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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은 볼 것을 보아야 한다 (행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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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은 본 것을 말하는 자이기 때문에 잘 보아야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뉴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사과 떨어지는 것을 과수원 농부가 더 많이 보았을 텐데 예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뉴톤은 그것을 자세히 보고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스티븐슨은 물 끓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차를 생각했고, 라이트 형제는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비행기를 생각했으며, 헨델의 아버지가 헨델이 오르간 치는 것을 보고 대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보았습니다. 또 돌멩이를 보고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을 연구해 냈으며, 뮬러는 전쟁속에서 고아를 쳐다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때 전도에 대한 나의 오해가 풀렸으며 지역을 나누어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증인은 볼 것을 보아야 하는데 본문을 통해서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연 증인은 무엇을 바로 보아야 하는가
1. 불신자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의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이 사람이 연구해 낸 직업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숨어 있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는 사람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성전 미문에 앉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도 쉬지 않고 날마다 나왔습니다. 2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여기서 보면 이 사람을 도와주는 충성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충성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육신 봉사 즉 구걸하도록 날마다 데려다 주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3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불구자 친구를 학교에 가면서 한번도 쉬지 않고 매일 아침에 찾아가서 졸업할 때까지 부축해 주어서 졸업할 때 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실만큼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고마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농부에게 농사 잘 지으라고 훈련시켜 주고 정신 교육시켜 주는 사람이 있고 남들이 모두 자고 있는 동안 편히 쉬지 못하고 주위를 돌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어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종류로 봉사자가 있는데 동전을 던져 주는 물질 봉사자를 말합니다. 어떤 분은 살다가 죽을 때 자기의 전 재산을 교회에 바쳐서 선교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대전에 한 할머니는 평생 편히 쉬지도 못하고 벌은 돈을 대학교나 도서관을 지으라고 내놓았습니다. 모두 중요한 봉사입니다. 그러나 진정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 봉사, 물질 봉사였을까요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인 앉은뱅이라는 틀림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베드로와 요한이 본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이 말의 뜻은 “아주 자세히 봤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다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불신자를 바라보는 눈이 정확해야 합니다.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종국에 병이 찾아오고 문제가 자꾸만 옵니다. 너무나 낙심이 되고 힘이 없이 길을 가는 도중에 교회 앞에 그날 설교 제목인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는 부분만 듣고 나와 ‘그래 나는 죽어야 마땅할 여자다’라고 생각하고 바다에 빠져 죽기 위해서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갔습니다. 바닷가로 들어가면서 생각하기를 ‘나에게 옳은 말을 해 주는 남자는 저 남자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은 전부 거짓말을 하고 날 유혹했다. 저 사람은 나에게 바른 말을 해 주었으니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이나 해 주자’라고 생각하고선 전화기 앞에 서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끝까지 설교를 듣지 않고 나왔던 그녀는 “내가 오늘 목사님 설교를 너무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확신을 얻었습니다.” “무슨 확신을 얻으셨습니까” “내가 죽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전화했습니다.” 이 전화를 받은 목사님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무조건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자를 만나 “죽으면 안됩니다. 그래도 힘을 내야 됩니다.”라고 하지 안고 “당신은 꼭 죽어야 할 마땅한 사람입니다. 죽어야 됩니다. 오늘 죽어야 합니다. 나도 죽어야 됩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모두 다 청산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춤으로 돌아오면 당신의 모든 문제는 끝이 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옛날의 잘못은 가치가 없습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여자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 됐습니다. 어떤 분이 미국에 가서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려서 죽겠는데 어떻게 하면 고치겠습니까” “자꾸 웃으십시오.” “속이 터지는데 어떻게 웃습니까” “희극 영화를 보면서 그 배우를 보고 무조건 웃으십시오.” “찰리 채플린이라는 유명한 희극배우가 있는데 그 배우를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올 것이며 우울증은 말끔히 없어질 것입니다.” 이때 환자가 하는 말이 “의사 선생님 제가 바로 찰리 채플린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웃기는 배우들 사람들이 지금 우울증에 걸려 죽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상이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자를 쳐다보고 사단에게 눌려 죽어 가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엡2:1에 바울은 실제로 죽은 자이며 몸만 살았다고 했고 다윗은 시편1편에 하나님을 믿는 자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으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약4:14에 보면 인생을 안개와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잘 나가고 영광스러운 것이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로 깨달으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에는 불신자의 모습 6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불신자 소속을 요8:44에 마귀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그 손아귀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둘째, 영적인 상태를 엡2:2에 세상 풍속을 좇고 종노릇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마음 상태는 엡2:3에 늘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로 인해 행8:4-8 육신의 질병이 찾아오고 막5:1-10 영적인 질병까지 오게 됩니다. 다섯째, 미래에는 눅16:1-31 죽어서 지옥으로 가게 되며 마지막으로 고전10:20 죽고난 후에 자녀들에게까지 영적인 문제를 남기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에 말했고, 골2:23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로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했으며 빌3:7,8절에 내가 배운 지식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기도 많이 해서 영의 눈을 여시기 바랍니다. 사업하는 분들 성경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발견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와 우리 한국 교회의 차이가 많습니다. 왜 차이가 많이 나느냐 하면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6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발견한 것입니다. 능력을 알지 못했을 때는 초대 교회가 힘이 없는 무능력한 상태였으나 그의 능력을 알았을 때는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바울에게 힘이 있었던 이유는 고전15:45-50에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이시며 몸은 사람의 몸을 입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명령하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 이름의 위대하심을 발견했을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부분을 확실히 아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발견하고 체험했는데 안되는 이유는 골3:2처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바로 이점이 안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TV만 계속 보면 TV화되고, 음란 서적을 계속 보면 이상하게 돌아버립니다. 불신자들하고 계속 이야기하면 신앙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꾸 모여 간증 듣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이 하늘을 향해 있을 때 땅의 것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모르면 방향을 잃어 헤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행1:8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되며 그 후에는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른 방향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동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앉은뱅이에겐 동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 앉은뱅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명이 바뀌려면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오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냈는데 뒤에 우스운 일이 생깁니다.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높입니다. 12절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하면서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셨다고 말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나오게 한 것입니다. 모든 일을 행하고 나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바른 것입니다. 찬송가중에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는 찬송처럼 모든 것 주님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서도. 4장 한번 보십시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함을 싫어하며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바리새인의 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에 시비를 겁니다. 바울이 귀신들린 소녀를 고쳐 주었는데 그 귀신들린 소녀를 데리고 다니던 돈벌이가 없는 주인이 바울을 바로 고발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우습습니까 구약 예언의 성취를 막으려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과 조직으로 막으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역사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 생명·예수 능력을 가지고 나가면 안될 일이 없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두 가지를 발견해야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세상을 보는 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는 분, 이 두 가지만 열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사단의 권세는 완전히 결박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흑암의 권세들은 벌벌 떠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께 다시 한번 회복되시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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