길과 사단을 이기는 길을 모르는데,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그냥 하다가 나중에 좌초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자가 모르는데, 어찌 영안이 열렸습니까 그렇게해서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정치도 못하는 것이고, 날이 갈수록 자꾸만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경제인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나라에다 많은 헌신을 했는데, 자기 개인은 죽는 겁니다. 일본이 물건을 만들어 팔고, 무기도 만들어 팔고 장사를 잘했는데도, 나라는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는 히죽히죽 웃고 하는 그것은 정신병자 취급도 안한답니다. 적어도 옷벗고 딩굴고해야 정신병원에 데리고 간답니다. 이런 영적인 문제를 보는 눈이 열리는 것이 현장 보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3. 이때부터 교회 안에는 사람이 많은데, 일꾼을 키워야 되겠구나!는 눈이 열리는 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1200만 성도가 지금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316개 대학과 4500개가 넘는 중고등학교와 10000만개가 넘는 국민학교가 지금 기다리고 있구나!는 눈이 열리는 겁니다. 이때부터 깨달아 지는 것이 일꾼 찾는 작업입니다. 이 눈이 열릴때에 하나님이 일꾼을 붙여주시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놀라운 응답을 계속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눈감고 환상 보는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꾼을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전도학교를 합니까 ‘전도가 이런 것이다!’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가 이해되면, 전도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는 말할것도 없고, 내 삶이 애해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 이제는 내가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는 답이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는 해답이 완전히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그 중에서 일꾼을 뽑아 내는데, 누구를 찾아 냅니까 요원과 사명자, 사역자를 찾아 내는 것입니다. 이들이 움직이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눈이 열려야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아무리 환상을 많이보고, 꿈을 많이 꾸어도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르면, 그것은 영안이 열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천하없는 많은 업적을 쌓고, 천하없는 설득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불신자가 죽어가는데, 해답을 줄 수 없다면 여러분은 영안이 열린 것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자에게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지금 죽어가는 자에게, ‘성경에 이것이다!’는 답을 줄 수 있어야 그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꾼을 만들어 내는 눈이 열려야 그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4. 그 다음에, ‘하나님이 지역을 어떻게 살리구나!’는 눈이 열리는 것이 영 안이 열린 것입니다. 이 눈이 열리기 시작하면, 사업도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눈이 열리고, 그때부터 기도하며 사업을 하나님께 맡기면, 평안한 축복이 열리는 것입다. 하나님 주신 눈만 열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응답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하면 힘빠질 수도 있을텐데, 뒤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문제만 해결하신 분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그냥, ‘나가서 제자 삼아라!’고 하였으면, 우리가 힘빠져 죽을 것인데, (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영안이 열린 자들은 보는 눈이 다릅니다. 교회 안에서 요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방문한 교포를 보고 복음의 문을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을 계속 맛보다가 그렇게 선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법정에 서서 베드로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말하느냐’고 추궁하였을 때에, 베드로가 성령님에 충만하여 “천하에 구원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말이 없어지니까, 바리새인들이 ‘앞으로 주의하고 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눈이 열려야 됩니다. 행6:7절에 보세요! 일꾼들이 예루살렘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행7:54-60절에 보니까, 스데반이 돌맞아 죽을 때에 스데반에게 영안이 열렸습니다. 볼것을 똑바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못보는 것을 스데반이 보았던 것입니다. 행8:4-8절에 보니까, 영안이 열린 자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해답을 주었습니다. 영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주고 답을 얻게해 주었던 것입니다. 행8:26-40절에 보니까, 이 빌립이 내시와 만났던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누구와 만나느냐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그 인물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 주간에 해야될 일이 무엇입니까 ‘주여!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나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주여 저 영안이 어두운 종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열린 만큼 찾이 합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밟는 만큼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고집으로 찾이하는 것이 아니라, 영안이 열린 만큼 찾이 하는 겁니다. 자리 지킬려고 하는 고집으로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눈이 열려야 찾이 할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님, 내 눈을 열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눈이 열리기 위해서 내것을 내버리고, 자아도 내버리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것 찾이할려고 말입니다. 행16:12-15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영안이 열린 루디아를 바울에게 허락하였습니다. 행17장에는 하나님은 바울에게 말씀운동의 전략을 펴야 되겠다는 눈이 열리도록 축복하였습니다. 행18장에는 하나님이 브리스가 부부를 예비하였습니다. 행19장에는 요원을 준비하여 하나님이 문을 다 열어 주셨습니다. 행28:31절,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는데, 바울이 영안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영안이 열렸느냐 ‘여기는 로마를 복음화할 수 있는 장소다!’는 영안이 열렸던 것입니다. 바울은 영안이 굉장히 열린 사람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을 내놓으면 절대로 법에서도 영장 없이는 구속 못합니다. 그외 여러가지 행정적으로도 혜택을 받는 것이 많았습니다. 로마가 그만큼 강했습니다. 이같은 시민권을 바울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 전하다가 귀신들린 소녀를 고쳐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바울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야 할텐데, 오히려 점치는 귀신을 쫓아서 재산에 손해를 입혔다고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고발을 할때에는 그런 내용으로 고발하지 않고, ‘이 나라에 없는 풍속을 저 바울이라는 자가 전한다!’고 하면서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잡혀 들어갑니다. 그때에 만약에 바울이 ‘나는 로마 시민이다! 여기 시민권이 있다! 내가 무슨 다른 풍속을 전하느냐’고 하면서 그날로 즉각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것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드려 맞고 감옥에 갇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하며 기도하다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찬송에 바울과 실라를 가둔 감옥이 이 영안이 열린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지진이 나면서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고, 착고와 수갑이 저절로 풀어졌습니다. 영안이 열린 자의 찬송은 위력이 있습니다. 성가대원 여러분들이 이같은 영안이 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때에 간수가 자결하려고 하고, 그것을 말리는 바울의 목소리에 감동을 받은 간수는 ‘선생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행16: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그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도 복음 전하고 영접시키고 식사대접까지 받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제일 끝에 가서 로마 시민권을 내놓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요!’ 그때, 간수가 놀래서 소장에게 보고합니다. ‘우리가 큰일 났습니다. 우리가 로마 사람을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고 하자, 놀란 소장은 뛰어 와서는 빌고 그럽니다. 여기서 바울이 왜 로마 시민권을 처음부터 안내놓고, 끝에 가서야 내놓습니까 바보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분이 보통 영안이 열린 분이 아닙니다. 이 빌립보를 살릴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당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에서는 그 지역 치안 담당자에게 빚을 지움으로그 이후 복음이 가로 막히는 일이 별로 없이 증거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좌우지간 성도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는 눈과 응답받는 비밀 보는 눈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를 안하고 무슨 일을 합니까 오늘 본문을 잘 읽어야 합니다. 바울이 돌에 얻어 맞고는 그 다음날 그 지역에 또 뛰어 들어갑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이 복음을 위하여 뛸 수 있는 핵심멤버를 찾았는데, 돌에 맞아 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 나니까, 그 핵심 요원을 세우기 위하여 또 거기에 들어갑니다. 영안이 열린 자, 비젼이 열린 자, 소망이 열린 자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 눈이 확 열려 버렸던 것입니다. 굉장합니다. 그러니까, 사람과 일꾼을 찾으려고 막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남양주 장로교회 성도님들에게 이 눈이 열려져야 될 것입니다. 일이 문제 아닙니다. 미국 한인 교회는 교회가 이만하면, 식당은 이것 두배나 됩니다. 그래서 좀 눈 뜬 사람은 전부 식당에 가서 일하다가 은혜 받고 있습니다. 밥하고 설걷이 하는 것에 은혜받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머리가 안돌아 갑니까 딱 앞자리 앉아서 적고 기도하고, 그래서 미국을 살려야 될 것 아닙니까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닙니다. 볼 것을 보고, 열릴 것이 열려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앞으로 지역과 민족과 세계 복음화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많은 신실하일꾼을 등용시키고, 일꾼도 세우고 해야 됩니다. 영안이 열린 자를 세워야 합니다. 뒷 구석에 사람 불러 모아놓고, 남 험담이나 하고, 교회를 허무는 더러운 습성을 가진 자는 그것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영원히 거룩한 복음 사역에는 분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토양은 그런 심보를 가진 자는 앞으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량과 사랑으로 덮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새신자와 성도들의 마음과 영을 죽이는 작업을 벌이는 자를 방치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고, 그러고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그런 자를 관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순결을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전도회를 살리고, 협력하고, 추스려야 할 회장이 도리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온갖 폭언과 감정으로 약한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은 회장 자격 미달입니다. 어린 아이같이 칭찬이나 받으려고 하고, 대접이나 요구하는 자는 아직도 쉬운 젖이나 먹고 더 자라나야 할 어린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안이 열린 자를 일꾼으로 세워야 합니다. 재산이나 나이나 배경을 기준으로 일꾼을 세우면 교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교회는 육의 눈이 열린 자가 아니라, 영안이 열린 자가 서야 합니다. 이 눈이 열린 자가 일을 할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사업에 축복을 받는 겁니다. 이 눈이 안열린 자는 하나님이 ‘너는 사업의 문이 열리면 안되겠구나!’ 오히려 막으십니다. ‘너 눈이 안열려서 오래 살면 안되겠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고, (마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놀라운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제 말과, 사람의 말을 듣지말고, 진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음성 듣기를 바라고, 이 시대에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밥 세 그릇을 그것을 먹지 못하여 이 땅에 왔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내가 김치와 국 그것 먹으려고 이 땅에 왔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뭔가 영적인 하나님의 일이 있을것 아닙니까 그것을 잡아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인력, 물질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잘 보아야 합니다. 눈치가 이 곳으로 가야 합니다. 눈치가 성도간에 앙심을 품고, 한을 품고, 사람을 갋아 보려는 그런 곳에 가면 죽는 겁니다. 그것은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도로를 닭아 놓고는 ‘이 도로는 내가 딱았다!’고 외치면서 중장비가 안가고 있으면 그 중장비는 중대한 걸림돌일 뿐입니다. 비켜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버스도 지나가고, 승용차도 지나가고, 봉고도 지나가고 그러는 겁니다. ‘나는 못비킨다! 내가 딱았다!’고 하면, 그게 무식꾼입니다. 길이 트이도록 해야 합니다. 고속도로 딱았던 노가다들이 우리가 딱았다! 하면서 거기 누워 있으면 되겠습니까 모든 요원들이 명심해야 됩니다. 바울은 생명 걸고 복음 전하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잡아 죽이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러니 희안한 일입니다. 눈도 눈나름입니다. 거저, 김목사를 헐뜯고, 장악할려고 하고, 넘어 뜨릴려는 눈을 가지면 큰 일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심방을 잘 안하고, 독단적이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도가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저를 손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손보도록 여러분이 기도해야지, 여러분들이 직접 손볼려고 해도 하나님은 아마 그것을 허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서겠습니까 아무리 헐뜯어도 사실무근이면 저야 복받겠지만, 그 사람은 중대한 문제에 빠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눈이 이상한데 열리면 안됩니다. 바른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지역을 보고, 민족을 보고,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앞으로 브리스가 회원 여러분들도 세계 여행할 준비 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산에 놀러가서 밥이나 해먹고 하고
그런데 신경좀 대강 쓰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로 나가서 복음 전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심장이 막혀서.’ 그러지 마시고, 전도하다가 죽으면 그것을 가리켜 ‘순교’라고 하지 않습니까 태국이나 쏘련에 가서 복음 전하다가 여행중에 죽게 되었다면 그것이 순교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하나님은 순교를 하더라도 전도하는 순간만큼은 싱싱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80넘은 집사님이 제자훈련 시키다가 죽었다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그러면 ‘화장실 앉아서 죽었다!’ 이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삼호에 어떤 교회 성도는 암사형선고 받고, 그날부터 기왕에 죽을 것 복음 전하고 죽자!는 각오로 복음 전했는데, 지금 병도 다 나아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는지 빨리 깨닫고 오직 거기에 따라 움직여야 삽니다. 정말, 하나님의 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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