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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세 가지 축복과 사명 (행9:10-19)

본문

두 분의 목사님이 똑같이 성지 순례를 갔다왔는데, 한 분은 갔다와서는 노래시를 지었습니다. 너무 감동받아서 ‘게세마네 동산에 주를 생각할때에’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또한분은 너무 다른 데서 감동을 받은 겁니다. ‘와, 사해바다 헤험치니까, 쑥쑥 잘 나가더구먼!’ 그리고 ‘갈릴리 바닷가에서 있는 횟집 정말 끝내주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는 그릇 차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도 늘 주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새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은 우리를 때를 따라서 부르십니다. 지금까지 받았던 은혜도 중요하지만, 오늘 받는 은혜는 더 중요합니다. 내일 살아가면서 은혜를 또 주십니다. 이리하여서 진정한 찬송이 나오고, 말씀이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주님께 쓰임받는 그릇이 될려면, 성령님께서 실제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해야 됩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다른 사람은 은혜스럽게 찬송부르는데도 멍하게 있는 겁니다. 옆에 사람은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셨다고 깨달으면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입니다.
1. 말씀운동 펴는 아나니아 오늘 본문에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현장에서 말씀운동 펴는 것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지나갈 때에는 간단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속에 나 자신을 드려야만이 거기에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아나니아같은 일꾼이 있을 때에 사울같은 일꾼을 하나님이 붙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자기 집에서 기도하고, 말씀운동 펴는 것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계를 뒤집을 만한 사건을 예비한 것입니다. 세계에서 첫 선교사로 이방인을 뒤집고, 로마를 확실하게 뒤집을 수 있는 분명한 인물인, 사울을 만나게 하기 위한 걸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지역에서 말씀운동 기도운동을 위하여 작은 헌신을 했는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작은 헌신을 했는데, 하나님이 배후에 어떻게 역사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가’하는 질문을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기고, 배가 아프거나 할때에는 기도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전혀 기도를 안하는 때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단계가 지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기도하면, 정말로 응답이 오는 것인가’하는 것을 묻는 단계가 옵니다. 어떨 때에는 기도해도 응답이 안오고, 어떤 때에는 기도를 안했는데도 응답이 오고, 그럽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기도를 실컫 했는데도 절대 응답이 안오는 겁니다. 이런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는데, 내게 기도 응답을 하시는가 안하시는가’ 하면서 반문하는 시절이 있습니다. 이 단계가 지나고 나면, ‘아하, 기도하고 나면, 응답이 오는구나!’를 깨닫는 단계가 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기도하다가 응답받았구나!’ ‘저 사람은 병에 시달리다가도 응답을 받았구나!’가 깨달아 집니다. 그러다가 어떤 단계가 오느냐하면, ‘아하, 틀림없구나! 하나님은 날마다 날마다 응답을 주시는구나!’하는 단계가 옵니다. 신앙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런 단계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사, 기도에 응답하시는구나!’하는 단계가 옵니다. 그러면 다른 것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응답하시고, 앞으로도 응답하시겠구나!가 되어지면, 다른 것에는 별로 신경이 안가는 겁니다. 이런 것을 깨닫고 나면, 교회 안에서 인본주의 쓰거나, 방법 쓰는 사람들이 심히 불쌍하게 보입니다. ‘안되는 것을 왜 자꾸만 저럴까’ 싶은 겁니다. 수단을 부리고 그러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2. 세 가지 축복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아나니아를 만나게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역에 말씀운동, 기도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나니아와 같은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아나니아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세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축복은 공히, 모든 신자들이 받은 축복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전부 우리의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기도하면 응답받게 되는데,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셨으니…’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면 응답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렀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축복입니다. 롬8:12-18절에 보니까, ‘종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멸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성도에게 두번째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2) 모든 받아야 되는 저주, 모든 재앙, 우리가 가야되는 지옥의 권세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켰습니다. 롬8:2절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깨닫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데 왜 자꾸 망할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모든 저주, 재앙에서 해방되어 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몰라서입니다. 너무너무 잘믿었던 바리새인이 자손 대대로 망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님 가인은 왜 예배 드렸는데도 망했습니까’ 그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히11:4절에, “그 예물(피)이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해방받았습니다.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안그러면 우리가 죄지은 대로 저주를 다 받아야 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오늘 완전히 승리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사단의 권세를 꺽을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 나오는 정도가 아닙니다. 요일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을 넘어뜨리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1 창3:1-20절에;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왜 떠났습니까
2 롬3:23절 ; 죄로 말미암아 떠났습니다. 무엇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죄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짖게 한 것입니다
3 그래서, 요8:44절에 예수님께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 성경구절 3개만 하면, 모든 문제를 진단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을 건질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기도하면, 틀림없이 응답이 안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냥 믿어서는 절대로 응답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붙잡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단에게서 해방되고 이기게 됩니다. 이 세가지를 깨달아야만, 역사가 일어납니다. 틀림없습니다. 구약때나, 신약때나, 지금이나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이 분명하게 잘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하러 오셨는가 세가지 일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을 해결하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안되니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롬3:23절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습니다. (롬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요일3:8절,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러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놀라운 이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동시에 사명이 세가지 주어졌습니다.
3. 세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1) 그리스도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라는 말은 선지자, 제사장, 왕, 세가지를 합친 말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알아야 되느냐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명을 가졌느냐 우리는 선지자 사명을 가졌고, 우리는 제사장의 사명을 가졌고, 우리는 왕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가지가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자가 잘 깨달아야 됩니다. 어떤 분은 세개 중에서 하나만 깨달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검소해야 되고, 예수 믿으면, 돈도 아껴야 되고, 예수 믿으면 절대로 차도 좋은 것을 타면 안되고, 예수 믿으면 고난을 참고, 이 가난한 민족과 함께 아픔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1 이것은 선지자적 사명입니다. 자신이 청빈하고도 모범적으로 살면서 죄를 지적하고 그럽니다. 이것이 선지자적 사명입니다. 이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알고 있으면 곤란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나아가서,
2 제사장적 사명도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죄에서 해방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사장적인 사명입니다. 또한 세번째,
3 예수믿는 사람에게는 왕같은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서는 선지자적 사명, 예수 믿는 사람이 개인을 향해서는 제사장적인 사명, 예수 믿는 사람이 구원받은 성도를 향해서는 왕같은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왕입니다. 왜냐면, 왕이신 분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왕같은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왜냐 만왕의 왕되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왕은 가는 곳마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냐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까요. 대통령이 나타나도, 호위하는 경호원들과 경찰들이 쫘악 깔립니다. 마찬가지로 만왕의 왕되신 주님을 모시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는 하늘의 군대가 총동원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모시는 호위병들은총을 쏘면 죽지만, 이 천사들은총을 쏘아도 죽지 않습니다. 내가 왕을 모시고, 우리집 안방에 가면, 우리집 안방에 하늘의 군대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그러니, 주님으로 인하여 어깨에 힘넣고 나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서, ‘너는 여왕, 나는 남왕, 저것은 꼬마왕, 저것은 큰 왕, 이렇게 다 왕이 되면 누가 섬기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표현했습니다. 남양주 장로교회가 왕같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왕의 손역활을 하고, 저는 왕의 입역활을 하고, 어떤 분은 왕의 발역활을 하고 해서,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 다른데 가서는 또 각각 왕의 역활이 조금씩 바뀝니다.
그러므로 아무데서나 가서, 왕의 입역활할려고 하고, 아무데서나 가서 왕의 머리 역활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한 몸을 이루는 왕인 것입니다. 이 부분을 바울이 기가 막히게 설명하였습니다. 이것만 바로 깨달아 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세사람이 있어도 완전한 한 몸, 열명이 있어도 한 몸입니다. 성도가 무엇을 깨달아야 되느냐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늘 군대가 동원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만왕의 왕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장에 가면, 직장에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만왕의 왕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자에 가 계시기 때문에, 거기에 하늘의 군대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믿는 개인을 쳐다볼 때에는 제사장 역활을 합니다. 구원의 손을 뻗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저 민족과 세계를 쳐다 보았을 때에는 무슨 역활을 합니까 선지자 역활을 하는 겁니다. 이것을 꺼꾸로, 개인에게 선지자 역활을 하면 안됩니다. 저 말씀이 없는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선지자 역활을 하는 겁니다. 넘어진 죄인에게는 찾아가서, 거기서 선지자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제사장 역활을 하여, 건져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자가 믿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왕되신 그리스도를 내가 모시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거의가 다 이것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흔들흔들합니다. 왕이 무슨 밥걱정합니까 왕이 무슨 살 걱정합니까 왕은 가면 차있고, 옷있고, 다 예비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누구를 모시고 다니느냐에 따라서 권력이 달라집니다. 거지하고 같이 다니면 거지친구, 도둑놈하고 같이 다니면 도둑놈 친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같이 모시고 다니면 왕되신 주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놀라운 증거를 가지고, 전 이방을 향하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핍박은 좀 있지만, 가야 될 것입니다. ‘너를 택한 그릇으로 너를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말씀운동을 펼치는데, 거기에 어떤 인물을 붙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말씀운동을 펼치는데 거기에 어떤 인물을 붙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거지 깡패에게 말씀을 전했는데, 그 거지가 회개하여 말씀 전하는 자가 되었는데, 그분이 김익두 목사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고, 한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웨일즈에 여자 한명이 이 복음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말하였는데, 그것이 전국이 뒤집어 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배후에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예비하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깨닫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장 권찰, 요원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정시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무슨 율법에 묶여서 하라!가 아닙니다. 벌써 응답받고, 내가 달라지면서 되어져야 합니다. 응답받으면 얼굴부터 달라집니다. 응답받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받는 사람은 누가 염려하는 소리를 들으면 웃습니다. ‘그게 무슨 걱정이냐 기도하면 될텐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도 안하는 사람은 누가 염려하는 것을 들으면, 너무너무 은혜됩니다. ‘맞다! 어찌 그렇게 나하고 똑같으냐’면서 맞장구칩니다. 기도응답 받는 사람은 벌써 찬송 부르는데, 다릅니다. 혼자 눈감고, 손들고 찬양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기도 응답 못받는 사람은 찬송 부르면 너무너무 지루해서 온갖것에 눈돌리고, 그럽니다. 사람이 벌써 다릅니다. 기도 응답받는 사람은 시험이 와도 겁내지 않습니다. 시험이 오면, 오히려 도전합니다.
그런데, 기도응답 못받는 사람은 벌써 시험이 오면, 움츠려 버립니다. 겁나거든요. 그러니, 기도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주일날 오면, 봉투가 없는가 싶어서 온갖 감사가 다 나옵니다. 만가지 은혜를 받았거든요. 은혜도 못받았는데, 무슨 감사헌금입니까 주일헌금 십일조를 벌벌 떨면서 할 뿐입니다. 안하면 하나님이 또 벌주실까봐서요. 신앙 수준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매일 염려입니다. 남의 염려까지 다 해주고, 생기지 않은 일까지 미리 당겨서 염려하고 그럽니다. 혹시, 10년 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당겨서 염려하고 그러는 겁니다. 아주 염려투성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위기에 놓일 것을 모르고 계시느냐
그러므로 그 믿음을 뜯어 고쳐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절벽으로 걸어가고 있는지를 모르느냐 그 정도 능력이 없는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몽땅 안믿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신앙을 뜯어 고쳐야 합니다. 우리를 언제 불러 가셔야 할 것인가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그것이 안믿어진다면, 그것은 신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니고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가운데 들어갈 것을 잘 아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의 사자를 보내서, 불을 막으시고, 사자의 입을 봉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느냐 아니냐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염려하고 수단방법 다 동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신다면, 완전히 그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울과 아나니아의 만남도 이루어집니다. 세계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 은혜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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