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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의회 (행15:1-5,10)

본문

은혜를 못받으면, 신앙생활이 멍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라는 것은, 옛날에 노예들에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목에 쇠사슬을 채워서 적당한 한계내에서만 움직이게 하고, 목에는 또한 특별한 표식을 걸어놓고는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짐을 끌고 가도록 멍에 같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니, 그 삶이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못받으면, 오늘 본문 10절에 보니까,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르느냐’고 하고 있습니다. 은혜 못받게 되면 그렇습니다. 전부 멍에가 되고 어렵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것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인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다시말해, 구원받았다는 것은 성령님의 내주,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은 그야말로 구원 받은 자가 깨닫게 되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받는다고 하면, 신앙생활에 답이 다 나올 것인데, 그것을 하지 않고, 다른 방도로 자꾸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면, 결국은 되어지지 않고, 손해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과 그 능력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하나님은 모자라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응답을 주십니다. 고전12:3절에 보니까,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고, 고전3:16절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 말은 곧,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도 받으라!는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 인도받지 말고, 너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니까, 그것으로 인도받으면, 다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성경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이해됩니다. 무엇이 있어야, 염려를 안할 것 아닙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은, ‘성령님의 인도만 받으면다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부터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진짜 믿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구석 구석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보아야,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 머리를 다 써서 하는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머리대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뒤 염려를 다 해서 알아서 해나가는 그 생활은 인격생활이지,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해 나가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또 역사하시고 하는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때부터 우리에게 염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슷한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굉장히 다른 차이를 가져옵니다. 엄청난 결과를 가져와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모릅니다. 새벽기도도 나오고, 주일날 절대 안빠지고, 회의 때에 말 많이하고, 앞에 나와서 많이 움직이고 그러면 우리는 신앙이 좋은 줄로 압니다. 우리의 기준은 그렇습니다. 보는 눈이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성령님의 인도 안받고, 내 인격으로 신앙생활하면,
첫째 안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전도의 열매가 안납니다. 절대 안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내 옆에 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결정적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령님의 인도받고 있으면, 응답이 일단 옵니다. 남은 몰라도 자기는 압니다. 그리고는 전도 문이 자꾸 열립니다. 그것은 내가 할려고 한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내가 성령님의 인도받고 있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오기 때문에, 평생을 살고나면 어마어마한 업적이 나오게 되어있거, 엄청난 간증거리가 나오게 되어있고, 엄청난 신앙의 발자국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격으로 쭈욱 살면, 평생 살고나면,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게 되고, 아무런 자료가 안나오고, 응답이 안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70년을 믿었는데 한명도 전도를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답이 나와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고, 그리스도의 증거가 일어나야 합니다. 요14:16-17절에, “성령님이 너희 안에 계시고, 너희와 함께 계시는데,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되어지면, 힘이 납니다. 안그러고, 이것을 재쳐놓고, 내 힘으로 할려고 하니까, 잘 안되는 겁니다. 될 때에는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 성취되는 것을 보면 신납니다. 그것은 성령님으로 역사한 것보다 이상하게 더 신납니다. 내가 했으니까요. 신나지만, 그것이 얼마 안가서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리고는 해묵은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요14:26절에 “내 이름으로 보내실 아버지의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사,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27절에는 보니까, “참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것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제 내일부터, 21일 작정 새벽기도에 한번 실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십일조 말고는 시험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실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년만 계속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쭈욱 하면, 여러분의 사업, 전도, 건강, 모든 면에서 다 바뀌어 버립니다. 확실히 약속합니다. 왜 이것을 못합니까 우리 한국 사람은 한몫에 싹 다 해버리고 치워버리니까, 잘 못합니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 받으면 완벽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자꾸만 내 판단과 실력으로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니, 한계가 오는 겁니다. 절대로 깡으로 하면, 한계가 옵니다. (행1:8)“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일 좋은 단어가, ‘오직!’입니다. 성령님의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하면, 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행2:1-13절에, 이 역사가 일어나고 나니까, 문이 확 열리고 나니까,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철없어 보이는 중학생이라고 할지라도, 성령님의 인도 받으면, 세계 복음화!를 외치고 기도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덩치가 큰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성령님의 인도 못받으면 늘 돈 벌고, 먹는 그것밖에 모릅니다.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 받으면 견해가 벌써 달라져 버립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면 달라질수 밖에 없습니다. 행3장에 보니까, 성령님충만해서 기도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이렇게 하여 일어나고난 뒤에 12절에, ‘우리가 이렇게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라고 했습니다. 행4:1-12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성령님에 충만하여, (행4:12)“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전부 멍에입니다. 오늘, 모든 멍에를 다 내버려 버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인격에 자신이 있기에 그 인격을 붙잡고 있습니까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성령님의 인도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얼마만큼 자신이 있기에 그것을 쥐고 있습니까 그것을 내어버려 버려야 됩니다. 우리가 겪어본 경험이 얼마나 자신이 있다고 그렇게 붙잡고 있습니까 우리 경험은 별것 없습니다. 내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그때부터 응답의 문이 열립니다.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그랬더니, 행4:29-31절에, 초대교회가 기도하다가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의 영육간의 질병도 주님께서 해결하시도록 완전히 성령님의 인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행6:1-7절에 보니까, 성령님충만한 집사님들을 뽑았더니,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고, 예루살렘에 말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행7;53-60절에 보니까,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는데도 “성령님이 충만하여!”라고 했습니다. 행8:4-8절과 46-40절에 보니까, “빌립이 성령님에 이끌리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이르되!’하였습니다. 행9장에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행10:45절에도 고넬료의 집에도 성령님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행11:19-30절에 안디옥 교회가 바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주의 은혜가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벌써 분위기가 다릅니다. 가서 예배 드리면 다른 겁니다. 어떤 교회는 가보면, 힘이 빠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영적으로 눌립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예배드리면 영적으로 힘이 생깁니다. 찬송을 부르는데도 어떤 사람은 부르기 싫어서 억지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찬송을 부르는데, 너무너무 은혜되어서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벌써 다릅니다. 은혜가 보입니다. 여러분이 찬송을 잘 부르면 모든 병이 다 떠나갑니다. 그것이 노동과 운동의 차이입니다. 노동은 ‘언제 마칠까’ 싶어서 자꾸만 시간 쳐다보고, 그러면서 일하면 온 몸에 병생깁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이 운동을 땀을 흘리면서 하면, 몸에 좋다!’는 생각을 하고 하면 온 몸에 병이 떠나갑니다. 사실은 노동과 운동은 같은 겁니다.
그런데도 차이가 납니다. 찬송할 때에도 성령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집니다. 행13:1-14절에 보니까, 초대교회는 전도하러 나갔는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행16:12-16, 19-31절에 보니까, 모두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였습니다. 이것이 안되어지면 전부 다가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은 사실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한 말입니다. ‘종교의 어마어마한 짊을 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짊, 율법의 짊, 종교의 짊을 가득 짊어지고, 고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 중에서도 뛰어난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너무 힘이 빠진 얼굴로 예수님께 솔직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오신 분이 아니고, 하늘에서 오신 분인 줄을 내가 압니다!’ 하면서 아주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동문서답을 하셨습니다. ‘고맙다! 자네가 나를 알아 보는구나!’ 이렇게 하셔야 될텐데 말입니다.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원문에는 보면, ‘위로서 부터 새로 나지 아니하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니고데모가 엉뚱한 소리를 하지요 ‘아니, 우리가 어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기가차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못알아 듣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내가 땅에 것을 이야기해도 네가 알아 듣겠느냐 하물며 하늘의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듣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놋뱀을 들어서 백성들이 쳐다보고 살지 않았느냐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니고데모와의 대화중에서 나온 멧세지입니다. 니고데모가 알아 들었는지 못알아 들었는지 좌우지간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 바로 못 깨달으면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그것이 오히려 멍애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 받으면 되는데, 하나님의 인도를 못받으니, 자꾸만 이상한 것을 추구합니다. 또 추구하고 나면 그 모양이고, 또 추구하고 나면 그 모양이고 그렇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불건전한 신비주의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신비한 기독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면이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비한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불건전 신비주의라는 겁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영을 자꾸만 육으로 추구할려는 겁니다.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했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동행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응답이 실제적으로 오게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되어지면 뭔가를 자꾸 체험해 볼려고 하게되고, 거기에서 문제가 옵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나니, 눈물이 나고,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것이 육신적인 표가 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아직까지 전기가 오거나 그런 것이 없느냐’ 그런 것이 없다고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만화를 읽다가도 은혜되어서 웃고 그러는데, 어찌 구원에 감격하여 눈물이 안나오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너무 육신적으로만 추구할려고 하지말고, 사실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 응답이 오고, 응답이 오고 그럽니다. 진짜 응답이 와야 됩니다. 기도 해놓고 나면,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해 놓고 응답을 기다려야지, 기도해놓고 무슨 체험을 기다리면 잘못하면 다른 것이 올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체험되어지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올수도 있는 겁니다. 문제는 기준을 거기에다 두지말라!는 겁니다.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나님께 두고, 기준을 응답에다 두어야 합니다. 기도에는 응답이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많이 울고나면 은혜받았다!고 하고, 짜릿한 것이 와야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적으로 응답이 와야 은혜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의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못받고, 응답을 못받으면 자꾸 몸부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지식이 없어서인가 싶어서 성경 공부를 온갖 것을 다해봅니다. 그러나, 지나보면 열매는 안나옵니다. 성경공부를 계속하고 나면,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되는데, 그리스도가 안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틀린 겁니다. 성경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날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하고, 성경공부 하면 할수록 성경공부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고, 성경공부 할수록 그리스도의 증거가 와야 됩니다. 그게 참 성경공부입니다. 이게 안오면 그것은 하나마나입니다. 그리고 성경공부에서 은혜 안된다고 또 다른것을 자꾸 합니다. 박애주의, 구제주의, 사회운동을 합니다. 물론 우리 성도가 이것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 못받은 사람이 이것을 하면, 그게 전부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그게 전부 멍에입니다. 그래서, 사회운동, 새마을운동, 새마음운동, 청소운동, 공동체 운동 이것을 은혜 못받은 사람이 하면, 그게 문제가 됩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는 것이 먼저라는 겁니다. 행15:1절을 보세요! (행15: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하니라” 예수 믿는다는 사림이 이렇게 나옵니다.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할례를 안받으면 구원 못받는다!’ 이렇게 나온 겁니다. 또 5절을 보세요! (행15:5)“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회의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신자는 은혜를 못받으면 멍에가 자꾸 쌓여갑니다. 그래서 큰일 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되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줄 알고, 성령님의 인도 받아야 됩니다. 안그러면 교회는 심각한 문제가 자꾸 옵니다. 개인에게도 오고, 그것은 말릴 길이 없습니다. 옛날에 서울 청계천에 있던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싸움이 붙었던 겁니다. 그러자, 새신자 가운데 한 여성도가 한마디 했던 겁니다. ‘아니, 예배 시간에 예배 안드리고 싸움을 왜 하느냐 예배드리고난 뒤에 하자!’고 했습니다. 이 말에 싸움을 한참하고 있던 사람이 열이 올라서 ‘너는 들어가라!’고 하면서 밀었습니다. 밀려서 넘어졌는데, 의자에 부딪쳤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다쳐서 위독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으로 싣고 가는데 죽어버렸습니다. 죽으니까, 그 남편은 불신자인데, 학교 선생입니다. 그러니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람 죽인 교회!’라고난리가 났습니다. 싸우다 보면, 그렇게 되요! 요즘도 그런일이 있습니다. 작년에 부산 어느 교회에서, 주일날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가는데, 장로님은 ‘올라가지 마라!’ 목사님은 ‘올라간다!’, 이래서 목사는 ‘놔라!’ 장로는 ‘올라가지 마라!’ 바지 잡고 당기고, 하다가 발로 밀어버렸습니다. 밀었는데, 장로가 쳐박혀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살인죄로 구속되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하도 챙피해서 쉬쉬하고 말았답니다. 보세요! 은혜 못받으면 교회가 희안합니다. 교회는 은혜 받아야지, 사단이 역사하는데, 이것은 무서운 겁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여러분 개인이 은혜 받아야 되고, 여러분에게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믿음 떨어뜨리는 그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천하없는 올바른 말을 해도 믿음 떨어뜨리는 그 말은 죽이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 생겨야 되느냐 믿음이 생겨야 됩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바라 보아야 되느냐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됩니다. 그래서 은혜받아야지, 사람말 들으면 안됩니다. 사람말 듣지 말고, 하나님 말씀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말세에 살아 남아요! 여러분은 어찌하였든지, 말씀 쳐다보고 은혜받아야 됩니다. 희안한 일이 다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공회에서 하는 의논들을 보세요! 하나님이 이래서, 사실은 예루살렘 교회를 쓰지 아니하시고, 안디옥 교회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크게 쓰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안이 열리면 어떻게 되느냐 구원받고 영안이 열리면 구원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영안이 열린 것중에 제일 먼저 열리게됩니다. 영안이 열리고 늘 성령님의 인도받고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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