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의 주님 (고전12:13)
본문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고린도는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약 6, 7십만 명이 거주하는 항구낀 아주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여러 곳에서 잡혀온 노예들, 각 지방 에서 찾아드는 여행자들과 상인들, 선원, 군인, 운동선수들, 야바위꾼, 매춘부, 게 으름장이, 어릿광대, 구걸하는 사람들, 그런만큼이나 도덕과 질서가 없는 방탕한 도시였습니다. 밤 낮 술취하여 떠드는 소리, 음탕한 노래, 신전에서 우상에게 제물 바치는 현란스런 몸짓은 이성없는 짐승과도 같았습니다. 그곳, 1년 6개월을 머물면 서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행18:5) 밝히 증거했는데.소수 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데 반하여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하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지 아니했고 또 유대인들은 복음을 대적하여 바울을 훼방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훼방으로 고린도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몹시 역겨워했습니다. 예수님 살아 계실 때 유대인들이 " 저가(예수님) 귀신 들려 미쳤거늘" 했던 것과 같이. 바울은 온 하늘과 온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예수님을 저주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는 사람들과 대조하여 보면서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 환상 중에 나타나시어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화 함께 있으며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 니."(행18:9) 하신 말씀을 따라 복음을 증거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주"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말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바울이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곧 "하나님의 영" 혹은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에 달려있는 것이라고.성령님 안에 있는 사람만이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고.
성도 여러분,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배웠으며 또 누구라고 고백하는지 자신을 잘 살펴봅시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성령님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 역시 예수님을 주라 고백할 것입니다. 과연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면 분명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다고 믿어 의심할 것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인간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님으로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성령의 사람됨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더욱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했다면, 이왕 고백했 으니 진실한 고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렸을적에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로마황제의 핍박을 피 하여 로마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막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설 때, 맞은편에서 어느 한 분이 로마시내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습니다. "네가 로마를 버리고 도망가니 내가 네대신 로마에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 "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나살자고 로마를 버리고 도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되 돌아 로마시내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 딛습니다. 그 얼굴에는 순교의 각오가 서려있었습니다. 도대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길래." 주를 바라보고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기꺼이 순교했는가! 죽을만큼이나 주님을 사랑하고 공경했 다는 말인가! 다윗이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되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가리켜 "내 주"라고 감히 입 벌려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 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시110) 다윗이 본 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길래.예수님께 대적하는 모든 원수, 모든 열왕, 모든 나라 가 파멸된다고 하는가 어느 나라가 주님을 두려워 떨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왕중에 왕이시요, 나라중에 나라이시니, 그 권세는 무궁하며 그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그로 말미암고 결국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어찌 예수님 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지 않겠으며(롬11:36) 두려워 떨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 둘을 앞서 보내시며,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 하십니다. 말씀대로 나귀새끼를 풀어 오려는 순간, 그 임자가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냅다 소리칩니다. 제자들은 한 마디로 짤라 말합니다. "주께서 쓰 시겠다" 더 이상 묻지도 막지도 아니했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말 한 마디가 나귀새끼 주인의 말을 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요 그것은 나귀새끼의 진정 주 인은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물질을 내것이라 할 자가 있겠는가! 설혹 있다 합시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밤 내 영혼을 부르실 때 그 물질이 다 뉘것이 되겠습니까 하늘도 주님의 것, 땅도 주님의 것,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도 주님의 것, 바로 이 순간에도 예수님은 물질의 주인이십니다. 내 영혼까지라도, 사도 바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 죽어서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 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9) 우리가 살아도 주의 것 죽어도 주의 것입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자꾸 말하시겠습니까 정말 내 것입니까 죽어도 내 것입니까 그 분의 심판대 앞에서도 내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성도 여러분, 예수님 은 신성이 충만한 하나님이십니다. 권능과 권세가 주님께 있어 사망을 깨뜨리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나와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귀신들까지도 떨며 두려워할 분이십니다. 언제까지 예수님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겠습니까 마음과 행동은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입술로만 공경하며, 입으로만 사랑하며, 입술로만 복종하겠으며, 입으로만 주의 것이라 합니까 "너희는 나를 불 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7:46) "내 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하 시기전 예수님 앞에서 회개합시다. 진실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사랑하고 공경 하고 두려워 떨며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알고 예수님께 자원하여 복종하고 순종합 시다. 이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 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쫏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 이까"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성령님 안에서 주라고 고백하는 자는 거짓으 로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예수님 을 주님이라 말한 것이 참으로 성령님으로 한 것입니까 이제부터라도 두렵고 떨림으 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순종하기를 배우십시오. 이것이 성령님 안에서 참 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배웠으며 또 누구라고 고백하는지 자신을 잘 살펴봅시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성령님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 역시 예수님을 주라 고백할 것입니다. 과연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면 분명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다고 믿어 의심할 것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인간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님으로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성령의 사람됨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더욱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했다면, 이왕 고백했 으니 진실한 고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렸을적에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로마황제의 핍박을 피 하여 로마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막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설 때, 맞은편에서 어느 한 분이 로마시내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습니다. "네가 로마를 버리고 도망가니 내가 네대신 로마에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 "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나살자고 로마를 버리고 도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되 돌아 로마시내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 딛습니다. 그 얼굴에는 순교의 각오가 서려있었습니다. 도대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길래." 주를 바라보고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기꺼이 순교했는가! 죽을만큼이나 주님을 사랑하고 공경했 다는 말인가! 다윗이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되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가리켜 "내 주"라고 감히 입 벌려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 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시110) 다윗이 본 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길래.예수님께 대적하는 모든 원수, 모든 열왕, 모든 나라 가 파멸된다고 하는가 어느 나라가 주님을 두려워 떨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왕중에 왕이시요, 나라중에 나라이시니, 그 권세는 무궁하며 그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그로 말미암고 결국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어찌 예수님 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지 않겠으며(롬11:36) 두려워 떨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 둘을 앞서 보내시며,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 하십니다. 말씀대로 나귀새끼를 풀어 오려는 순간, 그 임자가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냅다 소리칩니다. 제자들은 한 마디로 짤라 말합니다. "주께서 쓰 시겠다" 더 이상 묻지도 막지도 아니했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말 한 마디가 나귀새끼 주인의 말을 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요 그것은 나귀새끼의 진정 주 인은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물질을 내것이라 할 자가 있겠는가! 설혹 있다 합시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밤 내 영혼을 부르실 때 그 물질이 다 뉘것이 되겠습니까 하늘도 주님의 것, 땅도 주님의 것,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도 주님의 것, 바로 이 순간에도 예수님은 물질의 주인이십니다. 내 영혼까지라도, 사도 바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 죽어서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 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9) 우리가 살아도 주의 것 죽어도 주의 것입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자꾸 말하시겠습니까 정말 내 것입니까 죽어도 내 것입니까 그 분의 심판대 앞에서도 내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성도 여러분, 예수님 은 신성이 충만한 하나님이십니다. 권능과 권세가 주님께 있어 사망을 깨뜨리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나와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귀신들까지도 떨며 두려워할 분이십니다. 언제까지 예수님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겠습니까 마음과 행동은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입술로만 공경하며, 입으로만 사랑하며, 입술로만 복종하겠으며, 입으로만 주의 것이라 합니까 "너희는 나를 불 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7:46) "내 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하 시기전 예수님 앞에서 회개합시다. 진실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사랑하고 공경 하고 두려워 떨며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알고 예수님께 자원하여 복종하고 순종합 시다. 이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 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쫏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 이까"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성령님 안에서 주라고 고백하는 자는 거짓으 로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예수님 을 주님이라 말한 것이 참으로 성령님으로 한 것입니까 이제부터라도 두렵고 떨림으 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순종하기를 배우십시오. 이것이 성령님 안에서 참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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