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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이기주의를 넘어서 (행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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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대하여 책임 질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걸어야할 길을 걷지 않고,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모른채 발뺌하는 “허약한 이기주의”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오늘날 “그렇다”라고 확신있게 말하는 “살아있는 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임질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의 신상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앞서기 때문에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맙니다. 한마디로 “확신이 없는 세대”입니다. 오늘은 열세돌을 맞이하는
5.18 광주항쟁을 이틀 앞두고 그 역사가 주는 의미를 새기는 주일입니다. 벌써 열세돌을 맞이 하면서도 여전히 원통하고 치욕스러운 역사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제자리 이거나 꺼꾸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땅의 봄을 짖밟은 낯선 야욕과 탐욕의 손과 발로 이 땅을 마음놓고 유린하던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광주의 오월에 대한 정확한 규명도 뒤로 미루어진 채이고 역사적인 책임을 묻는 일을 흐지부지 넘겨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하늘에 씌워진 굴레가 지금까지 여전히 남아 있는데, 골깊은 아픔과 그날의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돈 몇푼 집어주는 것으로 응어리 맺힌 것을 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는 어떠한 해결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답은 너무나 자명한데 “그렇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는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초기공동체를 이끌었던 제자들의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용기로운 확신이 그리운 때입니다. 예수의 적대자들이 여전하게 자리를 지키며 권위의 칼을 내두르고 있던 때 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외적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예수를 따르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막아 세울 수 없는 “자신감”이며 “열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뭇 도전적인 움직임에 대하여 “극도의 불쾌감”을 표시하는 적대 세력의 실재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여호와 하나님나라 운동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곱추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책임있게 말하며 움직이는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이 소멸되지 않도록 우리의 확신은 단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단련된 확신”, 다시말해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확신”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언제까지라도 다함이 없을 용기로운 움직임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온갖 형태의 억울하고 쓰린 고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깨어있어야 하고, 살아있어야 합니다. 또한 확신있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지 않다면 우리를 힘있게 살게하고 변화를 일으키며 자라게 하는 푸르고 튼튼한 의식이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살아있지 아니하면 “절망의 습관”에 둘러쌓여 갇혀버리고, “살림의 의식”은 몸살을 앓게 됩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역사를 바라보며 망각하지 아니하고, 정의의 눈을 부릅뜨고 참으로 아픈 역사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하여 마땅히 움직여야 하고 말해야 하는 시점에 모른채 뒷짐지거나 발뺌하는 “허약한 이기주의”는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허약한 이기주의”가 우리 안에 파고들지는 않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보고 들은 것”, 즉 도무지 “발뺌할 수 없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확신은 시작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체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고쳐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잠들지 않고 깨인 눈으로 보고 듣고 깨우친 것”을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간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를 거부하며 눈감아 버리는 것은 오히려 어색합니다. 우리가 확신하며 움직이는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방해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열정적으로 지속하는냐가 문제 입니다. “중도하차”하는 확신은 애초 “허약한 이기주의”에 기초한 까닭이겠습니다. 경우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꾸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꾸며대는 것은 진정한 확신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열세돌을 맞이 하면서도 여전히 원통한 역사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안타깝게 바라 보고있습니다. 광주의 하늘아래 씌워진 굴레가 여전한데, 무엇으로 응어리 맺힌 것을 풀 수 있다는 것인지 답답증이 더해옵니다. 책임질 생각이 없는 “허약한 이기주의”를 두르고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쩌면 바로 그들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거침없는 확신”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닌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허약한 이기성을 걷어버리고, “그렇다”고 기꺼이 말하는 용기를 다시금 배워야 겠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확신에 찬 고백을 찾아내야 겠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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