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20-23)
본문
성도 여러분 ! 우리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역사 중에 90%가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두고 말하기를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이 사람 다윗을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 이런 음성이 저에게도 들려주시옵소서. 이런 음성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들려주시옵소서. 이런 음성이 우리 부산초원교회에도 들려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과 우리 부산초원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가 되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다윗과 그 이후의 여러 신앙의 사람들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로 다윗의 경우입니다. 다윗의 경우 그의 일생의 삶을 나누어 보면 세가지 인생으로 나누어 집니다.
1) 소년 시절로 그 시절은 믿음의 생활기였습니다.
2)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범죄의 생활기가 있습니다.
3) 그 이후 참회의 생활기가 있습니다. 이런 세가지의 인생중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음성을 들은 시기는 소년 시절이었습니다. 이 소년 시절때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비록 몸은 작고 왜소했지만 마음은 담대하여서 양을 치면서 사자를 찢어죽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침략한 블레셋의 골리앗을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었던 거인 골리앗 장군을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면서 물맷돌 다섯개로 완전히 굴복시켰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굉장한 믿음입니까 이런 믿음의 소유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이를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은 비록 소년 다윗처럼 연약하고 왜소하지만 우리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그 하나님만을 믿고 나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16:9에서는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로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에게 위로도 해 주시고 능력도 베풀어 주신다고 말입니다. 두번째로 사도바울의 경우입니다. 구약시대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당신의 마음에 합해서 들어 쓰셨다면 신약 시대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대표적인 인물은 사도 바울이 아닌가 합니다.물론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전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들의 대표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철저하게 주님만을 증거하는 사도가 된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보면 바울의 됨됨이가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빋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얼마나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주님만을 나타내는 신앙의 고백입니까 이런 숭고하고도 고귀한 신앙심을 가진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좋은 가문과 많은 공부를 한 사람이지만 신장이 4척밖에 되지 않고,평생을 안질을 통해 고생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혹 사도바울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본다면 너무나도 볼품없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보게 될것입니다.바로 이런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하는 그의 불타는 정열을 보시고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하나님으로 부터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불타는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소아시아 일곱교회중에서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우리는 신앙생활이 미지근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책망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사도바울처럼 뜨거운 불타는 정열의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이번주 부터 이슬비전도를 시작합니다. 이슬비전도를 한 많은 교회들을 살펴보면 이슬비전도를 통해 성공적으로 교회가 성장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실패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 경우는 그 공통점이 이슬비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끊임없는 도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산초원교회에 이번 기회에 좋은 전도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우리 이 전도의 방법을 잘 활용해서 하나님께서 기쁘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우리는 그 일원이 되어보지 않으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바울처럼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려고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이제 이런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와 우리의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위해 꼭 필요한 한가지를 더 샆펴보고자 합니다. 앞에서 말씀한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때 다윗을, 신약시대때는 바울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여기시고 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들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되었겠습니까 물론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담대한 믿음과 바울의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정열이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저들의 신앙 저변에 한가지 공통되는 신앙의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겸손입니다. 저들은 담대한 믿음과 불타는 정열이 있지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늘 겸손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 주위에서 자기딴에는 담대한 믿음과 불타는 신앙의 정열이 있다고 해서 교만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경우는 진정한 의미에서 담대한 믿음도 아니요 불타는 신앙의 정열이 아니지만 아뭏던 그것을 오해하고 교만해져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 사람들에게 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바울의 경우는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늘 겸손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그가 왕이 되었을때도 블레셋에 빼았겼던 하나님의 법궤를 되 찾아서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하나님의 법궤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인 미갈이 왕이 체통도 없이 그런다고 비웃습니다. 이때 다윗이 무슨말을 합니까 "내가 하나님앞에서 진실로 기뻐 춤을 춘것이다. 그가 나를 택하여 왕을 삼으셨으니 나는 여호와 앞에서 뛰어 놀리라" 이 얼마나 겸손한 신앙의 자세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신분고하 나이에 관계없이 다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바울은 당대의 지식인이요 재산가요 권력가 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고린도후서 11장의 내용대로 처절한 핍박을 받고 30절에서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31절에서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철저하게 숨기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사도바울의 겸손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사용하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이런 경우는 사울왕의 경우에서 나타나는데 삼상 15:17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사울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자신을 작게 여길 때에,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교만하여 순종하지 않을때 하나님께서는 그 왕위를 빼았아가 버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늘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늘 불타는 신앙의 정열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그 중심에는 겸손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자를 그런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야기만 소개하고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어떤 교회에 너무나도 가난해서 남의 빨래를 해 주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그 성도는 아주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주 교회에 나올때 마다 언제나 5센터씩 헌금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 교회에 한 장로님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장로님은 그 여성도가 너무나도 측은해서 목사님께 "그 여성도는 남의 빨래를 해 주면서 아이들과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는데 5센터라는 돈은 그 성도에게 너무나도 큰 돈입니다. 앞으로 제가 대신 5센터씩 헌금을 드리겠으니 그 여성도에게 말씀을 좀 전해주세요."라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장로님의 제안이 너무나도 그렇듯해서 목사님은 그 불쌍한 여 성도에게 그 장로님의 그 아름다운 취지의 말을 잘 설명을 해서 전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의 말을 다 들은 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비록 5센터이지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얻는 나의 작은 기쁨마져 빼았아 가려 하십니까 " 성도 여러분 ! 이 얼마나 하나님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한 성도의 고백입니까 우리 역시도 이런 겸손하지만 그 어떤것과도 바꿀수 없는 담대한 믿음과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가 되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다윗과 그 이후의 여러 신앙의 사람들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로 다윗의 경우입니다. 다윗의 경우 그의 일생의 삶을 나누어 보면 세가지 인생으로 나누어 집니다.
1) 소년 시절로 그 시절은 믿음의 생활기였습니다.
2)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범죄의 생활기가 있습니다.
3) 그 이후 참회의 생활기가 있습니다. 이런 세가지의 인생중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음성을 들은 시기는 소년 시절이었습니다. 이 소년 시절때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비록 몸은 작고 왜소했지만 마음은 담대하여서 양을 치면서 사자를 찢어죽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침략한 블레셋의 골리앗을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었던 거인 골리앗 장군을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면서 물맷돌 다섯개로 완전히 굴복시켰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굉장한 믿음입니까 이런 믿음의 소유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이를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은 비록 소년 다윗처럼 연약하고 왜소하지만 우리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그 하나님만을 믿고 나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16:9에서는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로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에게 위로도 해 주시고 능력도 베풀어 주신다고 말입니다. 두번째로 사도바울의 경우입니다. 구약시대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당신의 마음에 합해서 들어 쓰셨다면 신약 시대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대표적인 인물은 사도 바울이 아닌가 합니다.물론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전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들의 대표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철저하게 주님만을 증거하는 사도가 된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보면 바울의 됨됨이가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빋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얼마나 자기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주님만을 나타내는 신앙의 고백입니까 이런 숭고하고도 고귀한 신앙심을 가진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좋은 가문과 많은 공부를 한 사람이지만 신장이 4척밖에 되지 않고,평생을 안질을 통해 고생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혹 사도바울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본다면 너무나도 볼품없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보게 될것입니다.바로 이런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하는 그의 불타는 정열을 보시고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하나님으로 부터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불타는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소아시아 일곱교회중에서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우리는 신앙생활이 미지근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책망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사도바울처럼 뜨거운 불타는 정열의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이번주 부터 이슬비전도를 시작합니다. 이슬비전도를 한 많은 교회들을 살펴보면 이슬비전도를 통해 성공적으로 교회가 성장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실패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 경우는 그 공통점이 이슬비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끊임없는 도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산초원교회에 이번 기회에 좋은 전도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우리 이 전도의 방법을 잘 활용해서 하나님께서 기쁘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우리는 그 일원이 되어보지 않으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바울처럼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려고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이제 이런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와 우리의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위해 꼭 필요한 한가지를 더 샆펴보고자 합니다. 앞에서 말씀한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때 다윗을, 신약시대때는 바울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여기시고 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들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되었겠습니까 물론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담대한 믿음과 바울의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정열이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저들의 신앙 저변에 한가지 공통되는 신앙의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겸손입니다. 저들은 담대한 믿음과 불타는 정열이 있지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늘 겸손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 주위에서 자기딴에는 담대한 믿음과 불타는 신앙의 정열이 있다고 해서 교만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경우는 진정한 의미에서 담대한 믿음도 아니요 불타는 신앙의 정열이 아니지만 아뭏던 그것을 오해하고 교만해져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 사람들에게 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바울의 경우는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늘 겸손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그가 왕이 되었을때도 블레셋에 빼았겼던 하나님의 법궤를 되 찾아서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하나님의 법궤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인 미갈이 왕이 체통도 없이 그런다고 비웃습니다. 이때 다윗이 무슨말을 합니까 "내가 하나님앞에서 진실로 기뻐 춤을 춘것이다. 그가 나를 택하여 왕을 삼으셨으니 나는 여호와 앞에서 뛰어 놀리라" 이 얼마나 겸손한 신앙의 자세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신분고하 나이에 관계없이 다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바울은 당대의 지식인이요 재산가요 권력가 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고린도후서 11장의 내용대로 처절한 핍박을 받고 30절에서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31절에서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철저하게 숨기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사도바울의 겸손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사용하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이런 경우는 사울왕의 경우에서 나타나는데 삼상 15:17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사울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자신을 작게 여길 때에,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교만하여 순종하지 않을때 하나님께서는 그 왕위를 빼았아가 버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늘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늘 불타는 신앙의 정열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그 중심에는 겸손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자를 그런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야기만 소개하고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어떤 교회에 너무나도 가난해서 남의 빨래를 해 주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그 성도는 아주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주 교회에 나올때 마다 언제나 5센터씩 헌금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 교회에 한 장로님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장로님은 그 여성도가 너무나도 측은해서 목사님께 "그 여성도는 남의 빨래를 해 주면서 아이들과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는데 5센터라는 돈은 그 성도에게 너무나도 큰 돈입니다. 앞으로 제가 대신 5센터씩 헌금을 드리겠으니 그 여성도에게 말씀을 좀 전해주세요."라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장로님의 제안이 너무나도 그렇듯해서 목사님은 그 불쌍한 여 성도에게 그 장로님의 그 아름다운 취지의 말을 잘 설명을 해서 전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의 말을 다 들은 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비록 5센터이지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얻는 나의 작은 기쁨마져 빼았아 가려 하십니까 " 성도 여러분 ! 이 얼마나 하나님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한 성도의 고백입니까 우리 역시도 이런 겸손하지만 그 어떤것과도 바꿀수 없는 담대한 믿음과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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