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는 비결 (행10:24-35)
본문
10.26사건 이후 80년 5월 광주사태가 일어나기까지 당시 주한 미군 대사였던 글라이스턴과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였던 홀부르크간에 오고간 비밀전문속에 한국인을 깔보고 야유한 인종핀견적 모사들이 들어있음이 밝혀져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마늘과 후추를 먹는 전사들로 구성된 사회 (society of garlic pepet eating combatants) 소수의 극렬한 기독교재야 인사들(a handfu
I of Cht.istian extremist dissidents),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된 구걸꾼들(SuppliCantS) 이라는 것들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분 나쁜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미국무성에 근무하고 있는 정운복 박사가 주간지 코리아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인들은 왜 한국인을 싫어하는가 라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교만하고 건방지기 때문이다.
셋째. 공증도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뎃째. 준법정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너무 설치고 덤벙대기 때문이다. 여섯째. 자기 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이다. 일곱째. 너무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여덟째. 권위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아흠째, 대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째, 매너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한째. 협동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두째. 사물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이다 열
셋째, 대 없이 맹목적으로 흉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보는 한국인의 단점입니다. 그러나 단점이란 고칠 수만 있다면 장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기독교인의 생활과 접목시켜 보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의 생활은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경우에서라도 그 평판 이 좋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칭찬듣는 생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은혜받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품성이 변화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L996년 한 해 동안 7만 S천명 넝는 어린이들이 호적에 있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바다고 합니다. 평소 이름 때문에 놀 림을 받거나 건전한 성장 발전에 지장을 받던 어린이들에게 대법원 이 개명을 허가한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겠다고 신청한 어린이는 7만 7천명이었는데 그 중 욕 설로 들리는 이름, 부르기 나쁜 이름, 성별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흉악범이나 부도덕한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름, 발음이 나쁜 이름 등 7만 S천명의 개명을 허가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박차고 나온 놈 이 옹달샘'은 '재형'으로 바꾼 것입니다. 개명이 허가된 특이한 이름을 보면 김공순, 윤창녀, 손역순, 김처녀, 최병자, 배환자. 장호미, 윤애견, 박분통, 지위, 조식순, 조 아라, 우리고운이. 박차고 나온 놈이 옹달샘. 김소리나, 박말자, 정 또순, 하미라 등입니다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별명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은혜받은 사람 주의 종, 층성된 일꾼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명 높은 이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버림받은 사람, 쓸모 없는 사람, 지옥 갈 사람, 멸망의 자식, 사탄의 종, 은 혜받지 못한 사람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특히 오늘 여러분이 은혜받은 사람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토록 한국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들의 돼 먹지 압은 민족 우월감과 편견에 그 원인이 있지만 그러나 겸허하게 우리 자신들을 돌아다 보면 우리에게 그 탓이 있음을 시 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교인이라면서 직분을 받았노라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손가릭 질 받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나한테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고넬료의 경우를 살펴 보십시다. 그는 한마디로 은혜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입니다. 로마인으로 유대나라에 파견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일도 없었고 초대교회에 출석하여 사 도들의 설교를 들은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본문을 보면 엄청 난 은혜를 체험하고 감격해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날 그는 기도하다가 자기 집에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하나님 의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시간 베드로도 기도하다가 고넬료의 집에 가라는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계시의 통일성과 동시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여자에게 밤마다 생생한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같은 교회의 남자 XX와 결흔을 하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음성으로 부족했던지 꿈 속에서도 그와 결혼하라는 계시가 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는 유부남이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는 그런 계시도 환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라며 결흔하자고 조르고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부인에게 당신은 지금까지 살았으니 양보해라 하나님이 당신 남편과 결흔하라고 했다면서 전화를 걸어 괴롭힙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 가정에 은혜로운 사건을 이루시기 위하여 고넬 료와 베드로에게 동시적으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고넬료가 은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신앙적 태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1. 함깨 모였습니다 24절을 보면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라고 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모시러 사람들을 보낸 후에 만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함께 모여 기다렸습니다. 둘 다 은혜를 못받는 것보다는 남편이든 아내든 한쪽만이라도 은혜를 받는 것이 횔씬 좋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둘이 합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는 함께 공유할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고 파급효과가 큰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함께 모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L950년대 미국의 속도는 주일이면 가족들이 모두 함께 정장으 로 갈아 입고 교회로 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New Page 그는 베드로를 모시러 사람들을 보낸 후에 만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함께 모여 기다렸습니다. 둘 다 은혜를 못받는 것보다는 남편이든 아내든 한쪽만이라도 은혜를 받는 것이 횔씬 좋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둘이 함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는 함께 공유할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고 파급효과가 큰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함께 모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L950년대 미국의 속도는 주일이면 가족들이 모두 함께 정장으 로 갈아 입고 교회로 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아들. 손자들이 함께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미국의국력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위상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핵가족 바람이 미국가정을 갈라 놓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뿔뿔히 솥어져 들로, 산으로.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부터 미국의 국력과 위신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신앙이 파괴되면서 '국력도 쇠약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전 가족이 함께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전 가족이 함께 은혜를 받아야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가정이 행복 해져야 국가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2. 기다렸습니다 24절 끝을 본면 '기다렸더니'라고 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사람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만나는 사람과 기다렸다가 만나는 사람은 그 기쁨의 감도가 다릅니다. 손 꼽아 기다리다 만나는 감격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기치않게 받는 은혜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준비하고 받는 은혜는 그 기쁨이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로마 군인 장교인 고넬료가 기다리는 사람은 상관도 총독도 아닙니다.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족과 친 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정점은 기다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블교도, 유교 도, 회교도. 힌두교도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구원 은 현실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원한 천국을 기 다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기다립시다. 은혜를 대망합시다. 은혜를 갈망합시다. 그리고 큰 은혜를 받읍시다
3. 엎드렸습니다 25절을 보면 마침 베드로가 들어을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엊드리어 절하니'라고 했습니다. 기상천외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황제 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그 신에 입맞 추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상관도 황제도 아닙니다. 갈릴리 어부이며 피식 민지 백성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 겸손이 그 가정에 은혜가 쏟아지게 한 것입니다 은혜는 겸손해야 받습니다. 야고보서 4:6을 보면 '하나님이 교만 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마귀적 발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물리칠 수 밖에 없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가 마귀입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어린아이 입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주님은 그 사람 곁으로 다가오셔 서 죄를 용서하셨고 부족을 채워 주셨고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능력을 과대 평가하면 주님은 그 사람 곁을 떠나십니다. 그 날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하는 겸손을 보임으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4.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믿었습니다. 33절을 보면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 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넬료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짓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두 마디 속에 고넬료가 베드로를 누구로 영접하고 있으며 어떤 태 도로 영접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베드로를 주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로 보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영접했습니다. 선 지자 발람은 나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성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줄담배를 피워대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l 학년 다니는 딸이 콜록 콜록 기침을 시작하더니 오후가 되면 열이 오릅니다. 병원에 데려 갔더니 폐에 이상이 있다면서 탁한 공기와 담배연기 등을 멀리하라는 층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 날 밤도 단칸 방에서 줄담배를 피고 있는 아빠에게 콜록거리던 딸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오늘 나 엄마랑 병원에 갔었는데 꽤가 나쁘대. 의사선 생님이 그러는데 담배연기가 안좋은 거래' 그 말에 정신이 번쩍들 었습니다. 담배를 비벼습니다.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딸의 가녀린 손을 붙잡고 아빠가 말했습니다. 미영아 미안하다. 아빠가 담배 끊을께' 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착한 아빠의 모습입니다. 누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사모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 영접하는 사람, 주의 사자로 영접하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증국과 대만간에 전운이 감돕니다.
4.11 총선 앞두고 정국이 미합니다. 중동지방은 여전히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의 령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이 위기와 난국과 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원합니다.
I of Cht.istian extremist dissidents),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된 구걸꾼들(SuppliCantS) 이라는 것들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분 나쁜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미국무성에 근무하고 있는 정운복 박사가 주간지 코리아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인들은 왜 한국인을 싫어하는가 라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교만하고 건방지기 때문이다.
셋째. 공증도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뎃째. 준법정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너무 설치고 덤벙대기 때문이다. 여섯째. 자기 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이다. 일곱째. 너무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여덟째. 권위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아흠째, 대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째, 매너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한째. 협동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두째. 사물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이다 열
셋째, 대 없이 맹목적으로 흉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보는 한국인의 단점입니다. 그러나 단점이란 고칠 수만 있다면 장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기독교인의 생활과 접목시켜 보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의 생활은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경우에서라도 그 평판 이 좋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칭찬듣는 생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은혜받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품성이 변화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L996년 한 해 동안 7만 S천명 넝는 어린이들이 호적에 있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바다고 합니다. 평소 이름 때문에 놀 림을 받거나 건전한 성장 발전에 지장을 받던 어린이들에게 대법원 이 개명을 허가한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겠다고 신청한 어린이는 7만 7천명이었는데 그 중 욕 설로 들리는 이름, 부르기 나쁜 이름, 성별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흉악범이나 부도덕한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름, 발음이 나쁜 이름 등 7만 S천명의 개명을 허가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박차고 나온 놈 이 옹달샘'은 '재형'으로 바꾼 것입니다. 개명이 허가된 특이한 이름을 보면 김공순, 윤창녀, 손역순, 김처녀, 최병자, 배환자. 장호미, 윤애견, 박분통, 지위, 조식순, 조 아라, 우리고운이. 박차고 나온 놈이 옹달샘. 김소리나, 박말자, 정 또순, 하미라 등입니다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별명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은혜받은 사람 주의 종, 층성된 일꾼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명 높은 이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버림받은 사람, 쓸모 없는 사람, 지옥 갈 사람, 멸망의 자식, 사탄의 종, 은 혜받지 못한 사람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특히 오늘 여러분이 은혜받은 사람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토록 한국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들의 돼 먹지 압은 민족 우월감과 편견에 그 원인이 있지만 그러나 겸허하게 우리 자신들을 돌아다 보면 우리에게 그 탓이 있음을 시 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교인이라면서 직분을 받았노라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손가릭 질 받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나한테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고넬료의 경우를 살펴 보십시다. 그는 한마디로 은혜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입니다. 로마인으로 유대나라에 파견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일도 없었고 초대교회에 출석하여 사 도들의 설교를 들은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본문을 보면 엄청 난 은혜를 체험하고 감격해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날 그는 기도하다가 자기 집에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하나님 의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시간 베드로도 기도하다가 고넬료의 집에 가라는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린 여기서 계시의 통일성과 동시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여자에게 밤마다 생생한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같은 교회의 남자 XX와 결흔을 하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음성으로 부족했던지 꿈 속에서도 그와 결혼하라는 계시가 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는 유부남이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는 그런 계시도 환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라며 결흔하자고 조르고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부인에게 당신은 지금까지 살았으니 양보해라 하나님이 당신 남편과 결흔하라고 했다면서 전화를 걸어 괴롭힙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 가정에 은혜로운 사건을 이루시기 위하여 고넬 료와 베드로에게 동시적으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고넬료가 은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신앙적 태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1. 함깨 모였습니다 24절을 보면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라고 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모시러 사람들을 보낸 후에 만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함께 모여 기다렸습니다. 둘 다 은혜를 못받는 것보다는 남편이든 아내든 한쪽만이라도 은혜를 받는 것이 횔씬 좋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둘이 합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는 함께 공유할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고 파급효과가 큰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함께 모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L950년대 미국의 속도는 주일이면 가족들이 모두 함께 정장으 로 갈아 입고 교회로 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New Page 그는 베드로를 모시러 사람들을 보낸 후에 만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함께 모여 기다렸습니다. 둘 다 은혜를 못받는 것보다는 남편이든 아내든 한쪽만이라도 은혜를 받는 것이 횔씬 좋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둘이 함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는 함께 공유할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고 파급효과가 큰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함께 모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L950년대 미국의 속도는 주일이면 가족들이 모두 함께 정장으 로 갈아 입고 교회로 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아들. 손자들이 함께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미국의국력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위상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핵가족 바람이 미국가정을 갈라 놓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뿔뿔히 솥어져 들로, 산으로.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부터 미국의 국력과 위신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신앙이 파괴되면서 '국력도 쇠약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전 가족이 함께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전 가족이 함께 은혜를 받아야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가정이 행복 해져야 국가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2. 기다렸습니다 24절 끝을 본면 '기다렸더니'라고 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사람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만나는 사람과 기다렸다가 만나는 사람은 그 기쁨의 감도가 다릅니다. 손 꼽아 기다리다 만나는 감격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기치않게 받는 은혜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준비하고 받는 은혜는 그 기쁨이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로마 군인 장교인 고넬료가 기다리는 사람은 상관도 총독도 아닙니다.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족과 친 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정점은 기다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블교도, 유교 도, 회교도. 힌두교도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구원 은 현실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원한 천국을 기 다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기다립시다. 은혜를 대망합시다. 은혜를 갈망합시다. 그리고 큰 은혜를 받읍시다
3. 엎드렸습니다 25절을 보면 마침 베드로가 들어을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엊드리어 절하니'라고 했습니다. 기상천외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황제 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그 신에 입맞 추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상관도 황제도 아닙니다. 갈릴리 어부이며 피식 민지 백성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 겸손이 그 가정에 은혜가 쏟아지게 한 것입니다 은혜는 겸손해야 받습니다. 야고보서 4:6을 보면 '하나님이 교만 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마귀적 발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물리칠 수 밖에 없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가 마귀입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어린아이 입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주님은 그 사람 곁으로 다가오셔 서 죄를 용서하셨고 부족을 채워 주셨고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능력을 과대 평가하면 주님은 그 사람 곁을 떠나십니다. 그 날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하는 겸손을 보임으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4.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믿었습니다. 33절을 보면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 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넬료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짓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두 마디 속에 고넬료가 베드로를 누구로 영접하고 있으며 어떤 태 도로 영접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베드로를 주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로 보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영접했습니다. 선 지자 발람은 나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성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줄담배를 피워대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l 학년 다니는 딸이 콜록 콜록 기침을 시작하더니 오후가 되면 열이 오릅니다. 병원에 데려 갔더니 폐에 이상이 있다면서 탁한 공기와 담배연기 등을 멀리하라는 층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 날 밤도 단칸 방에서 줄담배를 피고 있는 아빠에게 콜록거리던 딸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오늘 나 엄마랑 병원에 갔었는데 꽤가 나쁘대. 의사선 생님이 그러는데 담배연기가 안좋은 거래' 그 말에 정신이 번쩍들 었습니다. 담배를 비벼습니다.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딸의 가녀린 손을 붙잡고 아빠가 말했습니다. 미영아 미안하다. 아빠가 담배 끊을께' 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착한 아빠의 모습입니다. 누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사모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 영접하는 사람, 주의 사자로 영접하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증국과 대만간에 전운이 감돕니다.
4.11 총선 앞두고 정국이 미합니다. 중동지방은 여전히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의 령은 점점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이 위기와 난국과 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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