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 집사의 설교 (행7:1-53)
본문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은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입니다.사도행전에는 이렇게 긴 설교가 10개 있습니다.
12:14-36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설교인데,오순절 성령님 강림 후에 모여든 무리에게 전도 설교를 하여 삼천명을 회개 시켰습니다.
23:16-26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설교인데,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모여든 무리에게 설교한 것으로 오천명을 회개하게 한 설교입니다.
3스데반의 설교로써,7:1-53에 기록되어 있는데,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즉시로 회개한 사람은 없습니다.
410:34-43 기록되어 있는데,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한 설교입니다.고넬료의 집에서의 설교는 최초의 이방인의 집에서 한 설교인데,이방인에게도 전도하여야 함을 가르쳐 준 설교입니다.513:16-41에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617:16-31은 바울이 에덴에서 720;17-35은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님들에게 밀레도에서 한 설교이며,822:1-21 9 24:10-21 1026:2-23은 바울이 체포되어서 재판자리에서 한 설교입니다.이 10개의 설교를 살펴보면 전반의 대부분의 설교는 베드로가 하였고,후반에는 바울이 한 설교입니다.사도행전의 주요인물이 이 두 사람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10개의 설교중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아닌 단 하나의 설교가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입니다.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를 몇가지 점에서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그는 사도가 아니면서 이렇게 긴설교를 하였고,그의 설교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스데반의 긴 설교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중단되어진 설교입니다.그리고 설교후에 순교를 당한점이 다른 설교들과 차이가 있습니다.세째는 스데반의 설교를 우리가 읽으면 그 설교내용에 있어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와 아주 다릅니다.베드로와 바울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설교입니다.바울은 그가 체포되어 재판자리에 있었지만 그의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 원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그러나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읽으면 왜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설교입니다.그러나 이 스데반의 설교는 아주 심각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돌을 던져 죽일 정도였습니다.스데반 집사가 어떻게 설교하였기에 청중들이 이렇게 흥분하게 되었습니까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 내용을 살펴보려면 왜 스데반 집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게 되었는지의 설교의 동기를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이때 스데반 집사님은 재판자리에서 그의 잘못을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변호하는 입장입니다.고발하는 사람들의 고발 내용이 6:13-14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여기에서 거룩한 곳 이곳은 성전을 말합니다.스데반 집사의 죄목은 성전을 훼방한 죄,성전을 멸시한 죄입니다.이 성전을 멸시한 죄는 스데반이 처음으로 당한 것은 아닙니다.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이 성전 멸시죄로 재판을 하였습니다.예수님을 체포하여 심문을 하였지만 특별히 죽일만한 죄가 없었습니다.그때 한 사람이 와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마 26:61에 “이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거룩한 성전을 멸시하여 헐겠다고 한것이 죄가 되었습니다.예수님의 재판의 결국에는 이 죄목으로 십자가의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성전 멸시죄로 고발당한 사람은 예수님과 스데반 외에도 바울도 고발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와서 체포되었습니다.바울이 체포될 때에 그의 죄목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0:28에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성전)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하니” 라고 말하면서 체포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스데반과 바울은 성전을 멸시하고 성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은 공통점이 있습니다.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는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도대체 성전이 무엇이냐” “성전을 무엇으로 알고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스데반 집사의 설교 제목은 ‘예수를 믿으세요’가 아니고,‘참 성전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성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에는 3개의 성전이 나옵니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 성전,포로 귀환하여 스룹바벨이 주동이 되어서 재건한 스룹바벨 성전,예수님 시대에 헤롯이 증축한 헤롯성전이 있습니다.이 3성전의 핵심은 솔로몬의 성전입니다.또 솔로몬의 성전은 출애굽 때에 성막에서 그 구성 원리가 나온 것입니다.출애굽을 알려고 하면 히브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부터 그 역사를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의 설교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중에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히브리 민족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하는 이들을 선택하여 출애굽하게 하신 것입니다.선택하신 하나님은 함께하여 주심을 표시하기 위하여 성막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성막의 중요한 가르침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교훈입니다.어느곳에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이 임마누엘입니다.이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성막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의 상징입니다.지금은 너희가 이동용 성막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또, 그것이 돌로 된 성전으로 바뀌었지만, 언젠가는 예수님이 오셔서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리라는 상징적인 건물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참 성전은 예수님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돌로된 성전을 헐라.이제는 이 돌로 된 성전이 아니라 내가 사흘만에 부활함으로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늘나라에 성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늘나라 제일 좋은 곳에 웅장한 성전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계시록 21:22에는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의 긴 설교는 이렇게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말하면서 성전의 의미를 말합니다.저기에 있는 저 건물이 성전이 아니고,너희들이 죽인 예수님이 참 성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이 설교는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였습니다.그들은 참 성전을 알지 못하고,거짓 성전을 위해서 참 성전되신 예수님을 죽인 자가 된 것입니다.성전을 멸시한 자가 스데반이 아니라 오히려 바리새인이라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이 바른 바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완악한 무리들은 이를 갈며 분노하여 결국에는 스데반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스데반의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는 과연 참 성전을 알고 있는지 살펴봅시다.교회당을 위해서 예수님을 괴롭히지 아니하였는지 돌아봅시다.
12:14-36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설교인데,오순절 성령님 강림 후에 모여든 무리에게 전도 설교를 하여 삼천명을 회개 시켰습니다.
23:16-26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설교인데,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모여든 무리에게 설교한 것으로 오천명을 회개하게 한 설교입니다.
3스데반의 설교로써,7:1-53에 기록되어 있는데,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즉시로 회개한 사람은 없습니다.
410:34-43 기록되어 있는데,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한 설교입니다.고넬료의 집에서의 설교는 최초의 이방인의 집에서 한 설교인데,이방인에게도 전도하여야 함을 가르쳐 준 설교입니다.513:16-41에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617:16-31은 바울이 에덴에서 720;17-35은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님들에게 밀레도에서 한 설교이며,822:1-21 9 24:10-21 1026:2-23은 바울이 체포되어서 재판자리에서 한 설교입니다.이 10개의 설교를 살펴보면 전반의 대부분의 설교는 베드로가 하였고,후반에는 바울이 한 설교입니다.사도행전의 주요인물이 이 두 사람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10개의 설교중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아닌 단 하나의 설교가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입니다.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를 몇가지 점에서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그는 사도가 아니면서 이렇게 긴설교를 하였고,그의 설교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스데반의 긴 설교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중단되어진 설교입니다.그리고 설교후에 순교를 당한점이 다른 설교들과 차이가 있습니다.세째는 스데반의 설교를 우리가 읽으면 그 설교내용에 있어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와 아주 다릅니다.베드로와 바울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설교입니다.바울은 그가 체포되어 재판자리에 있었지만 그의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 원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그러나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읽으면 왜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설교입니다.그러나 이 스데반의 설교는 아주 심각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돌을 던져 죽일 정도였습니다.스데반 집사가 어떻게 설교하였기에 청중들이 이렇게 흥분하게 되었습니까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 내용을 살펴보려면 왜 스데반 집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게 되었는지의 설교의 동기를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이때 스데반 집사님은 재판자리에서 그의 잘못을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변호하는 입장입니다.고발하는 사람들의 고발 내용이 6:13-14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여기에서 거룩한 곳 이곳은 성전을 말합니다.스데반 집사의 죄목은 성전을 훼방한 죄,성전을 멸시한 죄입니다.이 성전을 멸시한 죄는 스데반이 처음으로 당한 것은 아닙니다.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이 성전 멸시죄로 재판을 하였습니다.예수님을 체포하여 심문을 하였지만 특별히 죽일만한 죄가 없었습니다.그때 한 사람이 와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마 26:61에 “이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거룩한 성전을 멸시하여 헐겠다고 한것이 죄가 되었습니다.예수님의 재판의 결국에는 이 죄목으로 십자가의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성전 멸시죄로 고발당한 사람은 예수님과 스데반 외에도 바울도 고발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와서 체포되었습니다.바울이 체포될 때에 그의 죄목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0:28에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성전)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하니” 라고 말하면서 체포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스데반과 바울은 성전을 멸시하고 성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은 공통점이 있습니다.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는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도대체 성전이 무엇이냐” “성전을 무엇으로 알고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스데반 집사의 설교 제목은 ‘예수를 믿으세요’가 아니고,‘참 성전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성전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성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에는 3개의 성전이 나옵니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 성전,포로 귀환하여 스룹바벨이 주동이 되어서 재건한 스룹바벨 성전,예수님 시대에 헤롯이 증축한 헤롯성전이 있습니다.이 3성전의 핵심은 솔로몬의 성전입니다.또 솔로몬의 성전은 출애굽 때에 성막에서 그 구성 원리가 나온 것입니다.출애굽을 알려고 하면 히브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부터 그 역사를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의 설교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중에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히브리 민족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하는 이들을 선택하여 출애굽하게 하신 것입니다.선택하신 하나님은 함께하여 주심을 표시하기 위하여 성막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성막의 중요한 가르침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교훈입니다.어느곳에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이 임마누엘입니다.이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성막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의 상징입니다.지금은 너희가 이동용 성막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또, 그것이 돌로 된 성전으로 바뀌었지만, 언젠가는 예수님이 오셔서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리라는 상징적인 건물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참 성전은 예수님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돌로된 성전을 헐라.이제는 이 돌로 된 성전이 아니라 내가 사흘만에 부활함으로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늘나라에 성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늘나라 제일 좋은 곳에 웅장한 성전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계시록 21:22에는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의 긴 설교는 이렇게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말하면서 성전의 의미를 말합니다.저기에 있는 저 건물이 성전이 아니고,너희들이 죽인 예수님이 참 성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이 설교는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였습니다.그들은 참 성전을 알지 못하고,거짓 성전을 위해서 참 성전되신 예수님을 죽인 자가 된 것입니다.성전을 멸시한 자가 스데반이 아니라 오히려 바리새인이라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이 바른 바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완악한 무리들은 이를 갈며 분노하여 결국에는 스데반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스데반의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는 과연 참 성전을 알고 있는지 살펴봅시다.교회당을 위해서 예수님을 괴롭히지 아니하였는지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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